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
한자漢字와 한문漢文,
뺄셈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문광 / 동국대 불교학술원 HK 연구교수
한문보다 영어가 편한 시대
불교 경전을 가르치다 보면 한문본 말고 영어본 없냐는 질문을 받는 경우가 간혹 있다.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가 한문 교육보다 영어교육에 치중해 온 결과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한자와 한문은 고리타분한 옛것이라는 관념이 지배하게 되었고, 초, 중, 고등 교육에서 한문 교육은 필수에서 제외되었으며, 대학 입시에서 한문시험은 보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왔다.
반면에 영어의 경우에는 영어유치원이 인기를 끌면서 대세를 차지하고 초등학교부터 필수 교과목으로 자리 잡더니 외국 연수와 유학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세월을 수십 년 보내왔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표현을 빌자면 현대 한국은 '영어 아비투스(Habitus) 사회' 인 셈이다.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것을 우대하고 영어가 필수인 시대인 것처럼 느끼는 것이 당연한 사회인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한자와 한문 교육이 필요한 때
조계종단에서도 강원講院이 승가대학으로 변모하고 한문본 전통교제들이 한글번역본으로 대체되어 가고 있다. 시대의 흐름인지라 거스를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물극필반物極必反의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극으로 치달릴 때 반대 측면을 보고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탄허 스님은 한글전용이 선언되던 시대에 지금이야말로 한문을 열심히 공부할 때가 왔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한문 불전 전문가가 극도로 줄어들 것을 예견하시고 오히려 인재 양성에 집중 했던 것이다. 그 문하에서 대강백이 되신 각성 스님, 통광 스님, 무비 스님을 비롯하여 수많은 한문 불전 전문가들이 승속을 막론하고 출현했던 것이다. 전통 강맥을 유지해 주신 앞 시대의 대강백 스님들의 은혜로 우리는 지금 한문본 경전을 이렇듯 계속 읽을 수 있는 힘을 이어받았고 그 명맥이 그나마 유지되어 온 것이다. 비구니 스님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강백 스님들이 대를 이어 배출되셔서 전통 한학의 탄탄한 기반 위에서 북방불교의 핵심 종지를 한문 불전을 통해 강론해 주셨고 지금까지 그 역사와 전통이 이어져 왔다.
앞으로가 문제이다. 초서草書로 된 문헌을 탈초脫草해 가면서 읽을 수 있는 스님들은 60대 밑으로는 드물게 존재하고, 구두점이나 주석이 전혀 붙어 있지 않은 백문白文을 술술 읽을 수 있는 학인 또한 심히 부족한 현실이다. 이러다 보면 수천년 이어진 한문 문헌에 대해 독해의 전통이 앞으로 승가에서마저 미미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향후 승가 교육은 이원화될 필요가 있겠다. 기본교육은 한글본이나 번역본으로 하되 종지를 확실히 하야 불교의 핵심교리를 빨리 습득하게 하고, 한문 전문가들은 별도로 길러내어 전문 강사와 연구자의 맥이 이어지도록 두 트랙 시스템을 활용할 필요가 있겠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틀림없이 한문 문헌에 밝은 지성들이 그 희소성을 인정받는 날이 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자와 한문의 세계는 긴 시간 동안의 공력이 축적되어야 본궤도에 오를 수 있으므로 쉽게 전문가를 양산해 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심각했던 한자 교육의 실태
다들 입을 모아 하는 말이 한자는 너무 어렵고, 한문은 그 자체가 난해한 문장이라고 한다. 그런데 가만히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가 중, 고등학교 시절 입시공부를 하면서 영어 사전을 얼마나 많이 찾아보았던가 떠올려 보자. 대학 입시를 겪은 대부분의 수험생은 수 년 동안 찾고 찾아 닳은 영한사전 하나쯤은 대부분 가지고 있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도 토익과 토플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보카(Voca)' 라는 영어단어공부 텍스트 하나씩은 샀던 기억이 있다.
과연 우리가 한자와 한문 공부를 하면서 '사전詞典' 을 얼마나 찾아보았는지 반추해보자. 한자漢字 한 글자에 대해서 우리는 과연 몇 가지 의미를 기억하고 있는가? 예를 들어 '천天' 의 경우 우리는 세 미만의 아동들이 공부했던 천자문天字文의 훈과 음인 '하늘천' 외에 몇 가지 알고 있는 뜻이 없다. '천天' 이라는 글자를 옥편이나 사전, 중국어 사전 등에서 별도로 찾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 국민 가운데 몇 명이나 될까? '천천天天' 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나이가 지긋한 분들도 "이건 또 무슨 말이야, 하늘 천이 왜 두번이나 나와?" 이로고 말 뿐 바로 서전을 찾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천天' 에는 '하늘' 이라는 말 외에도 당연히 여러 가지 의미들이 있다. '하루' 라는 뜻도 있어서 '천천天天' 은 '매일' 이고, '명천明' 은 '내일' 이란 뜻이다. 현대 중국어를 배우지 않아도 사전만 찾아보면 금방 알 수 있는 내용이지만 우리는 한자 사전은 굳이 찾으려 들지 않는다. 그러고도 한자와 한문이 어렵다고 넋두리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말이다. 영어 단어의 경우 하나의 의미만 알고 영어책을 독해 하겠다고 덤벼드는 것이 어불성설이듯이 한자와 한문 공부 자체를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해하게 되어볐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천자문天字文』 교육의 폐해라고 말하는 분들이 간혹 있다. 어린이를 위한 한자 교육의 시작이 천자문일 뿐이지 천자문 이라는 책을 혐의를 덧씌울 수는 없다. 기나긴 공부를 위한 시작으로서의 소학小學의 첫 단계였던 천자문에서 한자 공부가 종식된 경우들이 부지기수이므로 우리네 한문 실력은 거기가 종착지가 되었던 것이다.
