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4일
후회 없이 살아온 늙은이
문은희 한국알트루사여성상담소장
복잡한 현역의 생활에서 물러나 살아있는 무리의 뒷줄에 서는 나이에 이르기까지 삶의 발달 주기 일곱 단계를 다 거치고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드디어 늙은이가 됩니다. 푸근한 어머니 품에서 있는 그대로 사랑받아 든든한 기초신뢰감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활기차게 스스로 서는 독자성을 가지고 거침없이 자랐던가 튼튼한 발밑을 내려다봅니다. 주변의 온갖 사물과 인물들을 눈여겨보며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가는 솔선의 모험을 하며 재미로 눈을 반짝였던가 소중한 기억에서 찾아냅니다. 지루하지 않게 호기심을 채워가며 부지런함을 훈련하는 긴 학령기를 꽉 채우고, 자기답게 평생을 어떻게 그리고 무얼 하며 살 것인가 건강한 삶의 목표와 정체감을 세웠습니다. 몸만으로 성숙한 것이 아니라 마음도 갖추어 사랑의 짝을 만나 밀착된 관계와 적절한 거리두기를 합니다. 다음 세대를 책임지고 양육하고 보살피는 짐을 무겁다하거나 마다하지 않는 품 너른 어른으로 충실히 살았습니다.
이제 자신만의 긴 역사를 거쳐 늙은이의 반열에 서게 되었습니다. 지나간 일곱 단계를 살아오며 매 단계마다 걸 맞는 열매를 맺어왔습니다.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조절도 하고 적응도 하면서 어떻게 자라고 변해가고 성숙할 수 있는지 익혀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만 않습니다.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진전해가는 길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는 시야도 넓혀야 했고, 골치 아프게 깊이 생각하기를 피해서도 안 되었습니다. 밤잠 이루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사랑도 하고, 다음세대를 이해하며 기르는 노고도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그 노고를 말끔히 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보는 많은 노인들은 이런 평화를 누리지 못합니다. 남다른 자기만의 지난날 역사를 관통하는 일관성을 찾고 정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으로 한 줄기를 꾸준히 살아왔다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깥 요인들이 들쭉날쭉으로 자신을 침해했다고 느끼는 막연한 억울함으로 자신을 덮어씌웁니다. 스스로 피해자가 되어 살아온 겁니다. 전쟁 같은 거창한 바깥 역사나 유행 같은 사회분위기에서 경쟁을 부추기는 무리의 술수에 매몰되어 버려 자신의 삶이 어쩔 수 없었다는 무력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모두 다 똑 같은 시험지를 놓고 경쟁했고, 모두 같은 식으로 아기 낳고 조리원에 가고, 모두 같은 옷을 유행에 따라 입고, 모두가 결혼하는 적령기를 넘기지 않으려 했고, 모두가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우루루 다 같은 바캉스를 보내고, 자식들도 같은 식으로 길러내서 분가해내고 이제 자신을 돌아봅니다. 전혀 자신만의 남다른 삶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남들 같이 살려고 했으니까요. 그 결과를 어떻게 소화내야 할지 막막해집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이미 ‘팔순’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용을 씁니다. 젊은이들과 거래를 하려고 해 봅니다. 얼마 안 되는 재산이지만 그것으로 미끼삼아 무시당하지 않고 버림받지 않으려 해 봅니다. jtbc에서 사건사고반장 프로그램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사건이 바로 부모 부양하면 재산을 물려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물려받고는 부모를 모른척하는 아들의 문제입니다. 늙기 전에 자녀와의 관계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에 생기는 문제일 뿐입니다. 자녀들에게 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살해당하기도 합니다. 노인이 되어 갑자기 관계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이나 이웃들과 자기만의 관계가 늙기 전에 이루어졌더라면 이렇게 황당한 처지에 놓이지 않았을 겁니다.
그 전의 단계들을 제대로 차곡차곡 살아왔었어야 생의 마지막 늙은이로 일관성 있는 성실 (Integrity)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마지막 때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자기만의 삶은 한 줄에 꿰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한번밖에 살지 못하니까요.
첫댓글 오늘 수업때 제가 발언한 부분에 대해 이 글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물으셨는데요...
대답을 하지 못했어요.
저는 남들과 똑같이 놓고 경쟁하고, 유행하는 것을 따라하고, 남들 하니까 나도 하는 그런쪽에 오히려 둔감한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거 같아요. 오히려 다수의 남들이 하는 것에 같이 편승해 하는것이 쉽지 않아요. 그게 매력이 있지도 않구요...
막 튕겨나가는 거부감도 없지만, 그닥 재미있지 않아요.
가령, 수영수업에서 친목을 중요하게 하는 분위기가 있다면, 그게 재미있다는 것도 알고, 저도 그걸 싫어하는건 아니지만....
수영을 익히는 것에 집중하는 나머지 그쪽으로 잘 신경써지지를 않는거죠.
그래서 애써 조절하거나 노력을 합니다만, 수월하게 되는 편은 아닙니다.
어떤 노인으로 살것이냐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는 마음도 있지만,
노인이 될수록 무언가 원숙해지는 부분이 있을거라는 부분에 대해서 기대되는 부분도 있어요.
착각일지 모르지만..시간이 많이 날거라는 (전 하고 싶은게 많아서) 막연한 기대도 해보는데요...
내맘처럼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준비하는 마음도 자주 갖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