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Chapter 3 마리우스 가난의 얼굴(1)
여름이 지나고 가을도 갔다. 그리고 겨울이 왔다. 하얀 신사와 딸은 두 번 다시 뤽상부르 공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마리우스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일념밖에 없었다. 그는 만사를 팽개치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다녔다. 하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그는 이미 열광적인 몽상가도 아니었고 열렬하고 확고한 의지를 가진 사나이도 아니었다. 단호하게 운명에 도전하는 사람도 아니고 긍지와 사상의 의지에 충만한 젊은 정신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미래 위에 꿈을 그려 올릴 만한 두뇌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길을 잃고 헤매는 한 마리의 개였다. 그는 암담한 슬픔 속에 빠져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다. 일에도 싫증이 나고 산책에도 지치고 고독에도 염증이 나 버렸다. 예전에는 그토록 가지가지의 형상과 빛과 소리와 조언과 전망과 교훈에 가득 차 있었던 저 넓은 자연도 이제 공허하기만 했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소멸된 것처럼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는 계속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밖에는 할 일이 없었다. 이제는 생각에서도 즐거움을 느끼지 못했다. 생각이 끊임없이 가져다주는 모든 것에 대해 그는 어둠 속에서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마리우스는 여전히 고르보 저책에 살고 있었다. 그는 이 집에서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 무렵 그 집에 살고 있는 것은 그 자신과 종드레트 일가뿐이었다. 종드레트 가족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거리에 나가 구걸을 하여 한두 푼씩 얻은 돈으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형편이었다. 그는 이 가족의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딸들과도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한 번 그드르이 방값을 대신 치러 준 일이 있었다. 이 집에 세든 다른 사람들은 죽거나 아니면 방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거나 했다.
그해 겨울의 어느 날, 오후가 되어서야 태양이 약간 얼굴을 내밀었다. 2월 2일 성촉절(聖燭節)이었다.
날이 저물어 갈 무렵에야 마리우스는 자기 동굴에서 기어 나왔다. 저녁 식사를 하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슬프더라도 식사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리우스는 생자크가로 가기 위해 성문 쪽을 향해 큰길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머리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겼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무엇이 부딪치는 것 같았다. 돌아다보니 누더기를 입은 두 처녀였다. 한 사람은 키가 크고 또 한 사람은 그보다 약간 작았다. 그녀들은 바삐 길을 걸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겁먹은 품이 쫓기고 있는 듯했다. 마리우스는 어둠 속에서도 그녀들의 창백한 얼굴, 흐트러진 머리, 더러운 모자, 낡은 치마,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을 볼 수 있었다. 그녀들은 달음질치듯 나지막하게 이야기했다.
“사냥개(형사)가 왔지 뭐니, 하마터면 채일 뻔했어.”
작은 처녀가 대답했다.
“나도 봤어. 그래서 냅다 뛴 거야!”
마리우스는 그 불쾌한 은어로 미루어 이 처녀들이 헌병이나 순경에게 쫓기고 있다는 것, 그녀들이 도망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녀들은 그의 등 뒤에 있는 가로수 그늘에 숨어 잠시 주위를 살펴보다가 사라졌다.
마리우스가 잠시 멈춰 섰다가 다시 걸으려 할 때 발밑에 작은 꾸러미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몸을 구부려 이것을 집어 들었다. 회색 꾸러미 속에는 봉투 같은 것이 있는 듯싶었다. 그가 말했다.
“저런! 그 처녀들이 떨어뜨린 모양이군.”
그는 돌아서서 불러 보았으나 이미 그녀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멀리 갔을 것이라 생각된 마리우스는 꾸러미를 주머니에 넣고 식사를 하러 갔다.
그날 밤 자려고 옷을 벗는데 그의 손이 외투 주머니에 넣었던 꾸러미에 닿았다. 그는 이것을 잊고 있엇다. 풀어 보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되었다. 만일 그것이 처녀들의 것이라면 주소가 적혀 있을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더라도 잃어버린 사람에게 돌려줄 단서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꾸러미를 끄르고 봉투를 열었다. 봉투는 봉해져 있지 않았는데 그 속에는 네 통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모두 이름이 적혀 있었고 또 거기서는 지독한 담배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마리우스는 네 통의 편지를 다 읽었으나 아무런 단서도 잡지 못했다. 우선 발신인의 주소가 적혀 있지 않앗다. 그리고 돈 알바레스, 발리자르의 아내, 시인 장플로, 배우 파방투 등 네 사람이 쓴 편지 같았으나 기이하게도 모두 필적이 같았다.
