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새로운 교회를 시작하는가?
언제부터인가 내 마음속에는 주님이 계획하시고 사도행전에서 보여주셨던 그런 교회를 실현하고 싶은 강렬한 열망이 불타고 있었다. 영국에서의 생활이 끝날 무렵 서울에서 교회를 새롭게 시작하지 않겠느냐는 한 초청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주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이었다. 교회를 시작하는 동기와 형편은 경우마다 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끝에 가보면 오직 한 분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람이 다르고 나라가 다르고 시대가 다르고 교파나 교리가 다 달라도 교회의 주인은 오직 한 분이다.
주님의 교회는 시대마다 언제나 새롭게 태어난다. 하나님은 새 사람에게 새로운 비전을 주시고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부부에게도 교회에 대한 새로운 비전과 사역을 주셨다. 그것은 주님이 의도하시고 성령님께서 운행하시는 「바로 그 교회(The very Church)」에 대한 꿈이었다. 우리는 주님이 원하시는 사도행전적인 그런 교회를 서울 한복판에서 시작해보자고 결심했다. 그것은 누구보다 앞서겠다는 경쟁욕도 아니고 무엇인가 새롭게 이루겠다는 성취욕도 아니었다. 주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를 오늘 이 땅에 세워보자는 순수한 열망이었다.
1984년 6월, 영국에서 귀국한 우리는 10월부터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 교회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몇몇 가정과 함께 준비하기 시작했고 이듬해인 1985년 10월에 교회를 정식으로 창립하게되었다. 주님이 의도하셨던 「바로 그 교회」에 대한 꿈과 환상 때문에 우리에게는 고통 대신에 기쁨이, 피곤대신에 신바람 나는 흥분이 있었다. 의미가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감사하고 기쁜 법이다. 우리들이 기도하기 시작했을 때 이미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 훨씬 더 크고 엄청난 일을 시작하셨고 준비해놓고 계셨다. 비록 짧은 연륜이지만 목회를 하면 할수록 교회란 목회자의 야망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는다. 그것은 주님의 부탁이요 부름이요 명령이다. 그래서 교회를 섬기는 일은 기쁨이요 축복이요 특권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교회를 세우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공부하러 가거나 일하러 가거나 소풍가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죽으러 가라는 길이었다. 그 길은 감사함으로 종이 되는 길이요 생명을 걸고 모험하는 길이었다. 어떤 교파나 어떤 교회든 주님의 교회는 형태만 다를 뿐이지 그 본질과 원리는 똑같다.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요 영광스러운 주님 자신의 교회이다. 결코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한다. 교회는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얼마나 엄청나고 놀라운 일인가? 바로 이러한 주님의 교회에 우리가 부름을 받고 섬기고 있는 것이다. 나는 주님의 교회에 대해서는 언제나 어느 때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을 한다. 그 이유는 모든 교회의 주인이 바로 주님이시기 때문이다. 교파나 교리가 다르고 나라나 인종이 달라도 주님의 교회는 모두가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는 주님의 교회를 사랑한다. 그가 나를 위해 생명을 주셨듯이 나도 주님의 교회를 위해 생명을 바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예수님께서 의도하시고 성령님께서 운행하시는 그런 교회가 2천년이 지난 오늘 이 시간 이 땅에서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러한 기대와 믿음으로 온누리교회가 시작되었다.
교회의 모델은 사도행전이다.
온누리교회의 모델을 사도행전에서 찾기로 했다. 이런 이유로 소수의 사람들과 교회를 시작하면서 매주일 사도행전을 본문으로 설교하였다. 사도행전의 교회는 한마디로 '성령받은 교회'이다. 오순절날 성령의 불을 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성령님의 임재와 능력을 경험하고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했다. 우리도 그런 교회가 되기를 원했다.
'주님이 세우시고 성령님이 운행하시는 바로 그런 교회가 되리라'. 나는 이 말을 하루에 몇십 번씩 되새기곤 했다. '어떤 크기의 교회, 어떤 형태의 교회를 만드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내용의 교회를 만드느냐 이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요 성령님께서 운행하시는 교회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있으면 괜히 신이 나서 입가에 미소가 생기고 눈이 떠지고 가슴이 열리고 모든 것이 분명해 진다. 나아가 내 속에서 불이 일어나서 교회에 대한 모든 염려와 두려움이 사라지고 불가능의 벽이 허물어지는 뜨거움을 체험하게 된다.
그렇다. 주님이 주인이시고 성령님이 운행하시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지금 그리스도의 몸이 살아 움직이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팡파르를 울리며 나타나지 않는가? 마치 에스겔 37장에 나타나는 아주 말라버린 해골 뼈들이 생기를 받아 군대가 되고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오는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을 보는 것과 같은 환상을 갖게 한다. 나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다. 일어나서 외치고 전하고 노래하고 싶다.
'교회란 주님이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요 오순절날 성령의 임재로 인하여 태어나 지금 이 시간 바로 그 성령님에 의해 운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땅 끝까지 소리 높여 외치고 싶은 것이다.
온누리교회가 시작되다.
사도행전적「바로 그 교회」란 비전을 품고 시작한 온누리교회는 다락방의 120명의 제자들처럼 준비훈련에 들어갔다. 1년간을 기간으로 잡은 우리는 두 가지 원칙을 가지고 훈련에 임했다. 그것은 첫째, '「바로 그 교회」에 대한 바른 그림을 그리자'는 것이요 두 번째는 '우리들 자신의 내면적인 영적 바른 태도를 세우자'는 것이다. 훈련의 과정은 3개월 단위로 4번의 훈련과정이었다. 3개월에 1번씩 번식을 시도했다.
