赤道祭(적도제, Neptune's Revel)
지루한 항해 중 선상에서 펼쳐지는 흥미로운 축제가 있다. 적도제(Neptune's Revel)라고 불리는 이 축제는
해신 넵튠(Neptune)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바다를 지배하는 신은 포세이돈(Poseidon)이고,
로마 신화에서는 넵투누스(Neptunus)인데, 영어로는 넵튠이라고 부르고 있다. 해신 포세이돈의 아내는
암피트리테와 포세이돈. 출처 구글 검색
암피트리테(Amphitrite) 여신인데, 魚人(어인) 트리톤(Triton)들이 소라를 불면서 끌고 가는 마차에 남편
포세이돈과 나란히 타고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리스 조각이나 그림에서 볼 수 있다. 포세이돈 신의 왕권을 상징하는
삼지창을 그녀가 들고 있는 그림도 있다. 해신 포세이돈의 모습은 어떠한가? 삼지창을 들고 맨가슴을 드러내고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제우스 주신 못지않게 위엄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제우스 주신처럼 맑고 깨끗한 기품이 보이지 않고, 어딘지 불안에 싸인 듯한 험상궂은 표정을 짓고 있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머리칼은 구질구질하다. 끝이
세 갈래로 갈린 삼지창을 들고 있는데, 그 창을 한번 휘두르면 바다에는 무서운 파도가 순식간에 일고, 바로 세우면 그 파도가 당장에 가라앉는다고 한다.
적도제(Neptune's Revel)
적도제는 일종의 통과 의례인데, 언제부터 행하여졌을까? 전하는 바에 따르면 1471년에 포르투갈 사람들이 그
두렵던 적도를 처음으로 통과하면서 어떤 의식을 갖추어 적도 통과(Crossing the Line)를 기념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포세이돈 해신은 지중해 아프리카 북안의 리비아 지방에서 수입된 신이라고 하는데, 지브롤터 해협
덴마크 스코우 곶(the Skaw)
이나 덴마크 북쪽 끝의 스코우 곶(the Skaw), 롱아일란드 수도와 같은 특수한 해역에서 어떤 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이 의식에서 해신의 세례를 받은 후 그의 통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용되었는데, 해신을 달래는 의식은 1529년부터 행하여졌다고 한다.
나는 흑해(Black Sea)에서 1979년에 구 소련의 여객선을 타고 항해를 하면서 선상 축제를 경험한 일이 있다.
오데사 항을 기점으로 얄타, 노보로시스크, 소치, 스크미, 바투미 등 흑해 북쪽 연안의 여러 항구를 왕복하느 해상
관광코스 1,280마일을 일주일 동안 순항했는데, 기후가 온화하고 산수가 좋은 보양지로 이름난 곳이어서 이곳을
찾는 유럽의 휴양객들은 당시 연간 300만 명을 돌파하고 있다. 내가 승선했던 여객선은 흑해 선박회사 소속
카레리야(Kareliya) 호였는데, 1만 6,000톤으로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오데사로
귀항하는 날 전야에 선내 의식이 행하여졌는데, 이 의식에서 승객들은 카레리야 호 선장으로부터 "무사히
1,280마일 항해를 마쳤으므로 유능해원의 자격을 인정하고 넵튠 왕국에 들어와 사는 것을 허락하노라"라고 쓰인
증서를 수여받고 모두 함께 축배를 들고 선미 갑판에서 러시아 춤을 추면서 무사히 항해를 마치게 되었음을
축하하였다. 아직도 바다의 축제, 선상 축제가 유럽 여러 항구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Neptune's Revel'이라는 말의 뜻은 본디 '적도제'의 뜻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revel'이라는 말은
'떠들썩하게 술을 마시면서 법석대고 노는 것, 연회, 춤추는 일, 여흥'(riotous merrymaking; feasting, dancing and entertainment) 등의 뜻이 있다. 선상 축제는 매우 흥겹고, 떠들썩하고, 춤추면서 마음껏 마시고 흥을 돋우는데, 비용은 모두 배에서 부담하고 있었다.
위험한 갑, 곶, 수도 등을 통과할 때 넵튠 해신을 위로하기 위한 축제가 적도제였는데, '적도제'의 뜻으로 쓰이게 된 연유는 무엇인가. 범선시대에 적도를 航過(항과)한다는 것은 매우 두렵고 어려웠던 일이었다. 왜냐하면, 바람이
불지 않는 적도 무풍대(doldrums)에 들어간 범선은 몇 주일이고 묶인 채 움쭉달싹 못 하고 머물러 있어야 했다.
