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 열방의 죄악과 심판
아모스 선지자는 동일한 방법으로 이스라엘의 범죄를 극적으로 노출시키려고 한다. 그는 모압까지만 죄를 지적하지 않고 요단을 건너 유다와 예루살렘의 궁궐도 범죄로 인하여 불이 오며 이스라엘 전역에도 맹렬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방 국가보다 더 참혹한 심판을 선언하였다.
이제부터 아모스는 대중적인 인기를 끌 수 있는 선지자로서의 자격은 상실하고 출세를 반납하는 각오로 고난 길에 들어 섰다. 아모스가 지적한 선민의 죄악은 언약을 파기한 유다(4~5), 위선적인 이스라엘(6~8),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한 이스라엘(9~12) 그들이 받을 형벌(13~16) 등이다. 4~8절 말씀을 먼저 상고한 후 9~16절 말씀을 그 다음에 상고해 보기로 하자.
이방사람들의 죄는 인간 관계를 중시하여 범죄를 구성하였으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과 관계에서부터 죄를 구성한다. 성도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기본 행위가 된다. 힘을 가진자들이 힘을 오용하거나 남용하여 가난한 자들의 소유를 착취하는 것은 진리와 정의를 땅에 떨어뜨리는 행위로 심판이 제일의 원인이 된다.
사회가 가난한 자와 약한 자를 보호하는 기능보다 큰 부와 권력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에 치중되어 있으면 사회를 바로 보는 눈이 멀게 된다. 그리하여 죄는 상습화 혹은 관행화 되어 머지 않아 하나님의 심판이 있게 되는 두 번째 원인이 된다. 이스라엘의 범죄는 신앙과 관계가 되어 있었다.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신앙을 빙자한 범죄, 하나님 전에서 일어나는 범죄, 이것은 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 이와 같이 역사적 배경과 신앙적 의미가 있는 말씀을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상고하여 보자.
1. 유다가 하나님께 범한 죄의 유형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신의 뜻대로 사는 방법인 율법과 율례를 주신 것은 특권이요 은혜이나, 선민들은 어리석게도 율법을 멸시하고 율례를 행치 않으며 우상을 섬겼다. 그러나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사람들의 공상에 불과하므로(고전8:4) 그것을 근거로 마음에 품은 모든 기대는 사람을 실망케 한다(사 41:24). 왜냐하면 그것들은 근본이 정욕과 탐심이기 때문이다.
도덕의 근본은 신앙이요, 도덕의 표준은 하나님의 성품이요, 도덕의 근거는 하나님의 계명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다른 것에 자신을 맡기는 그릇된 이론은 필연적으로 그릇된 행동을 낳고 머지않아 자기를 상실하게 된다.
이것이 이방인과 선민들의 큰 차이임을 깨닫고 말씀을 순종하며 자신을 바로 유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하나님의 백성들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유다 백성들도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2. 유다가 하나님께 받을 형벌
유다 사람들은 언약의 특권을 받았고 영적이고 영원한 생명의 길을 제공 받았으나 그들은 다수가 사망의 길을 선택하고 말았다. 후대의 역사는 그들의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정확하게 증명해 주고 있으며 우리도 그 결과를 보고 있다.
유다의 범죄에 대한 형벌이 주전 760년경에 있었던 것으로 본다면 그 예언이 주전 588년에 성취되었으니 170년이 지난 후에 1차 성취되었고, 그 후 658년 후에는 또 다시 완전하게 성취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멸시(불신)하지 말고 심판이 오랫동안 지연된다고 해서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렘17:27).
특권은 의무를 동반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이 의무만 보고 그것을 포기한다면, 거기에 상응한 심판이 있다. 유다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는 성도가 되지 말자. 하나님께서는 유다에 불을 보내어 궁궐들을 스르시겠다고 하셨는데, 이것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실현되었다(렘52:3~16).
