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수필 / 류인혜의 책읽기 23 / 2023년
우리 도서관으로 가자
- 스튜어트 A. P. 머레이 지음, 윤영애 번역, 《도서관의 탄생》, 애경, 2012.
류인혜
제23회 「수필의 날」 고창대회 주제는 「종이책과 장소 그 대중 친화적 콜라보의 미래」이다. 행사장소가 고창의 작은 도서관 「책이 있는 풍경」에서 열렸기에 주제를 그렇게 정했다고 이해했다. 그런데 ‘대중 친화적’을 어떻게 해석하여 좋은 결과를 이루도록 풀어야 할지…. 종이책과 책을 보관하는 장소가 어떤 조화를 이루어야 대중과 친해질 것인가.
도서관으로 독서인이 먼저 가야 하지만, 도서관에서도 어떤 기획으로 사람을 모을 것인가도 중요한 과제이다. 책을 보관하며 관리하는 일은 품이 많이 든다. 개인이 소중히 여기는 집안의 책도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범위가 넓은 도서관에서는 책의 관리가 쉽지 않을 것이다.
「수필의 날」 행사가 열리는 작은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는 건물 한 채만 덩그러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마당이 넓어 쾌적했고, 부대시설도 만만치 않다. 책만 읽기보다는 책과 함께 휴식을 취할 수도 있는 환경이었다.
종이책의 존재함이 위기라고 한다. 모두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생활하는 한 그런 현상이 점점 심각해질 것이다. 나름대로 도서관의 역할을 고민하다가 생각을 정리할 책을 찾았다. 일이 얽히면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순리이다.
스튜어트 A. P. 머레이(Stuart A. P. Murray) 지음 《도서관의 탄생》이다. 이 책의 부제는 ‘문명의 기록과 인간의 역사’이다. 한창 공부에 몰두할 때는 글자 속에 냉철함이나 인간의 미래가 들어있는 듯한 단어를 좋아했는데 어느 때부턴가 ‘문명’이나 ‘역사’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긴장이 된다.
저자는 40년 가까이 미국 역사를 다루어 온 전문 저술가이자 편집자이다. 도서상을 수상한 《미국의 노래》를 비롯해 35권 이상의 책을 저술하였다. 도서 및 신문 편집자이자 기자, 그리고 잡지 발행인으로도 활동했다. 책 속에 미국에 관한 내용이 구체적이라는 것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지금까지 종이와 책의 역사에 관한 글이나 도서관을 소개하는 책을 여러 권 읽었다.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는 단어는 서판, 두루마리, 양피지, 파피루스, 수도원, 필경사 등이다. 지난번 《아름다운 책》을 읽을 때도 비슷한 내용을 접했다. 같은 내용이라도 글을 쓰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르니 문장이 달라진다. 그 접근이 밀착되거나 건성이거나를 떠나서 한 가지의 역사적 사실이 다양한 접근과 사고(思考)에 의해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그래서 가끔은 중요한 내용을 무심히 지나치게 된다. 어떤 현상이든지 그 일이 발생한 사회적 조건이나 사람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는 중요한 역사의 사실로 기록된다.
도서관이 인류의 어떤 상황에서 탄생했으며 그 줄기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왔는가를 전문가의 시선으로 엮었기에 읽어내기가 만만찮다. 집중해야 할 책 읽기가 새로운 기운을 부른다.
먼저 목차를 정리한다. 범위가 넓은 책은 목차에서 전체 줄기를 잡는다.
<책 이전의 책_고대의 도서관> <책의 시대_중세 전기 유럽의 도서관> <서점과 대학의 탄생_중세 후기 유럽의 도서관> <학회의 창설_르네상스에서 종교개혁까지> <도서 전시회의 시작_도서관의 황금기> <동방의 책_아시아와 이슬람 1> <책의 사람들_아시아와 이슬람 2> <신대륙의 발견_식민지 시대 북미의 도서관> <국회 도서관의 설립_미국 초기의 도서관> <도서관 운동_사서 총회의 시작> <서지학의 발달_지식의 재구성> <오늘날의 책_도서관, 사서 그리고 미디어 센터> 마지막 <세계의 도서관> 편에서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부터 스미소니언 인스티튜션 도서관까지 49개의 도서관을 소개한다.