1984년 10월에 12가정으로 시작된 훈련은 이듬해 1월과 4월과 7월에 약간의 사람들이 더 참여하여 주일예배와 계획된 제자훈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1985년 10월 7일 첫 번째 공식예베를 드리게 될 때는 어느 정도 훈련된 사람들이 약 80여명에 이르게되었다. 3개월에 한 번씩 번식을 시도할 때마다 기초멤버들이 사려 깊게 다른 사람들을 초청한 것이었다. 여기서 '사려 깊다'라는 뜻은 미리 충분하게 시간을 가지고 기도할 뿐 아니라 여러 차례 만남의 시간을 갖고 사전에 우리가 꿈꾸는 「바로 그 교회」에 대한 비전을 나누고 기대감을 갖도록 준비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그 당시의 초창기 멤버들 중 많은 분들이 교회를 떠나게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하나님의 뜻이었다. 왜냐하면 교회는 모이는 만큼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한자리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지만 결코 그곳에 머물러만 있어서는 안된다. 주님이 부르시는 곳, 떠나라고 명하신 곳이면 언제든지 어디든지 떠나야 한다. 중요한 사실은 교회의 중심이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창립멤버란 어떤 역할을 하기 위해 부름받은 사람들이다. 교회설립 초창기 멤버들은 교회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헌신한다는 역할이 주어진다. 우리교회 초창기 멤버들 역시 온누리교회의 창립정신의 기초를 닦는데 큰 역할을 했다. 초창기의 주역을 담당했던 사람 중에 조**장로 부부(현재65세)는 온누리교회 첫 번째 장로라고 할 수 있는 분이다. 당시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58세에 일본 그리스도교신학교에 입학하여 3년의 신학과정을 마친 후 치바현에서 일본사람 교인3명을 중심으로 가정교회를 시작, 지금은 10여명의 성도를 가진 교회로 선정하여 충성스럽게 목사와 선교사로 주님을 섬기고 있다. 그는 비록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지만 주님의 교회를 지극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다.
또 한사람은 한국의 탁월한 과학자요 세기적인 발명가의 한 사람으로 과기대의 교수로 지냈고 한국 창조과학회 초대회장이셨던 김**장로(56세)부부이다.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온누리교회의 사역장로로 섬기던 중 포항으로 내려가 새로 설립된 순수한 기독교 대학의 초대총장으로 일하고 계신다.
김총장과 함께 '하나님의 대학을 이 땅에 세운다'는 수고의 멍에를 매신 온누리교회 초창기 멤버인 동료 교수와 많은 직원들이 또한 온누리 가족들이다. 그들 모두는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품고 개척자가 걷는 고난의 길을 즐거움으로 걷고 있는 하나님의 일꾼들이다.
또 소개하고 싶은 한 사람은 50세에 선교사로 헌신한 치과의사로서 지금은 중국모처에서 기막힌 수고와 봉사를 아끼지 아니한 최**장로(60세)부부이다.
소개하고픈 또 한 분이 계신다. 72세의 고령임에도 불구 50대의 정열을 가지고 중국 모처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뛰며 헌신한 이**장로부부와 박**장로부부이다. 나와 함께 5년이상 일하던 동역자 가운데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선교현장으로 달려간 목사가 10여명이 넘는다. (모스크바, 터키,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태국, 중국, 홍콩, 캐나다와 미국). 이 사람들 모두는 온누리교회를 떠났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온누리교회의 정신을 이땅끝까지 구현하며 온누리의 꿈과 비전을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다.
현재 이 시간에도 온누리교회 많은 하나님의 일꾼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땅끝을 향해 달려가거나 준비중에 있다. 이들 모두가 온누리교회의 탁월한 창립정신을 이뤄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앞서 떠난 사람들을 따라 젊은 의사들과 교수들과 전문직에 종사하는 전문인들과 사업가들이 온누리교회를 떠났다. 그리고 엄청남 수의 젊은이들이 이름도 빛도 없이 세계 곳곳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면서 온누리교회의 창립정신을 구현하고 있다. 자기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에 선교사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곳곳에서 생명을 걸고 주님을 섬기고 있다. 특별히 은퇴를 앞두고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자비량으로 자신의 전문적인 경륜을 하나님께 바치고 남은 생애를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다.
물론 창립멤버 중에는 아직도 교회를 떠나지 못한 분들도 많이 있지만 그들은 교회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자신의 연륜을 자랑하거나 강조하지 않는다. 온누리안에서 창립정신을 조용히 구현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 역시 때가 되면 조용히 주님의 음성에 순종할 것을 결단하고 있다. 언제든지 부르시는 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설립준비를 위한 훈련기간 동안 우리들이 사용했던 칭호가 있었다. '형제와 자매'. 그것은 서로가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 호칭은 목사나 장로나 집사라는 교회의 공식 직함보다 훨씬 우리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함께 참된 교회에 우리들이 접근하고 있다는 동기를 부여해 주었다. 우리들이 공식적인 교회로 출발한 이후에도 교회직함과 함께 이 호칭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된 분위기를 갖게 되었는데 이것은 이 때의 감격이 무척이나 큰 것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또하나의 새로운 이름을 구성하고 있는데 '머슴'이나'목자'라는 호칭이다. 앞으로 이 호칭은 봉사의 개념을 정립하고 평신도 목자상을 창출하는데 아주 중요한 일익을 감당하게 될 것이다.
Q.T.와 일대일 양육
우리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데 사용했다. 스스로 가면을 벗고 내면적인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를 직시하는데 관심을 쏟은 것이다. 이러한 훈련은 Q.T.를 통해 나눔을 갖는 방법이 가장 적합했다. 그대부터 Q.T.는 12년동안 온누리 공동체의 핵심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특별히 순모임을 통해 말씀묵상과 나눔의 성도들의 가정생활에 큰 변화가 나타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 때 우리들이 사용한 교재는 두란노에서 발간한 '생명의 삶'(이책은 영어판과 일어판과 중국어판으로 번역되어 출판되고 있으며 약 10만명이 구독하고 있다.)인데 이 잡지는 우리들을 위해서 두란노가 만들어 준 것이다.
