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만나면 수인사 정도하는 분으로부터 뜬금없이 "정선생,고향이 어디요" 라는 질문을 받았다. 투박한 사투리와 큰 목소리로 묻지 않아도 경상도 사람이다. "합천입니다" "촌놈이네" "예,촌놈입니다."
나에게 부산은 고향 같은 곳이다. 시골 촌놈 출신이지만 시골은 정말 편안한 마음의 고향이고 현실의 고향은 부산이다. 부산을 사랑하고 좋아한다. 특히, 삶의 애정이 묻어있는 골목을 좋아한다. 그냥 옛날이 그리워져 좋고, 그때보다는 지금의 형편이 조금 좋아져 좋고, 좁은 골목에서 살아 움직이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좋고, 그냥 좋다.
옛날엔 가끔 범일동 골목을 기점으로 수정동 산복도로를 거쳐 중앙동 골목까지 순례를 하기도 하였다. 힘들고 어려웠던 과거사의 한편이 아직도 살아 움직이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싶었고, 또한 좋은 작품 소재가 되기도 하였다. 골목의 모습은 겉보기에는 단순하지만 다양한 삶의 모습이 숨어있고, 한 시대를 건너 새로운 시대를 이어가는 소박한 모습이 살아 숨쉬는 곳으로 출발 혹은 종착지를 늘 40계단으로 잡곤 하였다.
40계단 뒤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골목 속의 다양한 삶. 이곳에 오면 늘 카논을 대한다. 기본 되는 뿌리를 늘 품어 안고 위로는 변화를 계속 추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변화된 모습에 같이 동화되어 함께 하는 카논. 지금은 원곡보다 다양하게 편곡된 파헬벨의 카논 음악을 만나고 있다. 40계단 그 뒤 좁은 골목 속의 다양한 삶을 품은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