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불리 올릴 만한 극은 아니네요.
하지만 탄탄한 실력을 쌓은 교회라면 한번쯤 욕심낼 만하죠.
힘든만큼 힘은 있으니까요.
----------------------------------------
[제목] 순교(殉敎)
[페이지] F01
劇團默示創立紀念公演(극단묵시창립기념공연)
(말씀으로 이루어진 성극)
殉敎(순교)
MARTYROOM
全二幕四場(전이막사장)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요한복음11장25~26절
場所(장소):湖巖(호암)아트홀
日時(일시):4月(월)29日(일)~5月(월)3日(일)(11.3.7時(시))
出演(출연):劇團(극단), 映畵(영화), TV탈랜트 信友會(신우회)
作演出(작연출):林元植(임원식)
製作(제작):韓國基督敎文化藝術宣敎院(한국기독교문화예술선교원)
企劃(기획):大韓(대한)예수교長老會(장로회)
基督靑壯年勉勵會全國聯合會(기독청장년면려회전국연합회)
[페이지] F02
劇團默示創立紀念公演(극단묵시창립기념공연)
(말씀으로 이루어진 성극)
殉敎(순교)
MARTYROOM
全二幕四場(전이막사장)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요한복음11장25~26절
場所(장소):湖巖(호암)아트홀
日時(일시):4月(월)29日(일)~5月(월)3日(일)(11.3.7時(시))
出演(출연):劇團(극단), 映畵(영화), TV탈랜트 信友會(신우회)
作演出(작연출):林元植(임원식)
製作(제작):韓國基督敎文化藝術宣敎院(한국기독교문화예술선교원)
企劃(기획):大韓(대한)예수교長老會(장로회)
基督靑壯年勉勵會全國聯合會(기독청장년면려회전국연합회)
[페이지] F03
<나오는 사람들>
박관준-----------------------
부인-------------------------
영창-------------------------
시누이-----------------------
주기철-----------------------
안이숙-----------------------
선교사-----------------------
강응식-----------------------
최칠복-----------------------
허문식-----------------------
정봉익-----------------------
미나미-----------------------
백가-------------------------
야마모도---------------------
하야시-----------------------
회장목사---------------------
친목회장로-------------------
그밖에 기타 다수.
[페이지] 001
[막] (제1막)
(무대)
무대정면 뒷쪽으로는 교회를 상징하는, 극히 양식화 된 교회건물과 교회안으로 통하는 문이 역시
상징적인 형태로 위치하고 있으며, 그 문에서 약간 떨어진 앞쪽에서 부터는 무대정면 가장 가까운
거리까지 층계식으로 된 계단이 적당한 간격을 두고 조화있게 높낮음이 형성되어 있다. 하수쪽에는,
교회와 관준의 집 중간쯤에, 교회당으로 꺽어져 올라가는 통로가 나 있고, 그 통로 바로 밑에는 관준의
집으로 들어가는 계단식으로 된 출입구의 통로와 중앙쪽으로 관준의 부부가 살고 있는 안방이 위치하고
있다. 상수 뒷무대 쪽으로는 정자임을 상징하는 양식화 된 지붕과 함께, 약간 높은 단이 자리잡고
있으며 바로 그밑, 앞무대 하수쪽으로는 취조실이, 그리고 그 취조실 뒷쪽으로는 쇠창살 사이로
감옥안이 드려다 보이고 있다.
[페이지] 002
[장] (제2장)
음악과 함께 막이 오르면- 이어, 스산한 바람소리. 무대 전체는 겨우 윤곽을 알아볼수 있을 정도로
마냥 어둠컴컴 하기만 하다. 이윽고, 절규에 가까운 남자의 애절한 도창 소리가 객석의 분위기를
잡는다.
[도창(소리)] 아이고, 하나님!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어쩌다 이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드셨오? 영변
성안의 이름 난 부호의 외아들로 태어났건만, 술과 계집으로 재산을 다 탕진하고 불혹이 가까워 오는
나이에 저렇게 폐인이 다 되다시피 되었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으리까? 어찌하면 좋으리까? 하나님,
하나님, 자비로우신 우리 하나님! 저 영혼을 불쌍히 여기사 구원의 손길을 뻘쳐 주시옵소서!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 우리 하나님!
(도창이 거의 끝날 무렵 쯤이 되면 다시 스산한 바람소리와 함께 무대 중앙쪽에 위치하고 있는,
교회당 쪽으로 부터 한줄기의 희미한 불빛이
[페이지] 003
객석 통로쪽을 향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한다. 이윽고, 술병을 옆에 낀, 관준이 조명을 받으면서 객석
통로를 따라 비틀 비틀, 무대중앙에 있는 교회당 쪽을 향해 발길을 옮기고 있다. 이따금 술병을
기우리기도 하는 관준의 뒷모습은 글짜 그대로 마냥 애처롭기만 하다. 관준이 교회당 앞에 까지
이르렀을 때 쯤이 되면, 무대조명은 어느듯 완전히 밝아져 있는 상대가 된다. 정자에 앉아 화투를 치고
있던 정봉익, 허문식, 김칠복, 그리고 어깨 넘어에서 화투판을 구경하고 있던 강응식 등이 호기심에 찬
얼굴로 동작를 멈춘체 관준의 거동을 바라보고 있다)
[관준] (바지의 앞단추를 풀으며) 미안합니다. 하나님! 나--- 십자가 앞에다 실례 좀 해야겠수다!
(돌아서서 소변을 보며) 야소님--- 나--- 천당가긴 틀렸죠? 더구나 천당은 요즈음엔 아주
만원이라면서요? 무슨 방법이냐구요? 거기도 암표장사가 있을테니까 문앞에서
[페이지] 004
암표를 사가지고 들어가면 될거라 그런 말씀이 올시다. 그걸 몰랐죠? 하하하---(단추를 잠그며
돌아선다)
[봉익] (낮으막한 소리로) 몸이 나아지니까 또 시작이군!
[관준] 한번 싸악 하고 나니까 시원하군! 역시 배설이라는건 좋은거야. 똥을 누울 때나 오줌을
누울때나 마누라한테---
[문식] (관준을 향해) 이봐 관준이!
[관준] (본다) ---?
[문식] 대낮부터 웬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셨어?
[관준] 응, 마셨지--- 헌데 자네들이야말로 대낮부터 거기서 뭣들을 하고 있는거야?
[칠복] 보면 모르나?
[관준] (정자 위로 올라가며) 누구 돈을 따먹을려고 그래? 따먹어 봤자, 친구 돈인데, 그돈 따먹고도
속들이 편하냐? 따도 그렇고, 잃어도 그렇고--- 그럴 돈이 있으면, 차라리 나처럼 이렇게 술이나
마시라고, 친구들간에 의리 상하지 말고.
[봉익] 작년까지만 해도 냉이꽃 필때 까지도 못살것 같
[페이지] 005
더니만, 몸이 좀 나아지니까 또 큰 소리군!
[관준] 내가 왜 죽어? 이 박관준이가 그렇게 쉽게 꼬꾸라질 것 같으냐? 이래 뵈도---
[칠복] 큰소린, 제기헐
[문식] 자, 어서 처!
(그들은 다시 화투장을 돌리기 시작한다)
[응식] (한쪽 구퉁이에 놓여 있는 술상쪽으로 가며) 자 이리 오게. 우린 여기 앉아서 술이나 드세나
[관준] 좋지, (가서 앉으며) 자, 내 술 먼저 받게.
[응식] (잔을 내밀며) 헌데, 어디서 마시고 오는 길인가?
[관준] 강계 읍내에 있는 초원옥에서.
[응식] 초원옥?
[관준] 서울서 애기기생들을 새로 데려다 놨다기에---
[응식] 그래, 재미 좀 봤나?
[관준] 암 봤지, 봤구 말구. 오랫만에 솜털 맛을 보니까. 그것도 아주 여간 별미가 아니던데 그래.
[응식] 그래 며칠만에 오는건가?
[관준] 엿세밖엔 안 있었어
[응식] (딱하다는듯) 자네도 이젠 정신 좀 차리게. 자네 마누라가 요 며칠동안 자넬 얼마나 찾으러
다닌줄 아나?
[페이지] 006
[관준] 왜 찾으러 다녀? 내가 그런 사람인줄 몰라서 찾으러 다녀?
