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생지 총238p인 책. 각장, 소제목 그리고 명화(名畵)실린 쪽마다 선홍색 페이지가 반복적으로 들어있어서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그런대로 재미있어 이틀만에 읽었다. 이틀이라고 해봐야 짬짬이 시간나는 대로 읽었으니 두세시간 정도 읽은 셈이다. 저자는 키치에 대해서 지겹도록 비판한다. "1장 키치란 무엇인가,2장 키치 넘어서기, 3장 키치 해체하기, 4장 현대예술, 철학으로 돌아보기"로 이루어졌다. 3장까지 너무 키치애기를 잔뜩 해대는 통에 머리속이 키치 키치하다 치킨 키친이 헷갈리 정도다. 처음엔 잘 이해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저자의 키치 마술에 이끌여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농락만 당한 키치적 기분이랄까. 그러다보니 키치아닌게 없고 키치 아닐께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런 키치에 가깝지 않다. 잘해야 통속적인 독자정도나 될까.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우리는 부조리하고 무의미한 세계에 덧없이 내던져진 존재이니까.
"예술을 분류하면, 고전예술은 양의 가죽을 쓴 양, 통속예술은 늑대가죽을 쓴 늑대, 현대예술은 늑대의 가죽을 쓴 양, 키치는 양의 가죽을 쓴 늑대(7p). 예술은 크게 네 개의 범주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가 고전예술로 이미 검증이 끝난 시대적 유산으로 가치와 품격이 있는 예술이다. 두번째가 통속예술로 교양수준이 낮고 휴식으로 생각하는 계층을위한 것으로 감상을 위해 예비적인 교육이나 훈련이 필요치 않는 소비되기 위한 예술이다. 세번째가 현대예술로 매우 난해하며 전통적인표현기법을 사용하지 않아 낯설고, 감각보다는 이념에 호소하며 세계관을 주된 표현의 주제로 삼아 사유와 통찰을 요구하는 고급예술이다. 네번째 범주는 키치로 고급예술로 위장한 비천한 예술이며, 상투적이고 모방된 고급스러움으로, 고급예술로 보이기를 원하지만 저급한 내용을 가진, 허구적 환각을 불러일으키는 예술이다. (11-12p발췌)"
" 키치는 음탕한 예술이 아니다. 키치는 길거리의 여자들이 가지는 나름의 순결성을 가지고 있다. 키치는 순수를 염원하는 창녀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순수를 염원한다면 먼저 창녀이기를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키치가 환기하는 것은 대상에 대한 공감과 연민과 찬탄이라기보다 감상자 자신의 심미안과 만족감과 허위의식인 것이다. 키치의 달콤함과 끈적거림은 감상자에게 아첨하기 위한 도구이며, 감상자의 미덕과 심미적 역량을요구하기보다 감상자가 그것을 소유하고있다고 경하해 마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키치는 하나의 작품이라기보다 하나의 태도이다.(57-59p) 키치는 예술없는 예술이고, 희구의 대상없는 희구이다. 어디 예술에서만 그러한가. 과학적 키치는 과학적 지성없이 과학적 권위만 내세우고, 종교적 키치는 신없는 신앙을 가지며, 관능적 키치는 사랑의 대상없이도 사랑한다.(62p) 키치는 절망과 부조리에 대한, 답변없는우주 앞에서의 좌절감에 대한 오도된 미약이며 거짓된 위안이고 비참한 사탕발림이며, 당당하고 가증스러운 하인배이며, 조촐하고 상식적인 현실주의자이고, 퇴적의 예술이다.(68p)"
제1장에서 키치에 대한 신바람나는 비판이 끝나면, 2장부터는 미술작품과 문학작품과 관련된 저자의 철학적 현학적 이야기들이 줄을 잇는다. 그리고 마지막장에서는 경험론 예찬과 비트겐슈타인의 계보를 잇는 듯한 철학이야기를 쏟아 놓는다. 저자를 소개한 친구의 말처럼 역시 대단한 사람이다. 하지만 대단한 것과 존경스러운 것은 아직 다르다. 저자의 말처럼 의미있는 애기를 생각할 틈도 없이 너무 쏟아놓으면 독자의 몫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플라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를 벌써부터 신청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 이것 또한 키치적 행동일지는 모르겠지만.
"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할 질문을 하고 있다. 철학적 저술에 기본을 두고 있는 대부분의 명제들과 물음들은 거짓이 아니라 말도 안되는 헛소리들이다. - 비트겐슈타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