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과 보석
I. 카메오
한영주(국제보석감정사)
너무 작아서 사람이 고개 숙이고 앉아야 오롯이 그 모습을 보여 주는 꽃, 좀처럼 제 속을 보여 주지 않고 향기로 말하는 꽃, 꽃말이 ‘기쁜 소식’, ‘다시 찾은 행복’이라는 순결한 빛깔과 지상에 내려왔던 ‘천사들이 잊고 간 목걸이’라는 별명을 가져 조롱조롱 방울을 달고 있는 꽃, ‘크리스찬 디올’의 ‘디올리시모 향수의 원료가 되기도 하는 은방울꽃(LIly of the Valley)과 함께 꽃 중에서는 야생화인 제비꽃을 좋아하는 나는 나폴레옹이 제비꽃을 좋아했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대수롭게 않게 여겼었다. 그 후 보석 공부를 하다가 나폴레옹이 너무 매혹되었다는 보석카메오 얘기를 접했을 때 좀 놀랐었다. 그것은 나도 보석 중에 카메오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카메오는 보석 아게이트(Agate)에 양각(陽刻)으로 조각을 한 일종의 예술품이다. 고대 이집트 시대로부터 내려오는 것으로 여러 신들과 영웅의 얼굴, 어떤 장면 등을 묘사한 것이다. 이상하게 싫증나지도 않고 깊고 은은한 색상이면서도 수수하고 화려한 느낌이 나지 않는 카메오를 나는 늘 하나쯤 끼거나 달거나 하며 즐기곤 했다. 보석같이 반짝이지도 않고 매혹적인 색깔로 빛나지도 않은 카메오. 그런데 웬일이니? 평소에 전혀 상관도 없고 관심조차 없는 나폴레옹이 내가 좋아하는 꽃과 보석의 취향이 같다고 생각하니 여러 가지 상념으로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졌다. 복잡한 생각에서 겨우 현실로 돌아와 나는 오늘도 여전히 카메오를 남다르게 좋아하고 있다.
나폴레옹 1세는 1796년 이탈리아 원정 때 보석카메오를 처음 접한다. 18세기 중엽 고대 유적의 발굴은 카메오의 소재와 모티프를 제공해서 다양한 조각들로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 유럽으로 확산하여 일대 붐을 이루기 시작하던 때였다. 나폴레옹이 본국으로 돌아갈 때 여러 종류와 다양한 모습(영웅, 천사 등의 인물과 신전, 전투 장면 등)을 조각한 고대 카메오를 대거 수거하여 가져와 보석조각학교까지 세우게 된다. 그리고 1805년에 ‘로마상(賞)’을 제정하여 잘 조각된 작품에 상을 수여하고 카메오에 열광했다. 그 당시는 나폴레옹의 전성기 때이므로 고대 로마제국 황제를 흉내내어 자신도 보석조각의 모델이 되어 카메오로 제작했으나 세상이 바뀌어 나폴레옹이 몰락한 이후 제일 먼저 박살이 난 모양 그 카메오는 현재 전해 오는 것은 없다고 한다.
보석에 조각하는 기술은 이미 BC 4000년 경부터 도장을 만드는 데 사용됐는데 주로 파내는 음각(陰刻)이었고, 양각(陽刻)으로 입체적이며 구체적으로 보다 예술적으로 표현된 것이 카메오이다. 아게이트(Agate)가 대표적인 소재로 보석 마노의 일종인 아게이트는 요즘도 유명 보석상들이 주얼리 제작에 모티프로 쓴다. 아게이트에는 사드 오닉스와 블랙 오닉스가 대표적이다. 반투명의 잠정질(눈에 띄지 않는 미세한 구멍이 수없이 뚫려 있는)로서 조각하기에는 안성마춤의 가장 오래된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보석이다. 블랙 오닉스는 ‘용기, 대담성, 활력, 번영)을, 적색(주홍, 주황빛) 오닉스는 ’선을 사랑하는 마음, 건강, 부, 장수, 평안‘을, 줄무늬가 있는 오닉스는 ’통찰력, 성실, 영적인 힘, 결혼의 행복‘을, 붉은 줄 무늬가 있는 것은 ’명예, 명성, 빛남, 활기, 자제심‘ 등의 상징을 내포한다. 또한 ’셀 카메오‘는 비교적 세공이 쉬운 조개류에 조각하는 것으로 투구조개, 여왕나사조개 등에 조각한다. 이탈리아에서는 화산 용암에 조각한 라바 카메오도 있는데 우아하며 은은하고 깊은 맛이 있는 색조의 매력적인 카메오와 상품화된 현대의 카메오는 깊은 맛이 덜한 것 같다. 옛날 카메오와 오래된 카메오는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하고 매혹한다.
II. 리젠트 다이아몬드
‘리젠트 다이아몬드’는 1701년 인도의 골콘다 근처에서 어느 노예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발견 당시 약 410.50캐럿이었다. 노예는 그 보석을 가지고 도망가다가 처참하게 살해되었다고 한다.
이 다이아몬드는 한때 영국 수상이었던 윌리암 피트가 소유하여 ‘피트’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윌리암 피트는 말년이 비참했다고 한다. 그 후 이 다이아몬드는 프랑스 루이 15세의 섭정이자 보석 수집가였던 오를레앙 공(Duc d`Orleans)을 통해 왕실로 흘러들게 되었고 ‘리젠트(Regent섭정)’라는 이름으로 재명명되어 왕관을 장식했다. 마리 앙투아네트와 루이 16세 시절에도 쓰였던 왕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국가의 소유가 되었으나 1792년 왕실 보물 도난사건 때 사라졌다가 나폴레옹의 황제 대관식에 등장하게 된다. 나폴레옹은 검은 봉에 황금 빛깔의 쿠션커팅된 ‘리젠트’를 박아 세팅해서 자랑스럽게 칼을 차고 황제임을 과시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말년은 또 어떠했던가. ‘리젠트’는 불행의 근본적인 제공자 신세가 되어 지금은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세계에 자랑하던 프랑스 왕실의 자존심 쿠션컷의 ‘리젠트 다이아몬드’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책 한 권쯤 읽고 난 뒤의 감동 같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첫댓글 남자로 태어나서 그런지 나는 보석과는
인연이 없는것 같아 심지어 결혼반지는
물론 정년퇴직 기념으로선물 받은 반지도
장롱속으로 직행,집사람의 권유로 3돈짜리
묵주반지도 며칠 끼고 있다가 하도 갑갑하여
새끼손까락에 끼고 있다가 어디에서 분실
했는지???
나는 보석과는 인연이 없는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