[응식] (담배에 불을 붙인다) ---
[관준] 자, 어서 그 술잔이나 비워-
[응식] 자네도 생각해 보게나 큰애를 낳고 나선 낳는 쪽쪽 땅에다 갖다 묻고, 이번에야 설마
했던것이 또 그 지경을 당했으니 자네 마누라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나. 그럴 때일수록 자네가 더
마누라를 위로해 주고---
[관준] 그래서 나도 이렇게 또 술을 퍼 마시는게 아닌가
[응식] 그건 구실이구--- 어쨌던 자넨---
[관준] (제지하듯) 자, 자, 그런 얘긴 그만하고, 어서 그 잔이나 비우라니까!
(응식, 술을 마신다)
[응식] (잔을 건네주며) 참 세상일이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군. 자네같은 부호집의 아들이 이런
신세가 될줄이야---
[관준] (잔에 술을 따루며) 시끄러!
(이때, 찬송가와 성경책을 든 선교사가 전도사와 함께 몇몇 신도들을 데리고 교회당 쪽을
[페이지] 007
향해 언덕길을 막 오르고 있다)
[응식] (그들을 보자 소리를 죽이며) 여보게들, 그만 일어나세 저기 또 저 양코백이가 올라오네. 난
저 재수있는 양코백이 놈만 보면 하루종일 입맛이 없어서---
[문식] (일어나며) 나도 그래! 얼굴만 마주쳤다 하면, 꼭 무슨 거머리처럼 딱 붙어 가지곤---
[칠복] (화투장 내던지며) 제기헐! 방가이도 못하게 하필이면 꼭 요럴 때 나타날건 또 뭐야!
[봉익] 자- 어서 가세.
(강응식도 따라 일어선다)
[관준] (응식에게) 아니 왜 일어나지?
[응식] 나도 저놈의 양코백이만 보면---
[관준] 오면 왔지, 그깐 놈이 뭐가 무섭다고
[응식] (신을 신으며)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관준] 아니 그렇다고---
(모두, 서둘러 자리를 뜬다. 그러나 관준만은 술상앞에 그냥 늘어붙어 앉아 있다. 그런가 하면,
선교사가 오는 쪽을 힐끗 한번 돌아다 보고 나서는 짐짓 오기를 부리듯, 보라는 듯이 잔에 술을 따뤄
연거퍼 몇잔을
[페이지] 008
들이킨다)
[선교사] 전도사님, 피곤하시죠?
[전도사] 아뇨, 전 별로--- 선교사님이야말고 정말 피곤하시겠어요.
[선교사] 오늘은 은혜로운 심방이 많아서 그런지 통 피곤한 줄 모르겠는데요.
[전도사] 저도 그래요. 아마 오늘은 그 어느때 보다도 새 신자들의 집엘 많이 들렸었기 때문에
그런가 보죠?
[선교사] 그보다도 하나님께서 늘 우리 곁에 계셔서, 항상 우리들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계시기
때문이겠죠.
[전도사] (혼잣말처럼) 할렐루야!
[신도들] (속소리로) 아-멘
[선교사] 그러나 저러나 날씨가 왜 이렇죠?
[신도1] 그러게 말이에요. 하늘도 잔뜩 찌푸러진데다가 바람마저 음산한걸 보니, 아마 비라도 한바탕
쏟아질 모양이죠?
[신도2] 내일이 주일날인데, 이왕 비가 내릴려면 오늘 다 쏟아져 내려 주었으면 좋겠는데.
[전도사] 그러게 말이에요.
[페이지] 009
[선교사] (교회쪽으로 가려다 말고, 정자쪽을 보며) 아니 저기 앉아있는 저분은 박선생님이
아니십니까?
[전도사] 맞아요. 박선생님이세요.
[선교사] 술을 마시고 계시군요.
[전도사] 저분만 교회엘 나오시게 하면 이 고을에선 큰 전도가 될텐데.
[선교사] (정자쪽으로 다가가며) 안녕하십니까. 박선생?
[관준] (돌아다보지도 않고, 술을 쭈욱 들이키고 나서) 어서 오십시요. 코큰 목사님.
[선교사] (웃으며) 코가 크다고 너무 놀리시지 마십시요.
[관준] 놀리는게 아니라 부러워서 하는 소리 올시다.
[선교사] 그건 그렇고 치질은 좀 어떠신지요?
[관준] 덕분에!
[선교사] 치질엔 아주 술이 좋지 않은건데--- 웬일이십니까 낮부터 이렇게---
[관준] 술을 먹고 있느냐, 그런 말씀이신가요?
[선교사] (웃고 있을 뿐) ---
[관준] 나도 천당엘 좀 가보고 싶어서요.
[선교사] 천당이요?
[페이지] 010
[관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댔다구 예수를 믿어서 천당엘 가나 나처럼 이렇게 술을 먹고 천당을
가나 천당엘 가는건 다 마찬가지가 아니요?
[선교사] 무슨 말씀이신지---?
[관준] 예수를 믿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들 하던데 나도 이 술만 마시면 이렇게 마음이 즐겁고
평안해지니 나에겐 이게 바로 천당이 아니고 뭐겠오?
[선교사] 그건 천당이 아니라 일종의 환각이고, 착각이죠. 마치 아편쟁이들이 아편을 피울때
느끼는것 같은 그런 착각이란 말입니다.
[관준] 착각이고 뭐고 어쨌던 기분만 좋고, 마음만 평안해지면 되는것 아니겠오? 천당이라는게 뭐
별거요 그런게 바로 천당이지.
[선교사] 그런건 평안이 아니라 마비현상이라는 겁니다.
[관준] ---?
[선교사] 머리도 그렇고 몸과 마음이 마비가 되어버리면 어떻게 되는건지 아십니까?
[선교사] 죽는 겁니다.
[페이지] 011
[관준] 죽어요?
[선교사] 하나님 아버지를 마음에 영접하지 못하고 죽어 버린다는 것은 이세상 비극중에 비극이요.
슬픔중에 슬픔인 것입니다.
[관준] 그러니 어떻하란 말이요?
[선교사] 우선 믿으십시요!
[관준] 뭘 믿으란 말이요?
[선교사] 하나님을 구주로 믿으시라는 겁니다. 그리고 아버지라고 부르십시요.
[관준] 누구를 아버지라고 부르라는 거요?
[선교사] 하늘에 계신 그분---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르시란 말입니다.
[관준] 난 아버지가 둘이 아니에요!
[선교사]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죠?
[관준] 난 하늘에 아버지를 둔 적이 없어요! 우리 아버진 땅에서 사셨었단 말이요! (약간 격한
어조로) 그리고, 그런식으로 우리 어머닐 모독하지 말아요! 우리 어머닌 정숙한 여자였오! 창녀가
아니였단 말이요!
[선교사] 아니---?
[페이지] 012
[관준] 아버지를 둘씩이나 둘만큼 그렇게 부도덕한 여자는 아니였어요!
[선교사] 난 그런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물론, 아버지가 없이 태어난 사람은 이세상에 단
한사람도 없겠죠. 그러나 아무리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일지라도 자기 자식을 천당으로 보내줄 수는
없는 거에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진 못하니까요.
[관준] 그럼 하늘위에 있다는 그 아버지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말이요?
[선교사] 물론이죠.
[관준] 여보시요. 코큰 목사! 제발 사기 좀 작작쳐요!
[선교사] 사기---?
[관준] 사기를 쳐도 좀 적당하게 쳐야지--- 하늘에 있긴 뭐가 있단 말이요? 하늘에 정말 그런
아버지가 있다면 있다는 그 증거라도 좀 보여 주시요! 하다못해, 그 아버지가 먹다남은 빵
부스러기라도 있으면 그거라도 한조각 보여달란 말이요!
[선교사] (약간 당황하는 빛을 감추지 못한다) ---
[페이지] 013
[관준] 그렇지 않고서야 하늘에 뭐가 있는지 내가 그걸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오! 본적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선교사] 물론 보여 드릴수는 없읍니다. 그러나 박선생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분의 존재와
그분의 위력을 믿을수 없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얘깁니다.
[관준] 그건 또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요?
[선교사] 바람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눈에 보이는 그 어떤 무서운 물체 보다도 훨씬 더 거대한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관준] ---?
[선교사] 박선생님, 우리는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생들 입니다.
그러니 하루속히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믿고 우리 다 같이 아버지 하나님이 계신 저
하늘나라로 가십시다. 천당으로 가시잔 말입니다.
[관준] (딱꾹질을 하며) 천당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난 사십팔종의 소원으로 이루어진
극락세계를 믿고 있는 사람이요. 불도의 진리를 통해서 왕생극락을
[페이지] 014
할수도 있는건데 동양사람인 내가 왜 동양사람의 종교를 두고 하필이면 서양사람의 종교를 믿겠오.