Q.T.와 함께 온누리 양육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것이 일대일 양육프로그램이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이 프로그램을 거치며 영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일대일로 자신이 배워서 다른 사람을 일대일로 가르치는 축복된 프로그램인 것이다. 몰론 꼭 일대일만은 아니다. 두서너 사람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말씀을 가지고 개인적으로 6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성도들이 하나되어 주안에서 아름답게 변화되기에 충분한 프로그램이다.
주일에는 아침 10시부터 거의 하루 종일 교회에서 생활했다. 말씀훈련과 기도훈련 그리고 생활훈련이 대부분이었다. 한 시간 반의 예배와 한 시간 정도의 그룹별 서경공부로 오전을 보냈고, 그 후에 다함께 점심식사를 나누었다. 주로 자매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형제들은 청소와 설거지를 담당했다.
오후에는 주어진 독서 발표회와 특강이 있었고 간증과 함께 다양한 방법으로 특별한 교제를 나눴다. 주일날 오전 예배 후에 가졌던 그룹별 성경공부는 그 후 온누리교회의 상표가 된 일대일 양육성경공부로 발전되었고, 오후 시간에 가졌던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은 온누리교회의 특유의 역동적이며 살아있는 예배와 세례식과 새신자 양육과 열린예배의 모태가 되었다.
이 모든 프로그램의 핵심은 모든 프로그램 속에 나타나는 성경의 역사와 자유함과 감동이다. 프로그램 그 자체보다 그 속에 눈물이 있고 치유가 있고 결단과 헌신이 있다는 것이다.
온누리교회는 처음부터 소수의 사람들로 구성된 다락방과 순의 개념을 키워왔다. 이것은 그 후 교회의 조직이 비대해 갈 때에도 계속해서 교회를 새롭게 하고 다양성과 자발성을 부여해 교회조직을 보다 역동적으로 만드는 완천적인 힘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온누리교회 초창기에 남자들에게 영적지도력을 세우게 하고 가정중심의 목회에 관심을 가지게 하셨으며 교회 전체가 세계선교에 참여하도록 하셨다. 특별히 이런 사역을 위해 청년들을 향한 비전을 주셨다.
"하나님 우리들에게 청년들을 주십시오, 세계를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이런 기도를 지속적으로 드렸다. 비전이란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백일몽이 아니라 실제로 성취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한 일간신문사의 요청으로 우리교회의 청년들이 얼마나 모이는가를 조사를 해보니 1997년 7월 현재 성인등록교인 1만3천여명 중 주일 참석교인이 9천 5백명인데 그 중에 20대가 3천명, 30대가 4천5백명, 40대가 2천5백명, 60대가 8백명, 70대가 3백명이었다. 20대와 30대와 40대의 수를 합하니까 1만여명이 좀 넘었다. 교회 설립에서부터 하나님께서 주셨던 비전대로 청년들이 모이기 시작한 것이다. 10년 후에는 이들이 30대에서 50대의 연령층, 교회의 중심층이 될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이들이 믿음의 사람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교회론과 목회철학
온누리교회의 목회철학은 성경적인 교회론으로부터 시작된다.
'예수님께서 의도하시고 사도행전에서 보여 주신 그 진정한 교회란 어떤 것인가?' 이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교회는 끊임없이 이 원리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다.
교회론이 「원리」라고 한다면 목회철학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목회란 방법이 아니라 원리이다. 방법을 따라가는 목회가 막다른 골목으로 가는 목회와 같다면 원리에 충실한 목회는 하늘을 나는 목회와 같다. 여기에 교회론과 목회철학의 상관관계의 중요성이 있다.
물론 목회철학은 중요하다. 그것은 교회를 지탱하고 끌고 가는 뼈대와 같다. 그래서 목회철학이 분명하면 교회는 활기를 띄고 생기가 넘치고 성장이 일어난다. 그러나 목회철학은 시대마다 새롭게 제시될 수 있으며 주변 환경과 모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목회철학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교회론이다. 교회론에 대한 묵상은 계속되어야 하고 그 환상과 꿈도 계속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교회가 처음에는 잘 시작했는데 나중에 문제를 야기하고 도태되는 것은 그 교회가 성경적인 교회론이 아닌 목회자의 야심찬 목회철학에만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다. 지금은 좋아 보일지 몰라도 얼마가지 못해 곧 바닥이 드러나게 된다.
온누리교회는 찾아올 때마다 다르다고 한다. 사실 그 말은 좋다는 의미보다 너무나 변화가 많아 다소 어수선하다는 빈정됨일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는 그 말 듣는 것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교회론은 변화가 없지만 목회철학은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담임목사인 나조차도 잠시 교회를 떠나 있다가 돌아올 때면 온누리교회가 더욱 더 새로워져 있음을 발견하며, 그러한 변화를 나는 늘 원하고 있다. 하나님의 축복이라 믿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의도하신 교회의 네 가지 특징
교회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예수님이 주인이신 교회'이다. 이 짧은 표현 속에 교회의 모든 본질이 다 들어 있다. 이 문제를 바로 접근하기 위하여 마태복음16:15-20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가지신 교회에 대한 제가지 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교회란 성도들이 연합한 공동체다. (성도들의 공동체)
교회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는 무리들의 공동체로 시작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전통적인 관점이나 문화적인 관점에서 교회를 이해하려 한다. 그래서 교파나 교리나 신조를 중요시하고 제도나 헌법이나 전통을 고수하려 한다.
