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도 49재·시위 상징 삼보일배...국민 속에 자리잡은 ‘불교의식’
서이초 교사' 사건에 전국 교사
"49재로 추모 결집하겠다" 선언
2003년 '새만금 살리기' 운동부터
간절한 의사표현 정착 '삼보일배'
불교에서 유래한 채식·명상도
젊은층에 각광받는 '일상템'으로
불교 고유 전통의식이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사회적 공론화의 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가 1000여 명 인파와 서울 도심 한복판을 오체투지하며 ‘발달장애인 전 생애 지원체계 구축’을 촉구하는 모습. 불교신문 자료사진
불교 고유 전통의식이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사회적 공론화의 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서이초 교사 추모 및 공교육 정상화 촉구 49재’,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촉구 삼보일배’ 등 불교 전통의식이 누군가의 간절한 호소를 표현하는 창구가 된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의식은 ‘49재’다. 최근 교권침해로 목숨을 끊어 논란이 된 ‘서이초 교사’ 사건에 전국 교사들은 49재를 열고 결전의 날로 삼겠다고 결의했다. 윤미숙 초등교사노조 대변인은 “종교와 관계없이 ‘49’는 대중적으로 의미 있는 숫자”라며 “해당 교사를 추모하고 안전한 교육 환경 조성을 위해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의 죽음관을 반영한 전통 장의법이자 일반 장의식으로 보편화된 49재가 이제는 누구나 참여하는 대중적 추모행사가 된 모습이다.
2003년 새만금 갯벌 살리기 삼보일배. 탈진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던 수경스님이 병원에서 나와 휠체어로 '다섯바퀴 구르고 한번 합장반배' 하며 대열과 함께하는 모습.
모든 생명을 살리겠다는 서원을 담아 몸 던진 스님들.
이후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활동으로 삼보일배는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운동 방식으로 확산됐다. 사진은 지난 6월 발달장애인 부모들과 오체투지하는 모습.
간절히 기도하며 오체투지하는 사부대중.
불교의식은 종교도 넘나든다. 십자가를 손에 쥐고 삼보일배하는 이웃종교인. 국내 종교계가 함께한 '이태원 참사 300일 추모 및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촉구 삼보일배' 현장.
‘삼보일배’도 집회 현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다.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는 수행법인 삼보일배는 선방 스님이나 봉정암 등 산중 기도처를 찾는 신도들 일부만 행하던 최고의 고행이었다. 이는 2003년 수경스님을 비롯한 성직자들이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해 전라북도 부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로 이동하며 대중에 모습을 드러냈다. 생명을 살리고자 온몸 던진 성직자들의 삼보일배는 우리 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보통의 시위 문화와 달리 자신을 낮추는 고행으로 호소하는 모습에서 사람들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이후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 복직염원’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며 삼보일배에 나섰고, 점차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운동 방식으로 확산됐다. 유승무 중앙승가대 포교사회학 교수는 “삼보일배는 절실한 마음을 전달하는 최고의 시위 수단”이라며 “가장 독특하고 강렬한 의미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의미에서 매개체로 기능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사회노동위원회는 1000여 명 인파와 서울 도심 한복판을 오체투지하며 ‘발달장애인 전 생애 지원체계 구축’을 촉구하기도 했다. 현장에는 가톨릭 신자도 함께했는데, 그는 “오체투지는 불교의식이기 이전에 발달장애인 부모로서 몸으로 할 수 있는 마지막 투쟁”이라고 했다. 이날 대중들의 맨 앞에 서서 현장을 진두지휘했던 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지몽스님은 “삼보일배, 오체투지는 불교만의 의식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활용되고 있다”며 “현장에는 이웃종교인, 일반 시민도 참여하며 사회적 약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불살생’에서 유래된 채식문화는 환경과 건강에 대한 관심과 맞물려 새 열풍을 불어왔다. 사진은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르 꼬르동 블루 오타와캠퍼스에서 사찰음식 강의하는 모습.
어린이 채식요리대회도 열렸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사단법인 동련 광주지구가 빛고을사찰음식체험관에서 대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명상’도 불교에서 비롯된 문화 중 하나다. 월정사 선명상요가학교에서 선명상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서울 조계사는 평일 점심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점심 먹고 명상 어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새로운 생활 방식으로 자리 잡은 불교문화.
최근 새로운 생활 방식으로 자리 잡은 ‘채식’도 불교에서 비롯된 문화 중 하나다. ‘불살생’에서 유래된 채식문화는 동물 실험, 도축에 대한 혐오 등 환경과 건강에 대한 관심과 맞물려 새 열풍을 불어왔다. 채식 식품부터 친환경 의류, 화장품까지 출시되는 등 산업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불교 참선 수행에서 나온 명상은 서양으로 건너가 의학적 임상을 거쳐 더욱 세련되고 체계화된 모습으로 역수출된 특이 사례다. 이에 불교가 사회적 흐름을 더 빨리 파악하고 체계화했다면 최고의 불교 상품으로 자리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있다.
이처럼 불교의식과 문화가 대중에게 영향력 있는 모습으로 정착해있음에도 여전히 과제는 남아있다. 가령 ‘발우공양’의 경우, 환경 문제가 화두로 떠오른 시대인 만큼 사회적 가치가 충분하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조계종 포교원 포교부장 선업스님은 더 많은 불교의식과 문화를 사회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불교사상을 일반 사람이 수용할 수 있도록 쉬운 언어로 바꾼 다음, 몸과 마음 건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상적 토대를 정확히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교 고유의 소리인 ‘염불’을 사회화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사회적으로 안타까운 희생이 많아 염불을 알림으로써 국민의 마음치유를 돕자는 것이다. 김응철 중앙승가대 불교사회학부 교수는 “이미 보편화된 49재처럼 염불을 치유의 한 방법으로 사회화시킨다면 애도의 의미를 전함과 동시에 남은 사람들이 희망을 얻을 수 있도록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제안했다.
10·29 이태원 참사 49일 시민추모제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 복직염원 투쟁을 함께했던 불교계. 복직 합의를 이뤄내고 '고맙습니다' 현수막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처음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새만금 갯벌 살리기 삼보일배'. 57일간 대장정 끝에 서울에 입성한 수경스님이 감격의 울음을 터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