그러니 나한텐 두번 다시 그런 소릴랑은 말고 어서 딴데나 가서 물어 보시요.
[선교사] 박선생님! (관준의 손을 덥썩 잡으며) 난 오늘부터 박선생님을 형님이라고 부르겠읍니다.
[관준] 형님이라구?
[선교사] (간절하게) 네!
[관준] 당신 또 실수를 하는구만! 난 당신같은 코큰 동생은 둔 적이 없어요.
[선교사] 형님, 그러시지 마시고 제 말을 좀더 들어 보세요. 이 성경에 쓰여있는 천국은 참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이 성경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생명의 말씀만을 적어놓은 책이란 말입니다.
[관준] 보아하니 책두께로 봐서도 그렇고, 사서삼경이나 제자백가의 유교서적과 팔만대장경과 같은
불교경전에 비하면 아주 형편없는 책이겠군 그래!
[선교사] 허지만 석가모니같은 사람은 죄많은 우리 인간을 위해 대신 죽어 주지는 못했읍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인간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페이지] 015
십자기에 못박혀 우리 대신 피를 흘리시고 돌아가셨읍니다. 쉽게 말하면 나나 형님같은 죄많은 인간을
위해 죽어 주셨단 말입니다. 그러니 형님도 회개하시고 오늘부터 우리와 함께 예수를 믿으십시다.
[관준] 당신이나 잘 믿어 보시요. 나는 공자님이나 석가를 믿는 사람이니까---
[선교사] 형님! 사도 바울같은 분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가다가 다메셋에서 "사울아!
사울아! 너는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의 얼굴을 올려다 보다
말고 자기도 모르게 그자리에 넙쩍 엎드려 눈물로 회개하면서 그 자리에서 일어나 그분의 제자가
될것을 결심하고 그길로 그분을 따라 나섰읍니다.
[관준] 그래서요?
[선교사] 형님도 그렇게 될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형님하고 같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자는 겁니다.
[관준] (잔에 술을 따루며) 기도를 하든지 말든지 그건 당신의 자유니까---
[페이지] 016
[선교사] 자, 그럼 다 같이 기도 하십시다.
(모두 엄숙하게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관준은 머리를 숙이는 대신 꿀걱꿀걱 술을 들이킨다)
[선교사] (기도) 찬송과 영광을 세세무궁토록 홀로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전지전능하시고, 살아서
역사 속에 역사 하시며, 인간이 갖은 온갖 형용사로서는 주님의 형상을 표현할 길이 없는 사랑이
충만하시고 거룩 거룩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관준] (잔을 놓으며) 술맛 싹 달아나가는구만!
(음악과 함께 서서히 조명이 꺼지면서---)
- 암전 -
[장] (제2장)
(이윽고 음악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조명이 관준의 집 안방으로 옮겨진다. 관준의 부인 이관선이
등잔불 밑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다. 그녀의 바로 옆에는 대여섯살 가량 되보이는 아들 영창이가 누워
자고 있다.
[페이지] 017
시누이가 굴비 한두루미를 들고 총총 걸음으로 하수쪽에서 모습을 들어낸다.)
[시누이] (방쪽을 향해) 올케 있나?
[부인] 아, 네---
(부인 바느질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연다. 다리가 불편한듯 걸음걸이가 약간 이상하다)
[시누이] (굴비 두루미를 들어 보이며) 이거 우리 강계 시집에서 보내온 영광굴비인데---
[부인] 영광굴비요?
[시누이] 섬 두루미를 보내 왔길래 올케네 하고 나누워 먹을려고---
[부인] 이 귀한거 이렇게---
(부인 굴비를 받을려고 마루 아래로 내려가다 말고 갑짜기 비틀하며 마당 쪽으로 나동그라진다)
[시누이] 아이구 저런! (달려가 일으키며) 괜찮어?
[부인]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괜찮어요.
[시누이] (부축하며) 자, 이리--- (조심스럽게 마루에다 앉혀놓고는, 자기도 같이 앉으며) 빨리
나아야 할텐데---
[페이지] 018
[부인] 곧 났겠죠.
[시누이] ---정말 올케 볼 면목이 없네
[부인] 무슨 말씀을---?
[시누이] 그래도 아직도 저렇게 정신을 못채리고 있으니--- 그래 오늘은 안들어 왔나?
[부인] 네
[시누이] 어디 가서 처박혀 있는지도 모르고?
[부인]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시누이] 참 한심한 인간도 다 보겠군! ---어쩌다가 사람이 저모양 저꼴이 되버렸는지--- 올케도
그렇지 그냥 돼지게 내버려 두지 않고, 뭐가 그렇게 대견하고 아쉬운 인간이라고 그런 짓을
해가면서까지 사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나, 그 그래!
[부인] ---허긴 나도 여러번 망서리면서 고민도 많이 했어요! 마음이 독하질 못해서 그런지,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칼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가도 끝내 내려치질 못하고 그냥 되돌아 나온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으니까요. 이런 얘긴 형님한테 처음 들려드리는 얘기지만, 그날도 단단히 마음을 먹고,
[페이지] 019
부엌으로 들어가 도마위에다 손가락을 올려 놨는데 막상 칼을 내려치려고 하니까. 또 도무지 용기가
나질 않더군요. 그래 어쩔수 없이 다시 칼을 내려놓는데 갑짜기 머리가 멍해지더니,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거에요. 난 귀를 의심하면서 소리나는 쪽을 향해 귀를 기우렸죠.
[시누이] (다급한 어조로) 그랬더니?
[부인] "내 불쌍한 종아! 네 남편을 구할 약은 네 종아리에 있느니라" 고 하시는 하나님의 생생하신
음성이 들려오는 거에요. 순간, 나도 모르게 칼이 손에 덥썩 집혀지더군요. 그 다음엔 뭐가 어떻게
됐었던건지 지금도 통 생각이 나질 않어요. 다만 대접에 담겨있는 피에서 김이 무럭 무럭 나고 있었던
기억밖엔 없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저의 연약한 마음과 우유부단 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제옆에서
절 붙들어 주셨었던건가 봐요
[시누이] 그래 걔는 아직도 그런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나?
[부인] 모르고 있어요. 제가 그런 얘길 들려주지도 않았으니까요. 그인 아직도 녹용을 구해다 준걸로
알고 있어요.
[페이지] 020
[시누이] 그래 먹긴 잘 먹던가?
[부인] 처음엔 무슨 건덕지 같은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 같다고 하면서 무슨 놈의 녹용이
이런놈의 녹용이 다 있느냐고 투덜거리더니 나중에 보니까 한모금도 남기지 않고 먹긴 다 먹었던데요.
[시누이] ---어쨌던 정말 고마워요 올케. 그런 일은 한핏줄 한동기간이라도 하기 어려운 일인데,
인간들 축에 넣을수도 없는 그런 속물을 위해서 그런 끔찍한 일을 다 해내다니---
[부인] 원 별 말씀을---
[시누이] 그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좋을지--- 그렇해서 기껏 났게 해놓으니까 제버릇 개 못준다고
났차마자 또 저모양 저꼴이 되서 헤매고 다니니 저놈의 인간을 죽일수도 없고 어떻하면 좋지?
(멀리서 교회당의 종소리)
[부인] 아이구,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또 병원 갈 시간이 늦었으니---(일어나면서) 성님,
미안하지만 방에 들어가셔서 제 성경책 좀 내다주시겠어요?
[페이지] 021
[시누이] 왜? 병원엔 안가고?
[부인] 갔다 오는 길에 곧장 교회로 가서 기도나 좀 하고 올려구요.
[시누이] 그래, 그럼 내가 내다 줄게.
(시누이 방으로 들어가 방바닥에 놓여 있는 성경책을 들고 나온다)
[시누이] 내가 병원까지 데려다 줄까?
[부인] 괜찮아요. 그보다도 애옷 때문에 아직 설겆이를 못해 놨는데, 들어 가셔서 설겆이나 좀
해주시고 가시겠어요?
[시누이] 그래, 그렇잖어도 뭐 일이나 좀 거들어 줄게 없나 해서 겸사 겸사해서 온거야.
[부인] 그럼 수고 좀 해 주세요.
[시누이] 그래, 어서 다녀와요.
[부인] 그리고 그이가 혹시 올런지 몰라서 쟁반에다 상을 다 봐 놨으니까 들어오거든 국이나 좀
따끈하게 데워서 갖다 드리세요.그리고 영창이가 깨거든 걔도 밥 좀 차려 주시구요.
