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연 더 잘 깔수있습니다.
방송용 김성근과 내면의 세이콘은 다른인격이지요
폰이라 일단 혹사리스트만 맛보기로...
폰으로 붙인거라 가독성이 별로인건 양해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고양이 어쩌구 하는 분은 구글에 마데이의 비극 이라고 꼭 검색해서 보시길 바랍니다
(세이콘은 야구계에 발을 못붙히게 해야됩니다 레알로다가 이번시즌중에 자진사퇴하고 다신 볼 일 없었으면 하네요)
윤석환: 잘 알려지지 않은 최악의 피해자 중 하나. 84년도에 1군 데뷔를 했다. 김성근 감독이 OB감독을 맡은 84년부터 88년까지 5년간 마무리투수의 자리에서 540이닝 이상을 던졌다. 공교롭게도 김성근이 OB감독을 맡은 첫 해와 마지막 해에 각각 심한 혹사를 당했다. 데뷔 첫 해인 1984년에 57경기에 등판, 146이닝이나 던질 정도로 워낙 혹사당했기에 이후로는 신인 때만큼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1984년의 팀당 경기수는 100경기였다. 1988년 다시 마무리 투수로서 13승(모두 구원승), 14세이브을 올려 구원왕이 되었다. 이후 몸이 망가질대로 망가져 몇 년 못 가, 1991년에 8년간의 짧은 선수생활을 마치고 은퇴하게 된다. 다행히도 은퇴 이후 지도자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김성길: 1991시즌 삼성에서 마무리로 전향한 후 김성근 감독을 만나 선발포함 52경기 188이닝을 던졌고 준플레이오프에서도 살벌하게 혹사당해 김성길 죽는거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왔으며 밥숟가락 들 힘도 없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결국 1992년에 당연히 부진했고 1993시즌 끝나고 은퇴했다.
박정현: 김성근 감독 밑에서 89년도 242.2이닝을 던지고[74] 이듬해 191.1이닝을 던진 후 끝없는 재활을 반복하다가 1999년 다시 한번 김성근 밑에서 선발, 구원 다 나와서 124이닝씩 굴려졌고 결국 2000년 은퇴한다.
최창호: 박정현보다는 조금 못했지만 2년 연속 200이닝을 찍을 뻔했다.
정명원: 역시 신인시절 전천후로 굴려지다가 1990년 부상을 당했다. 이듬해 복귀하지만 다시 부상 재발, 이 역시 김성근의 지분이 상당하다. [75]
김현욱 : 전무후무한 구원 20승. 이후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 후에도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2004년 부상으로 시즌아웃 된 후 재활에 실패.[76] 36살이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로 은퇴했다.[77][78]
최정환: 1996년에 쌍방울에 입단한 투수로 1997시즌에 50경기에 나와서 108이닝을 던졌다. 결국 쌍방울의 해체와 동시에 소리없이 은퇴했다.
데럴 마데이: 고양 원더스의 전 외국인 용병 투수로서 평균 휴식일을 2~3일 밖에 보장받지 못한데다가 평균 투구수도 100개가 넘는 엄청난 혹사에 시달리다 결국 어깨가 망가져 1년의 재활 끝에 넥센 히어로즈의 투수 인스트럭터로 들어갔다. 즉, 원더스 시절의 혹사로 선수생명이 그냥 끝났다. 링크 참조##
신윤호: 2001시즌 김성근 감독 대행의 지도 아래 70경기 144.1이닝을 던져 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는 활약을 보였으나.[79] 다음해 바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명백한 혹사지만 본인은 어쨌든 자신을 주목받게, 돈 벌게 해준 스승으로 김성근 감독을 존경하고 있으며 기량쇠퇴는 본인의 관리 책임이라 말했다.[80]
이동현: 2001시즌에 고졸로 입단해 선발 가능성을 보였지만 2002시즌 불펜으로 전향해 124.2이닝을 던지는 2015시즌 권혁을 뛰어넘는 혹사를 당했다. 물론 이동현의 경우는 이순철의 지분도 큰지라.[81] 순수하게 김성근이 박살냈다는 평은 적지만 당시의 등판기록을 보면 절대로 옹호할수 없는 지독한 혹사로 망가져 길고 긴 재활을 거쳐 2009 시즌에야 복귀할 수 있었다.
장문석: 신윤호와 이동현의 압도적인 혹사포스에 짓눌리는 감은 있지만 장문석도 2002시즌에 101.2이닝을 던지는 범상치 않은 혹사를 당했다. 10승까지 한 것은 덤이다. 그 때문인지 2003년부터 내리막길을 걸었고, 2009년에 기아에서 은퇴한다.