동일인의 것이 아니라면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이 편지가 동일인의 것이란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몇 가지 증거가 있었다. 네 통이 모두 누렇게 바랜 종이에 쓰여 있고 담배 냄새도 같았다. 분명히 문체를 바꾸려 한 흔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오자가 태연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문학가 장플로도 돈 알바레스 대위에 못지않게 오자투성이였다.
이 하찮은 수수께끼를 풀려는 노력은 헛수고에 불과했다. 만일 그것이 습득물이 아니었다면 장난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마리우스는 너무나 큰 슬픔에 잠겨 있었기에 그러한 우연의 장난에 신경 쓰고 있을 만한 여유가 없었으며, 한길에 깔린 돌이 그를 놀리려고 하는 것 같은 그런 조롱에 마음을 쓸 여유도 없었다. 그는 마치 자기를 놀리고 있는 것 같은 이 네 통의 편지가 여우처럼 자기를 홀리는 것이라 여겨졌다.
이들 편지가 한길에서 만난 처녀들의 것이란 흔적도 없었다. 결국 이것은 아무 가치도 없는 휴지에 지나지 않았다. 마리우스는 편지를 도로 넣어 방 한구석에 던진 다음 잠을 청했다.
이튿날에는 7시쯤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그가 일하러 나가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누가 방문을 두드렸다. 그는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기 대문에 자물쇠를 잠그는 일이 없었다. 부재중일 때에도 열쇠를 자물쇠에 꽂은 채 그대로 두었다. “그러다 도둑맞으리다”하고 뷔르공 노파가 말하면 “도둑맞을 것이 있어야죠”하는 것이 마리우스의 대답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어느 날 그의 낡은 장화 한 켤레를 도둑맞았다. 뷔르공 노파의 말이 적중한 것이다.
한 번 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 때와 마찬가지로 아주 조용히. 마리우스가 말했다.
“들어오세요. “
문이열렸다.
“무슨 일이세요, 뷔르공 할머니?”
마리우스는 탁자 위의 책과 원고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뷔르공 노파가 아닌 다른 음성이 대답했다.
“실례합니다만, 저…..”
탁하고 쉰 듯하며 잠긴 목소리였다. 브랜디나 독한 술에 젖은 음성 그것이었다. 마리우스는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젊은 처녀 한 사람이 반쯤 열린 문에 머뭇거리며 서 있었다. 천장으로 뚫린 다락방 창문으로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 빛이 처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까칠하고 깡마른 여자였다. 달달 떨고 있는 알몸에 걸친 것이라고는 슈미즈와 치마 뿐이었다. 허리띠 대신 가느다란 끈, 리본 대신 헝겊 조각, 슈미즈 밖으로 불거진 어깨, 갈색에 가까운 얼굴빛, 흙빛으로 변한 빗장뼈, 빨간 손, 빛바랜 입술, 빠진 이, 흐릿하고 저질스러워 보이는 눈, 발육이 나빠 보이는 몸매에 노파와도 같은 눈언저리, 50세와 15세가 겹쳐진 듯한 인상, 약하디 약하지만 무서워 보이고 사람을 울리거나 전율케 하는 용모. 그녀는 이런 모습이었다.
마리우스는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유령 같은 이 여자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무엇보다도 가슴 아팠던 것은, 이 처녀가 태어나면서부터 추한 얼굴을 아니었으리라는 점이었다. 어렸을 때는 귀여웠을 게 틀림없다. 한창 때의 아름다움은 아직도 가난과 방종으로 인한 겉늙음과 갈들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름다웠던 흔적이 그 16세 된 얼굴에서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겨울 아침의 해가 무시무시한 먹구름으로 가려지려 하고 있는 것과도 같았다.
