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도 아름다웠지만......"
롬 14:8
김준곤 목사님의 문준경 전도사님을 생각하는 글에 실려있는 내용중 일부입니다.
세상에서 나에게 맨처음으로 예수님을 소개해주신 내 시골 이모님같은 분이시고 천국에 가면 제일 먼저 나를 맞아주실 것 같은 분이시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나룻배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와야 하는 우리집에 그분은 종종 찾아 오셔서 몹시 외롭게 사시던 우리 어머니와 머물면서 전도집회를 열곤 하셨다. 수수한 아주머니처럼 고무신을 신고 과자선물을 듬뿍 가지고 오셔서 껴안고 기도해 주시고 하셨다. 초등학교도 다닌 일이 없고 도레미파를 배운적도 없지만 그분 특유의 낭랑한 목청으로 당시 이성봉 목사님이 많이 부르시던 허사가나 부흥성가 천당가를 부르시면 우리집 마당으로 동네 아낙네들과 어린이들과 강아지까지 다 모였다. 그러면 그분은 일장 전도설교를 시작하곤 하셨다.
나는 당시 그분이 무식한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예수는 4대성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초등학교 선생님이 가르치셨는데,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전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분이 오시면 잔치같은 분위기가 되는 것이 왠지 모르게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그분이 전도해서 키운 이만신, 이봉성...그외 수많은 주의 종들의 종들이 오늘도 그 순교정신을 이어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그분의 교회나 사택은 차라리 목민센터였다. 무엇이나 의논하고 돌봐주는 곳이었다. 그집은 항상 너댓 명씩 귀신들린 여인, 반신불수되어 쫓겨난 오갈 데 없이 버려진 여인들의 숙소였다. 대소변을 받아내느라 방에는 악취가 났다. 문전도사님은 밤낮을 교회에서 살면서 새벽같이 큰 바랑같은 것을 들쳐매고 나가 누룽지나 잔치집 음식을 거두어다가 가난한 집에 나누어 주는 '대신 거지'였다. 바랑 속에는 감기약이나 연고등 민간비방약 같은 것이 듬뿍 있어서 병자들을 심방해 부담없이 약을 먹이고 발라주고는 만져주고 기도를 하였다. 신,불신을 가리지 않았다. 초상집을 찾아가고 싸움하는 집도 찾아갔다. 모두의 가난과 고통에 자기 피부를 맞대고 살았다. 그분은 산파는 아니었으나 아기를 받는데는 누구보다 명수였다. 내가 부탁하면 대신 죽기라도 해주셨을 문준경 전도사님, 제게 심으신 믿음의 씨앗을 퍼뜨려 10만 대학생을 중국 땅에 퍼뜨리고 싶습니다.
사도행전은 예루살렘 초대교회의 생활상과 발전상을 비교적 소상하게 전해준다. 성령의 강림으로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 새로운 교회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초대교회 공동체는 공산과 공유의 정신으로 번창해 나갔다. 초대교회 공동체가 조직과 체제를 갖추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널리 퍼져나갔고 신도들의 무리도 날로 늘어갔다. 이러한 때 격노한 유다 원로들과 율법학자들에 의해 처참한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바로 일곱 집사중 한 명인 스데반의 순교가 그것이다. 성령의 힘으로 놀라운 일들을 행하던 스데반이 회당 사람들과 논쟁을 벌인 것이 화근이었다. 회당 사람들은 키레네, 알렉산드리아,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즉 본토를 떠나 사방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었다. 거짓 증인들과 모함에 의해 유대 의회에 끌려나온 스데반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예언된 구세주를 배척하고 죽인 유대인들의 배반 행위를 고발했다. 그의 말을 들은 의회의원들은 스데반을 성 밖으로 끌어내 돌로 쳐죽였다. 하나님은 이렇게 박해라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당신 교회를 단련시키려 하셨다. 그러나 주 예수님, 제 영혼을 받아주십시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지우지 말아 주십시오라는 스데반의 마지막 외침은 숱한 고난과 박해를 견디어낼 교회의 생명력을 또한 예견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70년 전 어둠의 땅에 촛불 하나를 밝히고 섰습니다. 그리고 70년 후 나와 여러분은 신앙의 땅, 생명의 땅, 나도 걸어가야할 순교의 땅을 밟고 서 있는 것입니다. 나와 여러분은 순교의 거룩한 땅을 밟고 섰으므로 남은 삶을 절대로 적당히 살아서는 안됩니다.
