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궁은 임금이 머문 임시 궁궐로, 평소에는 관아로 사용하기도 했다. 화성행궁은 고상하고 기품 있는 건축물 덕분에 〈왕의 남자〉 〈대장금〉 〈이산〉 등 영화와 드라마에도 여러 번 등장했다. 화성행궁의 색다른 매력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부터 볼 수 있다. 궁궐 곳곳에 조명이 켜지면 동화의 한 장면 같은 분위기가 피어난다. 화성행궁 밤 산책은 ‘국왕의 새로운 고향’이라는 뜻이 있는 신풍루(新豊樓)에서 출발한다. 궁궐로 들어가면 ‘달빛 정담’이라는 글자 옆에 달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눈에 띈다.
실내에 조명을 설치해 신비로움을 더한 봉수당
단아하게 빛나는 초롱을 따라가면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를 연 봉수당(奉壽堂)이다. 화성행궁의 중심 건물로, 지난해와 달리 실내에 부드러운 조명을 설치해 신비로움을 더했다. 몽환적인 봉수당의 아름다움에 걸음을 멈춘다. 방에서 누군가 나올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봉수당에서 정담을 나눈 혜경궁 홍씨와 정조를 상상하며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낙남헌 앞 ‘달토끼 쉼터’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봉수당 옆에는 정조가 노년을 보내기 위해 지었다는 노래당(老來堂)이 있다. 이름도 ‘늙음이 찾아오다’라는 뜻이다. 어둠이 내리면 11~14분짜리 영상을 상영한다. 수원 화성과 정조대왕 능행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노래당 옆은 낙남헌(洛南軒)이다. 화성행궁이 철거된 일제강점기에 훼손당하지 않은 건물로, 특별 과거와 군사들의 회식 등 각종 행사를 치렀다. 낙남헌 앞에는 ‘달토끼 쉼터’라는 포토 존이 있다. 여기도 보름달 조명이 설치되어 기념사진을 찍으며 고궁의 밤을 즐기기 좋다.
미로한정으로 가는 숲길
낙남헌부터는 청사초롱이 어둠을 밝힌다. 숲속에 들어앉은 미로한정(未老閒亭)을 향해 계단을 오르면, 가지런한 궁궐 지붕과 현란한 도시 불빛이 어우러진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기분이 상쾌하고, 풀벌레 소리에 마음이 차분하다. 바닥에는 나비 모양이 어른거린다. 아련한 분위기에 젖어 걷다 보면 화성행궁 전경과 수원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미로한정이 나타난다. 한여름 밤의 낭만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잠시 정자에 앉아 여유를 누려보자. 마음에 시나브로 작은 틈이 생기는 듯하다.
성곽 야경을 한눈에 보고 싶다면, 계류식 헬륨 기구 ‘플라잉수원’을 타자. 150m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수원의 밤은 감탄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황홀하다. 하늘에서 보면 굽이치는 성곽이 더 인상적이다. 짜릿한 스릴은 덤. 날씨에 따라 운행을 결정하기 때문에 미리 확인이 필요하다.
화성행궁 근처 공방거리 풍경
화성행궁 근처에는 둘러볼 곳이 많다. 화성행궁을 등지고 서면 오른쪽에 아기자기한 공방거리가,
왼쪽에 나혜석생가터가 있다. 공방거리에서는 민화와 자수, 도자, 목공예 등 다양한 작품을 구경
하고 체험할 수 있다.
나혜석생가터 주변에 한옥을 개조한 카페, 성곽이 보이는 루프톱 카페 등 트렌디한 공간이 많다.
공방거리를 돌아보고 나혜석생가터로 향한다. 나혜석은 우리나라 최초 여성 서양화가다. 꽃으로
장식한 생가 터와 벽에 나혜석 작품을 그린 골목을 구경한다. 나혜석생가터 주변에는 성곽이 보이는 루프톱 카페와 아기자기한 소품 가게 등이 모여 있어, 데이트 장소로 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