3. 이스라엘에 심판을 가져오게 한 죄악
아모스 선지자를 통하여 경고하고자 하는 주 대상은 북 왕조 이스라엘이다. 유다가 율법을 멸시하고 율례를 지키지 않은 것은 이스라엘도 동일하여 반복하지 않았지만 우상을 섬기는 일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이 한 수 우위에 있다. 이는 여로보암이 이미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워 오랜 세월동안 배도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왕상 12:25~33).
(1) 탐욕이 신성한 율법을 이용하여 인간 생명에 대한 경멸적인 자세를 드러냈다. 모세법에 가난한 자가 빚을 갚지 못할 때 6년째까지 종으로 삼고 7년째는 자유를 주는 제도가 있었다(레 25:39~40).
이를 악용하여 불의한 재판관들이 신 한 켤레 값 정도의 빚에도 노예로 판결하여 버렸다. 재판관을 매수하여 멀쩡한 사람을 죄인으로 매수한 후 범죄해서 배상할 돈이 없으면 노예가 되는 법을 악용하여(출 22:1~3) 그들을 노예로 삼았다.
(2) 이들의 욕심은 가난한 자의 작은 번영에도 탐욕을 일으켰다. 가난한 사람의 비극을 이용하여 자기 욕심의 기회로 삼는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견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신앙적으로 바른 길을 가려고 하는 자를 범죄하게 한 후 악하게 이용을 하였다. 입은 정의를 부르짖으나 옳은 것을 못 보는 사회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심판은 너무도 당연하였다.
(3) 성 생활의 타락은 망국의 역사를 불러 일으킨다. 가정은 사회와 국가의 핵으로서 문제가 생기면 힘을 잃고 망하게 된다. 이는 하나님의 법을 의도적으로 범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심판은 필연적이다.
(4) 피조물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더럽혔다. 예배자가 의무를 다하지 못할 때 벌금조로 포도주를 바치는 행위가 있었는데(삼상 1:24),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들의 삶을 희생 당하면서 거룩한 예물로 바쳐진 물질이 성소에 있는 직업 종교인에 의하여 연락의 재료가 되어 소비당하는 것은 종교적 죄악인 동시에 윤리적 타락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종교적 제도 위에 하나님의 심판이 없고서야 어찌 하나님의 공의를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아니면 어디선가 곧 터져 나올 듯한 범죄인가 살펴보며 기도로 생활로 교육으로 막아야 할 것이다.
특별히 오늘날 가난한 성도들이 바친 헌금이 성직자와 그 가정 식구들의 과소비로 쓰여지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자. 이러한 유형의 죄가 우리 사회에 발견된다면 전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성도의 타락은 국가가 멸망하는 지름길이다. 사회의 마지막 기대마저 무너진 상태라면 이 타락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는 곧 불신앙의 산물이다. 내가 신앙을 소중히 여기고 보호하는 것은 나 외에도 그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신정 국가인 이스라엘이 지은 죄와 오늘 교회의 성도가 지은 죄악은 기본적으로 불신앙에 있다. 특히 거룩한 제도와 의식을 통한 범죄는 그가 속한 국가와 가정에 하나님의 심판을 가장 신속히 끌어들이는 범죄 행위임을 자각하고 하나님께 대한 바른 에배와 제반 의무를 바로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자.
특히 우리 주변에서 하나님의 심판 행위가 발생할 때 우리 성도들에게 경고하는 행위로 볼 것이며, 그들의 불행을 즐기는 행위는 가장 어리석은 행위임을 깨닫고 바르고 능력있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자.
4. 은혜를 배반한 이스라엘(9~10)
이스라엘이 어떻게 범죄하였나를 지적하신 아모스는(6~8) 하나님은 얼마나 너희들을 사랑하셨는가를 말하였다. "내가 너희를" 선택했다고 하심으로 민족이 선택을 받음을 상기시키신다(신 10:15 ; 출 33:16 ; 창 17:7, 19 ; 43:1).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어",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고", 민족을 보호하신 것이다.