[시누이] 알았어요. 어서 갔다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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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그럼 나 다녀올게요.
[시누이] 그래요.
(부인 다리를 절뚝거리며 대문을 나선다. 측은해 하는 표정으로 부인의 뒷모습 바라다보고 서있는
시누이. 이윽고 금방이라도 쓸어질듯한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올케의 뒷모습을
보자, 갑짜기 가슴이 메이는듯, 솟구치는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며 돌아서서 눈물을 닦는다. 그리고는
천천히 무릎을 꿇는다. 음악이 배음으로 깔리기 시작한다.)
[시누이] (기도) 자비하시고 사랑이 충만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우리 올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시던 그 손으로 올케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사, 하루속히 완쾌되도록 해
주시옵시며 올케의 갸륵한 마음을 어여삐 여겨 주시어 그녀의 정성을 봐서라도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주색에 빠져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우리 관준이의 마음을 돌이키게 해 주사 하루속히 하나님의
품안으로 돌아와 하나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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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로 성실하게 이세상을 살아갈수 있도록 성령의 은총과 기적의 역사를 허락해 주시옵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옵고 기도하옵나이다.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히 바라옵고 바라옵는 것은---
(시누이가 기도를 올리고 있는 동안, 부인 이광선은 성경을 옆에 낀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여전히
다리를 절뚝거리며 무대 중앙에 위치한 계단앞을 내려와, 다시 상수쪽으로 꺾어져 들어간다. 이따금
멀리서 들려오는 뇌성소리와 함께 번개불이 섬광처럼 무대위를 스치고 지나가기도 한다. 부인이 무대
밖으로 완전히 모습을 감춘 후에도 시누이는 그자리에 그대로 앉은채 계속 기도를 드리고 있고,
정자위에는 어느듯 조명이 훤하게 들어와 있다)
[시누이] ---(간절하게) 아-멘!
(시누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 안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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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댓자로 누워 잠을 자고 있던 관준이 눈을 비비며 부시시 몸을 일으킨다)
[관준] (하품을 하며 사방을 돌아다 본다) 아이구--- 시간이 얼마나 됐는데 벌써 이렇게 날이 어두워
졌나?---그럼 그만 일어나 볼까?
(마른번개가 무대를 스치고 지나간다)
[관준] (하늘을 올려다 보며) 비가 올려나?
(정자를 나와 집쪽을 향해 비틀비틀 걸음을 옮겨놓는 관준. 이윽고 대문 안으로 들어선다)
[관준] (여전히 비틀거리며 방쪽을 향해 큰소리로)
여보!
[시누이] (부엌에서 나온다) ---
[관준] 여보!
[시누이] (한심하드는듯 혀를 찬다) ---
[관준] (마루에 앉아, 신을 벗으며) 집을 비우고 어딜 나다니는거야?
[시누이] (쏴붙이듯) 너야말로 어딜 나다녔다 오는 거냐?
[관준] --- 아 누님 오셨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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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누이] 얘! 너도 사람이냐? 인간의 탈을 썼으면 어쩜 사람이 그럴 수가 있니 응?
[관준] 왜요? 내가 뭐가 어때서요?
[시누이] 뭐가 어때서? 그래, 그럼 너 나하고 얘기 좀 하자! 너 엿새동안 어디서 뭘하고 있다가
이제서야 기어 들어오는 거냐?
[관준] (딱꾹질만 할뿐) ---
[시누이] 어딜 가서 쳐박혀 있다 들어오는 거냔 말이야!
[관준] ---집사람은 어디 갔어요?
[시누이] ---
[관준] 어딜 갔느냐니까요?
[시누이] (퉁명스럽게) 병원에 갔다!
[관준] (약간 의아해 하며) 병원에요?
[시누이] 그래
[관준] 아니 왜?--- 어디가 아픈가요?
[시누이] 몰라서 묻니?
[관준]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네?
[시누이] 아니 그럼, 넌 올케가 병원엘 다니고 있다는 것을 여지껏 모르고 있었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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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준] ---병원엘 다니고 있었다니요?
[시누이] 네가 녹용을 먹던 바로 그날 부터란다.
[관준] (더욱 의아해 한다) ---?
[시누이] 근 두달이 다 되가는데도 아물기는 커녕 상처가 자꾸 더 도지는 모양인데---
[관준] 상처라니요?
[시누이] 네가 몸이 나아진게 녹용을 먹어서 나아진건줄 아니?
[관준] 아니 그럼---
[시누이] 네가 먹은건 녹용이 아니였어! 네 집사람의 피와 살이였지!
[관준]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죠?
[시누이] 네 병을 낫게 할려고 그 종아리를 째서 피를 내고 살점을 점여서 너한테 먹인거란 말이다!
[관준] 뭐라구요? 아니 그럼 그게 사슴 피가 아니고---?
[시누이] 네 안사람의 생피였어! 생피!
(요란한 뇌성과 함께 마른번개가 친다)
[시누이] 남의 귀한 집 딸을 데려다가 호강은 못시킬 망정, 갖은 고생 다 시키고 이젠 그것도
모자라서 멀정한 사람을 다리병신을 만들어!
[관주] (허탈한 표정) ---
[시누이] 올케네 집안도 그렇지만 우리 집안은 또 어떤 집안이였니? 우리 어머닌 어떤 분이셨고,
우리 아버님은 어떤 분이셨었느냔 말이야! 네가 우리집 가문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놈이면, 절대로
이런 식으로 살아가진 못할거야! 넌 외아들로 자라나긴 했지만, 우리 가문을 이어 갈 집안의 장손이고
대들보란 말이다! 그런데도 한심스럽게---
[관준]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괴로운듯)
그만--- 그만 하세요!
(점점 잦아지는 천둥과 뇌성소리)
[관준] 나 잠깐 나갔다 오겠어요
[시누이] 어딜?
[관준] 병원에요.
[시누이] 아니 밥도 안 먹고?
[관준] 갔다 와서 먹을게요.
(하며, 신도 신지 않은채 밖으로 뛰어 나간다. 그러나 여전히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다시
번개와 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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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듯 비틀거리며 무대중앙 계단을 내려오는 관준. 갑짝스러운 뇌성과 함께 요란한 천둥소리가 무대
전체를 온통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 넣는다. 이윽고, 고막을 째는 듯한 뇌성과 함께 청천병력과도
같은 날벼락이 관준의 머리를 때린다. 두손으로 머리를 감싸쥔채, 그자리에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버리는 관준)
[관준] (공포에 질려 헛소리를 치듯) 하나님--- 하나님--- 제발 살려주십시요. 하나님!--- 다시는---
다시는--- 죄짓지 않고--- 하나님--- 제발--- 제발, 용서해 주십시요. 하나님!--- 살려주시기만
하면--- 교회도 나가고--- 하나님이 시키시는대로 뭐든지 다--- 제발--- 제발---
[소리] (에코) 관준아! 관준아! 절벽은 위험하니 혈벽으로 가거라! 그곳이 바로 너의 영원한
안식처가 되리니 조금도 주저치 말고, 어서 일어나 혈벽으로 가거라! 혈벽으로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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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준] (허공을 향해) 혈벽으로 가라니--- 거기가 어디옵니까?
[소리] 네가 지금 서있는 곳은 절벽이니라 너를 죄에서 부터 구원해 주신 주님의 십자가가 있는 곳,
그 곳이 바로 절벽이니라!
[관준] 십자가 있는 곳?
[소리] 어서 혈벽으로 가거라! 그러지 않으면 절벽 밑으로 떨어져 영원한 죽엄을 면치 못할
것이니라!
[관준] 그건 그렇고--- 당신은 도대체 누구시옵니까?
[소리] ---
[관준] 누구시옵니까?
[소리] 내가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너희들에게 보내주었노라
[관준] 그럼 하나님이란 말씀이십니까?
(다시 요란한 천둥과 뇌성)
[관준] (절규하듯) 하나님! 하나님!--- 제발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요! 목숨만은---(흐느끼며)
하나님! 하나님!
(처절한 모습의 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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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듯 무대가 쥐죽은듯 마냥 고요해진다)
[관준] (천천히 고개를 들어, 허공 한곳을 응시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 못난 인간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
(비장한 성가의 음악과 함께 서서히 막이 내리기 시작한다.)
