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밭을 모녀가 걸어간다 .천지를 가득 채운 설원이다 . 가난에 찌든, 살아 갈 기력도 희망도 소진한 채 어미는 피를 토해내며 그녀가 몸 담았던 기방에 아이를 맡기고 한점 눈꽃이 되어 사라진다.
하얀 설원을 여인이 달려간다.그리운 이를 향해 가슴에 품었던 정인을 향해 눈보라 속을 꽃처럼 달려간다.
보고지고, 보고지고 ...눈발인지 꽃잎인지 설원은 아득하게 멀기만 한데..... 기다리는 이도 눈빛에 앉아 눈이 되어 사그라들고, 달려간 여인도 눈빛에 사르르 녹아 들며 막을 내리는 도리화가 >
영화 도리화가는 기대만큼 심금을 울리거나 깊은 여운을 남기지는 않았다. 예쁜 여배우 수지가 얼굴에 숯검정을 칠하고 , 상투 올린 남장으로 분하기도 하면서 소리를 배우는 진채선을 맡았다. 동리정사의 수장 신재효는 선이 굵고 터프한 진중한 연기력의 류승룡이다. 중인 신분의 신재효가 도포에 갓을 쓰고 때로는 북장단을 치기도 하고 때로는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기도 한다. 소리꾼의 첫째 덕목은 얼굴치레라 하면서... 배우 송새벽은 신재효사단의 중간선생인 김세종을 연기한다. 도리화가에서 보여주는 송새벽의 연기는 여느 영화에서나 처럼 뛰어나다. 역시 송새벽이고 그의 진지한 연기 덕분에 별명이 송새북이 되었다 한다. 함께 출연한 조연진도 역할이 좋았다. 아쉽다면 우리 예쁜 수지가 아무래도 힘드는 캐릭터 소화라 그렇게 몰입시키지는 못했다. 소리꾼도 아닌 수지가 일년 가까이 판소리 지도를 받았다고는 하나 역시 보기에 힘들다. 득음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장면도 힘이 들어 애만 탔다.
소리는 원래 양반네의 소유가 아니라 민중의 것이라 했다. 민중이기에 천민이기에 때로는 양반들의 괄시도 많이 받는다. 그 중에 여자에게는 금기의 업이 또한 소리였다.율을 깨뜨리고 법을 어기면서도 소리를 익히고 싶은 채선은 심청으로 태어나 춘향이가 된 여인이었다. 가난한 어미에게서 기생집의 더부살이 신데릴라로 살아가다가 운명처럼 신재효의 소리에 끌린다 . 그리고 운명처럼 스승인 신재효를 마음에 품는다.
채선이 신재효사단에 들어가 소리를 배우는 간간이 심청가며 사랑가며 판소리가 등장한다. 귀동냥으로 익히고 체험으로 배워본 소리라 반갑고 좋았다. 송새벽의 북장단도 여느 고수 못지 않은 볼거리지만 영화가 흐르는 내내 전국의 아름다운 명소가 등장하여 눈호강을 누리는 데는 기여도가 크다. 저 폭포는 어느 곳에서 쵤영했을까 . 그들이 걸어가던 황매산 초원길 ,득음 동굴 , 수지의 등 뒤로 펼쳐지던 무한산수의 골체미며 경회루 연못에 배 띄우고 소리하던 장면들은 스토리나 연기력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도리화가의 매력을 살리는데 일조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김남길의 대원군 등장과 채선의 약탈은 의외의 반전이었다. 대원군이 채선과의 관계를 추궁하자 진정한 마음으로 채선을 곁에 두고자 했던 신재효의 행동을 너름새로 변색시키는 권력자의 협박이 번뜩이는 재치로 드러났다. 신재효는 자기 말의 사슬에 족쇄가 걸려 옴짝달싹 못하고 채선을 바친다.대원군의 음험하면서도 예리한 눈매가 김남길의 매력을 살리는 거름이 된다.대원군의 처소로 가는 가마에 든 채선을 보며 신재효는 가슴으로 혈루를 쏟는다. 말라가는 나무에 이제 피우려는 저 도리화 나의 채선 . 채선을 잃고 허무하게 귀향하는 돌아오는 억새길, 초원에서 잠간 서편제의 장면과 같은 모습이 보이지만 역시 미진하다. 주인공의 마음이 허해서일까.. 채선을 잃고 돌아가는 신재효의 마음은 황량한 갈대 그 이상의 아픔이 아니었을까?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이지만 역사사실을 극화하는 데는 한계점이 있는가 보다.두 사람이 연인이었던지 아니었던지 '도리화가 ' 라는 단가가 전해져 오고 있고 . 딱딱한 조선사회에서 여자도 소리를 할 수 있는 길을 연 선구자로서의 채선과 신재효 그리고 대원군이다. 그들 사이에 오갔던 감정의 묘한 떨림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던지 간에 영화는 대중예술로써 가치가 크다. 단돈 오천원으로 채선이도 되고 신재효도 되어보는 한시간 사십분 .새삼 영사기를 발명한 에디슨도 고맙고 영화예술에 종사하는 분들이 감사하기 이를데 없다. 어디에서 이처럼 화려한 영상을 적은 돈으로 사들일 수 있는지. 깜깜한 극장에 앉아 딴 세상을 바라보는 황홀함, 다른 세상의 타인에게 속절없이 빙의되는 순간들 이래서 나는 영화가 좋다.
지난 달 남원에서 익힌 판소리 때문에 그 향기에 빠져서 새로 나온 도리화가 영화를 만나니 행복하다.비록 탄탄한 스토리를 갖추고 최대의 서정성을 살린 거장의 영화 '서편제'에 못 미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예쁜 수지가 멋진 복장을 차려입고 예인이 되어 소리하는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터프보이 류승룡의 애절한 그 눈빛도 그리움의 대명사가 되어 내 것 아닌 내 것처럼 내 가슴에 깊이 새겨질 것이다.
화면에서 그려지던 두 사람의 영정이 오래오래 스틸컷으로 남겨지듯이.
첫댓글 남원에서 맛 본 판소리와 고리를 잇는 '도리화가'.
영화를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화답사회 회장님은 문화인들에게 이래저래 문화를 누리도록 도와주십니다.
도리화가가 종영을 앞두고 있네요 다시보니 낙안읍성이며 웅장한 황매산과 황계폭포
경회루에 배 띄우고 노래하는 장면 뿐 아니라
기생으로 분장하여 대원군 앞에 나타나 심청가를 부르며 물에 풍덩 뛰어든 곳
바로바로 부여의 궁남지 포룡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