문준경 전도사님은 두 번의 순교를 당하신 것입니다. 일제치하에서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함으로 옥살이를 하셨던 것으로 한국교회와 민족을 위해 산 순교를 하셨고, 6.25 때 공산군에게 교회와 양떼와 신앙을 내어주지 않음으로 총탄에 또 한번의 순교를 당하신 것입니다. 이는 죽음으로 많은 이들을 살리는 순교였습니다.
1950년 10월 5일 백사장 모래위에 포승줄에 묶인 7인 그중에 여인의몸으로 죽창과 몽둥이 그리고 M1 소총 앞에 서 있는 문준경 전도사님 죄몫은 알을 많이 까는 씨암탉, 신앙으로 생명을 사른 땅에 여러분이 서 있습니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자생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인 한국의 산앙은 순교로 꽃을 피웠고, 그 꽃에서 떨어진 씨앗이 퍼져 오늘에 우리들을 있게 하고 연약한 발걸음들에 힘을 주신 것입니다.
도보 행진에 참 맛은 여기에 있습니다. 1년에 전도의 걸음으로 고무신 9켤레를 떨어뜨리신 문준경 전도사님이십니다. 고무신 타는 냄새가 진동할 때 사탄은 코를 막았으나 성도들에게는 가시밭의 백합화 향기처럼 잠자는 자의 신앙을 자극했을 것입니다.
순교자의 꽃은 땅속에 숨어있다가 아무도 생각지 않았을 때, 봄기운을 타고 가장 먼저 피는 수선화처럼 피어날 것입니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백성다움을 한국교회의 목회자상을 어머니다움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아름다운 삶을 살다가 흉칙한 곤봉과 죽창에 그리고 총탄에 목에 구멍이 났는데 그 아픔은 우리 아픔의 치료제가 될 줄을, 목에 난 구멍은 뭇 영혼의 구원의 문이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주님 외에! 주님 밖에!
전도사님의 이야기는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보다, 축구이야기보다, 군대에서 축구했다는 이야기보다 훨씬 재미있습니다.그래서 시간이 자날수록 사그라들지 않고 더욱 빛을 더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죽음 앞에서 살고자 하는 유혹이 적었으리요마는 그때에 예수님을 본듯 합니다. 나는 죽여도 백전도사는 죽이지 마라 내 양떼들은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당부하셨답니다. 유언이란 반드시 지켜지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루어질 확률이 큰 것입니다. 더더욱 믿음의 유언은.... 그분은 죽었으나 오히려 지금도우리에게 교훈합니다. 가장 아름답게 죽는 방법이 무엇인지를..."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기도: 성령 하나님이시여 지금 이곳에 임하소서. 여기까지 걸어온 이 행보를 멈추지 마옵소서. 성령 하나님이시여, 이 여인의 행한 일이 바람처럼 불처럼 번져나가게 하옵소서.
중동리성결교회를 시무하고 있는 김상원 목사의 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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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 건 붉은 머플러는 순교의 선혈 성결인의 표지
그 행렬, 그 발걸음 마다에 순교자의 선혈 낭자하고
거기서 핏빛 생명은 싹터오르나니 성결교회 선교 2세기는 부흥의 불길로 타오르리라!
성결교회 after 2007, powerfull 2007 순교자의 영성으로 능력의 새 시대를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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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역사의 현장에 다녀 오시고 남긴 글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vision님처럼 많은 분들의 현장 체험의 글들을 기대해 봅니다.
