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회오리바람 속에 훅 날아온 씨앗 하나 거칠고 척박한 땅인지도 모르고 운명의 뿌리를 내려야 했다. 국제시장 장돌뱅이라는 딱지도 떼고 원하던 배필을 만나 넓은 바다에서 헤엄쳐 보겠다는 큰 꿈을 안고 여기에 왔다.
오랜 염원 속에 부푼 가슴으로 온 풋내기는 꿈은커녕 감천항 바다에 출렁이는 파도를 보며 작은 조각배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시고모님의 달콤한 언설에 현혹되어 보름 만에 민들레 홀씨처럼 훅 날아 정착한 곳은 층층시하의 열네 식구가 크고 작은 파도를 일으키며 살고 있었다.
시할머니를 비롯 시부모님 시숙 부부 시동생 시누이 등, 건장한 남자들이 한낮에 까마귀 우물 돌 듯하는 모습에서 아연실색을 하였다.
새댁은 추운 겨울날 샘물을 머리에 이고 아슬한 곡예를 하듯 집에 오면 젖은 옷에서 얼음이 뚝뚝 떨어져 내리고 손이 시려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하수구도 없어서 버리는 물도 개울에 들고 가서 버려야 했던 지난날, 신문에서 감천을 화력 발전소 연기가 까맣게 덮는다는 기사를 본 곳도 여기였다.
바로 옆 바다에는 찬 바람이 쌩쌩 불어오고 아침이면 온 마당을 그을음이 덮쳤다. 하루 종일 쓸고 닦아도 방이나 마루가 숯검댕이였다.
선창가에는 이른 아침 장난감 같은 고기 배들이 들어오고 사람들은 싱싱한 고기를 사기 위해 모여들었다. 밤새 어부들은 고기를 잡기 위해 안간힘으로 파도와 싸웠겠지. 그물에서 막 건져 올린 횟감들, 갈치 매가리 전어 쥐고기 병어 등. 계절 따라 바둥대는 저 생명들이 우리에게 먹거리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임신 초기 입덧으로 회를 먹고 싶었다. 어머님께서 회를 사 오시는 날, 많은 가족 밥상을 몇 번 차리다 보면 형님과 나는 눈요기만 했을 뿐이다.
감천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계단을 내려오면 수백 평 수천 평의 채소밭이 있고 설을 쇠면 온 동네 여인들이 채소를 캐서 충무동 시장에 팔러 가곤 했다.
처음 시집온 새댁은 발이 얼어 동동거리며 파와 채소를 캐고 온 가족이 다듬어 나는 40단 어머니는 30단을 머리에 이고 충무동 시장까지 도매상인들에게 넘기곤 했다. 무거운 고무통에 채소를 이고 버스정류장까지 계단을 오를 땐 죄인이 무서운 형벌을 받는 듯 발에 무거운 쇳덩이를 차고 한 걸음씩 옮기는 것 같았다.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 장님 삼 년을 거쳐야 한다는 친정어머니의 말씀을 되새기며 참기엔 가혹한 벌이었다. 힘이 넘치는 남자들이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어머니와 새댁의 모습을 그냥 보고 있을 때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바닷가에는 아녀자들이 줄지어 앉아 회를 손질하고 있고, 새벽이면 한파가 몰아치는 바람 속에 고무통을 들고 삼삼오오 자갈치 시장으로 가는 여인들도 있었다. 단잠을 멀리 보내고 하루의 생을 위해 장을 나서는 여인들은 자리 잡은 점포도 아니고 노점에서 좌판을 놓고 생선을 파는 사람들이다. 여인들은 감천이나 남부민동 구평 다대포 등 바닷가 여인들이 주를 이룬다. 노점상을 펼칠 때 단속반들의 눈을 피해 가며 길가에 이리저리 쫓기고 옮겨 가며 좌판을 놓고 장사를 하였다.
나는 초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첫발을 디딘 곳이 국제시장 아동복 도매상이었다. 보수동 세무서 뒤편 주인집에서 4년 동안 숙식하며 출퇴근했다. 그 후 시골에서 우리 가족이 대신동 터널 위 산동네로 이사 와서 약 3년간을 집에서 출퇴근했다. 대신동 달동네에서 실핏줄 같은 골목길을 따라 보수동 헌책방 골목 창선동 백화점까지 1시간씩 걸었다.
오후가 되면 광복동 남포동 백화점에 수금을 다녔고 아침이면 영도 다리를 지나 영선동까지 걸어서 가내공장으로 물건을 하러 다녔다. 국제시장에서 창선동 백화점 골목을 거치면 광복동 남포동 길을 건너 자갈치 시장이 바로 연결된다. 자갈치 시장에 들어서면 왁자한 경상도 아줌마들의 열기가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억센 사투리 속에 활기가 넘친다. 평생 거친 바다와 마주하고 소금기에 몸을 절며 혼신을 바쳐 온 억척 아줌마들이다.
엄동설한에도 새벽 별 보고 나와서 별 보고 들어가는 업보를 짊어진 채 삶을 살아간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단잠을 떨쳐내고 나온 사람들, 수산센터에는 한 장이 펼쳐진다. 전국에서 손꼽는 수산센터에는 멀리 태평양에서 잡은 생선부터 가까운 바다에서 밤새 호롱불로 잡은 명물들이 팔딱거리며 안간힘으로 버틴다. 태산 같은 생선들이 큰 것부터 줄지어 자신의 이름표를 달고 경매로 가격이 정해진다. 경매하는 사람의 손짓과 눈짓의 암호로 값이 매겨진다.
각각 금이 정해지면 도매상인들은 자신들이 필요한 물건을 무더기로 구입하여 소매상인들에게 넘긴다. 그중 자갈치 여인들은 하루 팔 물량을 골라 수레에 싣고 억척같이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를 자신의 운명처럼 외치고 있다. 여인들은 가정 살림과 자녀 교육 등 안팎으로 숨이 꽉 막혀도 아무 말 못 하고 엄마의 자리를 지켜야 했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도 세파를 이기며 가족들을 짊어진 채 아픔을 견디며 운명처럼 살고 있다.
한 많은 인생 누구를 원망 못 하고 저렇게도 살고 있구나! 자갈치 여인들의 삶에 목이 메어 살아온 인생 역경은 숙명宿命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오직 가정과 자식들을 위해서 살아야만 했던 그 여인들의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