그러나 진정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생하게 만난 사람들의 공동체를 말한다. 교회는 살아 숨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순결한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교회는 이런 점에서 세상집단과 다른 차별성이 있다. 따라서 아무나 교회의 구성원이 되어서는 안되며 영적 리더쉽을 가져서도 안된다. 따라서 아무나 교회의 구성원이 되어서는 안되며 영적 리더쉽을 가져서도 안된다. 여기에 교회의 장로제도나 재직의 선택이나 새신자 관리와 등록교인(멤버쉽)의 문제가 제기되는 이유가 있다.
잘못된 교회의 성장은 교회의 타락을 가져오고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는 혼돈을 야기시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만큼 교회는 그 교회를 이루는 성도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교인이 바로 그 교회 자신이기 때문이다.
온누리교회는 참된 교회를 만든다는 열심 때문에 초창기에 등록과정을 무려9개월이나 걸리도록 했다. 그러나 나중에 깨닫게 된 것이지만 9개월이란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내용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7주 등록과정으로 줄이고 그 대신 일대일 양육과정 (최소6개월)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도 계속된다. 지금도 1년에 3천5백여명의 새신자들이 교회등록을 시도하는데 등록을 마치는 성도의 수는 1천 8백여명에 그친다. 그렇다면 나머지 거의 반정도에 해당되는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등록을 시도하는 3천5백여명의 사람들을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그들에게 강하게 훈련을 시도했다면 적어도 3천명이 넘는 교회가 1년에 하나씩 생기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등록교인 많아지고 주일날 예배에 참여하는 성도들의 수가 늘어난다고 할지라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정말로 주님의 교회에 속한 몸으로써 성장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진정한 교회는 바로 그 성도가 교회라는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둘째, 교회란 예수님이 주인이신 공동체이다. (예수공동체)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시다. 주님께서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러나 실제의 교회에는 예수님보다는 사람이나 제도나 교파가 주인인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위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교회는 목사와 장로 사이에 야기되는 갈등이 원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목회에 대한 관심보다는 서로가 달리 가지고 있는 감정의 문제나 주도권 쟁탈 등의 문제로 견제와 대립의 소모전을 편다. 또 다른 경우,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갈등이 원인인 경우도 적지 않다. 특별히 원로목사가 교회를 창립하여 부흥했을 경우는 더욱 심하다. 원로목사는 은퇴를 했지만 커튼 뒤에서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고 담임목사는 시집온 며느리처럼 긴장과 스트레스를 받게된다.
목회철학의 갈등도 원인으로 한 몫을 한다. 새로 부임한 목사의 목회철학과 기존목사의 목회철학이 다를 경우에는 목회의 장에서 사사건건 부딪치게 마련이다. 교회내의 갈등은 점점 증폭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 말없이 교회에 충성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 교회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가?"
나는 누구를 따라가야 하는가? 설교하는 목사의 말을 물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친분이 두터운 장로의 말을 들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섬겨왔던 원로목사의 말을 들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이상과 신선한 충격을 주는 새목사의 말을 들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갈 등을 겪다가 대부분의 선량한 교인들은 조용히 교회를 떠나거나 신앙을 포기해 버리는 경우도 있다.
과연 교회의 주인은 누구인가?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이심을 선포하라!"
이것이 교회 성장의 비결이다. 예수님의 뜻이라면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있고 어떤 불가능한 일도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뜻이라면 언제든지 말없이 떠날 수도 있음을 서로가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몸에 속한 한 지체일 뿐이다. 교회의 주인이 바로 예수님이심을 정확하게 지각하고 깨닫고 있을 때 성도들은 소리없이 순종하고 기쁨으로 헌신하게 된다. 교회는 너 나 할 것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교회에서 부르는 성도의 호칭이나 직분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성도들을 부르는 가장 좋은 일반적인 칭호는 "형제와 자매님"일 것이다. 그리고 가장 웃어른은 모두 "아버지와 어머니"요, 바로 윗사람은"형님이나 누님이나 오빠"가 될 것이고 나이 어린사람은 "동생"이 될 것이다. 목사나 장로 그리고 권사나 집사라는 칭호를 부를 때 교회는 제도나 행정이나 교파의 개념으로 이해된다. 교회를 가정보다는 관청같이 느끼게 한다.
교회에서 사용해도 좋은 말 중에 "예배자나 목자"라는 말과 사도바울이 표현한 "종"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 모두가 참된 목자의 심정을 갖기 위해 장로라는 말 대신에 "장로목자"로, 권사나 집사라는 말 대신에"큰 목자"또는 "작은 목자"라는 말로 사용한다면 그런 말을 통해 자시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의 작은 목자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말 중에 "머슴"이라는 말이 있다. 참된 그리스도의 종의 모습을 생각하며 우리 스스로 "김머슴"또는 "박머슴"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우리 스스로 참된 예배자가 되기 위해 "김 예배자" 또는 "박 예배자"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이러한 모든 생각은 어떻게 하면 예수그리스도가 교회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철처하게 하느냐라는 데서 나온 것이다. 즉 주재권의 목회철학(Philosophy of Lordship)이다. 예수님이 교회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모든 교인들이 갖게 하는 것이 성경적인 목회요 바른 목회의 시작이다.
