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방랑기 346- Graceland (Memphis)
IHOP은 미국에 살때 자주 애용했던 pancake집입니다. 오랫만에 pancake을 먹었습니다.
팬케이크(pancake)는 납작한 빵의 일종으로, 달게 만든 반죽물을 뜨거운 석쇠 위나 프라이팬으로 만듭니다. 팬케이크는 수많은 지역 요리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변형이 있다. 일부 팬케이크는 이스트로 팽창을 촉진시키거나, 발효한 반죽물을 이용해서 만들지만, 거의 대부분의 팬케이크는 금방 만들 수 있는 빵입니다.
4월18일 아침식사를 IHOP( Int'l house of pancake)에 했습니다.
미국에서 팬케이크는 '핫케이크', '그리들케이크', '플랩잭'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아침식사로 먹습니다. 대부분 베이킹파우더와 같은 팽창제를 포함하며, 달갈과 밀가루, 우유, 혹은 우락유의 다양한 비율의 사용으로 반죽물을 두껍게 만듭니다. 계피와 설탕이 첨가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반죽물은 국자로 뜨거나 혹은 뜨거운 표면 위에 부어서 약 1센티미터의 두께의 원형으로 펴게 합니다. 팽창제는 팬케이크의 익히지 않는 면에 공기 방울이 일어나게 하며, 바로 그때 그 팬케이크는 뒤로 뒤집을 때가 됩니다. 이러한 팬케이크는 식감으로 가벼워서 종종 아침에 메이플 시럽, 버터, 땅콩버터, 또는 과일을 끼없어서 먹습니다
반죽물에 블루베리, 딸기, 치즈, 베이컨, 바나나, 또는 초콜릿칩 등을 넣어서 달콤하게 만들거나 구수하게 만들수 있습니다. 또한 육두구나 계피, 또는 좋아하는 첨가제인 바닐라 추출액 등을 넣어서 풍미를 더욱 좋게 할 수 있습니다.
IHOP은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중동,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에도 지점이 있으며, 그 수는 1650 개에 이릅니다.
본사는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에 위치해 있습니다. 1958년 7월 7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첫 문을 열었습니다. 2007년 식당 연쇄점 애플비스를 인수하였습니다.
종업원수
32,300명 (2007년)
웹사이트
www.ihop.comC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중동,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에도 지점이 있으며, 그 수는 1650 개에 이릅니다. 본사는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에 위치해 있습니다.
맛있는 아침식사입니다.
영수증입니다. 금액이 25.56에다 tax(세금)은 1.54 subtotal이 27.10입니다.
팁은 3가지입니다.15%, 18%, 20%를 본인이 선택합니다.
이 벤츠차를 몰고다녔습니다.
아틀란타에서 버밍햄으로 멤피스로 가는 고속도로
멤피스의 도로 이름이 Elvis Presley Blvd입니다.
그레이스랜드 ㅡ 테네시 주 멤피스
1977년 엘비스는 로큰롤의 천국으로 영원히 떠났지만, 그의 록 스피릿과 유물만은 그레이스랜드 저택에 살아남아 미국 남부 멤피스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600,000명 이상의 방문객이 프레슬리가 살던 식민지 시대 양식의 대저택을 찾아옵니다.
멤피스에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생전에 살았던 Graceland가 있습니다. 백악관 다음으로 미국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장소라고도 하고, 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2006년에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유명인의 생가를 넘어서 역사적 장소로서의 위상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Graceland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1957년도에 당시 10만 달러로 산 집입니다.
1977년도에 약물중독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엘비스가 죽은 장소도 바로 이 곳 Graceland의 욕실에서였으니 정말 엘비스의 삶과 죽음이 함께 했던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과 유럽을 여행하면서 귀족과 왕족의 고급 주택들도 많이 가본 경험이 있었지만, Graceland에서 받은 느낌은 특별했 습니다. 마치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가 살고 있는 집을 엿본다고 해야 하나. 화려하지만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갖고 있는 연예인의 집으로 초대 받아서 구경한다는 느낌입니다. 모든 인테리어 소품들이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40년 전으로 시간이 멈추었음에도 불구하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장식
은 지금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투어 입장권을 사면 투어버스타고 Graceland로 갑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가 살던집.
