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 마음을 진정시키고 돌아 본 북한전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조소현은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도 계속 붙게 될 텐데 이번에 이겼으면 다음에 준비를 소홀히 할 수도 있었을 거예요. 더 간절해졌다고 할까? 월드컵 같은 더 큰 무대에서 붙으면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생겼어요. 우리가 긴장을 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도 느꼈고요. 중요한 경기고 많은 관심이 쏟아져서 우리 걸 제대로 못했던 부분도 있었거든요”라며 주장다운 냉정한 복기를 했다. 정설빈은 북한전 패배에서 긍정적 의미를 찾아냈다. “경기를 뛰든, 안 뛰든 모든 선수가 한 마음이었어요. 언젠가는 지금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을 거라는 열망들이 강했어요. 결과를 떠나 좋은 경기를 했다는 건 우리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거잖아요. 그걸 얼마나 지켜내고 끌어내는 것.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북한전에서 배운 점이라고 생각해요.”
무관심이 우리를 더 독하게 만들었어요
그라운드 위에서 포기를 모르는 강인한 모습이었지만 축구장을 벗어나 만난 선수들은 20대 초반의 꾸미길 좋아하는 평범한 아가씨들이었다.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긴장을 풀리자 꺄르르거렸다. 사진 촬영이 시작되자 숨겨진 본 모습들이 나왔다.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나오고 싶은 욕심에 도리어 먼저 이런 저런 포즈 제안을 했다. 촬영을 맡은 도현석 작가는 운동선수라길래 덩치가 클 줄 알았는데 다들 체구도 작고 예쁘장해서 놀랐다고 했다. 주장 조소현은 대회 기간 동안 엘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염색한 긴 머리가 인상적이어서 마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주인공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정설빈은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짙은 와인색의 머리로 개성을 뽐냈다. 이미 팬들 사이에서 유명한 심서연도 머리띠 등으로 자기 포인트를 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그런 모습으로 그라운드에 나서도 눈에 들어온 것은 지지 않으려는 독기와 투지였다. 무엇이 그녀들을 독하게 만들었을까?
전가을은 지난 광저우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이번 인천 대회만을 기다렸다고 했다. 당시 한국은 홈팀 중국을 꺾고 4강에 오르며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쳤지만 다시 북한에 패해 동메달에 그쳤다. 그나마도 다른 아시안게임 동메달처럼 관심도 거의 받지 못했다. 당시 여자축구는 U-20월드컵(3위)과 U-17 월드컵(우승)에서의 잇단 성공으로 역대 가장 큰 관심을 받았다. 적은 지원에도 세계 무대에서 성과를 낸 여자축구에 대한 지원 방안이 각계 각층에서 논의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열기는 한달 만이었다. 아시안게임 동메달은 누구도 신경 써주지 않았다. 그 대회에서 남자대표팀도 같은 색깔의 메달을 거뒀다. 여자축구는 오히려 3•4위전에서 홈팀 중국을 다시 한번 이기고 거둔 성과였지만 관심의 크기는 달랐다. 정설빈은 “남자축구에 쏠리는 관심과는 비교가 안 되죠”라며 체념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대회에서도 북한전으로 치솟는 듯 했던 관심은 불과 이틀 만에 꺼지고 말았다. 베트남과의 3•4위전은 중계로 볼 수 없었다. 러시아 무대로 진출하면서 이번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던 ‘에이스’ 박은선은 “동료들의 경기를 보고 싶은데 도저히 방법이 없다”며 SNS 상에서 강한 불만을 표시했었다. 지상파 3사는 같은 시간 열리던 여자리듬체조 단체전에, 스포츠 케이블 채널은 재개된 프로야구 중계를 했다. 조소현은 “경기장 가는 내내 다들 치사하다고 했어요. 처음엔 공중파 중계라고 떴는데, 그 다음엔 케이블 채널이라고 하고, 나중에는 인터넷 중계래요. 그것도 해외 방송이었죠”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가을은 한숨을 쉬고 “전 일찌감치 안 할 줄 알았어요. 우리는 이런 게 화가 나요. 이틀 만에 무관심으로 돌아서잖아요. 그래서 꼭 이겨서 일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거든요. 일등에겐 관심 가져주니까. 나를 위해서 우승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를 위해, 그리고 힘들게 운동하는 동료들과 후배들을 위해서 꼭 이겼어야 했던 거죠. 몇 번 안 올 기회였거든요”라고 말했다.
여자축구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한국 축구가 세계 대회에서 유일하게 우승을 한 것도 여자 축구(2010년 U-17 월드컵)였고, FIFA랭킹도 오히려 남자 대표팀보다 46위나 높다. 중국, 일본, 북한에 비해 출발이 늦었지만 지금은 대등한 승부를 할 수 있고 대부분의 결과도 1골 차 안에서 끝난다. 마지막 그 차이를 좁히지 못하는 것은 2% 부족한 관심과 지원이 아닐까? 자신들의 영광을 위해 뛰는 것도 벅찬 선수들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미디어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다른 관심과 자세를 바꾸게 만들어야 한다는 힘든 과제까지 짊어졌다는 데 비애가 느껴졌다. “저희도 이제 알아요. 호소만 해서는 바뀌지 않으니까 결과를 내서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걸. 이번에 그걸 할 수 있었는데 마지막 한 발짝을 더 나가지 못한 게 아쉽고 서럽죠”라는 정설빈의 얘기가 심장을 쿡쿡 찔렀다.
첫댓글 멋지다..
동메달딴줄도몰랐다 ㅠㅠㅠ중계를안해주니
전가을언니ㅠㅠㅠ완전 멋있었는데ㅠㅠㅠ 남자보다 여자축구가 더 잘하는데ㅠㅠㅠㅠ여자축구 화이팅!!!!!!!!!!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동메달 결정전 중계도 안해줬잖아... 여축 선수들 화이팅이여 ㅜㅜㅜㅜ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