무여스님과 함께 하는 사찰여행 – 간월암(충남 서산), Ganwol Hermitage[4k]
저는 설을 맞이하여 아름다운 바닷가를 볼 수 있는 사찰, 바닷길이 열려야 갈 수 있는 암자, 간월암에 다녀왔습니다. 간월암은 만조 때에는 바다 위에 떠 있고, 간조 때에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 암자입니다. 고려 말에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수행 중에 달을 보고 깨우쳤다고 하여 암자의 이름이 간월암입니다. 그 후 만공스님이 중창 불사를 한 후에 수많은 도인스님들이 수행을 하셨던 암자입니다. 2020년 한 해의 원력과 서원을 다지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즐겁게 보시고,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새해에 더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간월암 사찰 정보 주소: 충남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1길 119-29 전화번호: 041-668-6624
김유식의 펜화로 찾아가는 사찰기행 <23·끝> 서산 간월암
달빛 너머 관세음보살 미소 벙그는 ‘피안사’
하루 두 번 섬이 되는 절
무학대사가 달을 보고
깨달음 얻은 관음성지
달빛에 젖은 서산 간월암. 72x40cm, Pen drawing on Hanji paper.
안면도 꽃지 해변 가는 길에 있는 간월암을 평소에는 물때가 맞지 않아 그냥 지나치다가 이번에는 마음먹고 가보기로 했다. 서해안 고속도로 홍성 인터체인지에서 나와 좌회전하여 서산 방조제 천수만로를 따라 바다 위를 달려 간월도로 향한다.
방조제를 건너자마자 좌회전하여 간월도 캠핑장 방향으로 향하면 간월도 어리굴젓 기념탑이 서 있고 저 멀리 간월암이 보인다. 우선 간월암 입구에는 작은 주차장이 있어 바로 접근할 수도 있는데 그날따라 차가 많아 간월도 선착장의 넓은 주차장에서부터는 걸어서 가게 되었다.
하루 두 번, 썰물이 있을 때 걸어서 절에 갈 수 있으니 물때를 미리 확인해야 한다. 1980년대 진행된 천수만 간척 사업으로 인해 육지와 연결된 방조제가 생기기 전에는 배를 타지 않으면 닿을 수 없는 작은 섬이었다.
물이 빠진 후 암자로 향하는 길은 잘 되어 있지만 만조 시에는 길이 바닷물에 잠긴다. 밀물 때는 섬이 되고 썰물 때는 뭍이 되어 암자를 섬으로 만드는 매력 있는 곳이다. 간월도 전체를 상징하는 작은 암자가 바로 간월암(看月庵)이다. 간월암은 한자로 볼 간(看), 달 월(月)로 ‘달빛을 본다’ 뜻으로 고려 말에 이성계의 왕사였던 무학대사가 수행하던 중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예전에는 피안사(彼岸寺)라 부르기도 했다 한다.
간월암은 여러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관음도량이다 보니 물 위에 뜬 모습이 연꽃을 닮아 연화대(蓮花臺)라고도 하고 낙가산 원통대(圓通臺)라고 부르기도 했다는데 조선 초 창건된 것으로 추정할 뿐 정확한 창건 시기는 알지 못한다. 다만 조선시대 숭유척불 정책으로 폐사됐다가 1941년 만공선사가 다시 세운 사실이 전해온다. 선사는 일제강점기의 스님이자 독립운동가로, 근현대 한국 불교계에 큰 발자국을 남긴 분이다. 선사는 조국의 독립을 기원하며 천일기도를 드렸고, 회향 3일 만에 광복을 맞이했다고 전해진다.