1977년 8월 16일, 테네시 멤피스 그레이슬랜드 다년간 처방된 약의 남용과 해로운 식습관이 건강을 크게
해쳐 1977년 프레슬리는 사유지 그레이스랜드에서 돌연 사망하였습니다. 향년 42세. 전세계적으로 5억 장 음반을 팔아 치운 프레슬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 솔로 아티스트로서 <기네스 월드 레코드> 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일화
Born(태생): Elvis Aron Presley January 8, 1935 Tupelo, Mississippi, U.S.
Died(사망): August 16, 1977 (aged 42) Memphis, Tennessee, U.S.
Cause of death(죽음 원인): Heart attack (심장마비)
Resting place(묘비가 있는 곳): Graceland Memphis, Tennessee 3502'46"N 901'23"W
Education(교육): Humes High School (흉즈 고등학교)
Occupation(직업): Singer,actor (가수, 배우)
Spouse(s)(배우자): Priscilla Beaulieu (m. 1967; div. 1973) 1967년 결혼 1973년 이혼
Children(자녀): Lisa Marie Presley 리사 마리 프레슬리
Relatives(친척): Riley Keough (granddaughter) 외손녀
Awards(상장): Presidential Medal of Freedom (posthumous, 2018) 2018년도 대통령 상을 받음
Education(교육): Humes High School (흉즈 고등학교 )
Occupation(직업): Singer,actor (가수, 배우)
Spouse(s)(배우자): Priscilla Beaulieu (m. 1967; div. 1973) 1967년 결혼 1973년 이혼
Children(자녀): Lisa Marie Presley 리사 마리 프레슬리
Relatives(친척): Riley Keough (granddaughter) 외손녀
Awards(상장): Presidential Medal of Freedom (posthumous, 2018) 2018년도 대통령 상을 받음
Musical career Genres(음악적 업적과 장르):Rock and rollpoprockabilly, country,gospe|,R&B, Ins
truments Vocals,guitarpiano
Years active(활동한 연도): 1953-1977
Labels (녹음사):SunRCA (Victor)HMV
엘비스 프레슬리 부모 사진
엘비스와 비틀즈의 일화
1965년 8월 28일 로스 앤젤레스의 엘비스 저택에서 엘비스와 비틀즈는 만남을 가지게 됩니다. 비틀즈의 매니저와 엘비스의 매니저인 톰 파커 대령(Colonel Tom Parker)과의 회견이었습니다. 회견이라는 명목이었지만 집 주변에는 구경꾼이 모였습니다. 엘비스는 자신의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는 팬을 위해 즉흥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엘비스는 베이스를 존 레논과 조지해리슨은 기타를 폴 매카트니는 피아노를 연주했습니다. 링고스타는 드럼이없어서 당구와 축구를 즐겼습니다.
엘비스는 존 레논에게 '너희 레코드는 모두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지만 존 레논은 '나는 너의 레코드를 한장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존 레논은 엘비스가 베트남 전쟁에 동참하는 자세와 그가 출연한 영화가 매너리즘에 빠져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 이후부터 엘비스는 존 레논을 싫어하게 됩니다. 나중에 존은 자신의 발언을 반성했는지 몰라도 엘비스의 추종자들에게 '엘비스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다'고 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하지만 엘비스는 존 레논이 반전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설때, 닉슨 대통령에게 '존을 추방하게 해달라'고 편지를 썼습니다.
Suspicious Minds는 미국 싱어 송 라이터 마크 제임스(Mark James)의 작품으로 마크가 1968년 발표했으나 상업적으로 실패했고 1969년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발표해 빌보드 싱글 차트와 캐나
다에서 1위에 올랐습니다. 영국에선 3번에 걸쳐 차트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처음 발표된 1969년엔 2위까지 올랐고 2001년 1970년 8월 라스베가스의 호텔에서 있었던 라이브 버전의 앨범이 발매되었을 때는 15위, 2007년 엘비스 사망 30주년 기념으로 음반이 재발매 되었을 때는 11위에 올랐 습니다.