- 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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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제2막)
[장] (제1장)
(동일한 무대다. 음악과 함께 막이 오르면 무대는 마냥 캄캄하기만 하다)
[도창] 하나님의 섭리는 오묘하고 오묘하도다. 안하무인 박관준이 이렇게 변할줄이야 그 누군들
알았으리요. 1907년 설흔두살 나이에 세례를 받고 한일합방이란 치욕의 와중속에서도 청운의 뜻을 품고
서울로 올라가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되어 돌아오니 그때 나이 사십이라 그후 사년이 지나 삼일만세
사건이 일어났으니 피흘리며 쓰러지는 백성들을 손수 치료해 주고 인술로 하나님께 봉사하며 하나님의
종이 되어 말씀을 전파하니 이 어찌 기적이 아닐소냐?
(도창이 끝날 쯤이면 어느듯 관준의 방에는 조명이 들어와 잇다.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고 있는
관준의 근엄한 모습. 그의 옆에는 부인 이관선이 앉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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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불혹이 넘은 나이다)
[관준] 하나님 아버지 감사하고 감사하옵 나이다. 저의 지난날의 과오를 용서해 주시옵시고, 이 생명
다하는 그날까지 오직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오며 늘 주님의
은총안에서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 더욱 감사하고 감사 하옵는것은
이 못난 종을 통하여 그동안 주색과 잡기로 허송 세월을 보내던 저의 가까운 친구와 이웃들 까지도 다
그리스도를 알게 해주셨으니 그 한량없는 주님의 은혜와 성령의 축복을 또한 진심으로 감사하고
감사함을 돌리옵나이다. 바라옵고 바라옵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평생토록 주님을 구세주로 모시고
살아갈수 있도록 굳건한 믿음과 신앙을 허락해 주시옵고 그들을 통해 주님 홀로 한없는
영광받으시옵기를 간절히 기도하옵고 기도하옵나이다. 이 모든 말씀 죄지은 공로밖에는 없아오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감사하고 기도드렸아 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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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준 성경책과 찬송가를 챙긴다)
[부인] 점심 차릴까요?
[관준] 아니 밥생각 없어요.
[부인] 아침에도 몇 수갈 안뜨시고 나가시고---
[관준] 그건 그렇고 영창이는 어딜 갔소?
[부인] 아까 목사님 댁엘 잠간 갔다 온다고 나갔어요.
[관준] 목사님 댁엔 왜?
[부인] 아까 목사님께서 여길 오셨다 가셨지 뭐예요.
[관준] 목사님이?
[부인] 네.
[관준] 무슨 일로?
[부인] 지나가시는 길에 들리셨데요. 헌데, 목사님이 그러시는데 지금 평양하고 서울에선 아주
난리래요.
[관준] 왜? 왜놈들이 또 무슨 전쟁이라도 일르켰답디까?
[부인] 지난번 완공했다는 그 신산지 뭔지 하는 왜놈의 사당에다 우리 학생들을 동원해 놓곤 강제로
제사를 지내게 한다지 뭐예요.
[관준] 그일 때문에 오셨다고 합디까?
[부인] 네 목사님도 아주 여간 걱정이 되시지 않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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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그런 얘기 못들으셨어요?
[관준] 그런 얘긴 나도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부인] ---?
[관준] 이게 바로 사탄의 역사가 시작됐다는 증거지 그래서 영창이 한테 할 얘기도 있고 해서
들어오거든 꼭 좀 집에 있게 하라고 그렇게도 일렀는데---
[부인] 걔한테 얘긴 했어요. 그런데 걔도 어디서 그런 얘길 듣고 온 모양인지 잔뜩 흥분해 가지고
들어와서는 목사님 좀 뵙고 오겠다고 곧장 또 나가버렸는걸이요.
[관준] 난 그애하고 얘길 좀 할려고 병원문도 다 닫아놓고 왔는데---
[부인] 곧 들어 올꺼에요.
[관준] 그건 그렇고 여보--- 나 내일 아침차로 평양엘 거쳐서 서울엘 좀 올라갔다 올까 하는데---
[부인] 서울에을요?
[관준] 응? 그러니 옷가지들을 좀 챙겨나 줘요?
[부인] 아니 서울엔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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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준] 좀 볼일이 있어서.
[부인] 무슨 일인데요?
[관준] 그건 당신은 몰라도 돼요.
(때마침 영창이 언덕길을 올라오고 있다)
[부인] 며칠이나 계시다 오실 건데요?
[관준] 그건 당신이 알어 뭘 하오?
[부인] 알아야 짐을 챙길 때도 알아서 챙길거 아니에요.
[관준] 그건 가 봐야 알겠어요. 빠르면 열흘이면 될거고 늦으면 몇달이 몇년이 걸리게 될지도 모를
일일테니 말이요.
[부인] (약간 불안한듯) 네?
[관준] 당신은 혼자 지내는거야 옛날부터 많이 달련이 되있는 사람이 아니요?
[부인] 그러니까--- 그것도 다 당신 덕분이였으니까 당신한테 감사를 해라 그런 말씀이신가요?
[관준] 뭐 그런 얘긴 아니지만---
[부인] 미안하게 생각하기는 커녕, 오히려 이제와선 그런것까지도 다 생색을 낼려고 드시는군요.
[관준] 그건 괜히 농담으로 하는 소리고--- 이번엔 주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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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동행하는 거니까 옛날처럼 이리저리 백방으로 날 찾으러 다니거나 하진 않아도 될거에요!
[부인] (웃음을 띠우며) 나이가 들어도 뻔뻔스러운건 여전하시군요.
(두사람,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웃는다. 영창, 마루에 걸터 앉아 신발 벗는다.)
[관준] 누구냐?
[영창] 접니다.(방으로 들어서며) 목사님하고 얘기가 좀 길어져서 늦었읍니다. 헌데 목사님한테
들어서 안 일이지만---
[관준] 신사참배에 대한 얘기냐?
[영창] 아니 그럼--- 아버님도 알고 계셨나요?
[관준] 알고 있었다. 드디어 왜놈들의 본색이 들어나기 시작하는거지. 허긴 또 어떻게 생각하면
그것도 다 하나님의 뜻인지도 모를 일이지
[영창] (의아해 하며) 하나님의 뜻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죠.
[관준] 그래야 누가 진짜 크리스챤이고 누가 가짜 크리스챤인지를 쉽게 구별해낼 수가 있지
않겠느냐. 말하잠 이런 시련을 통해서 우리들의 믿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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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척도를 실험해 보실려고 일부러 이런 고통을 주시는건지도 모를 일이란 말이다. 어쨌던 모르긴
하지만, 많은 선량한 신도들이 억울한 희생을 당하게 될꺼고---
[영창] 그럼 어떻했으면 좋겠읍니까?
[관준] ---(말이 없다)
[영창] 그렇다고 놈들이 시키는대로 신사앞에 가서 참배를 할순 없는것 아닙니까!
[관준] 그건 절대로 안되지!
[영창] 그럼 맞서서 놈들과 싸워야 합니까?
[관준] 싸워야지 그러나 폭력을 가지고 맞서서 싸우란 얘긴 아니다.
[영창] 그럼---?
[관준] 이럴때일수록 말씀을 붙잡고 말씀에 의지하는 것, 그것이 곧 폭력보다도 더 무서운 무기가
되느니라. 그러니 요한복음 십사장 이십칠절 맨 끝줄에 있는 말씀,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
하지도 말라" 하신 그 말씀을 늘 명심하도록 해라.
[영창] 알겠읍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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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준] 그 얘긴 이제 그만하고 그보다도--- 난 내일 아침 새벽차로 서울엘 좀 올라갔다 와야 할 일이
생겼기 때문에 오늘이 아니면 너하고 얘기 할 시간이 없게 될지도 모를것 같아서 오늘은 꼭 널
만나볼려고 하던 참이였다. 다른게 아니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오늘밤 안으로 당장 보따리를
싸란 말이다!
[영창] ---네?
[관준] 일본으로 건너가서 공부를 하고 오너라!
[부인] 아니 하나밖에 없는 영창이를---?
[관준] 가서 일본을 정확하게 알고 오너라! 물론 신학공부를 하면서 말이다. 그래야 먼 훗날 주님의
역사하심이 계실때 너를 귀히 쓰실수 있으실테니 말이다. 내말을 알아 듣겠니?
[영창] (여전히 당황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관준] 이왕 가는 길이니, 내가 서울까진 바래다 주마!
[영창] 허지만, 이렇게 갑짜기 가라고 하시면---
[관준] 너에겐 갑짝스러운 일이겠지만 난 이미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계획해 왔던 일이다. 그러니
아무말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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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창] 그리고 일본에 가셔도 문제지만 당장 일본까지 갈려면---
[관준] 그런건 다 염려할것 없다니까! (불쾌한듯) 넌 도대체 이 애비를 뭘로 알고 하는 소리냐?
