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동산
함께 익어가는 맛
- 운문사 제51회
총동문회를 보내면서
진하 / 사교과
4년제 승가대학인 운문사에서 3학년 사교과는 또 다른 별칭으로 원주반이라 불립니다. 원주란, 승가에서 음식과 공양물을 관리하는 소임을 의미합니다. 운문사 3년차 학인이라면 사람 사는데 가장 중요한 일인 이 먹는 일에 대해 의무와 권리, 그리고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됩니다.
2020년, 코로나 19와 함께 입학하여 3년간 운문사 그 큰 도량과 공양간에 큰 대중을 한번 모셔본 일도 없던 저희 60기 학인들도 어엿한 3년차 원주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19의 첫 발생 이후 3년, 거리두기가 점차 완화됨에 따라 운문사도 그간의 동면에서 점차 깨어나고 있습니다. 이 속에서 저희는 아무 경험없이 큰 행사를 어떻게든 치러내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렸습니다. 세속적인 표현으로 한다면 낙하산 인사로 고위직에 갑자기 맡게 되는 느낌이라 할까요.
"스님들~! 곧 운문사 총동문회 한다고 공지가 떳어요!"
"와 정말? 잘됐다 우리는 이번이 처음이잖아요 궁금하다~!"
"아니 스님~ 무작정 좋아할 일이 아니예요. 우리가 원주반인데 그럼 우리는 어떡해야 해요?"
총 51회 운문사 총동문회. 유규한 역사 속에서 이례적으로 3년 만에 가까스로 열리는 동문회이자 저희에게는 처음인 동문회, 처음이라 더 설례고 반가우면서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고 어찌해야 하면 좋을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던 우리에게 감사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동문스님들께 대접해드릴 맛난 음식과 차담을 졸업하신 35회 동문스님들이 직접 준비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막막하던 동문회를 도량에 있는 모두가 한마음으로 손과 발을 맞추고 많은 분들께서 도와 주시는 가운데 무사히 치를 수 있었습니다.
동문회를 며칠 앞두고 학인스님들이 동문스님 맞이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입승반인 화엄반에서 큰 스케줄을 짜면 저희 반에서는 각자 맡은 위치에서 아랫반 스님들과 일을 진행했습니다. 후원에서 음식준비를 서포트하고, 다과를 준비하고 회의장 안에 꽃을 알맞게 들여놓고, 마이크 볼륨을 조절하고 안내 팻말을 붙이는 등 모든 일이 세심한 주의 속에서 이뤄졌습니다. 도량 내에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아직 낮설고 어려웠을텐데, 손윗반인 사집반 스님들의 살뜰한 챙김 속에서 치문반 스님들까지도 손발을 재바르게 움직이며 적극적으로 일을 도왔습니다.
어른스님들께서도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정성껏 마당을 쓸고 나뭇가지 하나라도 더 주워내시는 일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밤이 늦어 깜깜해질때까지 도량을 정돈하시느라 많이 고단하셨을 텐데도 오랜만에 오는 동문들을 떠올리면 힘이 나시는지 모든 일을 참으로 기꺼이 하셨습니다.
동문회를 하루 남겨두고, 태풍으로 인해 무척 많은 비와 바람이 몰아쳤습니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오시는 운문사에서 맑고 아름다운 모습을 충분히 더 담아가셔야 할 텐데 내일까지 비가 내려서 방문하신 스님들 옷이 젖으면 어쩌나 하고 애가 탔습니다. 신기하게도 오후가 되자 빗방울이 잦아들더니 구름 사이로 푸른 하늘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동문회날 아침, 전날의 비바람에 말갛게 씻긴 하늘과 기왓장이 어느 때 보다 푸르렀습니다. 저희는 일찍부터 마당에 떨어진 도토리와 낙옆들을 고루 쓸어낸 다음 테이블을 깔아 맛난 떡과 따스한 보이차를 차렸습니다. 온화하고 정감 있는 가야금 곡조를 세심하게 골라 도량마다 울려 퍼지게 틀어두었습니다. 회의가 열릴 선열당 내부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자리표도 만들어 붙였습니다.
한편 후원에서는 300명이 충분히 드실 수 있는 음식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도량 가득 맛있는 냄새가 퍼졌습니다. 저희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열심히 들고 나르고 담아내는 일을 도왔습니다. 접시마다 하나같이 스님들이 가장 좋아하시는 찬들로 수북했습니다. 구수한 시래기찌개와 장떡, 이번 가을에 막 나온 송이로 끊인 향긋한 송이국, 정갈한 물김치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칠맛의 묵은지 김치찜 등 사찰에서 맛볼 수 있는 최고급 인기메뉴였습니다. 원주반인 저희들은 누구보다 더 그 음식들을 눈에 담고 어떻게 만드는지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선배스님들께서 익혀오신 노하우를 이 기회에 보고 익힐 수 있으니 피곤함을 느낄 새도 없었습니다.