이 곡은 7년만의 1위곡을 배출했다는 점에서 엘비스의 드라마틱한 컴백을 주도했지만 엘비스의 마지막 미국 차트 1위곡이기도 합니다. 롤링 스톤지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0곡에 포함되어 91위에 올랐고 1999년 그래미 명예의 전당에 올랐습니다.
부인과 딸
Suspicious Minds는 프로듀서 칩스 모만(Chips Moman)는 마크에게 곡을 맡기기 위해 멤피스에 있는 스튜디오 ASS로 불렀습니다. 마크는 당시 남부에서 3곡을 1위에 올려놓은, 요즘말로 뜨고 있는 작곡가였고 ASS도 박스 탑스(Box Tops)의 Letter로 인해 주목을 끌고 있었습니다. ASS로 온 마크는 어느 날 밤
자신의 펜더 기타와 하몬드 오르간을 사용해 따라 부르기 쉽다고 생각한 멜로디의 뼈대를 만들었습니다. 가사는 의심하는 관계에 대한 곡입니다. 마크는 당시 결혼한 상태였는데 여전히 어린 시절 사귀었던 연인에 대한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마크의 부인은 이런 그에 대한 의심을 품고 있었고 마크는 세 명의 마음이 빠져나올 수 없는 어떤 함정에 빠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무척 혼란스러웠고 그 감정을 노래에 담으려 했습니다.
가사를 보면 부인이 의부증이 있어 보였습니다. 마크의 버전은 칩스가 프로듀서를 맡았고 스튜디오 전속 밴드가 연주를 했습니다. 그리고 홀라데이 시스터즈(Holladay Sisters)의 혼과 스트링, 보컬 등이 뒤에 오버 더빙 되었습니다. 마크의 매니저는 음반을 발매하기 위해 뉴욕으로 날아가 셉터사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셉터사는 이 곡을 너무 좋아 했지만 신인 가수를 위해 프로모션을 넉넉하게 할 수 있는 여유자금이 없었습니다.
결국 곡은 차트에 오르지도 못하고 사장되었습니다. 1년 뒤 칩스의 친구 돈 크루즈(Don Cruise)는 마크에게 엘비스의 앨범을 위해 어떤곡이 좋을지를 문의 해왔습니다. 마크는 엘비스가 당시 크게 인기를 얻고 있
던 톰 존스(Tom Jones)와 같이 보다 성숙한 스타일의 록큰롤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Suspicious Minds가 그런 곡이 될거라고 여겨 강력하게 추천했습니다.
엘비스는 1969년 1월 23일 새벽 4시부터 7시까지 Suspicious Minds를 녹음했습니다. 마크는 녹음하기 며칠 전 리허설에 참석했지만 거기서 엘비스가 자기를 보고 불편해하면서 맘껏 부르지 못한다는 걸 느껴 녹음 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스튜디오에도 있지 않았습니다.
엘비스는 1969년 1월 23일 새벽 4시부터 7시까지 Suspicious Minds를 녹음을 했습니다. 마크는 녹음하기 며칠 전 리허설에 참석했지만 거기서 엘비스가 자기를 보고 불편해하면서 맘껏 부르지 못한다는 걸 느껴 녹음에도 참여하지 않았고 스튜디오에도 있지 않았습니다. 마크는 "녹음된 트랙을 들었을 때는 좀 느리다고 생각했지만 이후 완성된 버전을 들었을 때는 감동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이 곡은 발표되기 전 엘비스 사업 파트 팀과 제작팀간의 저작권에 대한 마찰이 있었습니다. 엘비스측은 저작권의 반을 원했지만 칩스는 날강도라고 비난을 퍼부었던 것입니다. 엘비스측이 녹음을 하지 않겠다고 협박하자 RCA의 해리 젠킨스(Harry Jenkins)는 곡이 크게 히트할 것이고 어차피 서로가 많은 돈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엘비스측과 협의했습니다. 엘비스 본인은 돈과 상관없이 이 곡은 꼭 불러야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것으로 전해 집니다. 후에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의 보컬리스트가 되는 도나 진 고초(Donna Jean Godch
aux)가 백업 보컬을 맡았습니다. 커버 곡들 중 히트한 버전으로는 파인 영카니발스(Fine Young Cannibals), 드와이트 요와캄(Dwight Yoakam), 가레스 게이츠(Gareth Gates)와 윌 영(Will Young)이 부른 듀오버전 등이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닉슨을 만나다 1970
1970년 12월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10만 달러 치나 샀습니다. 이에 화가 난 아버지 버논 프레슬리(Vernon Presley)와 부인 프리실라 프레슬리(Priscilla Presley)는 낭비적 성향의 소비를 하는 엘비스를 나무랐고 삐진 엘비스는 무작정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 그 시각에 맞는 비행기편을 타고 멤피스를 떠났습니다. 도착한 곳은 워싱턴 D.C.였고 아무 생각 없이 호텔에 들어갔지만 들어가자마자 L.A의 집으로 가기로 다시 맘을 바꿨습니다.