무학대사는 간월암을 떠나면서 짚고 다니던 주장자를 뜰에 꽂으며, 지팡이에 잎이 피어나 나무가 되어 자랄 것인데 그 나무가 말라 죽으면 나라가 쇠망할 것이요, 죽었던 나무에서 다시 잎이 피면 국운이 돌아올 것이라 예언했다고 한다. 만공스님은 죽었던 나무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을 듣고 간월암을 찾으나 암자는 간 곳이 없고 그 자리에 묘가 들어서 있었는데, 실제 귀목나무에서 새파란 잎이 돋아나 있는 것을 보고 이곳에 머물며 중창을 위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기도 회향 전에 김씨 가문에서 묘를 이장해 가는 가피가 있었고, 절터를 되찾은 다음 제법 모습을 갖춘 암자를 짓고 손수 간월암이라는 현판을 썼다고 전해진다. 이후 벽초, 서해, 진암스님의 발길이 닿았었고 경봉, 춘성, 효봉, 금오, 성철스님 등 기라성 같은 분들이 이곳 간월암에 수행의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
지금은 대한불교 조계종 덕숭총림 수덕사의 말사로 많은 방문객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추운 겨울인데도 기도객들은 간월암을 찾아 발원을 한다. 겨울에 찾은 눈 덮인 간월암에 들렀을 때는 저녁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절로 들어가는 길에서 바라본 전경을 펜화로 담으며 참으로 소박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월암에 도착해서 해변 난간을 따라 한 바퀴를 돌며 바다향을 음미하고는 일주문을 통해 경내로 들어갔다. 사찰의 규모는 매우 작은 편이어서 일주문을 들어서면 종무소 옆에 중심 전각인 관음전 주변으로 산신각, 용왕각, 공양간 요사채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모두 하나의 섬에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다. 종무소 앞에 약 250년 된 사철나무 보호수는 사찰의 고고한 멋을 더해준다.
간월암의 주불전은 관음전으로 안에는 목조 관음보살 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나무와 종이로 틀을 제작한 뒤 금칠을 입힌 불상으로 양식적인 특징상 1600년 전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임진왜란 이후에 형식화된 보살상과는 다르게 갸름한 타원형의 상호, 비교적 긴 상체, 높고 안정감 있는 무릎, 부드러운 천의의 표현 등이 특징인 조선시대의 보살상이다. 불상 밑바닥에 복장공은 남아있으나, 남아있는 복장 유물이나 관련 기록이 없어서 안타깝게도 정확한 제작 연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작은 불상이어서 규모가 작은 삼존불상의 협시보살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간월암을 둘러싸고 있는 해변의 안전 난간에는 장승같은 형태로 관세음보살의 상호와 화관을 조각하여 관음도량임을 알게 해준다. 이름 없는 작은 전각이 하나 보여 스님께 여쭈어보니 관광객들이 흔히 용왕각이라고 부르는데 사실은 내부의 탱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해수관음을 모신 또 다른 관음전이라고 한다.
탱화 속 관세음보살은 특이하게도 아미타불이 그려진 화관을 쓰지 않고 용을 타고 있어 관광객들의 눈에는 과연 누구를 그린 탱화인지 의문투성이였을 거라 짐작이 된다. 그래서 쉽게 용왕 전이라고 불렸던 게 아닌가 싶다. 간월암에서 나오며 왼쪽 방향을 바라보면 긴 방파제 끝에 빨간 등대가 보인다. 어둠이 내리면 방파제와 등대에 조명이 켜져서 또 다른 볼거리를 선사해 준다.
간월암 설경. 56x38cm, Pen drawing on paper.
올해의 마지막 취재를 위해 이번에 다시 찾은 간월암에서는 운 좋게도 그 유명한 낙조를 볼 수 있었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주변의 크고 작은 섬들을 동시에 붉게 물들이며 강렬하고도 황홀했던 태양이 사그라들고 난 뒤 바다 위로 둥근 보름달이 떠올랐을 때의 광경 또한 한 폭의 수채화처럼 느껴져 이 장면도 펜화로 담아보았다.
한때 피안사라고 불리었던 간월암. 이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간월암을 수행자의 시선으로 보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에서 부처님의 세계인 피안으로 인도하는 반야용선이라는 배 그 자체로 보았던 것 같다. 만약 그것이 아니라면 산사의 무문관보다 훨씬 더 격리된 느낌을 주는 바다 한복판에서, 하루에 딱 두 번만 길을 열어주는 이 바위섬이 간절한 마음으로 정진하는 구도자들에게 피안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무학대사도 이 모습을 보며 달빛과 교감한 나머지 깨달음을 얻어 간월암이라고 이름 짓지 않았을까. 오늘따라 휘영청 저 밝은 보름달빛이 마치 반야용선이 나아가야 할 앞길을 비추어주는 등불 같다는 생각에 환희심 마저 든다. usikim@naver.com
[불교신문 3747호/2022년12월20일자]
펜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