그 얼굴은 마리우스에게 전혀 생소하지는 않았다. 어디서 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리우스가 물었다.
“무슨 일인가요, 아가씨?”
처녀는 술이 덜 깬 악당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편지예요, 마리우스 씨. “
처녀는 그를 마리우스라고 불렀다. 자기에게 용무가 있는 것만은 틀림이 없었다. 처녀는 도대체 누구일까?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을까?
이쪽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안으로 들어왔다. 거침없는 태도로 들어와 당돌하게 방 안을 구석구석 둘러보았다. 신발은 벗고 있었다. 치마에는 큰 구멍이 둟려 넓적다리와 무릎이 드러나 보였다. 온몸은 떨고 있었다. 과연 그녀는 한 통의 편지를 마리우스에게 건넸다.
마리우스는 편지를 뜯었다. 봉투는 아직 풀칠한 자리가 젖어 있어 멀리서 온 것이 아님이 분명했다. 그는 편지를 읽었다.
친철하신 절믄 어른!
저는 당신이 반년 전 우리 방갑을 치러 주신 호 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고맙게 생각함니다. 절믄 어른, 우리가 이틀 전부터 한 조각의 빵도 먹지 못했다는 사실을 큰딸로부터 들어 주십시오. 저희는 네 식구인데 더더구나 아내는 병들어 알코 이씀니다. 만일 제가 잘못 생각하지 안았다면, 당신의 관대하신 마음이 저를 동정하여 약간의 자선을 베풀어 주시리라 밋고 기대함니다. 인정있는 은인에게 최대의 경의를 바침니다.
종드레트
추신-딸은 당신의 지시를 기다릴 거심니다. 친애하는 마리우스 님.
어젯밤부터 마리우스가 휘말려 있던 정체 모를 사건의 와중에서 이 편지는 동굴 속에 비치는 햇살과 같았다.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이 편지의 출처는 다른 네 통의 편지와 같은 곳이었다. 필적이나 문체는 물론, 오자도 같았다. 종이도 같고 담배 냄새도 역시 같았다.
그것은 다섯 통의 편지, 다섯 가지 지어낸 이야기, 다섯 사람의 이름, 다섯 개의 서명 그러나 단 한 사람의 발신인이었다. 스페인의 대위 돈 알바레스, 불쌍한 여자 발리자르, 극작가 장플로, 늙은 배우 파방투 이 네 사람은 모두 종트레트 자신이었다. 물론 종드레트의 이름이 종드레트면 말이다.
마리우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집에 살고 있었으나 그들을 만나기는 커녕 이름도 들어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그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던 것이다. 시선이란 것도 마음이 가는 곳에 돌려지게 마련이다. 종드레트네 가족과는 복도나 층계에서 한두 번 만나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마리우스에게 있어서 단순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지난밤 거리에서 부딪혔을 때에도 그것이 종드레트의 딸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다. 방금 자기 방에 들어온 그 처녀에 대해서도 혐오와 연민의 정을 통해 어디서 만난 듯한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을 뿐이었다.
이제야 그는 모든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궁해 빠진 종드레트가 친절한 사람들의 자비심을 이용해 돈을 뜯는다는 것, 여러 사람의 주소를 입수해 그중 돈이 있고 동정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가명으로 편지를 써 딸들로 하여금 전하게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위험을 안은 것은 딸들이었다. 그러나 부친은 딸들에게 위험을 무릅쓰게 할 정도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
그는 운명을 상대로 딸들을 걸고 도박을 했던 것이다. 어젯밤에 목격한 딸들의 도망치는 모습, 헐떡이는 숨결, 겁먹은 태도, 그녀들이 내뱉은 은어, 이런 것으로 미루어 볼 때 그 불행한 처녀들도 무언가 좋지 못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인간 사회의 한복판에 놓인 비참한 두 존재, 어린애도 처녀도 아니고 여인도 아닌 빈곤으로 야기되어 불결하기는 하지만 죄가 없는 괴물 같은 것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인식했다. 이름도 없고 나이도 남녀의 구별도 없는 가련한 존재, 그녀들에게는 이미 선도 악도 없는 것이다. 유년 시대를 벗어나자 그녀들은 벌써 이 세계에서 자유도 덕(德)도 책임도 갖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오늘 피었다가 내일에는 시들어 버릴 영혼인 것이다. 길바닥에 떨어져 진창 속에 묻히고 이제는 수레바퀴에 짓밟히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꽃들인 것이다.