L.A에 도착한 다음날, 엘비스는 '멤피스 마피아'로 불리는 자신의 측근중 제리 실링(Jerry Schilling)에게 전화를 걸어 워싱턴행 비행기표를알아보라고 말했습니다. 제리는 왜 갑자기 워싱턴에 가는지 묻지 않았지만 마약 및 위험약품 관리국(BNDD : Bureau of Narcotics and Dangerous Drugs) 배지를 얻기 위해서 아닌가하고 짐작했습니다. 야간 비행기편으로 워싱턴에 도착한 엘비스는 당시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인 조지 머피(George Murphy)를 만났습니다. 엘비스는 조지에게 미국 마약 문화에 대해 싹터 오르는 반감을 얘기한 뒤 BNND 배지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엘비스는 실제로 배지 모으는 것을 즐겼습니다. 그는 유명세 때문에 안전을 목적으로 여러 경찰서와 접촉했고 그럴 때마다 아주 다양하고 많은 종류의 배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엘비스는 점점 더 많은 배지를 원하게 되었고 초과 경찰 배지를 닥고 여했을 하는 습관을 들였습니다.
프리실라의 전기 <엘비스와 나(Elvis and Me)>에 따르면 엘비스는 항상 BNDD배지를 갖고 싶어 했는데, 그것을 가지면 총을 가지고 어디를 가도 자신을 무적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조지는 엘비스로하여금 닉슨(NIxon) 대통령에게 편지 써 볼 것을 제안했다. 엘비스는 이를 받아들이고 간단한 자기소개와 만나고 싶다는 내용을 써 백악관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12월 21일 새벽 6시 30분, 백악관 정문에서 편지를 전했습니다. 백악관에 편지를 넣고 엘비스는 이제 BNDD 본부로 향했 습니다. 그리고 부국장 존 핀라터(John Finlator)를 만났습니다. 하지만 존은 엘비스에게 배지 주기를 거부했다. 그 와중에 편지는 백안관 보좌관이자 BNDD의 연락책인 에길 크로흐(Egil "Bud" Krogh)에게 전달되었고 엘비스의 팬이었던 에길은 엘비스와 닉슨의 만남을 좋은 정치적 기회라고 생각하고 닉슨에게 엘비스를 만나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 했습니다. 에길의 전갈을 받은 엘비스는 12시에 퍼플 벨벳 잠바와 무거운 금으로
장식된 체인을 걸고 선글라스를 낀 채 제리와 보디가드 소니 웨스트(Sonny West)를 대령하고 등장했습니다. 몇 장의 사진을 찍은 뒤 엘비스는 즉시 닉슨에게 자신이 그간 경찰서를 돌며 모은 배지를 보여주기 시작했 습니다.
