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의 인천답사는 동구와 중구에 집중되어 있는 근대문화유산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길은 좁고, 주차할 곳은 마땅치 않고, 대부분 건물이니 큰 감동도 없는 길이 되었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호 창영초등학교(구)교사(昌榮國校(舊)校舍)는 동구 창영동 30외 3필지에 위치한다. 이 학교는 인천 최초의 공립학교로 1907년에 세워졌으며, 당시 이름은 인천공립보통학교였으며, 3·1운동 당시 인천지역 만세운동의 진원지이기도 한 전통 깊은 곳이기도 하다.
옛 학교 건물은 1924년에 세운 것으로, 一자형의 구성이다. 벽체 윗부분은 화강석으로 아치(Arch)형을 이루고 있고, 현관은 근세풍 양식을 띤 무지개 모양으로 꾸몄다. 좌·우 대칭면에 넓은 창을 규칙적으로 배열하여 직선을 강조하였으며, 지붕에는 그 아래쪽 방을 밝게 하기 위한 지붕창을 만들어 놓았다. 좌우로 매우 긴 건물이어서 전경을 잡으려면 운동장 끝까지 가야 했다.
창영초등학교 인근에는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9호 영화초등학교본관동(永化初等學校本館棟)이 있다. 선교의 목적을 신식교육을 위해 설립된 영화학교의 건물은 1909년 우각현의 대지 1,226평을 사들이고 연면적 212평의 3층교사를 1910년 3월30일에 착공하여 1911년 9월14일에 완공하였다. 이 건물은 현관부분을 돌출시킨 십자가 형태를 띠고 있었으나 1954년 건물 입구 쪽의 돌출부분을 증축하여 흔적만 남아있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8호 인천기독교사회복지관(仁川基督敎社會福祉館)은 영화초등학교 인근에 있으며, 19세기 말 미국 감리교회가 파견한 여자 선교사들의 합숙소로 사용했던 곳이다. 양철(함석)지붕으로 구조가 독특하며, 벽체는 빨간 벽돌로 쌓았다. 비교적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근세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다.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호 화도진지(花島鎭址)는 동구 화수동 138번지에 있다. 화도진은 조선 후기 자주 나타나는 서구의 함선을 감시하기 위해 군대가 주둔하던 곳으로 장도포대와 논현포대를 관장하였다. 화도진은 1882년 5월과 6월에 한미수호통상조약과 한영·한독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장소라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곳으로, 1982년 화도진을 그린 『화도진도』를 보고 옛 건물을 복원하였다.
이제 근대문화유산이 집중되어 있는 중구 중앙동으로 향했다. 좁은 골목길, 넘쳐나는 차와 사람들 사이에서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중구청 인근에 차를 세우고 근처에 있는 유적들을 돌아보았다. 먼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9호 구인천일본58은행인천지점(舊仁川日本58銀行仁川支店))의 모습을 담아본다. 역광이어서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 2층에는 보기 드문 발코니와 지붕창이 특징이며 지붕이 2중으로 경사를 이루고 있어, 프랑스 분위기를 자아내는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다.
바로 곁에 붙어 있는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0호 구)인천일본18은행지점(舊仁川日本一八銀行支店)은 1890년 준공되어 그 해 10월에 개점하였는데, 일본이 한국의 금융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계획되어 세워진 은행이라고 한다. 현재 근대건축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었지만 내부까지는 들어가 보지 않았다.
서쪽으로 조금 걸으니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 인천일본제일은행지점(仁川日本第一銀行支店) 건물이 보이는데, 고종 광무 3년(1899)에 지은 석조건물이다. 일본인 니이노이에 다카마사가 설계한 건물로 모래, 자갈, 석회를 제외한 나머지의 모든 건축 재료를 일본에서 직접 가져와 만들었다. 이 건물은 개항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서쪽으로 조금 더 걸으니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51호 청·일조계지경계계단(淸·日租界地境界階段)이 보인다. 이 지역은 1883년 일본 조계(租界)를 시작으로 1884년 청국 조계(租界)가 설정되는 경계지역으로 만국공원(현 자유공원)으로 연결되어 계단과 조경이 마련된 공간이다. 자유공원의 서남쪽 가파른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계단을 중심으로 청국과 일본의 건물들이 확연하게 서로 다른 양식들로 번화하게 들어서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인근에 있는 등록문화재 제249호 구인천부 청사(舊仁川府 廳舍)-현 인천중구청과 등록문화재 제246호 인천 선린동 공화춘(仁川 善隣洞 共和春),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호 인천우체국(仁川郵遞局) 등은 복잡함에 질려 찾지 않았다. 다만 제1은행 남쪽에 있는 등록문화재 제248호 구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舊 日本郵船株式會社 仁川支店)은 찾아보려 했으나 발견하지 못하였다. 돌아온 뒤 확인해보니 아래 사진의 좌측 제일 앞에 있는 노란 타일 건물이 맞는데 앞에서 문화재 설명판도 발견하지 못해 그만 놓치고 말았다.
