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은 스스로 높고 푸른 하늘
가을은 비움으로써 그윽한 산
가을은 침묵하여 깊은 바다
우리들 모두의 마음도 그러하길 -
4년만에 행토방 버스 뒷자리에 숨어서 남몰래 치악산 좀 다녀 올까 했건만
카페지기 날개님 기어코 알아보시고 불러 내시니 어찌 하오리까?
오늘따라 버스 앞자리에 무서운 분들이 모조리 포진하셨는데
능소화님, 지산님, 미키님, 날개 쥔장님, 촛불대장님 차마 눈 맞출 수도 없으니
마이크 잡고 무어라 말하리까?
큰 맘먹고 시 한 수 읊자 했더니 감정 선이 넘쳐서 삑사리 났어요 ㅎㅎ
열 댓 번도 넘게 짤렸을 사니조아 살려주시니 그저 송구스러울 뿐..
서부 전선에 뇌성 번개가 요란하리라는 기상예보를 조롱이라도 하듯이
우리는 신나게 두시간을 달려 문막을 지나 치악산 입구에 이르렀다.
도착하자 마자 증명사진 찍는 새로운 예법을 몰라 당황스러웠지만 금세 찰칵.
원래는 가을단풍이 아름다워 赤岳山이라 했는데, 꿩을 구해준 나그네가 훗날
그 꿩의 보은으로 목숨을 건졌다는 전설에서 꿩 雉자 雉岳山이라 했다는..
본격적인 등산길목에서 만나는 구룡사는 아홉마리의 용이 살던 못을 메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하고..
세렴폭포에 이르니 9시 57분.. 아름다운 2단 폭포에 깃든 가을단풍이 곱다.
땀으로 흠뻑 젖어 오르고 또 오르고 외줄기 사다리길 행렬이 자주 멈춘다.
11시 08분 '사다리병창길' 안내판에 시선이 머문다.
거대한 암벽군이 마치 사다리꼴 모양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해서 얻은 이름.
'병창'은 영서 방언으로 '벼랑' '절벽'이라고..
젊어 한창때 그냥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시절 치악산에 왔다가 그만 죽는 줄 알았고
그 후로 다시는 찾지 않았건만 30년이 지나 중년 들어 간장이 저려 오는 나이에
오늘 치악의 매운 맛 제대로 본다.
3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산을 대하는 자세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훨씬 더 겸손해지고 힘든 줄도 알고..
알면서 왜 자꾸 오냐고? 그걸 내가 어찌 알아요 휴~
- 젊어 한창 때
그냥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기쁨이거든
여름날 헐떡이는 녹음에 묻혀 들고
중년 들어 간장이 저려 오는 아픔이거든
가을날 울음 빛 단풍에 젖어 들거라
진실로 산이 겪는 사철 속에
아른히 어린 우리 한 평생
그가 다스리는 시냇물도
여름에 시원하고
가을엔 시려오느니 -
1288M 비로봉 정상에 서서 가장 외로운 바람과 만나고 나니
올라 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알겠는데..
그냥 이 바람을 타고 날아 갔으면..
오늘도 행토의 만찬장은 오성호텔급.. 꼼꼼히 사전 답사하신 촛불대장님 덕분이리라.
밥과 찬과 음료를 함께 나누어 기쁨과 행복도 차곡차곡 쌓여만 가는데..
누가 그랬던가? 행복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지금 행복하다.
치악은 내리막 길도 결코 만만치가 않다.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을 위험한 뾰족바위 너덜길의 연속...
그러나 내리막 길에서는 자만의 잰걸음으로 달려가지만 않으면 되리라.
오르막 길에서 음미하지 못했던 하늘과 바람과 나무와 바위와 단풍과 낙엽..
시 한수가 절로 나온다.
- 보고픈 마음 어찌 알고
단풍 저 먼저 붉어지네
그리운 마음 어찌 알고
노을 저 먼저 물드네
가슴 시린 줄 어찌 알고
하늘 저 먼저 깊어지네 -
오르막과 내리막길이 다르지만 결국은 한 곳에서 만나는 원점회귀 산행.
치악의 숲은 굴참나무와 다람쥐와 이름 모를 숱한 야생화들로 향기롭고
잎이 질 때마다 한웅큼의 시들을 쏟아 내는 나무와 바람으로 감미로웠다.
다섯시간 이상의 산행을 마치고 산자락 맛집에서 나누는 뒷풀이..
더덕주와 좁쌀술과 도토리묵으로 또는 맑은 이슬로 아쉬운 마음일랑 씻어 놓고,
버스는 신나게 달려 적당히 좋은 시간에 서울 도착.
낮부터 비가 내려서 그 어느 때보다 맑은 서울하늘의 밤공기가 시원하다.
함께 한 행토의 님들 모두 반가웠습니다.
오랜만에 두꺼운 얼굴 내민 사니조아 격려해주시고 애정어린 말씀 해주신
마음 넉넉한 고운 님들 덕분에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가을이 깊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 가깝지도 그리 멀지도 않은 아무 산이라도
그냥 달려가서 안기면 되는 참으로 좋은 계절입니다.