프레슬리는 "비틀즈(The Beatles)야말로 진정한 미국정신에 도전하는 막강한 힘을 가진 존재이며, 비틀즈는 이 땅에서 와서 돈을 벌고 영국으로 돌아가서 반미를 도모한다"고 말했습니다. 닉슨은 엘비스의 의견에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습니다. 닉슨은 "마약을 사용하는 자들은 반미의 선봉 이다. 폭력, 마약 사용, (국가 정책의) 반대자, 저항자들은 일반적으로 같은 무리의 젊은이들을 병합한다"고 말했 습니다. 그러자 엘비스는 "난 당신의 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엘비스가 닉슨에게 배지를 얻을 수 있냐고 묻자, 닉슨은 "배지를 줄 수있나?"라고 에길에게 물었습니다. 에길은 그렇다고 대답했고 닉슨은 그럼주라고 말했 습니다. 엘비스는 닉슨에게 자신이 얼마나 많이 지지하는지 모른다며 그를 껴안았습니다. 곧 컴백을 앞둔 자신에게 좋은 이미지가 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 엘비스는 둘의 만남을 비밀로 해달라고 요청했고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여 언론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년 뒤 기사화되면서 결국 모두가 알게 되었습니다. 백악관을 떠나기 전 엘비스는 집에서 가지고 온 세계 2차 대전 시기에 사용했던 콜트 45구경 권총을 닉슨에게
구경시켜 주어 경호원들을 긴장시켰습니다. BNDD는 엘비스를 위해 특별 배지를 만들었고 엘비스는 그날 오후 및지를 수령한 뒤 그레이스랜드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12월 31일 닉슨은 엘비스에게 새해 인사와 가족들의 안녕을 비는 연하장을 보냈습니다. VH1은 엘비스와 닉슨의 만남을 록 음악 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 100위 중 99위로 꼽았습니다.
Elvis Presley - Can't Help Falling in Love
Can't Help Falling in Love는 휴고 페레티(Hugo Peretti), 루이지페레티(Luigi Peretti), 조지 데이빗 와이스(George David Weiss)가 프랑스 클래식 작곡가 장 폴 마르티니(Jean Paul Martini)의 Plaisir
d'Amour를 기본으로 만든 곡 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영화 <블루 하와이(Blue Hawaii)>에서 불렀고 1961년 10월 1일 발표해 이듬해 1월 빌보드 싱글 차트 2위까지 올랐고 2월에는 영국에서 1위에 올라 4주간 정상을 지켰습니다. 롤링 스톤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0곡에 포함되어 2004년 394위, 2010년 403위를 차지했습니다.
영화 제작자와 엘비스의 소속사는 이 곡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비스는 이 곡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우겨 영화에 쓰이도록 했습니다. 이 곡에 힘입어 영화 0ST는 플릿우트 맥(Fleetwood Mac)에 의해 기록이 깨질 때까지 20주간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습니다. 1993년엔 영국 레게 그룹 UB40가 리메이크 해 빌보드 싱글 차트 7주간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곡은 영화 <슬리버(Sliver)>에 삽입되었고 연말 결산에서 3위에 오르는 인기를 누렸습니다. UB40의 공식 제목은 (1 Can't Help) Falli
ng in Love with You 입니다
엘비스의 전설적인 공연에서 죽음까지
엘비스는 1969년부터 네바다의 라스베가스를 중심으로 공연을 했습니다. 엘비스는 보컬에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로큰롤 색상을 보여주어 순간 최고 시청률 약 72퍼센트를 기록했 습니다. 1968년부터 라스베가스 무대에서 가수로 복귀하고는 로큰롤 이외에도 복음과 스탠다드 넘버등을 도입한 오락성을 앞세운 구성을 보여줬습니다. 백 뮤지션도 코러스 그룹이나 피아노등이 새롭게 추가, 오케스트라까지 갖추게 됩니다.
1973년 1월 14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콘서트(Aloha From Hawaii)를 했습니다. 전세계 40개국, 15억명 이상이 시청하고 콘서트에서 처음으로 위성 생중계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방송을 시청한 세대수는 달 착륙 영상을 시청한 가구수보다 많았습니다. 이 콘서트는 가수 '쿠이 리(Kui lee)'의 암'기금 을 마련하기 위한 자선 콘서트였습니다.
호놀룰루의 진주만에 있는 '애리조나 기념관'은 엘비스가 1961년에 실시한 자선 쇼에 의해 지어진 것입니다. 엘비스는 친구에게 차와 보석을 자주 선물했습니다. 하지만 셀 수 없을정도로 많은 단체에 기부도 했습니다. 대부분 비공식적이거나 익명으로 기부를 해서 엘비스의 선행은 명확하게 파악 되지 않았습니다.