차량을 조금 이동하여 중구 송학동 2가 20번지에 있는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9호 홍예문(虹霓門)을 찾았다. 이 홍예문은 철도 건설을 담당하고 있던 일본 공병대가 1906년 착공하여 1908년에 준공하였다. 당시 일본이 자국의 조계지를 확장하기 위하여 조성한 축조물이다.
이 동네에서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1호 인천내동성공회성당(仁川內洞聖公會聖堂)이었다. 이 성당은 당초 1890년에 고요한 신부에 의해 지어졌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1956년에 중건된 것이다. 중건 당시 기초를 철근 대신 ‘H’형강을 사용하였다. 건물 형태는 지붕의 목조트러스를 제외하고, 외벽과 주요부재는 화강암으로 견고하게 쌓아올린 중세풍의 석조이나 한국의 전통적인 목구조 처마양식을 가미하였으며 창호 및 벽체 부분의 처리가 뛰어나다.
중구에 있는 근대문화유산 중 이날 찾지 않은 곳은 다음과 같다. 위에서 가지 못했다고 언급한 유적은 제외한다. 사적 제287호 인천답동성당, 인천 유형문화재 제17호 구)제물포구락부, 등록문화재 제427호 제물포고등학교 강당, 근대 문화재는 아니지만 인천 민속문화재 제2호 용동큰우물. 전주 한옥마을 답사에서도 느꼈지만 이곳 역시 최소한 한나절의 시간을 할애하여 차를 세워두고 느릿느릿 걸으며 보려하기보다는 느끼려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중구의 근대문화유산을 본 뒤 당초에는 인천의 북쪽에 해당하는 서구-계양구-부평구를 더 돌아보려 했다. 이쪽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묘역이 여럿 있으므로 그게 또 답사의 주제가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이 겹쳐 서구의 묘역 두 곳만 보기 답사를 접었기에, 성격이 맞지는 않지만 이 글 말미에 붙인다. 먼저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호 조서강묘(趙瑞康墓)를 찾았다. 내비는 강화방향의 큰 도로에서 안내를 멈췄지만 오른쪽에 펼쳐진 야산이 끝나는 곳에서 우회전하자마자 바로 표지판이 보인다.
500m 남았다는 표지판 앞에서 길이 좋지 않은 듯하여 차를 세우고 걸어 들어갔는데, 차량이 충분히 진입할 수 있는 길이었다. 조선 초기의 문신인 경은(耕隱) 조서강(?∼1444) 선생은 태종 14년(1414)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간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세종 25년(1443)에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세종 13년(1431)에는『태종실록』편찬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며, 이조판서 역임 후 사직할 것을 청하고 부친 조반의 별장이 있던 가정(佳亭)에 은거하였다. 묘역에는 아랫부분에 둘레석을 두른 봉분을 중심으로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묘비와 문인석이 있다.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5호 류사눌묘(柳思訥墓)는 서구 경서동 산200-1번지에 있다.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인 문숙공 유사눌(1375∼1440) 선생은 태조 2년(1393)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간 후 홍주 목사, 경상도 도관찰사 등을 거쳐 예문관 대제학에 올랐다. 대제학 재직시 악학제조를 겸하여 박연(朴堧)과 함께『아악보』를 완성하였고, 1435년에는 구악(舊樂)을 정리하는 등 맹사성·박연 등과 함께 조선 초기의 악학 정비에 큰 기여를 하였다.
현재 묘역에는 아랫부분에 둘레석을 두른 봉분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인석 등의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아울러 선생의 묘 아래에 여러 묘가 더 있는데 아마도 후손들의 묘소일 것으로 생각된다. 묘역 옆에 매우 넓은 풀밭이 있어 무슨 공원일까 궁금했는데 위성지도를 보니 인천국제CC다.
류사눌선생묘를 찾아갈 때 내비는 더 직진을 하다 우회전하라고 하는데 표지판이 보이기에 우회전했다. 여기서부터 좌회전, 우회전을 여러 번 했는데 길이 나뉠 때마다 어김없이 표지판이 있었다. 많은 문화재를 찾아다니고 있지만 이 정도로 친절하게 표지판을 세워둔 곳은 처음인 것으로 기억된다. 인천 서구청에 박수를 보낸다.
[문화재설명문 출처: 문화재청 홈페이지]
첫댓글 인천 본전뽑기하셨군요. 인천 중구 일대 근대유적거리와 짱개거리는 완전 관광지가 되어버려서 주말에는 엄청 혼잡합니다. 평일에 가시는 것이 좋을듯 합니다.
본전뽑기 ~~ ㅎㅎ
알고는 있었는데 평일에는 시간이 잘 나지 않네요..
여유있는 여행은 언제쯤 할 수 있게 되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