셋째, 교회란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는 공동체다.(승리하는 공동체)
참된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뤄지는데서 시작된다. 아무리 사탄의 권세가 세상을 지배하고 통치한다 할지라도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에는 사탄이 건드릴 수 없는 영적특권이 있다. 세상이 교회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교회가 세상을 이긴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6장 33절에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다. 요한계시록을 보라. "이기는 자에게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고(2:7)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고(2:11)감추인 만나와 흰 돌을 받고(2:17)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2:26) 흰옷을 입고 그 이름이 생명책에 분명히 기록되며(3:5)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며(3:12)보좌에 함께 앉게 된다.(3:21"고 하셨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소유한 축복이요 특권이다.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을 보면 크고 작은 많은 교회가 사탄에게 농락당하고 음부의 권세 아래서 신음하고 있는 비참한 모습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교회의 겉모양은 다 갖추었으나 진정한 교회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교회는 오히려 세상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 훨씬 정직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진정한 교회는 사탄의 모든 음모와 권세와 싸워 이기는 영적 사령탑이 된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주님의 교회를 더 이상 사탄의 놀이터와 전쟁터로 만들지 말고 오히려 교회로 하여금 사탄을 박멸하는 영적 사령탑으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특별히 교회의 타락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다. 교회의 타락은 평범한 교인으로 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영적지도자들의 도덕적 타락과 지나친 명예심과 야망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최근에 우리 교회를 찾아온 한 점잖은 부인을 통해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목사님, 예수님이 좋아 교회를 다니고는 있지만 막상 교회에 와보니 정말 이상한 사람들만 모인 것 같아요. 제 주위에 있는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렇게까지는 저질이 아니에요."
'더 이상 교회를 3류로 만들지 말라'는 한 부인의 간곡한 주문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주님 말씀의 그 깊은 뜻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온누리교회는 창립 10년이 지나서야 교회란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는 '거룩과 순결의 공동체'라는 것을 발견하고 고백하게 되었다. '거룩과 순결'에서 '순종과 헌신'이 나온다.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할 때 교회는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넷째, 교회란 천국열쇠를 소유한 공동체이다. (선교공동체)
참된 교회는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천국열쇠를 소유하고 있다. 천국열쇠는 지상의 교회가 누릴 수 있는 최대의 축복과 특권이다. 생각해 보라.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을 뿐 아니라 천국의 열쇠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더 확실한 축복이 어디있는가?
교회는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구원의 방주일 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인류의 영혼을 천국의 문으로 인도할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 천국의 열쇠란 무엇인가? 그것은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뜻이다.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하늘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요'라는 뜻이다.
진정한 교회는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 이 열쇠를 사용하는 것을 가리켜 전도요 선교라고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나 가정이나 민족이나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사용하는 열쇠라는 것이다. 천국열쇠의 비밀은 무한하다. 주님의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전위대일 뿐아니라 모든 민족의 축복의 근원이 된다. 교회가 주님이 주신 천국열쇠의 비밀을 사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음부의 권세가 나타나고 교회는 사탄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다.
온누리교회는 주님의 관점에서 시작한 교회이기에 주님께서 주신 이 천국의 열쇠를 사용하기 위해 '2천/1만 비전'이란 목회철학을 갖게 되었다. 2005년까지 2천명의 선교사를 10/40창의 모든 미전도종족에게 파송하며 1만명의 헌신자를 북한을 포함 이 땅의 모든 지경에 파송한다는 비전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님께서 의도하신 교회의 네 가지 특성을 살펴보았다. 이것이 바로 '바로 그 교회'의 핵심이다. 여기에 목회의 초점을 맞추라! 그러면 교회는 건강하게 자라게 되고 선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 대해서 한가지 더 검증해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그 교회가 바로 오순절날 성령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주님이 의도하신 교회는 실제로 우리가 경험하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교회로 진정한 주님의 교회는 사도행전으로부터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의 5가지 특징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령으로 태어났다는데 있다. 오순절날 성령받은 사람들을 통하여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통적인 교회가 부흥하지 못하고 침체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교회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사도행전적 교회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경험할 수 있는 주님의 교회는 사도행전적 교회이다. 따라서 주님께서 의도하신 교회가 지닌 교회의 내면성과 사도행전에서 보여 준 교회가 지닌 성령충만한 외면성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바로 그 교회'의 완전한 재현이 가능해지게 된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교회는 완성된 교회가 아니다. 단지 교회의 씨를 던져 주신 것이었다.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교회는 예수님께서 직접 십자가를 지시고 다시 부활함으로써 완성되었다. 십자가의 완성은 부활이다. 부활을 통하여 교회는 새 생명과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다. 부활이 없다면 십자가란 단지 죽음과 무덤에 불과하다. 따라서 교회란 바로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 공동체이다.
교회에서 또 한가지 중요한 사건을 부활 이후 주님의 승천이다. 주님이 승천이 있었기 때문에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게 되었다.
그러면 사도행전에서 보여준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첫째, 사도행전의 교회는 성령으로 출산된 교회이다. (성령공동체)
사도행전 2장 1-4절은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여 교회가 탄생하는 순간을 기록한 말씀이다. 한번 다시 꼼꼼하게 읽어보자.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니라'
사도행전에 나타난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성령으로 태어난 교회이다. 오순절날 약속을 기다리고 기도하는 무리들에게 성령의 바람이 불었고 불이 떨어졌다.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이 성령의 임재와 기름부으심과 충만함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락방 안에서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수 없어 뛰쳐나왔다. 길거리에 나와서 자기 나라 말을 물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도 했다. 때로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이 놀라고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다시 모여서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며 성령님께서 하신 일을 서로 보고했다.
배고프면 함께 음식을 나누고 서로 필요하면 무엇이든지 나누었다. 그들은 서로 떠날 줄을 몰랐다. 사도들에게 다시 가르침을 받고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또 다시 밖으로 나가서 외치기 시작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그 예수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요 그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다.'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그리고 한마디를 붙이기를 잊지 않았다.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고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순절날 임한 성령을 통해 탄생된 교회의 시작이다. 오순절날 임한 성령님은 지난 2천년 동안 교회가 생길 때마다 계속 새롭게 더 크고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교회는 바로 성령사건이라고 정의해도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진정한 교회는 성령으로 세워지고 성령으로 운영되고 성령으로 열매맺는 교회다.