애비가 가라면 갔지 웬말이 이렇게 많으냔 말이야! 네 눈엔 이 애비가 그런것까지도 생각지 않고
무작정 널 떠내보낼 그런 애비로 밖엔 안보인단 말이냐? (심히 불쾌한듯) 되지 못한놈!
[영창] 그런게 아니고---
[관준] 그런게 아니면 뭐야?
[영창] ---잘못했읍니다. 아버님!
[관준] ---(약간 누그러지며, 부인에게) 당신도 혹시 걱정을 하고 있지않나 해서 하는 얘긴데 그런건
다 걱정말아요. 다달이 학비도 다 붙쳐주게 되있고, 생활비도 굶어죽지 않을만큼은 붙쳐주게 돼
있으니. (다시 영창에게) 그러니 넌 서울에 내리는 즉시 최목사만 찾아가면 돼! 찾아가지 않아도
역으로 마중나와 있긴 하겠지만.
[영창] 알겠읍니다 아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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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준] 그 이상의 얘긴 더 이상 묻지 말어! (다시 부인에게) 내 짐 챙길때 얘 짐도 좀 같이 챙겨 놔
줘요.
[부인] 알았어요
[관준]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왜 서울엘 올라가는건지 그 이유를 당신한테 까지
숨겨야 할 필요는 없을것 같오. 실은 빠를수록 좋을것 같아서 한시라도 빨리 경성 조선총독부로 가서
미나미총독을 만나볼려고 하는 것이요.
[부인] 뭐라구요?
[영창] (동시에) 아니---?
[부인] 당신 혼자서요?
[관준] 혼자이긴 왜 혼자요.
[부인] 그럼---?
[관준] 주님이 동행해 주시는데.
(이때 회장목사를 선두로 평안도에 거주하고 있는 몇몇 간부목사들과 친목회 장로들, 그리고
강응식과 최칠복 등이 대문 안으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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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준] 그러니 아무 걱정 말아요. 주님께서 앞장을 서 주시는 일인데, 내가 뭐가 두려워서 주저하고
망서리겠오. 그렇게 알고, 날 위해서 기도나 좀 많이 해 줘요. (일어나며) 자, 그럼--- 난 잠깐 병원에
좀 들렸다 오리다. 몇가지 마무리를 해 놓고 올 일이 있어서---
(부인, 일어나 외투를 입혀 준다)
[장로1] (밖에서) 장로님 계십니까?
[관준] 뉘시요?
[장로1] 친목회에, 윤장로 올시다.
[관준] (나오며) 아니 이거 웬 일들이십니까. 이렇게 누추한 데까지? (악수를 한다)
[회장목사] 안녕하십니까. 박장로님?
[관준] 아니 이거 회장목사님이 아니십니까? (악수를 하며)
정말 오래간 만에 뵙겠읍니다. 자 그럼 잠깐 안으로 드시죠.
[회장목사] 아니 괜찮읍니다. 여기서 잠깐 몇말씀드리고 가죠.
[장로1] 지금 막 나가실려고 하시던 참이셨나 보죠?
[관준] 네, 병원을 비워놓고 와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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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목사] 병원은 잘 되시죠?
[관준] 네 덕분에---
[장로1] 바쁘신 틈에 이렇게 찾아 뵙게 되서 정말 죄송합니다.
[관준] 원 별말씀을요.
[회장목사] 저 그럼--- 바쁘신것 같아서 간단하게 요점만 말씀드리겠읍니다. 이렇게 찾아 뵙게 된건
다른게 아니고--- (마루쪽으로 가며) 오는 구월 구일에 열리게 될 제27차 총회에 주 의제로 상정된
신사참배문제에 대해 박장로님의 고견을 좀 듣고자해서 이렇게---
[관준] (약간 비꼬듯, 그러나 겸손을 잃지 않고) 저보다 다 고명하신 분들이신데 저같은 사람의
의견을 들으시려고 예까지 오셨다니 괜히 송구스럽고 몸 둘바를 모르겠읍니다.
[목사1] 이번 총회야말로 우리 평안도 전체 기독교인들의 단합된 모습을 내외에 과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되는데 박장로님께서는 신사참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장로님의 소신을
좀 피력해 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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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준] 난 그저 하나님의 가르치심대로 따를 뿐이지 이렇다 할만한 자신의 소신을 피력할수 있을만큼
돈독한 신앙을 가지고 있진 못합니다.
[목사1] 겸손의 말씀이시겠죠.
[회장목사] 여러 간부목사님들의 종합적인 의견을 들어보면 젊은 총대들의 반발을 무마시켜 주실수
있는 분은 역시 박장로님 밖엔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준] 반발이라니, 뭐에 대한 반발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목사1] 말하자면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관준] 그야 당연한 일이 아니겠오! 그러니까 날보고 그 사람들을 설득시키는데 앞장을 좀 서 달라
그런 말씀이신 모양인데, 그때문에 예까지 찾아오신 거라면 아무래도 잘못 찾아 들어온것 같소이다.
(모두, 사뭇 당황하는 표정들이다)
[관준] 날보고 반대하는 편에 앞장을 서달라고 하면 몰라도 난 죽으면 죽었지 그런 짓은 못합니다!
못하겠다고 하는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제게 물으신다면 전 그 이유에 대해서 만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읍니다. 그 첫째 이유는 일본 신궁 신사에는 역대 호국의 영령들을 합사해서 제사를 지내는
곳이기 때문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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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이유는 술과떡을 차려놓고 죽은 혼백에게 제사를 지내기 때문이며, 세째 이유는 마치 우리나라의
무당들처럼 제관이나 제복을 입고 신홀을 흔들며 신을 부를 뿐만 아니라 넷째로는 신사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박장을 하며 신명께 경배를 드리는 것이 싫어서 난 못하겠다는 겁니다. 다섯째 이유는---
[목사1] 장로님, 그만 하십시요!
[관준] (억압하듯) 아니 좀 더 들어 보시요! 다섯째 이유는,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런 짓거리를
절대로 기뻐하시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그런 짓을 하게 될땐 머지않아 하나님의 진노를 면치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난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에 백번 죽을 지언정 난 그런 짓만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시는 그런 일로 해서 날 찾아오시진 말아주시길 바라오 제발 부탁이요. 자, 그럼 난 그만
실례해야겠오! 안녕히들 가시요.
(총총히 대문을 나서는 관준.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서있는 일행들.
[페이지] 045
관준 계단을 오르다 말고 다시 그들을 향해 돌아서며)
[관중]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당신들은 가롯.유다 보다도 더 못한 사람들이요. 그는 스승을
팔아먹었다는 자신의 죄책감과 양심의 가책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수 있었던 사람이였지만,
보아하니 당신들은 예수를 백번 팔아먹고 나서도 자살할 생각은 커녕 단 한번의 후회조차도 할
사람들이 아니요! 차라리 가롯.유다를 본받으시길 바라오!
(관준 다시 돌아서면 심금을 때리는듯한 기적소리가 마치 코-드처럼 울려 퍼지면서 거의 도시에
조명이 서서히 꺼지기 시작하면, 이윽고 기차가 달려가는 소리와 함께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찬송가 소리가 힘차고 우렁차게 캄캄한 무대 위를 폭군처럼 사로잡는다. 기차소리와 노랫소리가 차츰
작아지면서 이윽고 조명이 총독실로 Cut in 되면-)
[총독] (책상을 치고 일어서면서) 박선생! 박선생은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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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준] (지지 않으려는듯) 내 말을 끝까지 들어 보시란 말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이방에 살고
있을때 죽엄이 두려워 자기의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부른 적이 있었오! 그것도 모르고 아비.멜렉 왕이
사라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자마자 그녀를 탐하여 잠자리를 같이 하려고 하자. 하나님께서 그앞에
나타나 "그녀는 남편이 있는 남의 아내이거늘 네가 어찌 남의 아내를 범하려고 하느냐? 만일 네가
그녀를 범하면 너와 너의 권속들을 하루아침에 다 멸하게 하겠노라"라고 하니, 그 왕은 두려움에 떨며
곧장 아브라함에게로 달려가 "넌 어찌하여 나를 속여서 나로 하여금 천벌을 받게하려 하느냐"고 하니,
아브라함이 말하며 가로대 "이 나라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라임으로 그런 거짓을 하지 않으면
나와 내 아내가 죽엄을 면치 못하게 될것 같아 그리 하였노라"고 솔찍하게 실토를 했다는 것이요.