"영토를 허락하신 것"이다(창17:8 ; 계2:1~2).
이스라엘 백성이 교만하고 범죄할 만한 이유는 그들이 이 모든 축복을 자력으로 쟁취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인가? 그러나 따지고 보면 모두 주께서 주신 것이다. 주신 것으로 감사하지 못하고 왜 교만한가? 그것은 과거 은혜를 망각하고 현실만 보기 때문이다. 우리 중에도 이러한 요소가 없나 살펴서 그들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자.
우리들의 앞에도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과 싸우는 전투가 있을 수 있다. 전략적으로는 패할 수 밖에 없으나 주께서 함께 하시면 불가불 승리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믿고(롬8:37), 앞으로 나아가 승리의 경험을 얻고 계속 저 천성을 향해 돌진하는 성도들이 되자.
5.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11~12)
하나님께서 아모리 족속과 같은 거인족을 멸망시키고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에 정착케 한 것과 마찬가지로, 가나안의 많은 종교들에게 유혹을 받지 않도록 선지자를 통하여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따라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기게 한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이다. 오늘 우리 교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대언할 수 있는 설교자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그리고 나시르를 주시어서 삶의 본을 보여 주셨다. "나시르"란 몸을 바쳐 헌신한다. 무엇을 위하여 맹세한다. 성별된 자라는 뜻으로 세속적인 것에 성별되어 하나님께 헌신 된 자를 의미한다.
민수기에서 말하는 나실인은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맹세를 한 사람이요 알콜성 식물을 일체 입에 대지 못하며, 헌신을 맹세한 기간 동안 머리털을 깍지 않았으며, 시체를 멀리하고, 하나님을 위해 몸바쳐 싸우기를 맹세하였다. 이러한 나시르인들이 삶을 바르게 살아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앙과 생활의 절제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정 반대의 삶을 살았다. 하나님의 귀한 은혜와 축복을 받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였는가?
나시르 사람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또 선지자에게 명하여 예언하지 말라고 하였다. 사마리아 궁전의 권력의 비호 아래 종교적인 의무를 감당하고 있었던 어용 종교인 아마샤는 아모스를 축출했다.{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왕의 궁이다(7:13)}
종교적인 발언만 하라는 압력에도 그는 예언 하였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를 인정하고 세우신 일꾼들에게 협력하고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그러나 옛날의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일꾼을 돕지 않고, 오히려 하는 일을 방해하여 의욕을 잃게 하고, 사기를 저하시킨다면 그 형벌은 얼마나 엄청나겠는가?
우리 생애에는 그런 일이 없도록 늘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가자.
6.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
그토록 큰 은혜를 받고도 배은망덕한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는 것은 필연적이다. 인간의 죄는 무거운 짐이 되고 말 것이다. 이 때에 이스라엘이 살길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하나님 앞에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신약에서도 부르실 때 다 내게로 오라고 부르신다. 형벌이 임할 때는 누구도 피 할 수 없다. 아무리 강한자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기력하다. 용기있는 자도 그 공격은 견딜 수 없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원리 중에는 은혜와 심판이 공존한다.
심판은 강한자, 교만한 자에게 힘을 빼앗는 조치이다. 나는 지금 심판이 필요한가? 은혜를 받고 난 후에 무엇이 부족한 사람이 되어 교만하게 심판을 받고 있다면 얼마나 가련한 사람인가!
객관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강한자라도 결코 교만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이는 그 은혜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만약 교만하면 그것은 쉬 없어지고 말 것이다. 또한 세상에서 가장 악한 자는 마지막 남아 있는 선한 사람과 선한 제도를 무너뜨리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에게 대한 심판은 너무나 당연하다. 우리 성도들이 여기까지 이른다면 회복하기 어려우니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목회에 최선을 다하며 생활면에서도 모범을 보이는 적극적인 나실인의 삶을 실행하자.
첫댓글 감사히 머물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