둘째, 사도행전의 교회는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는 공동체이다. (증인공동체)
성령받은 오순절의 사람들이 나가서 외친 첫 번째 메시지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사도행전 2장 36절에 보면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고 말하고 있다. 성령받은 베드로는 계속해서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살리셨다고 증거하고 있다. (2:24, 32, 3:15)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건 때문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더 큰 충격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그 예수가 부활하여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이요, 그것보다 더 큰 충격은 성령님께서 바람과 불로 나타나셔서 그 사실을 확인시켜 주신 사건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주저할 수 없었고 혼돈할 수 없었다. 그들은 밖으로 뛰어나가 이 사실을 급하게 전했다.
베드로의 메시지의 핵심도 십자가와 부활이요, 사도 바울의 메시지와 핵심도 십자가와 부활이다. 그리고 스데반을 비롯 모든 사도들의 메시지도 같았다. 십자가와 부활의 메시지는 사도들이 선포하는 말씀이 핵심이었다. 성령받은 교회의 메시지도 마찬가지이다. 메시지를 전하는 표현방법은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그 내용과 핵심은 모두 똑같아야 한다. 십자가와 부활의 메시지이다.
그런데 십자가와 부활을 전할 때 주의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성령님께 전적으로 의지하여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오순절날 다락방에서 함께 기도하던 사람들이 성령의 불을 받기 전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을 볼 때도 아무런 감동을 가질 수 없었다.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도 충격은 받았지만 아무런 변화를 받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성령이 임했을 때 십자가는 그들에게 있어 순식간에 능력이 되었고, 부활은 생명이 되어 밖으로 뛰쳐 나가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게 되었다.
오늘 우리 교회들은 이 사실을 주시하며 주님의 음성에 귀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아 교회가 철저하게 십자가와 부활의 메시지, 곧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는 주님의 음성이시다. 현대교회가 힘을 잃고 영적능력을 상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십자가를 말해도 능력이 없고 부활을 말해도 생명력을 상실한 이유는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와 부활은 교회의 장식품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성령님의 능력이다. 철저하게 성령님에게 의지하면서 십자가와 부활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교회는 떠오르는 태양처럼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셋째, 사도행전의 교회는 사귐과 양육이 있는 공동체이다. (제자공동체)
성령님께서 임하신 이후, 초대교회 공동체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베드로가 한번설교할 때 3천명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 엄청난 인파가 모였지만 그들은 당황하지 않고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말씀을 가르치고 교제하며 떡을 떼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예찬과 더불어 성만찬을 나누고 기도했다. 사도들 가운데 기사와 표적이 나타났고 자신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 필요한 물건을 서로 통용하며 구제하는 일이 나타났다. 그들은 매일 성전에 모여서 순전한 마음으로 떡을 떼며 음식을 나누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감동을 받고 칭찬하기 시작했으며 구원받은 사람들이 계속 모이기 시작하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초대교회는 사귐과 양육이 있는 공동체가 된 것이다.
오늘 현대교회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교회안에서의 진정한 사귐이다. 모임은 있으나 만남이 없고, 프로그램은 있으나 진정한 기쁨이 사라진 것이다. 또 한가지 현대교회가 잃어버린 것은 양육이다. 선생은 많으나 아비는 없고 정보와 지식의 전달은 있으나 진정한 인격의 변화는 없다.
사도행전에서는 모일 때마다 떡을 떼고 애찬을 나누었으며 찬양하며 기도하며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초대교회가 왜 그처럼 생기가 넘치고 활력이 있었는가? 성도의 진정한 사귐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진정한 부흥의 비결이 있다.
현대교회는 외롭고 공허하다. 그들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도 잃어버렸다. 왜 그럴까? 무슨 차이인가? 초대교회는 로마를 뒤집었고 유럽을 변화시키지 않았는가? 그러나 얼마가지 못해 초대교회는 중세를 거치는 동안 그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형식적이고 제도적인 교회로 변하고 말았다. 그래서 종교개혁이 일어났지만 다시 교회는 현대라는 거대한 늪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1백여년 전부터 그 동안 잃어버렸던 초대교회의 살아있는 생명력을 부활시키셨다. 이것은 제2의 종교개혁과 같은 사건이다. 그것은 바로 초대교회가 소유했던 성령사역이요 선교사역이요 제자양육사역이요 경배와 찬양사역이요 가정사역이요 긍휼사역이다. 이러한 사역들이 죽어있는 현대교회에 생명력을 주고 활력소를 제공한 것이다.
넷째, 사도행전의 교회는 고난받는 공동체이다.
사도행전 교회의 특징은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겪은 데 있다. 그들은 처음부터 유대인들에 의해 핍박을 받았다. 그리고 로마로부터도 동일한 고난을 받았다. 그들은 쫓겨다녀야 했고 감옥에 잡혀가야 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여러번 옥에 갇혔고 복음을 전하지 말 것을 강요당했다. 스데반을 돌에 맞아 죽었다.
사도행전 8장부터는 사도들을 향한 핍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교회는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마술하던 사람들로부터 모함을 받았고, 특별히 사울에 의해 교회 지도자들은 집중적으로 고난을 겪었다. 이와 같이 초대교회는 온실에서 자라지 않았다. '죽느냐 사느냐'라는 심각한 위기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언젠가 터키의 갑바도기아에 있는 지하 동굴을 방문했을 때 로마의 카타콤에서 느낄 수 없었던 초대교회 성도들의 생생한 고난의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수 년동안 핍박을 피해 지하에서 굴을 파고 생존해야 했던 그들의 고난의 삶은 진정한 신앙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다.
