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파이어 이론과 실제
Ⅰ. 서론(序論)
다시금 겨울 방학이 다가왔다. 그 동안 밀쳐왔던 믿음의 교육에 힘쓸 때요, 또한 신앙연단을 위하여 힘쓸 좋은 계절이다.
이 시간은 캠프 화이어 부분을 다루고자 한다.
캠프 화이어 시간은 수련회 기간 중 마지막 밤에 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캠프 화이어는 일반 단체에서 모닥 불을 지펴 놓고 여흥을 돋우며 “부어라, 마셔라” 하는 그런 막된 시간이 아니다. 이 시간은 수련회의 총 결산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한 영혼의 생사가 달려 있는 황금 같은 시간이다. 때문에 이 시간은 모닥불만 지펴서 재미를 찾는 그런 시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 시간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신 주님”앞에
① 그리스도인으로서 결단하는 시간이요,
② 타오르는 모닥불 앞에서 캠프 기간 동안의 성숙된 신앙을 확인하고
③ 불길과 같이 주님을 위하여 일할 것을 다짐하며,
④ 구원의 확신이 없는 친구들에게 마음의문을 열 수 있게 하며,
⑤ 교제의 친목 속에 진정한 영성훈련을 함으로
⑥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성숙을 가져오는데 캠프 화이어의 목적 이 있다. 그러므로 캠프 화이어는
⑦ 친구들에게 깊은 감명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순서 하나하나에 역사 하는 성령의 손길이 있어야 하며, 감명 있는 순서가 계획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진행을 맡은 자가 신앙 인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진행자가 영적인 준비가 없었다고 해보자. 빈틈이 없이 준비가 잘되고 친구들에게 한바탕 웃음과 즐거움이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의의 유희에 불과하며 사회인들의 광기 어린 모닥불 놀이와 다를 게 어디 있겠는가? 캠프를 통하여 “잘 놀았다”, “재미있었다”라는 표현이 서슴없이 나올지는 모르지만 한 생명의 영혼 소생에는 별 관계가 없는 것이다. 반대로 영적인 준비가 잘되면은 순서가 좀 미숙해도 순서 순서에 임할 때마다 친구들의 심령 속에 새 생명의 환희와 또 다른 영적인 파문이 일어나게 되어있다.
올 캠프 화이어는 기도와 성서적 기초를 중심으로 준비해야 하며 하나의 어휘를 선택하는데도 기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조금 더 나아가 드라마틱한 장면이 되어야하며, 감명 깊게 할 수 있는 장면들을 연출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진행을 맡은 사람은 효과를 생각해야한다.
캠프를 출발 하기 전에 미리 캠프 화이어의 순서와 목적, 준비물,협조사항들을 주지 시킬 때 교육 효과를 크게 높일 수 있다.
본 강습회에서는 전반부에 통전적인 프로그램을 소개한 후 후반부에서 “영성 훈련화 된 프로그램의 실제”를 다루고자 한다.
Ⅱ. 이론편
기독교 역사가 시작된지 2천 여 년이 되었다. 110 여 년 전만 해도 우리와는 상관이 없었던 기독교가 이 나라에 전래되어 한국 강산에 뿌려진 선교의 씨앗이 싹이 트고 자라서 이제는 다른 나라와 세계의 역사 속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부흥과 발전을 가져왔다.
이 같은 경이적인 현실 속에서 또 다시 맞이하는 여름캠프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은 그리 해맑지 못하고 착잡하고 걱정스러우며 불안감 마져 (역사적인 교회와 비교해 볼 때에) 엄습해 온다. 수많은 교회와 갈수록 화려해지는 캠프 장들, 과거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하게 예수를 믿어야할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각 교회 학교마다 놀라운 외적 성장은 가져 왔으나 교회의 내적 성장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많은 문제점들을 노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마다 많은 프로그램으로 친구들과 학부모들은 프로그램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 이는 프로그램과 진행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을 공부하면 사회에서는 대단한 지식인과 실력자가 된다. 하지만 교회에서 12년을 공부하고, 신앙훈련을 받고서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신앙까지도 졸업하며 예수를 몰랐던 사람들보다 더 타락하고 범죄의 도가니로 줄달음치는 친구들의 뒤안길을 바라보는 우리는 이제 어떤 교육을 시켜야할까?