1977년 8월 15일 테네시주의 자신의 집에서 그는 사망하게 됩니다. 여자친구 Ginger Alden에 의해 침실 욕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것을 발견하고 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오후 3시 30분에 사망을 확인, 42세의 나이
에 사망합니다. 부검후 처방약의 극단적인 약물 남용으로 공식 발표됩니다.
엘비스는 스트레스에서 오는 폭식증에 빠져 체중이 늘어난데다 75년 처방된 수면제등을 잘못된 사용법으로 복용하고 있었습니다. 엘비스는 처음에 멤피스의 포레스트 힐 묘지에서 어머니 옆에 묻혔다가 시신 도굴 미수사건이후 어머니와 함께 그레이스랜드에 다시 매장되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사망직후 유족들이 엘비스의 물적 재산을 관리하는 조직을 결성하였습니다. 초상권을 관리하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유족들은 승소하여 현재까지 관리되고 있습니다. 엘비스는 썬레코드 시절부터 사망하기까지 수많은 미발표 곡이 발견되었습니다. 또한 2002년 네델란드의 디제이 JXL이 리믹스한 엘비스의 노래 'A Little Less Conversation'이 FIFA월드컵 송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미시시피주 투펄로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 생가 및 그 일대가 미국계 음악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탄생지를 보존하려는 목적 아래 역사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미시시피 블루스 트레일에 등록돼 있으며 미시시피 주에 의해 랜드마크로 지정돼 있습니다. 박물관인 엘비스 프레슬리 생가 뿐 아니라, 예배당 및 하나님의 성회 교회 건물이 박물관 지구에 포함됩니다
버논과 글래디스는 적빈한 살림을 꾸려가면서 집세를 미불할 때까지 샷건 하우스에서 주거했습니다. 둘은 투펄로에서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고 미시시피 주에 체류하는 13년간 수차례 이사를 했습니다.
1936년 4월 5일 시내로부터 8마일 떨어진 곳을 F5급 토네이도가 강타했습니다. 1살 엘비스와 어머니 글래디스는 돌풍이 집을 분쇄하지 않아 무사했다. 아버지 버논은 직업을 물색하느라 시외에 있었기 때문에 화를 면했다고합니다.
엘비스 프레스리 집에 사격장도 있습니다.
멤피스의 고 엘비스 프레슬리 자택에서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졌 습니다. 조지 W 부시 미국대통령과
멤피스를 방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총리가 발휘한 쇼맨십이 그것입니다.
엉덩이를 내밀고 두 팔을 벌려 엘비스의 춤을 흉내내며 '러브 미 텐더'를 부르는 고이즈미의 사진은 전 언론의 머릿기사를 장식했습니다
대국의 총리로서 다소 경박한 행동이기는 하나 '엘비스 프레슬리'를 선택한 고도의 외교적 계산은 칭찬할 만하다 엘비스가 누구인가. 단순한 유명 스타를 넘어 미국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자부심이고 신화가 아닌가
엘비스 프레슬리
"엘비스 프레슬리의 죽음은 우리나라의 일부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는 특별하고 대체할 수 없는 존재였다."
"20여 년 전, 그는 전례없고, 결코 필적할 수 없는 영향력으로 갑작스럽게 세계에 등장했다."
"그의 음악은 컨트리와 R&B의 스타일을 융합하여 미국 대중 문화의 얼굴을 영구히 바꾸어 놓았다."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리고 그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 나라의 활력, 반항심, 유머 감각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지미 카터 대통령-
독일에서 탱크병으로 근무당시
1960년 개봉한 영화 G.1.블루스에서 엘비스는 미국으로 돌아가 나이트클럽을 개업하고 싶어 하는 꿈을 가진 독일 프랑크푸르트 육군 특수부대원 역을 연기합니다. 동네 카바레 가수 릴리(Lili, 줄리엣 프라우스 )와 함께 산책하던 중, 우연히 인형극에서 기술적인 문제를 겪고 있는 현장을 발견합니다. 작품 속 엘비스가 여자 꼭두각시 인형에게 불러주는 노래 '우든 하트'는 영국에서 1위를 차지한 히트곡이었습니다. 극 중에 등
장하는 꼭두각시 인형은 밥 베이커가 제작 및 연기를 맡은 것으로, 너무 진짜 같은 나머지 엘비스는 인형들을 보자마자 '완전히 겁에 질려' 자신의 트레일러로 몸을 피하는소동까지 일어났다고 합니다
2023년 설립 60주년을 맞이하는 밥 베이커 마리오네트 극장은 LA에서 가장 오래된아동용 극단입니다.