그러자 그 왕은 크게 깨달은바가 있었음인지 그의 아내를 곧장 집으로 돌려 보내고 그에게까지 후히
대접하며 자유롭게 살도록 해 주었다는 기록이 있오. 그러니까 총독께서도---
[페이지] 047
[총독] (말을막듯) 그러니까 그 왕이 그 여자를 포기했었던것 처럼 나도 조선에 있는 모든 기독교
신자들에게 신사참배를 시키는 것 만은 철회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말이요.
[관준] 그렇소이다.
[총독] 박선생! 당신의 의도는 잘 알겠오! 뿐만 아니라 총독인 나에게 감히 이런 경고장을 낼수
있었다는 당신의 그 당돌한 결단과 용기에 대해서도 무한한 경의를 표해 마지않는 바이요. 그러나 이런
경고장 하나로 그냥 순순히 물러서 버릴 그런 나약한 미나미는 아니라는 사실 또한 명심해 주기
바라오. 그러고 당신에게 꼭 한가지 상기시켜 주고 싶은 것은 만일 당신이 믿고 있는 그 하나님
혼자만이 이 세상에 남아있게 된다면 하나님 자신에게도 이세상에 남아 있어야 할 의미가 전혀 없게
되는 것이요.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되는거란 말이요. 다시 말하면 국가가 망하고 국민이 다 죽어
버리게 된다면 하나님은 그가 해야 할 일이 전혀 없게 될거란 말이요. 때문에 하나님도 살고, 국가도,
국민도 다 잘 살게 하기 위해 신사참배를 당신네들에게 권유하고 있는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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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준] 크게 진리를 깨닫는 자만이 후일에 큰 상을 받게 될 것이요. 당신은 지금 권유라는 말을
썼는데, 그렇다면 좋소! 그럼 꼭 한가지만 제의 하겠오. 신사참배문제 역시 교인 각자의 자유의사에
맡겨 주시고 절대로 억압적이거나 강압적인 방법으로 강요하진 말아 주시기를 제의하는 바이요! 아니
거듭 경고해 두는 바이요!
[총독] 경고?
[관준] 그렇소!
[총독] (화가 치미는듯) 당신 정말 보자 보자 하니 무례하기 짝이 없군 그래! (큰소리로) 아봐
야마모도!
[경호1] 핫!
[총독] 이자를 끌고 나가!
[경호1] 핫!
(경호원에 의해 밖으로 끌려 나가는 관준)
[하야시] (총독에게로 다가가며) 저자를 어떻게 할까요?
[총독] 우선 풀어 놔 줘!
[하야시] 네?
[총독] 그리고 평양에 있는 백가에게 연락을 해서 일주일 후 쯤해서 다시 잡아 들이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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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시] 그래서요?
[총독] 다시는 저놈의 입에서 경거망동한 소리가 나오지 못하도록 족치라고 해! 제 발로 신궁앞으로
걸어 나와서 무릎을 꿇을 때까지 계속 주리를 틀어 버리라고 하란 말이야!
[하야시] 알겠읍니다!
[총독] (이를 갈듯) 어디 누가 이기나 두고 보자! 괬심한 놈!!
(불길하고 음산한 음악이 무겁게 깔리면서 조명이 천천히 암전된다. 음악이 서서히 F.O 되면서 다시
하수 윗무대 쪽에 위치한 공원 위를 밝히면 벤취에 앉아 초조한 모습으로 연신 시계를 들여다 보고
있는 안이숙. 바로 옆에는 여행용 가방이 놓여 있다. 조명 탓인지 어딘지 모르게 불안감이 감돈다.
황혼녘이다. 이따금 스산한 바람이 분다. 안이숙, 인기척이 들리는듯 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하수쪽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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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이숙] 박장로님 이쪽이에요.
(이윽고 관준이 나타난다. 마치 무엇에 쫓기고 있는 사람처럼 연신 뒤를 돌아다본다)
[관준] 미안합니다. 안선생님. 오래 기다리셨죠?
[안이숙] 아뇨. 저도 방금 왔어요.
[관준] 우체국엘 들렸다 오느라고 좀 늦었읍니다.
[안이숙] 우체국엔 왜요?
[관준] 집에다 편지를 한장 부치고 오느라구요.
[안이숙] 편지요?
[관준] 네
[안이숙] 아니 집에서 나오시는 길이실텐데---
[관준] 집사님은 내가 지금 평양에 올라와 있는 줄 모르고 있읍니다.
[안이숙] (저윽히 놀라며) 네? 아니 그럼 서울에서 내려오셔 가지곤 여태까지 집에도 안들어
가셨었단 말씀이세요?
[관준] 네
[안이숙] 왜요?
[관준] 어차피 며칠 안있다 곧 또 집을 나올 사람인데 괜히 집사람한테 근심 걱정이나 더 안겨주게
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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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고 일만 더 번거로워지게 될것 같고 해서---
[안이숙] 그럼 그동안엔 어디에 가 계셨어요?
[관준] 여관방 신세를 지었죠
[안이숙] ---?
[관준] 친구네 집에 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봤지만 폐를 끼치는 것도 폐를 끼치는 거지만
그러다간 나때문에 괜히 친구까지 경찰에 불려다니게 될까 봐---
[안이숙] 경찰서에을요?
[관준] 모르긴 해도 아마 지금쯤에는 경찰들이 내 행방을 쫓느라고 혈안이 되 있을지도 모릅니다.
[안이숙] 왜요?
[관준] 놈들이 날 가만히 놔 둘것 같읍니까? 일단 풀어나 주긴 했지만 곧 또 평양감옥으로
끌어드릴건 뻔한 노릇일테니까요. 헌데 서울에서 풀려난지도 벌써 열흘이 다 되가는데 아직까지도 집에
나타나질 않았으니 놈들이 가만히 두고만 보겠어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주위를 감시하고
있을테고---
[안이숙] 그래서 집엘 안 들어가셨던 거군요.
[관준] 놈들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하게 되는게 두려워서가 아니라 이대로 그냥 죽어 버릴순 없다는
생각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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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기 때문이죠. 난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았을 뿐 아니라 죽어 버리기에는 아직 때가 너무 이르단
말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만일 내가 놈들에게 붙들려서 감옥에라도 들어가 있게 된다면 이 일은 영원히
성사시킬 수가 없게 될거고---
[안이숙] ---그래 도강중 문제는 잘 해결 되셨나요?
[관준] 친구들 내세워서 백방으로 노력을 해 봤읍니다만 끝내 실패하고 말았읍니다. 벌써 요시찰
인물로 낙인이 찍혀서---
[안이숙] (걱정스럽게) 그럼 어떻하죠? 못가시게 되는 건가요?
[관준] ---
[안이숙] 도강증이 없인 관부연락선을 탈수 없을텐데---
[관준]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요!
[안이숙] ---?
[관준] 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선처해 주실 겁니다.
[안이숙] ---?
[관준] (신념을 가지고) 난 믿읍니다! 하나님 어떻해서라도 날 일본땅에 다 내려 놔 주실겁니다!
어젯밤 기도 중에도 난 확답을 얻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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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피난처이니 담대한 마음을 가지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단 말입니다. 때문에 난 오직 주님의
옷자락을 잡고 주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대로만 따라갈 작정입니다.
[안이숙] 역시 장로님은 훌륭한 믿음을 가지고 계신 분이세요! 아마 저같은 사람은 평생을 가도
장로님과 같은 믿음을 갖긴 힘들거에요
[관준] (화제를 바꾸듯) 자 그럼 기차시간도 다 되가는데 그만 내려가 보실까요?
[안이숙] 그보다도 사모님를 못뵈고 떠나시게 되셔서 어떻하시죠?
[관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면 먼 훗날에라도 만나게 될 날이 오겠죠.
(그러나 어딘가 괴로움이 깃든 표정이다)
(다시 스산한 바람소리)
[관준] 자, 내려가시죠.
[안이숙] (멍하니 선채) 박장로님!
[관준] ---네?
[안이숙] ---헌데 웬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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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준] ---뭐가요?
[안이숙] ---참 이상하군요. 갑짜기 에스더 4장 16절에 있는 "죽으면 죽으리라"고 하신 그 말씀이
머리에 떠오르니 말이에요.
[관준] 역시 안선생님은 장한 분이십니다.
[안이숙] (다시 생각을 털어버리며) 자, 그럼 출발하실까요?