이윽고 하나둘씩 도착해 오시는 동문 스님들을 뵈오며 반가움과 기쁜 마음에 저희는 진심으로 허리 숙여 인사드렸습니다. 아무리 오랜만에 만나더라도 운문사 동문은 어제까지 함께 지낸 사람들 같다는 어른 스님의 말씀처럼, 처음으로 동문 스님들을 뵈오며 그분들의 눈빛에서 걸어가시는 둿모습에서 이제 우리가 막 물들어 가는 빛깔, 우리고 닮고 싶은 그 빛깔을 보았습니다.
동문 회의가 열리기 전, 회주스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동문스님들께서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마음의 고향을 찾아오신 운문의 스님들이 부처님 법을 가르쳐 주시고 길러 주신 마음의 부모를 찾아오신 모습 같아 가슴이 벅찼습니다. 지금 운문사를 다니는 저희 들도 회주스님을 뵈올 때면 존경심과 환희심이 마음 가득 차로르는데 더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오신 동문스님들은 얼마나 더 각별하고 깊은 마음으로 회주스님을 찾아왔을까요.
동문 회의가 시작되자, 200석이 넘는 선열당 내부의 좌석이 가득 찼습니다. 큰 대중이 모였지만 회의장의 공기는 고요하고 평온했습니다. 모두가 회의 진행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51회 총문회 회장단은 지금으로부터 34년 전 졸업하신 운문 26회 스님들께서 이어받으셨습니다. 이어지는 동문회 안건 발의 시간에 적극적인 토론이 이워졌습니다. 앞으로 공부하고자 하는 스님들에게 더 많은 장학금 수여기회를 제공하자는 안건이 발의되었고 많은 스님들께서 찬성하시는 등 활발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다분히 조용하고 진지하면서도 때로는 유머를 곁들여 함께 웃으며 즐겁게 회의하시는 어른 스님들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나서는 선열당 지하에서 저녁 공양을 대접하는 것으로 모든 일정도 마무리되었습니다. 떠나가시는 스님들께 화엄반 스님들은 정성스레 포장한 선물을 하나씩 나눠드렸습니다. 저희 도반스님들도 끝까지 문밖에 나가서 떡을 나눠 드리며 배웅 인사를 드렸습니다.
어른 스님들이 떠나신 자리에 우리도 저녁 공양을 하기 위해 느즈막히 모여 앉았습니다. 눈을 봐도 뭘 하려는지 알 수 있고, 일이 하나 주어지면 단숨에 달려들어 일을 해치우는 무적의 용사들인 저희들, 역전의 용사들을 마주하는 듯, 고단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눈빛만은 서로 빛났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과 미소 속에서 한바탕 웃으며, '그래 우리는 지금 같은 색이구나. 우리도 그분들처럼 익어가고 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운문의 도량 속에서 어우러지며 부처님 법을 배우고 스님네의 검은 물을 들여간다는 것은 마치 늦가을 다 같이 모여 담근 김치가 함께 부대끼며 독 안에서 익어가듯, 참으로 아름답고 멋있는 일입니다. 그 맛은 같이 살아본 사람들만 알 수 있는 깊은 맛, 감칠맛입니다.
개인주의가 대세라는 오늘날, 코로나 19로 개개인들 간 거리는 더욱 극명해졌습니다. 함께 모여 살아가며 익히고 배우는 승가 공동체의 맛을 누가 알까요. 우리끼리 눈빛으로만 전할 수 있는 그 맛, 와서 살아본 사람들만 알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익어갑니다.
이 글은 불기2566년 雲門지 가을호에 있는 글을 퍼왔습니다.
그리고 운문사 홈폐이지 계관운문에서 더 자세히 볼수 있습니다.
운문사 사리암 도반 법우 여러분 나반존자님의 가호 가피 많이 많이 받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_()_
봄비를 흠뻑 맞아 더욱 싱그러운 꽃잔치네요.
글을 읽다보니 저절로 미소짓게 됩니다.
운문사의 물김치 맛 정말 최고지요!!^^
좋은 글과 사진으로 보여주시는 소식에 감사합니다. 나반존자 나반존자 나반존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