그렇다. 초대교회는 화형과 사자의 밥이 되는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믿음과 다름 점이다. 오늘날 현대 교회는 너무나 안일하다. 고난이 없을 뿐 아니라 고난이 오면 피해 간다. 소위 우리들이 고민한다고 하는 그런 주제들은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겪었던 고난과 비교하면 너무나 사치스럽고 안일하고 지엽적인 것들이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크리스천들이 고난받을 때 교회는 가장 거룩했고 순수했고 힘이 있었다. 바로 이점이 사도행전의 특징이요 교회의 특징이다. 개척교회에서 목회를 하거나 선교사로 파송되어 이국 땅으로 나가는 사람들은 수많은 고난을 겪는다. 싸우고 분열하는 교회에서 목회 하는 목회자들도 고난을 겪는다. 그러나 고난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고난을 두려워 말라, 고난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다. 나혼자 이런 고난을 겪는다고 행각하지도 말라. 믿음의 선배들은 순교까지도 신실한 그스리도인이 겪어야 할 고난으로 여기고 오히려 감사해 했다. 지금도 세계도처에서 이름도 빛도 없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난을 겪고 있는 수많은 성도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교회는 예수 이름으로 고난받을 때 거룩해 지고 순수해 진다. 만약 당신 교회의 목사나 성도가 예수님 때문에 감옥에 들어가서 억울한 고난을 겪는다고 생각해 보라. 교회가 얼마나 새로워 질 것인가?
다섯째, 사도행전의 교회는 긍휼과 선교가 있는 공동체이다.(선교공동체)
사도행전의 교회는 성결받은 교회요. 십자가와 부활을 전한 교회요. 성도의 사귐과 양육이 있는 교회였다면 그들이 세상을 위해서 한 일은 무엇인가? 먼저 구제였다. 그들은 가난한 자를 돌보기 시작했다. 사도행전 2:44, 45절에 보면 그들은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랄 나눠주었고, 4:34절에서는 핍절한 사람이 없었다고 했고, 행6:1에 보면 매일 구제에 빠졌다고 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아름다운 일인가? 인류가 존재한 이래 이같이 아름다운 사회가 존재한 일이 있는가? 불평등과 가난을 강제적인 율법으로가 아니라 자발적인 은혜로 해결한 최초의 기막힌 사회였다.
이와 같이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이상사회는 성령사회이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성령받았다고 하면서 구제와 긍휼이 그의 삶 속에 없다면 그가 받은 성령은 가짜이거나 잘못된 것일 것이다.
구제에 이어 그들은 선교하였다.
사도행전 1:8에서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경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 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다. 예루살렘교회가 부흥했을 때 사람들은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이 이방인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인 줄 몰랐을 때 그들은 핍박의 대가를 치렀다. 이런 의미에서 부흥이란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전주곡임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불순종에 굴복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결국 인간의 불순종과 교만을 녹이시고 그이 뜻을 이루신다.
사도행전은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눈물의 책이다. 예루살렘교회는 안디옥교회를 낳고 안디옥교회는 세계교회를 낳았다. 이 세상에 오신 최초의 선교사가 예수님 이셨다면 이방인을 향한 최초의 선교사는 사도 바울이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당신 가까이 있는 이웃을 향한 선교사는 누구이며 전세계에 펴져있는 미전도종족을 향한 선교사는 누구인가? 사도행전의 교회는 이방인을 향한 눈물이 있는 공동체였다.
사도행전의 교회는 성령공동체요 증인공동체요 제자공동체요 고난받는 공동체요 선교공동체임을 살펴보며 오늘날 우리의 목회 현장에 주는 목회의 원리를 살펴보았다. 물론 사도행전을 통해 더 다양한 목회원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예수님께서 인도하시고 사도행전에서 보여 주신 이런 교회의 진정한 모습 다섯 가지를 우리의 목회에 적용한다면 오늘 우리교회에 왜 기적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꿈이 자라는 땅
1. 꿈이 자라는 땅
'꿈이 자라는 땅'은 온누리교회에 다니고 있는 자녀들과 온누리의 0-18세 영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하고 헌신하게 하는 사역이 일어나고 있는 장을 일컫는 말이다.
2. 꿈이 자라는 땅의 Vision
1) 성령의 능력으로
2) 하나님을 예배하며 (요4:23-24)
3) 길을 잃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돌아오게 하고 (약 5:19-20, 딤전 2:4)
4) 우리에게 맡겨주신 영혼들을 온전케 세워 (엡4:11-16)
5) 선교의 사명을 감당케 하며 (마28:19-20)
6) 다음 세대로 신앙을 온전히 전수 (삿2:7-14, 8:32-35)하는 것이다.
3. 꿈이 자라는 땅의 사역 원리
1) 돌봄
꿈이 자라는 땅은 소속된 이들이 배우거나 사역하는 동안 '교회는 나를 기억하고 있으며, 나는 교회로부터 돌봄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도록 하는 것을 기본 사역의 원리로 삼는다.
2) 준비와 헌신
꿈이 자라는 땅에서 행해지는 모든 사역에 있어서 기도하며, 철저히 준비하고, 준비된 것을 행할 때는 선교하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는 것을 기본 사역의 원리로 삼는다.
4. 꿈이 자라는 땅의 가르침 원리
1) 목적
꿈이 자라는 땅의 가르침의 목적은 가르침을 받는 모든 대상들의 '삶의 바람직한 변화'이다. 따라서 모든 가르침의 원리들은 이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2) 철학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일들이 가르치는 대상들에게서 일어나야 한다고 믿는다.
(1)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신뢰하기 때문에 말씀대로 행동을 바꾸어 행하는 일들이 있어야 한다. (믿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행동한다.)
(2) 하나님의 말씀을 기반으로 그 위에 견고히 서게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이 믿고 의지할 말씀을 주어야 한다.
(3) 하나님의 말씀은 대상들의 마음속에 심겨져야 한다.
(4) 이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될 수 있도록 설명되어야 하며, 실천을 통해 더 깊은 이해를 경험한다.
3) 핵심요소
(1) 필요 : 가르침에 있어서 눈 높이를 대상에 맞추어, 이 세대의 자녀들이 직면하고 있는 영적, 정신적 필요를 가장 잘 채워줄 수 있는 방법과 내용을 발견하여 채워주도록 한다.