미스소니/언 매거진은 밥 베이커 마리오네트 극장이 미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운영되어 온 꼭두각시 인형 극단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밥 베이커 마리오네트 극장은 2009년 로스앤젤레스 역사 문화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과 같은 작품부터 로스앤젤레스의 역사를 돌아보는 음악 여행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오리지널 쇼를 통해 백만 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왔습니다.
리사 마리 프레슬리(영어: Lisa Marie Presley, 1968년 2월 1일 ~ 2023년 1월 12일)는 미국의 가수로 엘비스 프레슬리와 프리실라 프레슬리의 외동딸이다. 마이클 잭슨과 니콜라스 케이지의 전처였으며 배우 라일리 키오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리사 마리 프레슬리 묘
전 세계 누구나 잘 알고 있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는 할리우드대로의 15 블록과 바인 스트리트의 세 블록에 펼쳐진 테라조(terrazzo; 대리석을 골재로 한 콘크리트)와 황동으로 만들어진 별 2,500여 개가 바닥에 박혀 있습니다. 모서리가 다섯 개인이 별들에는 수많은 배우, 음악가, 감독, 연출가, 그리고 연예 산업 종사자들의 업적이 하나 하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1960년 2월 8일 음반 업적을 크게 평가받아 할리우드대로 6777번지에 자신의 별을 놓았으나, 이후 할리우드와 라 브레아가 모퉁이에 자리 잡은 악명 높은 '할리우드의 여신'이라 불리는 전망대 아래 비틀즈 스타 옆으로 위치를 옮겼습니다.
기념품 파는데 보니 엘비스 컵이 보입니다.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외국의 항공기에는 이름이 붙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래 사진의 Convair 880 은 'Lisa Marie' 라는 이름으로 불리웁니다. 사진에서 보이는 조종석 창문 아래에 그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Lisa Marie' 는 전설의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로, 항공기를 구매한 엘비스에 의하여 항공기에 그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1960년에 N8809E 로 델타 항공사에 인도된 Convair 880 은 1974년짜지 현역으로 운행했습니다
1975년 엘비스가 구매하여 N880EP 라는 새로운 번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항공기는 아직까지 운항이 가능한 유일한 Convair 880 으로 그레이스랜드(Graceland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 있음)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 항공기를 탓습니다.
안의 내부입니다
마이애미에서 왔다는 짝뚱 엘비스 프레슬리가 나를 보고 같이 사진 찍자고 해서 같이 찍으려니 엘비스 프레슬리 포즈를 취합니다.
Graceland 표를 구입하는 곳에 젊은이들이 핸드폰을 보고있습니다
엘비스와 함께
Graceland 입구의 팬들이 남긴 자취
이곳은 엘비스 프레슬리 생가 ㅡ
미시시피 주 투펠로 미시시피 주 투펠로의 엘비스가 태어난 집입니다
1935년 1월 8일 미시시피 주 남부 작은 마을 투펠로에 있는 아버지가 나무로 지은 방 두 개짜리 작은 집에서 엘비스 아론 프레슬리(Elvis Aron Presley)가 태어납니다. 멤피스의 그레이스랜드는 이곳에서 남동쪽으로 160km 떨어져 있습니다.
로큰롤의 제왕 만나보기: 푸른 잔디와 나무가 우거진 이곳에서는 엘비스의 어린시절이 담긴 유품을 전시한 박물관인 생가와 프레슬리 가족이 다녔던 나무로 지은 작은 교회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