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체와 성혈 대축일 2007년 6월 10일
찬미예수님! 신창동 성당 공동체를 모으시는데 얼마나 고생들 많이 하셨습니까? 기도는 얼마나 많이들 하셨습니까? 주님의 공동체 안으로 들어오라는 주님의 목소리는 얼마나 들으셨습니까? 신창동 새 성전을 바라보는 여러분의 눈빛들이 밤하늘의 별빛처럼 빛나고 계시네요.
요즈음 신창동 성당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제가 공사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무엇하십니까?”란 질문을 던졌습니다. 한 분이 대답하셨습니다. “일하고 있는 거 안보여요.” 다른 분에게 물었습니다. “무엇 하십니까?” 그분이 대답하셨습니다. “일해야 처자식 먹여 살리지요.” 또 다른 분에게 물었습니다. “무엇하십니까?” “천주교 성당을 짓고 있습니다.”
같은 일을 하는데,,, 어떤 분은 자기 직업이니 그저 일을 할뿐이었고, 어떤 분은 그 일을 통해서 가족의 생계를 위한 긍지와 보람을 찾았고, 어떤 분은 일과 보람을 통해서 하느님의 성전을 짓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 미사에 오신 분들께도 같은 질문을 던져봅니다. “무엇을 하십니까?” “기도하는 거 안보여요?”라고 말하실 분도 계시고, “자식들 잘되라고 기도합니다.”하는 분들도 계시고, “하느님의 영원한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란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 헤르마스란 분은 교회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하느님 나라에 세워지는 영원한 성전의 벽돌 한 장 한 장입니다. 모도가 적당한 곳에 싸여지고 놓이는 날, 영원한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됩니다.” 사도 바오로도(1고린 3,16-17)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기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만일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여러분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바오로는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1고린 10, 16-17).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어 먹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성체를 받아보십니다. 흔히들 영성체(領聖體)라고 합니다. 모든 신자들이 성체(聖體)를 받아 모신 다음 예수님과 짧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영성체 후 묵상이라고들 합니다. 시에나의 가타리나(1347-1380) 성녀는 영성체 후 묵상을 할 때 이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성체 때 내 영혼이 하느님과 친밀하게 일치되고, 그분의 진리를 깊이 파악했기 때문에, 물고기가 바닷물 속에 있고 바닷물이 물고기 속에 있는 것처럼, 나는 하느님 안에 있었고 하느님은 내 안에 계셨습니다.” 우리 본당의 한 교우는 영성체 후 이렇게 청원기도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제게 오셨으니, 저를 성령으로 가득 채우소서. 주님께서 항상 제게 머무르시니, 저를 성령으로 인도하소서. 성령이 제 안에 충만하오니, 생각도 말도 행동도 주님만을 닮아가게 하소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미사의 의미를 이렇게 가르칩니다. “성찬례는 영성체로 일치가 이루어진다.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는 함께 ‘하나의 예배 행위’를 이룬다. 실제로 성찬례에서 우리를 위하여 차려진 상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식탁이며, 동시에 주님의 몸을 받아먹는 식탁이기 때문이다.”(계시헌장 21항 참조)
성 유스티노는 이 거룩한 몸을 받아먹을 자격을 이렇게 가르칩니다. “빵과 포도주는 옛 표현대로 ‘祝聖(축성)되었기’ 때문에(성 유스티노 호교론 1, 65), 우리는 이 음식을 聖體(성체, 그리스도의 몸)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르치는 진리를 믿는 사람들, 죄를 용서 받고 새로이 태어나기 위해서 세례성사를 받은 사람들, 그리스도의 계명에 따라 사는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여기에 참여할 자격이 없습니다.”(성 유스티노 護敎論(호교론) 1, 66)
초대교회 때부터 천주교 신자들은 예수님을 Pellican이란 새에 비유했습니다. 펠리칸이란 새는 지중해 연안에 살았다고 하는 전설적인 새입니다. 펠리칸은 다른 새와는 달리 알을 낳지 않고 새끼를 낳았습니다. 엄마 새는 새끼가 태어나면 무엇으로 새끼를 먹일까 걱정하며, 몇 날 며칠을 구슬피 울었답니다. 다른 벌레를 잡아 먹이자니, 그 벌레들이 너무나 불쌍하고, 안 먹이자니 새끼가 죽어버립니다.
며칠을 고민 고민하던 펠리칸은 드디어 목에서 피를 토하고, 토한 피로 새끼를 먹임으로써 새끼들을 키웁니다.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서 독립하게 될 때가 되면, 엄마는 죽어버립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자신이 손해를 볼지언정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뿐 아니라, 남을 위해서만 일생을 사셨습니다. 남을 위해서 살기로 결심한 사람만이 성체 안의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 사람 안에서만 성체는 효력을 발휘하는 생명의 양식이 되십니다.
신자들은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하느님과 일치를 이룰 수 있으며, 같은 잔치에 참여하는 형제들과도 일치를 이룰 수 있습니다. 같은 그리스도를 나누어 먹는 신자들은 한 공동체로서 서로 일치되어야 합니다. 성체 안에는 한 그리스도가 있고, 함께 성체를 모시는 우리는 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초자연적인 생명의 나눔, 생명의 빵을 나누는 일치의 성사인 성체성사는 단순히 하느님과 신자 개인과의 교류(交流)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성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과 피를 직접 내주신, 희생과 사랑입니다. 끊임없는 인간 사랑의 표시입니다. 성체를 받아 모신 사람들은 이런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야합니다. 내 안의 사랑이 이웃을 위한 희생과 사랑으로 변해야합니다.
신창동 교우들은 지금 주님의 성전을 짓고 있습니다. 성찬의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고 받아 모실 주님의 집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체육관에서 성체를 받아 모실 때마다 주님께 간절히 기도합시다. “주님 우리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주님께 성전을 봉헌하고, 그 성전에서 주님의 미사를 봉헌하고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하느님 나라가 신창동에 도래했음을 선포하는 사도로, 가정과 사회에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