(2) 적용 :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그래서 어쨌다는 거지?'라는 물음에 대답을 준다.
(3) 말씀 : 우리의 가르침의 내용은 반드시 성경에서 이끌어 낸 분명하고 구체적인 진리이어야 한다.
(4) 창조성 : 진리의 전달에 있어서 시도 가능한 모든 방법을 사용하도록 한다.
(5) 재미 : 웃음이 있는 감동으로 시선을 놓이지 않도록 한다.
4) 전략
(1) 1단계 : 빛모음
한달간 교육부서의 교역자들이 정해진 성경의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하는 과정들을 통해 각자에게 하나님께서 열어주신 말씀의 진리들을 모으는 시간으로써 이 과정을 통해 각자가 성경으로부터 깨닫게 된 원리들을 성서적, 신학적 여러 측면에서 검증하게 된다.
(2) 2단계 : 빛모음 나눔 집회
매월 초 그 다음 달에 가르칠 내용에 대한 성경의 원리를 제시하고 함께 기도하는 교사 전체 모임으로써, 이 모임을 통해 그 다음달 가르칠 주제가 모든 교사들에게 전달되고, 진리가 열매 맺도록 함께 기도하게 된다.
(3) 3단계 : 주제연구 및 활동준비
각 부서의 교사들은 제시된 주제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연구하고 그 주제로 예배, 드라마, 찬양, 소그룹모임, 특별활동 등을 기획한다. 디자인팀, 이벤트팀은 이 기간 동안 제시된 주제를 부각시킬 수 있도록 교육공간을 주제에 맞게 전시 및 프로그램 기획을 돕는다.
(4) 4단계 : 가르침
준비된 것을 설교, 소그룹활동 등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가르친다. 소그룹활동에서는 빛모음 집회 및 설교를 통해 전달된 진리를 강화하고 구체적으로 적용하는데 초점을 둔다.
5. 꿈이 자라는 땅의 사역 방향
1) 학생 자신의 영적성장을 돕는다.
2) 가정을 섬기는 일
자녀의 신앙교육은 가정과의 협력이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다. 꿈이 자라는 땅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올바로 이해하고 진리로 양육할 수 있도록 부모들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3) 교회를 섬기는 일
교회의 각종 성인 집회와 병행하여 자녀를 위한 프로그램을 실시함으로써 자녀에게는 돌봄과 안전을, 부모에게는 마음 놓고 프로그램에 참석할 수 있도록 섬김을 제공한다.
4) 선교하는 일
지역사회의 믿지 않는 학생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고, 선교지의 0-18세의 영혼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에 자녀들이 함께 동참할 수 있도록 교육하며 기회를 제공한다.
6. 꿈이 자라는 땅에서 드려지는 예배
전체모임 시간에 생동감이 넘치는 신나는 예배 드림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하고, 소그룹활동은 삶의 변화를 위한 성서적인 공동체의 기능을 감당하도록 한다.
1) 만남과 사귐
2) 경배와 찬양
3) 중보기도
4) 말씀
5) 소그룹활동
7. 꿈이 자라는 땅의 특별 프로그램
1) 구원캠프
믿지 않는 학생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과,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으나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는 영혼들에게 약속에 대한 신뢰와 성령세례를 통해 확신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 캠프
2) 놀이동산
교회의 각종 대형집회에 참석한 성도들의 자녀를 보호, 돌보며 진리를 가르치는 장.
3) 자녀를 위한 어머니 기도모임
자녀들과 이 땅의 학교들을 위하여 중보기도하는 모임 (매주 수요일 오전9:15-10:15)
4) 어린이 합창단
일정기간의 훈련을 거쳐 현대음악과 안무를 통한 활동을 하는 단기 합창단
5) 뮤지컬팀
어린이들이 음악적 은사를 계발하고 이를 통해 복음을 증거하도록 하기 위한 사역
6) Good News Club
한 지역에 있는 어린이들의 복음화를 위한 장기적인 전도전략으로서, 한 가정을 전도기지화하여 인근의 어린이들을 초청해 복음을 전하는 프로그램
8. 꿈이 자라는 땅의 특별 부서
1) 사랑부
장애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돌봄과 교육을 실시하는 부서
2) 요셉학교, 다윗학교
주말 공동체 생활과 해외 out-reach를 통해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한 미래의 참된 지도자로서 자라게 하는데 주목적을 둔 어린이, 청소년 훈련학교
3) 다니엘 특할부
각 부서에서 주일예배를 마친 어린이들에게 미술, 외국어, 문예, 한문, 무용 등의 다양한 문화활동을 통해 자녀들이 가진 창조적 능력을 발견하고 계발하도록 해 주는 주일 프로그램
9. 꿈이 자라는 땅의 교사양육 프로그램
1) 교사대학
예배, 성령, 문화이해, 기초 조직신학이론, 소그룹, 리더십에 관한 것을 중점적으로 교육하여 교사의 기본적인 자질을 함양시킬 수 있는 양육프로그램으로 10주단위로 개설된다.
2) 계속 교사대학
기존 교사들에 대한 계속 교육프로그램으로서 주로 실무적인 내용을 기능중심으로 교육한다.
10. 꿈이 자라는 땅의 조직
1) 조직 구성의 목적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효율적인 운영
(2) 돌봄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성원들을 한 단계 더 깊은 헌신의 단계로 초청하는 것
2) 조직 구성의 원칙
(1) 교육의 전문화
(2) 돌봄의 전문화
(3) 행정의 전문화
3) 조직 구성의 철학
(1) 교사 소그룹 모임을 활성화시켜 대교회에서 발생하는 Care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구조이다.
(2) 건강한 교사 리더쉽을 세움으로써 평신도 사역의 장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