함께 하시지 못해 몸둘바를 모르시는 정 바람님의 사과의 글도 있으니 vision님 너무 섭섭하게 생각지는 말아주세요. 발의부터 준비, 역사적인 출발, 그리고 매일매일의 행군에 물심양면으로 힘에 힘을 더하시고 계신분들로 기쁨도 행복도, 아픔도, 미움도 용서하며 상처와 문제까지도 끌어안고 격려하고 위로하시는 이 광장의 어른들이시니까요.
계속될 도보순례의 생생한 체험의 기록들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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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최남단 끝자락 임자도와 증도를 한숨에 다녀왔습니다.
강원도 우**목사님도 오신다고 했고 정**목사님도 양* 목사님도 오신다고 해서 반가웠는데...
다 빵구내었지만 오실 분들은 다 왔더라고요. 하루만에 부천서 무안을 내려가 앞서 말한 두 섬, 한국의 끝자락을 한 숨에
돌아 50여년전의 그 피의 현장을 돌아 볼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의 기적이며 동시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고인들의 지혜를 실험하려는 열심(Passion) 그것의 결실이었습니다.
매섭게 공격하는 해풍은 옛날 그대로였을 것이라는 상상의 날개를 펴며 48명(이판일 장로님 일가 13명 포함)
이 순교의 고귀한 피를 흘린 그래서 진리(?)라는 동네이름이 태고적부터 붙여졌을까? 참으로 고즈넉한 도서
마을에서 그 피의 제사가 하나님께 드려졌던 그날의 고귀한 순간을 기억하니 ---
앞서서 인도하며 뒤에서 조용히 그 역사를 더듬는 참가자들의 마음도 감동이었습니다.
누가 4킬로 미터라고 했던가? 증도만 해도 선착장에서 족히 8킬로는 될 것 같더구만...가도 가도 끝자락이
보이지 않는 증동리 문준경 전도사님의 순교 기념비 그리고 기념교회...발이 부르트고 해풍에 몸이 날려갈 것
같아도 순례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차분한 지역 교회 목사님의 "Herstory"를 듣는 중 여전히 순교자들의 순교의 순간을 정확히 기억하는
증언자들의 확고부동한 증언 속에서 교회는 하나다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으며 역시 "순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한 열심이 있었기에 몬타니즘이란 이단에 가담했다가 다시 정통교회로 돌아온 터툴리안의 위대한
술회는 증동리 교회 여자 교역자 문준경 전도사님의 생생한 순교 사화를 통해서도 증명이 되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한국 교회도 초대 교회 못지 않는 위대한 여자 순교자를 배출한 위대한 교회요 동시에
정확하고도 객관적 사실에 조금도 흩으러짐이 없는 순교의 스토리를 지닌 성결교회의 100년 사의
위대성을 다시금 절감했습니다.
문준경 전도사님의 후예들이 한국 교회의 거장들이 되었고( 대학생 선교회 창설자 김준곤 목사 ,
한국교회의 위대한 상담사역의 대가 정태기 그리고 이만신 목사님) 지금도 산 증인들이 줄줄이 있는데
기록에 의하면 66명의 목사와 33명의 판사가 문준경 전도사님의 영성의 파문을 형성하고 있다 합니다.
교회의 표지가 무엇인가 할 때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바로 그
그리스도의 흔적은 다름아닌 순교의 혈흔이랄 수 있습니다.
그 혈흔이 이렇게 성결인 중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던 시대에 한송이 백합화로 그 향기를 드러낸 위대한
성결교회의 기둥같은 문준경 전도사님을 통해 나타났으니 얼마나 귀한 일인지요....이성봉 목사님의
영향력이 비록 이성봉 목사님은 순교의 영광을 얻지 못했었어도 그의 믿음의 딸 문 준경 전도사님을
통해 그 복음의 위대성이 입증 되었으니 얼마나 우리 모두에게 큰 귀감이 되는 줄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우리가 게을러서 그분의 이야기를 영화화하지 못했고 드라마 하지 못한 안타까움 때문에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마26:13)
한 말씀의 결실을 이루지 못해 후배 성결인들의 무책임함을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도보순례가 준 순교적 영성의 영속화는 어제의 순례객들에게 엄청난 파장이 될 것입니다.
