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인의 탐방 수필> 詩心이 감도는 ‘강남 고려 병원> ¾ 강남 고려 병원 자유 문학 2001봄호 신사년 오늘은 폭설이 지난 후 유난히 매섭게 추운 날씨 속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서울대 입구 7번 출구를 벗어나니, 느긋이 ‘강남 고려 병원’을 향해 빙판길을 구부정히 걸어간다. 지병은 없으나 나이 탓에 가끔 병원 출입이 잦다. 실없는 고객마냥 내가 이 병원만을 고집함은 이곳만이 풍겨주는 잔잔한 정서가 있기 때문이다. 입구에서 부터 품위 있는 동양화와 ‘서목 비단잉어’ 유유히 노니는, 대형 수족관이 자리한 대합실은 고객들에게는 아늑한 거실 같다. 이 병원 주인의 심성이 ‘어질 仁’자인 ‘仁’으로 가는 심미안이 있기 때문이리라.’의술은 仁術’이 아닌가.
담소하는 내방객은 예인이 되게 하고, 부담 없이 누구나 커피도 대접 받는다. 진료실 밖의 세상사는 이면의 또 다른 삶이 떠도는 곳이기에, 이웃집 나들이 가듯 드나드는 이유 말고도 나는 또 다른 속내가 있다. 가슴 뿌듯하고 본받을 만한 인품의 내력과 실속 있는 인간의 품격 높은 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선 환자가 생기면 근처 병원을 찾고, 신속히 상황에 준하는 종합 전문 병원으로 이동한다. 이러한 구조는 우리와는 달리 참으로 합리적이고 체계적이다. 우리 나라 형편상으로는 환자가 생기면 우왕좌왕 번거롭기 그지없다. 고심 끝에 나만이 탁월한[?] 선택으로 이 종합 병원을 단골로 정했다. 내 연령으로 오는 두려움도 상쇄해 줄 것 같고, 또한 병원 측으로서도 친절하면서도 인술과 시술 기술 면을 고루고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근래 들어 의료 대란이 일어나 진료 거부와 같은 믿지 못할 시국인지라, 의사들의 진료 의식을 꼼꼼히 챙겨볼 필요가 있지않겠는가.
정형 외과는 후기 산업 시대를 맞은 현대인의 반려다. 또한 병원의 꽃이다. 실려 들어간 환자가 벌떡 일어나 씩씩하게 퇴원하기도 하는 곳이다. 이곳은 음산한 절규와 원망도 거의 없다. 의사들도 성취감을 만끽하는 진료 과목이다. 더하여 이곳은 재활 의학과가 완벽히 갖추어져 있다.
웃음이 활짝 핀 정형 외과는 인재 의대를 ‘수석’ 졸업한 현대 의술의 짝을 맞추는 미국산 최신 엠알에이(mRA) 픽커(Picker) 기재를 갖추어 놓아 위급한 환자일지라도 이곳 의사들은 당황하지 않고도 진료. 수술 치료 면에서 신속히 대처하고 있었다. 요즘같이 교통난과 의료난이 겹치는 시점에서, 정신적 시간적 손실 없이 당연한 절차로 대접 받고 나서 유쾌히 나설 수 있는 곳이다. 야간 응급실 제도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는 꼭 있어야 할 불과 분의 관계다. 이곳 응급실 전문의들은 묵묵한 성실성으로 급히 실려오는 환자들의 밤의 고통을 빈틈없이 지켜준다. 나는 어지간한 건강 상태에서도 이곳을 자주 찾는다. 이 시대의 지식인으로 존경심을 갖게 하는 친절한 의사와 아늑한 병원 분위기가 마음을 놓이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병원장을 우연히 상면한 자리에서 마침 차 한 잔과 환담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성공한 인생 뒤엔 누구나 훌륭한 모정이 뒤따르고 있다. 건국 초기 모든 정치인의 아내가 다 그러했듯 김 원장 어머니는 인고의 세월을 지혜롭게 견디면서 엄부를 겸한 엄모의 자리를 지켰다. 이 집 가문의 위상을 매섭게 세워낸 ' 김 원장은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어머니는 사양하고 싶다.’고 한다. 왜 그럴까. 아마도 어머님의 힘든 세월을 나누어 지고 온 장남이기 때문이리라. 허나 세상에서 며느리감은 그 모계를 살핀다 하니, 그의 남다른 모정에 대한 존경과 사랑은 이처럼 ' 틀진 가문이라면 어떠한 모양새라도 훌륭한 모정은 종종 접할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 각자의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다 한다. ‘인연’이라는 종교적 말씀은, 이 얼마나 많은 우리들의 일상을 풀어가고 맺어주며, 인간의 삶에 합리성과 위안을 가져다 주는가. 뒤틀린 맺음은 전생의 ‘악연’으로도 치부된다. 행복한 순간을 누리는 인간들은 순연에 의한 것이며, 행복해 함도 각자 자신의 능력이라 미화시킬 수가 있다. 인간 스스로 본인에게 어울리는, 즉 하고자 하는 생업과 업보를 미리 환히 꿰뚫어 볼 수 있다면, 그 누가 반복되는 불행이나 ‘악연’에 의한 어리석음을 되풀어 가질 수가 있겠는가. 김 원장은 Y대 정치 외교학과 2년 재학 중 부친의 권유로 그 대학 의예과에 다시 입학한 사람이다. 