저자는 《도서관의 탄생》에 대해서 역사를 이루어 내는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고 있다. 5천 년 전,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문서는 점토로 만든 서판이었고, 최초의 도서였다. 그것을 보관하고 조직화하기 위해 모아 두었다는 데서 도서관의 개념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고대의 도서관에서는 점토 서판을 바구니에 담아서 보관했다. 바빌론 도서관에서는 도기 항아리를 이용했다. 서판의 내용은 세금징수액, 군인 증가 수, 징병 수, 상업 거래와 통치에 관한 것들이다. 아득히 먼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기록을 중요하게 여겼고 그것들을 보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생각하는 인간의 훌륭한 본성을 만나게 되니 반갑고 신기했다.
문명의 발단은 문자로 비롯되었다. 문자로 이루어지는 문명의 전진으로 어울려 필요한 다른 분야를 깨닫게 되었고 개발하게 되었다. 이집트인의 상형문자가 쓰인 것은 기원전 3천 년이다. 그 시대를 살았던 인간은 큰 갈대 모양의 식물인 파피루스(papyrus)를 다듬어서 종이처럼 사용했다.
다음이 송아지, 양, 염소 등의 가죽을 재료로 개발된 것이 페르가몬이라는 양피지이다. 파피루스보다 부드러운 표면이 잉크나 물감이 잘 흡수되어 디자인이나 서체를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내구성도 높아졌다. 양피지는 유럽에서 5세기까지 글쓰기의 주된 재료가 되었다.
수도원의 성직자들은 필경사가 되었다. 당연히 필사한 책들을 보관하기 위해서 수도원에 도서관이 마련되었다. 책의 형태도 발전했다. 두루마리 형태를 아코디언 모양으로 접어 양면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 종군에 대한 급보를 보낼 때 낱장의 한쪽 모서리를 제본했으며 나무에 가죽을 입힌 딱딱한 커버를 씌워 내용을 보호했다. 점차로 제본과 서체, 디자인 분야에서 새로운 기술이 생겼다.
그리스에서는 기원전 6백 년까지 도서관과 장서들이 번성하여 도서문화의 정점을 이루었다. 아테네와 사모스에도 공공 도서관이 발전했고, 장서가들이 많아지자 개인 도서관도 의사와 학자들 사이에서 만들어졌다. 비싼 책(필사본)들은 권력자와 부자들의 사치품이 되었다. 뜻깊은 장서가들의 개인 도서관들은 공공 도서관으로 승격했고, 책들은 교육기관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백성의 지식이 두려운 왕들과 화재와 전쟁을 통해 많은 책이 사라졌으며 다른 나라로 옮겨지기도 했다.
책을 통해 각 나라의 고유한 문화가 전파되었다. 더 높은 지혜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전했다. 종교를 앞세운 나라는 율법서를 통해 자신들 힘을 전파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내용 중에서 한국에서 이동 가능한 활자를 금속으로 주조할 수 있는 최초의 주물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반가운 김에 더 긴 내용을 가져왔는데 정확한 사실인지 조금은 의심이 된다. 번역자가 완벽한 자료를 찾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다.
14세기 한국에서는 도서관이 주로 귀족과 불교 사원에 속해 있었다. 몽골의 침략에 대응하여 정부는 한국의 문화유산들을 보존하기 위해 네 군데에 ‘역사서 보관소’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책들을 필사했고 복제본들을 서로 다른 장소에 보관했다. 15세기 조선 왕조는 백성에게 가르칠 목적으로 한글을 만들었으며, 이는 한국에 도서관과 서고가 성장하는 데 중대한 기여를 했다. 한국의 왕립 도서관은 책들을 고전, 역사, 철학, 백과사전 등으로 분류했다.