모두들 행복하시고 사랑 가득한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물소리 맑아지는 가을에는
달빛이 밝아지는 가을에는
하늘이 높아지는 가을에는
쑥부쟁이 꽃피는 가을에는
어인 일인지 부끄러워진다
딱히 죄지은 것도 없는데
아무런 이유없이 가을에게
자꾸만 내가 부끄러워진다
(가을에는/ 강인호 님)
<PS> 치악의 가을단풍에 흠뻑 취하여 위로부터
박제영, 박재삼, 강인호 님의 시를 인용하였습니다.
금강산에서 홀로 18개월 도닦은 사니조아도 살며시..
첫댓글 가을은 스스로 높고 푸른 하늘...버스에서 뜻하지않은 사니조아님의 멋진 시낭송을 듣고서 입가에서 맴돌던 싯구를 벗삼아
치악산 산길 힘들었으나 행복했습니다.
카타리나님 고맙습니다. 치악산 힘들었지만 멋진 산행이었지요. 시 한자락 드리지요.
'그대여! 가을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햐!~~~~~~~먼저 이소리 부터 하고....산행의 즐거웠던 추억 다시한번 후기와 더불어 감미로움을 가미시켜서 또한번의 아름다움으로 되새겨 봅니다...잘 읽고 갑니다...
태기님! 열심히 활동하시는 모습 든든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치악의 행복한 하루를 어느 누가 이처럼 멋지게 올리실 수 있을까~? 역시 산이조아님~~ ㅎㅎ행토방 선배님들의 말씀이 진정 명불허전이 아니네요. 멋진 후기글 감사드립니다~
행토의 그 누구보다도 성실하신 멋쟁이 알파마요님! 댓글 다는 솜씨도 일품이네요. 큰 기쁨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산에서 자주 뵙고 싶습니다.
귀공자 타입의 얼굴모습이 예전 그대로인 사니조아님!......행토방을 사랑했기에 이렇케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앞으로 그 마음 변함없으시기 바라면 자주자주 뵙기를 소망하면서......아직도 글솜씨는 녹슬지 않고 더 높이 비상했네요....
비로봉 정상에서 함께 찍은 귀한 사진 주셔서 고맙습니다.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언제나 존경하는 미키님 홧팅!
치악산 다녀온 후기를 보니 빡센산행 .. 어느산이나 같다는 말씀.. 겸손히 다가오는 가을 입니다.. 후기 감사 드립니다
행토방 최고의 사진사 인줄 미처 몰랐습니다. 힘들다 아니 하시고 귀한 사진 담아내시는 열정 보기에 좋았습니다.
댓글도 감사합니다.
물흐르듯 거침없이 써간려가신 산행후기가, 산행의 여운을 길게해줄것 같네요. 즐겁게 감상하고 갑니다
농사꾼님 재주가 많으신 분이더군요. 삼행시 사행시 감탄했습니다. 댓글도 감사합니다.
사니조아님 뵈야 하는데 ㅎ같이 못한 치악산이지만 담에 꼭 같이 해요 ㅎ또 사니조아님표 후기 잘읽고 갑니다 ㅎ
ㅎㅎ 자유님! 사진으로 나마 종종 뵙습니다. 잊지 않으시고 반가운 글 주시니 감사합니다.
사니조아님이 분명 하군요...후기의 흐름이 예나 지금이나 행토방 사니조아님... 좋은날 다시 만나 멋진 단풍산행 함께 할 수 있어,또 얼마나 행복한지요....이제 자주 읽을 수 있는 사니님 후기 즐감 합니다...
감동적인 멘트 또 날리시네 ㅎㅎ 최고로 멋진 지기님.. 다시 뵙게 되어 저 또한 행복했습니다. 좋은 날들 되소서.
사니조아님 함께한 첫산행 덕분에 즐거웠구여...멋지십니다 ^0^
항상 여유롭고 넉넉한 미소가 멋지신 김고수님! 소중한 격려의 말씀 소중하게 간직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누가 아름다운 가을을 이리도 예쁘게 그리셨나 했더니...
가을에 아름다움을 표현하신 시인들과 더블어 사니조아님에 글 머물다 갑니다^^
자연님~! 잘 지내시죠? 산에는 잘 안나오시는 거 같던데~~ 반갑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달리는 차안에서 가을엔 부담없이 떠나려네~ 즉흥시로 여운을 주시고 밟히고 만나는 것마다 시와 노래로 표현하심에 평안을 느낍니다..
미소가 어여쁘신 아랑님! 흘려 보냈을 법한 싯구절 기억해 주시고 잔잔한 댓글까지 주시니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소서.
헐~~무지 반갑습니다......
헐~~ 치악산에 사닥다리 엄청 많던데 ㅎㅎ 요즘 백두대간 타신다면서요? 늘 안산 즐산 하세요 홧팅!!
버스안에서![~](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시를 읊으실때 뿅 갔지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닉도 좋은느낌 였는데 캬![~](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가을의 시를 또 ![선물](https://t1.daumcdn.net/daumtop_deco/icon/deco.hanmail.net/contents/emoticon/things_29.gif)
로 주시니 싯귀대로 ....![꽃](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7.gif)
하늘 이름모를 풀벌래까지 맞아주겠죠![~](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후기글 넘 기분좋게 잘 음미하고 갑니다...
혼자라도 어디든 가야겠어요 바람
늘푸른하늘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환하게 웃는 모습이 매력 만점이던데 ㅎㅎ 좋은 글 남겨 주셔서 더욱 고맙습니다. 산에서 종종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