당당히 입지를 굳힌 한 정치가의 장남인 정외과 학생이, 이때부터 고되고도 고된 의학도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정치보다는 인술을 펼치라.’ 고 아들에게 당부한 부친의 권유 때문이 아닌가. 부친의 시대를 관통한 예감과 정치 현실 직시는 정확했다. 때문에 지금의 안정된 한 사람의 인술의 인재를 키워낸 것이다. 장남인 그도 일찍 부친의 말씀에 따랐던 효심 이 없었던들 오늘의 이 영광이 있었으랴. 만약 그의 부친의 가르침을 배반한 채 요즘 정치판에 뛰어들어 가족과 가문에 누를 덧씌우며 어설피 살아왔다고 생각해 보자. 그때 그 한 정외과 학생은 요즘 정치가들과 더불어 이 땅에 모진 악의 씨앗을 심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수려한 외모와 주위 환경 여건으로 봐서는 전문 정치인이나 어떠한 권력도 손아귀에 쥘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김 원장은 ‘의학도의 길을 선택했다.’ 고 담담하게 술회한다.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나를 감동케 했다. 요즘 ‘사’자 달고도 분별없이 ‘권력 실세 구제’인 양 정치판에 빌붙고, ‘국태민안’의 책임은 서로 양보만 하는 작태를 보라. 엉성한 권력자의 부정은 몽매한 자식을 내세워 국가를 좀먹게도 하지 않았는가. 줏대 없는 지식인은 싱싱한 젊음들을 ‘거리의 천사’로 내세워 비명 횡사케 하고 있다. 국가, 집안 꼴은 난파선이다. 이 나라의 배는 북으로 갈지, 남으로 갈지 길을 잃은 상태다. 지금도 폭우 속에서 정치 질서와 사회 질서는 무너져 가기만 한다. 달콤한 공약과 정치 전략 기회의 허망한 약속들은 싸움판 속에서 팔 잘린 실직 양들의 피 흘리는 몸뚱이에 빚덩이라는 짐마저 지워 놓았다.
정치가들의 철학적 ‘仁’은 대를 이어 봉사(?)할 끼리들만의 과욕만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실정으로 변했다. 이러한 권력 대물림은 집단 살인의 대물림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정신이 어떻게 된 것 일까. ‘政治’란 원래 물(水)이 둑(坮)을 따라 순리대로 바르게(正) 흘러가며 ‘널리 사물을 다스리는 일’(政)이란 뜻이다. ‘법’자 또한 물이 흐르듯(水) 순리대로 흘러가는(去) 이치란 뜻이다. 원장의 부친께선 일찍이 아들에게 ‘깨끗한 장인이 되라’ 하셨다. 그 어른의 선견 지명에 고개 숙여진다. 적어도 시인들과 의사는 정치가들처럼 집단 살인을 않한다. 김 원장 부친인 '김택수'제헌국회의원의 정치관을 이제 와서야 나 같은 시인이 어림할 수 있겠기에 다행스럽다. 그 시절 그 정객이 그리워 ‘구관이 명관’이라 회고함을 탓하지 말자.
조상의 혜안은 자손의 살생을 미리미리 막아 주었고, 지금까지 인술을 베풀며 ‘최악의 정치판’을 비켜 살 수 있게 되어 오히려 이 댁 가문의 전화위복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한 가정은 나라의 기초이자 국가의 어머니다. 기성 세대는 다시 한 번 자손들의 먼 미래를 숙고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당시 대정객의 선택을 받아들인 아들의 효심은 오늘날 영롱한 인술의 인재로 우뚝 선 동기가 됐을 뿐만 아니라 ‘효도의 귀감이’ 아니라 할 수 없다. 그는 대종합 병원에 버금가는 시설과 과감한 투자로 지금도 각박한 도시에서 구도의 인술을 꽃피워 간다. 이는 과거 부터 푸근한 인간의 정에 옷깃 여미게 하는 남모를 부자지간의 끈끈한 정이 있어서가 아니랴.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 – 바로 내 앞에 정직한 한 남성이 있다. 무엇보다 인간적인 ‘인술’에 있어서랴. 나도 이젠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웬만한 불편쯤은 웃음으로 되돌릴 줄 아는 너그러움을 가지리라. 오늘은 잠시도 헤어지고 싶지않은 김 원장의 방을 나선다. 입원실 모퉁이를 돌아 나오자, 방금 헤어진 원장 부부의 재미스런 웃음 소리가 병원 복도를 아늑하게 녹여주듯 흘러나온다. 이곳은 바로 나의 ‘신념의 병원’이 될 듯도 하다. 더불어 나도 이제부터는 그들 부부처럼 언제나 건강하게 쾌청하게 살리라. 이 인성의 병원문을 가뿐히 나서며, 나는 늦은 밤 병실에 남아있는 환자들의 상황을 이승의 필연적인 섭리로 남겨 놓은 채 발길을 재촉한다. - 그에게는 한국적인 모정이 있었다. - 그 아비의 아들 같은 효심이 있었다. 칠흑 같은 밤에 신선한 바람이 분다. 냉랭한 한국적인 정치 바람도 불어온다. 그러나 그 누군가가 ‘내일은 내일의 빛나는 태양이 뜬다.’ 하지 않았던가. -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