마리우스가 놀람과 슬픔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느데도, 처녀는 유령처럼 거리낌 없이 방에서 왔다 갔다 돌아다니고 있었다. 벌거벗은 몸과 다름없는 것을 전혀 의식하고 있지 않았다. 가끔 찢어진 슈미즈가 허리 언저리까지 흘러내렸다. 의자를 움직여 보기도 하고 찬장에 놓인 화장 도구를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마리우스의 옷을 들춰 보기도 하고 방구석에 있는 것을 뒤지기도 했다.
“어머! 당신 거울도 가지고 있군요.”
그녀는 말하면서 마치 자기 혼자 있는 듯이 유행가 나부랭이를 되지 못한 소리로 흥얼거렸다. 그 쉰 목소리는 분위기를 더욱 음울하게 만들었다. 그 뻔뻔스런 태도에도 불구하고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불안과 비굴이 드러나 보이고 있었다. 파렴치는 일종의 부끄러움인 것이다.
이 처녀가 마치 햇빛에 놀랐거나 날개가 부러진 새처럼 방 안에서 퍼드덕거리는 것을 보기란 참 가슴 아픈 일이다. 교육과 운명의 조건이 달랐더라면, 이 처녀의 활달하고 자유스런 행동은 아마 어느 정도 사랑스럽게 보였으리라 생각되었다. 동물 사이에서는 비둘기로 태어날 것이 독수리로 변하는 일이 결코 없다. 이 변화는 인간에게서만 일어나는 것이다. 마리우스는 생각에 잠겨 그녀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처녀가 탁자 곁으로 왔다.
그녀가 말했다.
“어머! 책이 있군요.”
흐릿한 눈이 반짝 빛났다. 그리고 어떠한 사람이나 다 느낄 수 있는 무슨 자만 같은 행복을 나타내며 말했다.
“저도 글을 읽을 수 있어요.”
처녀는 탁자에 펼쳐 놓았던 책을 집어 들고 제법 유창하게 읽어 내려갔다.
“보뒤엥 장군은 그가 지휘하는 여단의 다섯 대대를 이끌고 워털루 평원 한가운데에 있는 우고몽 성을 탈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녀는 책을 읽다 말고 말했다.
“어머! 워털루! 저도 알고 있어요. 옛날 전쟁이죠. 아버지도 싸움을 했어요. 아버지는 군인이었죠. 우리는 모두 훌륭한 보나파르트 지지자예요! 워털루란 영국군과 싸운 곳이죠.”
그녀는 책을 놓고 펜을 들면서 이어 말했다.
“저는 쓸 줄도 알아요!”
그러고는 잉크를 찍으며 그를 향해 말했다.
“보시겠어요? 시험 삼아 몇 자 써 볼게요.”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처녀는 탁자 한가운데에 있던 백지에 이렇게 썼다.
‘사냥개가 있다.’
이어서 그녀는 마리우스를 말똥말똥 쳐다보며 묘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마리우스 씨, 당신은 자신이 미남이라는 것을 알고 있나요?”
이때 그들 두 사람은 똑같은 생각을 했다. 처녀는 미소를 짓고 사나이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청년 곁으로 가서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당신은 저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는군요. 하지만 저는 당신을 알고 있어요, 마리우스 씨. 가금 층계에서 만나고 아우스터리츠에 사는 마뵈프 아저씨 집에 들어가는 것도 보았어요. 그 근처를 지나가다가 말이에요. 그런데 참, 그 더벅머리는 당신한테 참 잘 어울려요.”
그녀는 애써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하려 했으나 목소리가 아주 작아지는 데 그치고 말았다. 말소리의 일부는 마치 망가진 건반을 두드리듯이 목구멍에서 나오다가 사라져 버렸다.
마리우스는 살짝 몸을 비켰다. 그는 평소와 같이 냉정하고 근엄한 태도로 말했다.