김민기: 김민기름이라는 별명이 있던 방화신기의 일원으로 2001년에 45경기 108이닝 방어율 5.08이라는 성적을 거두었다. 2002년에는 선발로 뛰며 99이닝을 던졌다.[82] 그렇게 거의 2년연속으로 100이닝씩 소화한 결과 제대하고 2005년에는 8점대 방어율을 찍기도 했으며, 2006년에는 그나마 좋은 성과를 올렸다.[83]2007년에 69경기에 등판해서 88이닝을 소화한 결과 완전히 퍼져서 2010 시즌 중 은퇴하게 된다. 김성근과 김재박이 같이 말아먹었다는 것이 중론.
채병용: 2000년대 후반기에서 이승호를 이은 SK의 2대 에이스라고 찬양받을 정도로 리즈 시절을 보냈으나 2009년 팔꿈치 부상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리즈와 포스트 시즌에서 롱릴리프로 무리하게 던진 결과 아직까지도 예전 구위를 보여주지 못한채 현재까지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다.
전병두: 킬성근하면 떠오르는 대표 선수.결국 혹사 여파로 5년간 재활만 하다가 32세의 나이에 은퇴하게 되었다. 해당 문서 참조.
이승호: 신인 시절부터 강병철 감독에게 미친듯이 굴려졌고,재기에 성공한 SK 왕조 시절 역시 김성근 감독에 의해 굴려졌다.결국 롯데를 거쳐 NC로 이적 후 1군에 거의 나오지 못하고 있다.
살려조 : 2015년 김성근 감독 휘하의 한화 이글스에서 나온 역대급 혹사 계투진. 흔히 알려진 5명의 투수를 포함[84], 번외까지 약 11명의 투수가 전천후로 굴려졌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 문서 참조.
송창식 : 희대의 개막장 경기였던 두산과 한화의 2016년 경기에서 무려 4 1/3이닝 동안 90구 12실점을 했음에도 김성근은 송창식을 그대로 방치해 두었고, 자신은 허리 통을 핑계로 병원으로 갔다. 자세한 내용은 414 대첩 참조. 그리고 8월 29일자로 팔꿈치 통증으로 일본 갔다는 기사가 실렸다. 사실상 시즌 아웃 가능성이 매우 높다.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529&aid=0000002766
김민우 : 2015년 한화에 입단한 뒤 마구 굴려지고[85] 그 다음 16시즌 제 상태의 몸이 아닌 상태로 5게임만 뛰고 2군에 내려간 후 7월까지 소식이 없다가 8월 22일 엠스플 뉴스에 올라온 기사에 의하면 '어깨 관절와순 손상'이 심각하다고 한다. 입단전 토미 존까지 받은 상태여서 잘 관리하며 등판시켰어야 했는데 감독의 그놈의 커리어 욕심으로 인해 망가져서 앞으로 제대로 회복할 기약이 없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김민우 본인이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랄까.... 현시점에선 매우 암울해 보인다
권혁 : 김성근의 최대 죄악 한화의 살림꾼이자 살려조 리더 권혁은 이적 후 거의 노예에 가까운 투구를 이어나갔다. 4연속 등판은 물론 지든 이기든 무조건 권혁이 올라왔다. 권혁은 지난해부터 최근 2년 사이 무려 144경기를 등판해 207⅓이닝 3752구를 던졌다. 왠만한 선발투수가 아닌 최정상급 투수도 기록하기 힘든 이닝과 투구수를 무려 불펜투수로 소화하였다. 그리고 금강불괴 같았던 권혁이 결국 무너졌다. 팔꿈치 통증으로 16시즌 8월 24일 1군 말소가 되어버렸다. 한화팬 포함 전구단 팬들이 김성근을 맹비난 하고있다.
첫댓글 ㅁㅊ 사람인가
ㄷㄷㄷ 이런사람은 감독을해선안됬음
야구계 내로남불의 교과서
권혁 한창 혹사 논란 있을때 "자진해서 등판 요청한거다" 희대의 거짓말이죠.
김성근이라 쓰고 갓이라 읽음
누헨진이 세이콘 밑에 있었으면 메이자의 4일로테이션 충분히 버텼을텐데.. 물론 메이자 자체를 못갔겠지만..
이승호는 은퇴 ㅜㅜ
근데 김민우는 이미 고딩때 혹사당하고 온 어깨라서 세이콘 탓하긴 좀 그런데
근데 신기한건 선수들은 고마워함 ㅋㅋㅋㅋㅋㅋ자기를 써줘서
확실히 팬이 보는거랑 선수랑 보는거랑 입장 차이가 있긴해
롯데 fa와서 이승호 겁나 못하길래 욕했었는데 세이콘때문이었군요 ㅠ
권혁 자비수술이 제일 충격이었었는데
한국에는 참 오모시로이한 팀이 있다
선수 (특히 투수) 박살내는 도사임
90년대이전은 그때상황이나 야구지론이 혹사에 대해 다같이 무관심?하던떄라 당시세태에 따라 그러려니 하는데 야구 분업화된 00년대까지도 그 혹사래퍼토리를 이어갓다는게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