먼저 한자 1급을 따는 노력부터 시작하고, 상용한자부터 익히고, 사전을 부지런히 찾고, 기본적인 한문 문헌들을 시작으로 하여 매력적인 한시漢詩의 세계에까지 들어가는 노력을 기울리는 풍토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동양의 문사철文史哲은 한자적漢字的 감수성과 한학적漢學的 사유를 통과하면서 구축된 것이다. 유불선儒佛仙 3교의 직관과 통찰은 한자라는 독특한 언어학적 특성에서 추출된 것이다. 한문으로 이루어진 엄청난 북방불교의 교학과 제대로 조우할 수 있고, 최고의 논사들의 논장論藏에서 노닐 수 있으며, 선사禪師들의 선시禪詩의 세계를 음미할 수 있으려면 한자와 한문의 재미에 한차례 빠져들어야 한다. '재미' 라는 말은 '자미滋味' 에서 왔다고 한다. 이 '불어나는 맛' 을 즐기다 보면 한자의 마력을 느끼게 된다.
남북통일 뒤의 한국학을 준비해야
한국어는 한자어가 많다. 세상에 안 해도 되는 공부는 없다. 더해 가는 덧셈을 해야지, 안 해도 된다는 뺄셈의 논리는 온당치 않다. 한자를 모르고 한국어를 잘하기가 쉬운가? 한문을 모르고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가 쉬운가 말이다. 앞으로 언젠가 우리나라는 틀림없이 통일될 것이다. 우리는 통일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민족의 정체성을 다시금 재정립하고 국학國學을 새롭게 정리해야 할 텐데 한글만으로 어림없다고 본다. 북한 땅에서 얼마나 많은 한적漢籍들이 쏟아져 나올지 알 수 없다. 유적을 발굴하다 보면 오래된 기왓장들이 나올 것이고, 각종 명문銘文이 튀어나올 것이다. 어디선가 옛 문서들이 발견될 것이고 필사한 행초서 문헌들이 마구 등장할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불교 유적지에서는 불교 관련 한문 문헌들이 나올 수도 있는데 과연 이러한 문서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 인재들은 우리는 양성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우리시대의 당연한 과제가 되었다. 한류가 세계를 강타하고 한국문화를 전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시대가 왔는데 한국인은 한국을 잘 알지 못한다. 원효가 썼던 한문 문장을 잘 읽지 못하는 사태가 더는 부끄럽지도 않은 세상이 되었다.
'한자漢字' 를 '한자韓字' 라고 쓰면 안 되나?
'한의학'은 '한의학漢醫學' 으로 쓰지 않고 '한의학韓醫學' 으로 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한자'도 '한자漢字' 라고 쓰지 않고 '한자韓字' 라고 쓰면 어떨까? 같은 글자를 사용해도 한국은 중국, 일본과 발음이 다르다 . 글자만 공유할 뿐 발음은 완전히 다르니 한국의 고유성을 강조하여 '한韓' 을 쓴 '한자韓字' 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발음이 가장 정확하다고 정평이 난 KBS의 원로 아나운서인 이규항 선생이 나에게 던져준 고견이었다. 대단한 탁견같은데 나만의 생각인가? 임인년의 마지막 달력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춥고 스산하다. 다소 외롭지만 그렇다고 고독하지는 않다.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분들이 틀림없이 있을 테니까.
문광
해인사 원당암에서 각안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혜암 큰스님을 시봉했다.
통도사에서 보성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직지사에서 성수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동국대학교 선학과, 불교학과 학사, 연세대학교 중문학
과 학사와 석사, 한국학중앙연구원 철학과 박사학과정을 졸업했다. 봉암사와
해운정사에서 안거 정진했으며, 2013년 통광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았고,
2022년 경성 스님으로 부터 전계를 받았다. 현재 조계종 교육아사리이며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HK 연구교수에 재직 중이다.
이 글은 불기2566년 雲門지 겨울호에 있는 글을 퍼왔습니다.
그리고 운문사 홈폐이지 계관운문에서 더 자세히 볼수 있습니다.
운문사 사리암 도반 법우 여러분 나반존자님의 가호 가피 많이 많이 받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첫댓글 꽃이 넘 아름답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_()_ 나반존자 나반존자 나반존자님 ()()()
비오고 나니 산빛이 더욱 산뜻해졌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중학교때 3년동안 매일 아침 한자쓰기 자습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달 1번 시험보고 상도 주었어요. 선견지명이 있으셨던 교장선생님을 추억해봅니다. 봄이 온 세상의 아름다움 흠뻑 즐기는 하루 되세요~ 나반존자 나반존자 나반존자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