물론 세계 교회 역사의 고향인 초대교회 현장 답사도 의미있었지만 우리 땅에서 일어난
거룩한 역사의 현장을 사랑하는 제자들과 단숨에 다녀왔다는 긍지는 참으로 보람된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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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기 형제분의 노고에는 감히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이 대 장정에 끝까지 함께 하시고 이끌어 주신일 하나님께서 꼭 기억하시고 넘치는 축복으로 내려 주실 것을 믿습니다.
성결교회 선교 2세기 순교의 영성으로 부흥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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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들이 많으십니다. 그러나 순례자들의 수고는 오늘의 우리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성결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으니 힘내십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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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진리교회에서 은혜롭게 예배를 마치고 모두 식당에서 식사를 하러 들어간 사이에 무선으로 연결된 인터넷으로 교회 사무실에서 첫글을 올립니다.
서울신대 학생들과 교수님들 그리고 여교역자회목사님들과 또 성락원 전도사님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배를 타고 들어와 교회까지 엄숙하게 도보로 행진하였습니다. 사진을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주말에 사진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얼른 식사를 마치고 다음 증도로 가는 배를 타러 걷고 배타고 가서 배에서 내려서 또 걷고 하면서 6시 이후에 육지로 나가는 팀에 의해서 다음 댓글이 달리려나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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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명이 걸을 거라고요? 壯觀이 연출되겠군요.
꼭 동영상을 올려 주세요. 직접 참여 못 한 사람들도 감동 좀 먹게요.
성결회관 사료관에 동영상을 자료로 쓰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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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여정에는 여성들이 주관하다시피 합니다.
여성목회자님들 11분이 참석하고 있습니다.
서울신학대학교에 순례단은 34명이 참석하고 있는데
여성교수님이 3분 남성으로는 주승민교수님 1분(?)
학생 30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주력팀은 박창백 목사님 일행 12명이 참석 중입니다.
오전 현재 참가자 57명입니다.
오후에는 김정 교단 목사 부총회장 후보도 참석할 예정입니다.
오늘의 참가자는 70여명으로 예정 되어 있습니다.
날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여주심에 겸손히 순응하는 순례의 여정이 됨을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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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도, 증도 도보순례에 참여하실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양일간 귀하신 분들(서울신대 교수님, 후배 학생들, 여교역자님들)이 순례에 특별히 동참하신다니 가슴 뿌듯합니다. 육지와 섬을 오가며 배, 도보, 차량이동 등 다양한 이동수단이 뒤섞이듯 다양한 분들이 함께하셔서 문준경전도사님과 이판일장로님 그리고 함께 순교한 믿음의 선조들을 생각하며 귀한 은혜를 나누는 날이 될 것이라 기대됩니다. 오가시는 길 편하시라고 세부 일정표를 올려드립니다. 귀한 순례가 되길 바랍니다. -路上人 *양일간은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참여 예상되고 뱃길이 함께 있어서 다른 날에 비해서 덜 걷도록 계획이 짜여 있습니다(도보거리/ 29일 14km, 30일 20km). *증도에서 숙박하지 않고 29일 당일만 참석하실 분은 증도에서 18:00에 있는 저녁 막배를 타고 육지(지신개, 사옥도)로 나오시면 됩니다. 3월 29일(수) 출발 전 예배장소: 신안군 지도읍 지도제일교회 016-275-0074, 011-644-9515 이형삼목사 정오 예배장소: 신안군 임자면 진리 진리교회 011-636-5322 061-275-5322 박석균목사 | |||||||||||||||||||||||||||||
순교의 영성은... | 정 바람 | 2006.03.31 |
도보 순례 19일째 (3월31일 현경에서 신광) | 도보순례단 | 2006.03.26 |
첫댓글 감히 말할 자격도 없지만 66명의 목사와 33명의 판사님들이 문전도사님의 영성의 후예들이라면 어찌 순교기념관 하나 제대로 세우는데 팔 걷고 나서지 않는지,,,,,,,,,,,,,,,
디자인님의 말씀에 적극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