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지산과 정묘사
화지산(和池山)은 부산진구 양정동과 초읍동, 그리고 연제구 거제동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142m인 전형적인 구릉산지로 산정은 종순형을 나타내고 사면은 완만하다. 이곳에는 동래정씨의 시조인 정문도 묘(墓)가 있으며, 무덤 양쪽에는 천연기념물 제168호('65. 4. 1 지정)인 부산진배롱나무 2그루가 있다.
산이름의 유래 ; 화지산은 아주 오래 전에 지금의 연지동 자리인 화지산 아래에 화지언(和池堰)이라는 못이 있어서 그 못으로 화지산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의 연지 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던 못에는 연이 많아 '연못골' 또는 '연지언(蓮池堰)'이라 한데서 연지동이 되었지만 '화지언'은 그 북쪽 자리가 되어 아주 오래된 무덤이다. 화지산은 "아지"에서 어원이 나온 것으로 아지는 수오, 즉 작은 산이라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다. 화지산(和池山)을 화지산(華池山)으로 쓰고 있으나, 『동래부지(1740)』나 『동래부읍지(1832)』에도 화지산(和池山)으로 기록이 되어 있어 和池山으로 쓰는 것이 맞는 표기이다. 또한 1740년의 『동래부지』에 보면, "동래부 서쪽 10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호장(戶長)을 지낸 동래 정씨(東萊鄭氏)의 시조인 문도(文道)의 묘가 있는 산"이라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동래 정씨의 선산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는 오래된 절 '정묘사'와 천연기념물 제168호인 '배롱나무'가 있다.
정묘사는 정묘에서 나온 말로 정씨 묘라는 말이고 사가 붙은 것은 이곳 정씨묘의 제실을 두었다는 뜻이다. 이곳이 천하의 명당으로 일컬어지고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교과서처럼 여기는 까닭은 고려시대 일개 호장(사또의 보조역할을 하던 중인)이었던 정문도의 묘를 이곳에 쓰고 난 다음 네 아들이 모두 중앙에 진출하여 명문대족으로 성장했고, 조선시대에는 문과급제자 198명, 재상17명, 대제학2명, 호당6명, 공신7명, 판서20명을 배출한 최고의 문벌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곳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은 말에서 내려 정씨가문에 경의를 표해야 했기 때문에 하마정(下馬鄭)이라는 지명이 생겨나게 되었다.
동래 정씨(東萊鄭氏)는 신라(新羅)의 전신(前身)인 사로(斯盧)의 6부촌장(六部村長)으로 정씨(鄭氏)의 성(姓)을 하사(下賜) 받았던 취산진지촌장( 山珍支村長) 지백호(智白虎)의 원손(遠孫) 정회문(鄭繪文 : 안일 호장)을 시조(始祖)로 받들고 고려(高麗) 초에 보윤(甫尹)을 지낸 정지원(鄭之遠)을 일세조(一世祖)로 하며, 누대(累代)에 걸쳐 정착 세거(定着世居)해 온 동래(東萊)를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온화하고 불편부당(不偏不黨)하여 남과 적을 삼지 않는다는 가통(家統)을 지켜오면서 명문거족(名門巨族)의 지위를 굳혀온 동래 정씨(東萊鄭氏)는 부산 양정동 화지산(華池山)에 자리잡은 2세(二世) 안일공(安逸公) 정문도(鄭文道) 묘소(墓所)에 대한 명당(明堂)의 전설이 아래와 같이 전해오고 있다.
그가 죽었을 때 맏아들 목(穆)이 장지(葬地)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가 동래부사(東來府使)를 지내던 고익호(高益鎬)가 일러준 화지산에 장례를 치루었다. 그러나 장례를 치른 다음날 이곳에 와 보니 누군가가 무덤을 파헤쳐 놓았다. 기이하게 생각하고 다시 복원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분통을 참을 수 없었던 목(穆)은 밤을 세워 가면 숨어 지켜보기로 하였다.
밤이 어지간히 깊었을 때 도깨비들이 나타나 또다시 무덤을 파헤치며 하는 말이 "여기가 어딘데 함부로 건드려, 적어도 금관을 묻어야 할 곳에....."하며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가난하게 살았던 목(穆)은 이 사실을 알고 걱정이 되어 한숨을 쉬고 있는데, 갑자기 한 노인이 나타나 "염려 마오, 황금빛 나는 보릿짚으로 관을 싸서 묻으면 도깨비들이 속을 것이오"하고는 사라졌다. 그 노인이 시키는 대로하였더니 과연 그 후부터는 무사하였다.
목(穆)은 고려 문종(文宗)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를 역임하고 슬하에 아들 제(濟)·점(漸)·택(澤)·항(沆) 4형제를 두었으며, 목의 아우 선조(先祚)는 호장(戶長)을 지냈고, 그의 후손들이 동래(東萊)와 양산(梁山) 등지에 산거(散居)하면서 명문(名門)의 기틀을 다져왔다.
총동창회 카페에서 옮겨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