적도를 중심으로 북위 30도, 남위 30도까지의 해역은 대체로 기온이 높고 바람이 없는 곳으로, 범선시대에 이
해역에 말을 싣고 항해 중이던 범선은 할 수 없이 싣고 가던 말을 바다에 버려야 했는데, 오랫동안 바람이 없는
해상에 머물고 있는 동안 굶어 죽게 되므로 말을 바다에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 무풍대(calm belt)를
'말의 위도'(Horse Latitude)라고 부르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무풍대, 특히 '적도 무풍대'(doldrums)에서는 식수가 달리고, 신선한 음식이 부족해서 예상 못 할 무서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적도를 통과할 때에는 이러한 두려움 속에서 어떤 의식을 거행하고, 해신에게
공물을 바치고 배가 무사히 통과하기를 빌었을 것이다. 적도무풍대에서는 모두 근심과 걱정 속에서 실의에 차
있었다. 'in the doldrums'라고 하면 '의기소침한'의 뜻으로 쓰이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1784년, 영국의 어느 선박에서 거행되었던 적도제 의식의 모습을 소개해 본다.
정오에 넵튠 해신이 도착함을 선내에 알린다. 갑판원 한 사람이 해신의 모습으로 분장하고 삼지창을 들고 수레에
앉는다. 삼지창은 넵튠 해신 왕권의 상징이며, 오늘날에 와서는 制海權(제해권)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수레는 물통인데, 동료 선원들이 반인 반어의 魚人 트리톤(Triton) 자격으로 분장하고 이 물통을
끌어 준다. 넵튠과 수행원들은 정말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몸차림을 하고 등장한다. 그들의 머리칼은
질퍽질퍽한 오트밀이 흐르는 자루달린 걸레를 뒤집어 쓴 것이다. 얼굴에는 빨간 황토를 칠하고 있다. 선장이
다가오면 넵튠 해신은 항해의 목적을 묻는다. 이어서 처음으로 적도를 통과하는 여객이나 선원들에게 관례가
되어 있는 공물을 바치게 한다. 공물을 안 바치면 갑판 위에 마련된 큰 물통에 처넣고 강제로 면도를 한다. 이미
넵튠의 '희생자'로 내정된 승객이나 승무원 중에서 한 사람씩 끌려 나와 이 거창한 일을 치르게 된다.
큰 물통은 원래 럼주를 담아 둔 그록 통(grog-tub, 그로그 주, 럼주)인데, 여기에 해수를 가득 채우고 그 위에
널빤지를 가로질러 얹는다. 이 널빤지 위에 적도 통과 초행자를 앉힌다. 이발사가 이 풋내기의 얼굴에 타르(Tar)와 그리스(grease)를 으깬 것을 마구 칠한다. 면도칼은 술통을 동여맸던 쇠테두리 조각인데, 이 대용 면도칼로 긁어
벗긴다. 신호에 맞추어서 널빤지를 재빨리 빼내면 운수가 불길한 이 가련한 희생자는 물통 속에 풍덩 빠지고,
희생자는 숨막히는 고비를 참고 견뎌야 한다.
이때에 바다의 여신 암피트리테는 남편 넵튠(포세이돈)의 곁에 서 있다. 1590년에 영국 시인
스펜서(Edmund Spenser)가 쓴 시 형식의 기사이야기, 'The Faerie Queen'에는 다음과 같이 넵튠과
암피트리테를 묘사하고 있다.
"위대하신 넵튠이 삼지창을 들고 먼저 나온다. 바다를 다스리고, 순식간에 큰 파도를 일으키는 힘을 지닌 삼지창을 들고, 이슬 맺힌 머리칼에서는 바닷물이 왕관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다. 寶冠(보관)을 쓴 아리따운 암피트리테는
우아한 모습으로 곁에 서 있다. 상아빛 어깨 너머로 은빛 찬란한 머리채를 드리우고, 진주로 장식하고…"
넵튠과 암피트리테 외에 이발사, 의사, 인어, 물개, 경찰관, 나팔수가 등장한다. 적도를 처음으로 통과하는
승객에게는 미리 적절한 옷으로 갈아 입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나팔수가 넵튠의 도착을 벨(ship's bell)로 알리고 넵튠은 "저 배는 무슨 배냐?"라고 묻게 된다. 이때에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은 기지가 넘쳐야 하고 재치있는 즉답과
동작이 따라야 한다.
결국 희생자는 강제로 면도질을 당하고, 물통에 처넣어져 허우적거리다가 건져진다. 그리고 적도통과증을 받게
된다. '적도제'는 적도를 지나는 배에게 해신이 '선박의 자유'(freedom of the ship)를 부여하는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적도제는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혹은 상선과 군함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대의
적도제는 여객선의 볼거리로 개최되거나, 군함이나 실습선에서 승무원의 레크리에이션으로 개최되고 있을 뿐이다.
옮겨온 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