<책의 사람들-아시아와 이슬람 2> - 164쪽
이 책에서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세계 각국의 도서관이 어떤 경로로 세워지고 이루어졌으며 그곳의 책들이 어떻게 되었나를 탐색하는 내용이 광범위하다. 도서관을 주제로 엮어나가는 인류 문명의 발생과 역사의 현장에서 문화가 번져나간 경로와 인간의 삶에 미친 결과를 말한다. 많은 사람의 이름과 지명과 역사적 사실이 정리되어 있다. 자료를 찾아 기록한 저자의 수고에 존경의 마음이 솟는다. 책을 즐겨 읽으며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적절한 옛날이야기를 읽는 느낌이다. 그래서 더 흥미롭다.
《도서관의 탄생》을 읽으며 가장 관심을 둔 부분은 세워진 도서관의 운영이 어떻게 되어왔는가이다. 시대와 나라마다 그 내용이 다르지만, 책을 잘 보관하여 필요한 사람에게 읽히게 한다는 의미는 모든 곳에서 절실하다.
도서관에서 책을 가장 가까이에서 다루는 이가 사서들이다. 초창기의 폐쇄적이던 도서관에서 이용자들이 찾는 책을 찾아주어야 했던 사서들은 도서관으로 들어오는 책에 대해 알고 있어야 했다.
미국 최초 사서들의 총회에서는 도서의 목록화·분류·색인 정리·도서관들 간의 교류·적절한 도서 선택과 정부 문서의 배포 방법 개선 등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회의의 내용이 현장에서 즉각 실행되지 않았지만, 그 내용은 이후 도서관 운영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도서의 분류도 여러 방법을 거치면서 체계적인 방법으로 정리되었다.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가서 직업을 선택한다면 책을 다루는 사서나 서지학자가 되었으면, 싶은 정도로 몰두했다.
미국의 선구적인 예술 박물관이라는 워즈워스 아세니움에서 1846~1868년까지 근무했던 헨리 M. 베일리는 저명한 사서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청년협회 도서관의 분위기를 묘사한 책을 수필로 출판했는데 그 《도서관 사색》은 사서, 후원자와 도서관의 독서실에 띄우는 감상적인 송시라고 한다. 그렇게 도서관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1876년 미국 도서관협회가 영구적으로 결성되었다.
《도서관의 탄생》은 길고 긴 인류의 역사를 시작부터 따라가야 하기에 인내심을 갖고 읽을 책이다. 도서관이 문명의 발전에 따라 성장해 왔던 지식의 근본이며 보고(寶庫)가 되는 기관이라는 중요성을 알았으면 한다. 과학의 기술로 두꺼운 책과 방대한 문서들이 간단하게 정리되었고 전자책에 많은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감정이 있다면 사람의 오감을 먼저 어루만지는 종이책의 좋은 점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종이책의 미래를 염려하면서 앞으로 도서관이란 공간이 이용자에게 전해줄 수 있는 알찬 내용이 무엇일까에 주목하고 싶다. 책을 관리하는 사서들이 책을 좋아하는 이에게 베풀 수 있는 내용이 무엇일까. 바이러스로 인해 한동안 도서관이 문을 닫아 방문의 길이 막혔던 때는 한길사에서 발간한 《김언호의 세계서점기행》을 뒤적이며 책 여행을 했다.
도서관을 즐겨 이용하지만 가장 선호하는 책의 공간은 서점이다. 서점을 향한 독서인들의 활발한 행로를 그리워한다. 그동안 많은 서점이 문을 닫았다. 도서관이 서점의 역할을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독서인과 책, 도서관의 조화로운 공존을 기대하며 우리 모두 책을 만나러 도서관으로 가자.
류인혜
1984년 『한국수필』 봄호 수필 「우물」로 추천완료.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여성문학인회 사무국장, 한국수필작가회 제9대 회장 역임.
한국수필작가회 고문, 국제펜한국본부 자문위원,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계간문예 기획위원, 한국식물연구회 이사.
작품집: 수필집 『수필이 보인다』, 수필선집 『불러보고 싶은 이름』 외 9권
수상: 제18회 한국수필문학상, 제23회 펜문학상, 제11회 한국문협작가상,
제9회 송헌수필문학상, 제8회 한국문학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