1. 캠프 화이어와 성령
지금까지는 기독교나 교회에서 성령(ἅγιον πνεύμα)을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제 3위(三位)로 언급해왔다. 교회마다 성령에 대해서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지만 지금껏 수많은 혼란을 가져왔다. 그 이유는 성령 자체가 물질명사가 아니라 추상명사라는 점과, 역사적으로 성령에 대한 다양한 반응과 결과 및, 성령에 대해 일방적인 면만 강조하여왔기 때문이다.
KJV에서는 “프뉴마(성령:Πνευματος)”를 HOLY GHOST(성신, 聖神) 로 번역을 하였다. KJV이후 200-300여 년이 지나서 ASV와 RSV에서는 HOLY SPIRIT(성령, 聖靈)로 번역을 하였다. 우리 나라 개역 성경에서도 성신(聖神)을 성령(聖靈)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온 세계는 SPIRIT 보다 GHOST쪽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
HOLY SPIRIT은 거룩한 정신(精神)과 사상(思想)과 뜻(志)과 진리(眞理)를 말하나 HOLY GHOST는 거룩한 넋과 혼령(魂靈)과 유령(幽靈)과 혼백(魂魄)을 말하고 있다. 문제는 교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이 달라지고 역사가 달라지고 프로그램이 달라진다.
2. 캠프 화이어와 복음
복음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말한다. 따라서 “복음”은 종교로 도의로 윤리로 직위로 부유로 공로로 실적으로 선행으로 대하지 아니한다. “복음”은 죄인도 의인도, 친구도 원수도, 신자도 불신자도, 세리도 창기도, 살인자도 강간 자도, 사기꾼도 협잡군도, 군자도 망란 이도, 유한 자도 무한 자도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복음은 그가 어떤 상태에 있던 “복음”을 믿기를 원한다. 그러나 강요(强要) 하지 않으며 강압(强壓) 하지 않으며 강권(强勸) 하지 않는다. 다만 권면하며 호소하며 설득하며 교육하며 훈계할 뿐이다. 오직 “복음”은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며 새로운 존재로 만든다. 이는 어떤 종교적인 인간을 말하지 아니하고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 되게 하는데 있다. 여기에 福音의 진수가 있다.
3. 캠프 화이어와 목회 및 선교
목회 적인 측면에서 보면은 1960년대 한국은 4.19와 5.16이라는 사회의 기류와 정치, 경제, 사회적 변동을 경험했다. 이때 한국 개신교는 부흥운동, 성령운동을 전개하면서 세계의 역사이래 없는 양적 성장과 더불어 교회학교도 일익 부흥하여왔다. 그러나 이제는 일종의 한계상황에 부딪히게 되었다. 이러한 위기가 계속되는데도 교회는 전과 다름없는 목회와 교육으로 양적인 팽창, 교회내의 관료주의, 유대 종교화, 성전 종교화, 율법 종교화, 왕국화, 제국화가 되었다.
중고등부와 청년회로 올라 갈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지 아니하고 비 복음적인 것들이 자꾸만 설명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어지지 아니하므로 감동도 감격도 은혜도 감사도 찬양도 변화도 따르지 못하고 있다.
이 영향으로 비 복음적이고 비 영성 적인 기도, 목회, 예배, 신앙이 만연하여 인위적이고 제도화된 교회학교의 장이 되었다. 곧 주님의 방법보다는 인위적이요, 산업적이요, 유교적인 인간관계화가 만연한 현장이 되어 버렸다.
성육신(成肉身, λογος, Word)하신 하나님의 아들은 어떤 특정인이 아닌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다. 이 복음은 자기 나라(자기교회)나 우리 나라(우리교회)의 복음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었다. 이 복음을 받아든 우리는 목양의 장을 넓고 크게 바라보고, 이제는 복음의 핵심인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원수사랑의 캠프가 운영되도록 해야한다.
Ⅲ. 캠프 화이어의 실제
**. 불 피우는 모양
땔감과 자리를 미리 잘 준비하고 특히 주위에 연소하기 쉬운 것이 있는지를 살피고 바람의 상태에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한다. 불을 피울 때는 다음 네 가지 대표적인 모양이 있다.
< 피라미드형 : TEPEE > < 정자형 : LOG CABIN >
< 뗏목형 : CRISSCROSS > < 별 형 : STAR >
< 보조하는 불 >
(1) 화롯불 (2) 촛불 (3) 횃불 (4) 폭죽 (5) 초롱불(데크레이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