“아가씨. 저기 꾸러미가 있는데 틀림없이 당신 것을 테죠. 돌려 드리겠습니다. “
마리우스는 네 통의 편지가 든 봉투를 건네주었다. 처녀는 손뼉을 치며 외쳤다.
“여태껏 찾았어요. “
그녀는 얼른 꾸러미를 낚아채 봉투를 열면서 말했다.
“원, 세상에! 동생하고 얼마나 찾았는지 몰라요! 당신이 주웠군요! 한 길에서 주웠지요? 그게 틀림없죠? 우리가 도망칠 때 떨어뜨렸을 거예요. 동생 년이 글쎄 그런 바보짓을 했어요. 집에 돌아와 보니까 없어져버렸지 뭐예요. 우리는 매 맞는 것이 싫고 또 그럴 필요도 없어서, 절대로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편지를 모두 돌렸다고 그랬어요. 다 돌렸지만 소용이 없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여기 있었네요, 가엾은 편지가! 당신은 이게 우리 것인 줄 어떻게 알았나요? 아, 그렇지! 글씨체를 보고 알았군요? 어젯밤에 부딪힌 사람이 바로 당신이었군요? 하지만 보이지 않았어요. 나는 동생에게 말해 줬죠. ‘부딪힌 사람이 남자일 거야’ 그랬더니 동생도 ‘남자일 거야’하더군요.”
그동안 처녀는 ‘생자크뒤오파 성당의 자비 깊은 분에게’ 보내는 편지를 펼쳐 놓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어머! 이건 성당 미사에 참석하는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거예요. 마침 시간이 되었네요. 갖다 주고 와야겠어요. 아마 점심값 정도는 줄 테죠. “
그녀는 깔깔거리며 덧붙였다.
“우리가 오늘 점심을 먹게 되면 어떤 결과가 되는지 아세요? 그저께 점심과 저녁, 어제 점심과 저녁을 한꺼번에 먹게 되는 거예요. 정말이에요. “
이제야 마리우스는 이 가련한 처녀가 무언가 동냥하러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조끼를 뒤져 보았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젊은 처녀는 계속 지껄여 댔다. 마치 마리우스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저는 가끔 집을 나가요. 그리고 안 돌아갈 때도 있어요. 작년 겨울, 그러니까 여기 오기 전에 우리는 다리 밑에서 살았어요. 얼어 죽지 않으려고 모두들 껴안고 있었어요. 동생은 노상 울고만 있었죠. 물이란 정말 슬픈 것이더군요! 저는 언제나 혼자 나가 다닌답니다. 어떤 때에는 도랑에서 자는 수도 있죠. 밤에 한길을 걷고 있으면 나무가 교수대같이 보이기도 하고 시커먼 집이 노트르담의 탑처럼 보이기도 해요. 흰 담이 냇물처럼 보여서 ‘어머! 물이 있네’ 하고 혼자 중얼거릴 때도 있어요. 별은 흡사 깜박거리는 호롱불같이 연기가 나거나 바람에 불려 꺼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그러면 저는 말이 귓속에 입김을 불어넣은 것처럼 깜짝 놀라는 거예요. 밤인데도 풍금 소리 같기도 하고 베틀이 돌아가는 소리 같기도 한 것이 들려오지요. 누가 돌이라도 던지는 게 아닌가 해서 필사적으로 도망칠 때도 있어요. 음식을 먹지 못하면 참 이상해져요.”
처녀가 멍청히 그를 바라보았다.
마리우스는 주머니란 주머니는 다 뒤져 겨우 5프랑 16수를 긁어모았다. 이것이 그가 이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재산의 전부였다. 그는 생각했다.
‘이것이면 오늘 저녁은 먹을 수 있겠지. 내일은 또 어떻게 될 테지.’
마리우스는 16수만을 남기도 5프랑을 처녀에게 주었다. 그녀는 얼른 돈을 받아 쥐고는 말했다.
“됐어! 세상이 밝아지는 것 같아요.”
처녀는 슈미즈를 어깨로 추켜올리고 마리우스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는 정답게 손을 흔들며 밖으로 나갔다. 마리우스에게는 그 처녀가 어둠의 사자였다. 암흑의 무서운 일변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