(두사람 짐을 들고 하수 쪽으로 막 발길을 옮기는데 바람소리가 점점 더 고조되면서 조명이 서서히
꺼지기 시작하면- 거의 동시에 O.L되면서 관준의 방으로 톱이 떨어진다. 부인이 편지를 읽고 있다.
바람소리는 계속 깔리고 있고-)
[관준] (소리) 여보! 당신의 곁을 떠난지도 어느듯 보름이 다 되가는구료. 그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별고는 없는지 무척 궁금하오. 난 미나미총독을 만나고 나와서 그길로 곧장 경의선 열차에 몸을
실었오. 그러나 열차안에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집으로 들어가는 것보단 차라리 평양에서 내려 그
근처에서 며칠 묵었다가 떠나가 버리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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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의아해 하며 잠시 읽는 것을 멈춘다. 이윽고 다시 편지로 눈을 옮기면-)
[관준] (소리) --- 당신을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더 나을것 같은 생각이 들어 일부러 집엘
안들렸던 것이요.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곳은 평양역에서 약 오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향촌여관이라는 곳이요. 그러나 이 편지만 다 쓰고 나면, 난 또 이곳을 떠야하오. 안이숙선생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야 할테니 말이요!
(저윽히 놀라는 부인, 다시 시선을 옮긴다)
[관준] ---(소리) 당신은 날 야속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낸들 왜 당신곁에 있고 싶지가 않겠오.
그러나 나 나름대로 그럴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요. 이왕 곧 또 집을 떠나야 하는 몸이고
보면 또다시 당신에게 헤여지는 슬픔의 아픔을 안겨주게 될것이고, 내가 집을 떠나게 될때 쯤이면 난
이미 영오의 몸이 될것만 같아 부득히 그리 했었던 것이요! 그렇다고 내가 감옥이 두려워서 그랬던건
아니요. 난 아직도 해야할 일이 남아있오! 난 이대로 죽어서는 아니되요! 나의 젊은 날을 속죄하고
당신에게 지은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국가에 대한 가독교인의 사명을 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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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 위해서라도 난 좀 더 살아야 하오! 그래서 난 요즈음 늘 감사하는 기도를 올리고 있다오.이대로
죽어버리면 지옥으로 떨어질수 밖에 없는 불쌍한 이몸임을 아시고 날 그곳으로 던져 버리시지
아니하실려고 이처럼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고 집행을 연기시켜 주시면서 까지 나를 사랑해 주시고 있는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감사한다는 기도를 올리고 있단 말이요!
(음악이 조용히 깔리기 시작한다)
[관준] ---(소리) 어쨌던 당신과 아무런 의논도 없이 이렇게 훌쩍 일본으로 떠나게 된것을 용서해
주오. 일본에 건너가면 영창이도 만나보고 또 그애한테 협조도 받으면서 어떻해서든지 뜻한 바를 꼭
성취시키고 돌아오겠오! 그러나 하느님은 실패로 축복을 내리시기도 하시는 분이요.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실패와 인간들이 생각하는 성공과는 큰 거리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오! 나같은 못난
인간을 만나서 그 동안 속도 많이 썩고 고생도 많이 했오. 그럴리야 없겠지만 설혹 다시는 이 지상에서
못만나게 된다 하더라도 하늘나라에서나마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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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납시다. 그럼 몸 건강히 안녕히 계시요.
(부인 어깨를 들먹이며 조용히 흐느끼고 있다. 음악이 다시 고조되면서 서서히 조명이 꺼지기
시작한다)
[장] (제2장)
(어둠속에서 도장이 흘러나온다)
[도장] 오, 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이처럼 어려운 것일 줄이야. 내 어찌 알았으리요. 애닿다.
여인의 일생이요. 하나님이시어 하나님이시어 어찌 나를 이토록 애통하게 내버려두시 나이까! 날
버리고 다 가져가시옵소서! 다 가져가시 옵소서! 그러나 저분의 여린 목숨만은 앗아가지 마시옵소서!
앗아가지 마시옵소서!
(조명이 다시 정자쪽으로 옮겨지면서 강응식과 최칠복 그리고 허문식등이 정자위에 앉아 무슨
비밀얘기를 하듯 목소리를 낮춰가면 한참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응식] 아니 그게 정말인가?
[봉익] 여기 신문엔 나지 않았지만 일본에선 그 사건 때문에
[페이지] 058
전국이 다 떠들석하고 아주 굉장했다는거야.
[문식] 아니 뭐가 어떻게 됐는데 그렇게 떠들석 했다는 거야?
[봉익] 일본 의회에서 한참 종교법안을 심의하고 있는 중이였는데 아 글쎄 관준이가 그곳엘 뛰어들어
갔다지 뭔가!
[문식] 그래서?
[봉익] 마침 총리대신도 그자리에 나와 있었는데, 곧장 총리한테도 달려가서 그의 얼굴에다 선언문을
뿌리면서 (흉내를 내듯) "여호와! 하나님의 대명이다! 일본제국은 신사참배를 철회하여 번영의 축복을
누리든지 아니면 패망의 저주를 받든지, 그 둘중에 하나를 택하라!" 하면서 총리를 향해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다는 거야! 두말 할것도 없이 의회당 안은 순식간에 수라장이 되 버리고 동경시는 물론 온
전국이 초비상이 걸리다시피 됐지!
[칠복] 관준인 어떻게 되고? 두말할 것도 없이 관준이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사직당국에 넘겨지고---
[페이지] 059
[문식] 그게 언제 얘기야?
[봉익] ---지난 삼월 이십사일 날에 그 일이 있었다니까 벌써 석달이 지난 얘기지.
[문식] 그럼 관준인 아직까지 일본에 있는 감옥에 그냥 갇혀있는 거야?
[봉익] 들리는 소문엔 얼마전에 평양감옥으로 이송이 됐다고 하더군.
[칠복] 그건 어디서 들은 소리야?
[봉익] (응식에게) 왜 자네도 알지, 성환이라고---?
[응식] 알지, 알다 뿐인가---?
[봉익] 성환이가 그러는데 자기 친구중에 하나가 감옥에 들어가 있는 자기 친척을 면회하러 갔었는데
거기서 관준이를 보았다는 거야!
[칠복] 혹시 잘못본건 아닐까?
[봉익] 주기철목사하고 같은 방에 있더라니까 틀림없이 관준이는 관준일거야
[칠복] 주기철 목사라고?
[응식] 주기철목사하고 같이 있는걸 봤다면 관준이가 틀림없어!
[페이지] 060
[문식] 그래 그럼 관준이 마누라도 그런 사실을 다 알고 있다고 하던가-
[봉익] 알고 있었고 말구! 그래서 며칠 전에도 형무소로 찾아가서 면회신청을 했더니 형무소에선
막무가네로 면회를 안시켜 주더라는 거야!
(잠시 침묵)
[문식] ---그러나 저러나 고생이 말이 아니겠군
[봉익] 그야 말해 뭘 하나! 매일 채찍질이나 당하고 고문대 위에 꺼꾸로 매달려서---
(갑짜기 조명이 Cut out 되면서 마치 코드와도 같은 불협화음과 함께 관준의 단말마적인 비명소리가
극에 달한다. 다음에 계속되는 모든 대사들은 모두가 다 어둠속에서 지속된다.)
[관준] (비명) 아- 삥!
[백가] 말을해! 우리가 내주지도 않은 도항증을 어디서 구했느냔 말이야!
[관준] (고통스러운 신음소리) 아, 아--- 아---
[백가] 그 도항증을 만들어 준 자가 누구야! 누구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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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준] ---아무도 아무도 도항증을 보자고 한 사람이 없기에---
[백가] 허튼소리 말어! 어서 배부른대! 누구야! 너에게 의회당의 출입증을 발급해준 자가 누구냔
말이야! 어서 대! 어서 대라니까!
[관준] (거의 실신한듯) 정말이요! 난 거짓말은 못하는 사람이요!
[백가] 거짓말! 거짓말 말어! 당신은 우리 일본 관헌들을 뭘로 알고 있는거야! 모두 다 헛바지로
알고 있는거야 뭐야?
[관준] 하나님은 당신들을 헛바지로 만들수도 있고 위대한 영웅으로 만드실 수도 있는 분이시요.
[백가] 뭐라구? 당신 지금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거야? 이봐 하야시!
[하야시] 핫!
[백가] 이놈의 입에서 바른소리가 나올때 까지 족 쳐!
[하야시] 핫! (책찍질을 하며) 에잇! 에잇!---
(무자비한 책찍소리와 함께 관준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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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소리와 책 찍 소리가 계속 관객들로 하여금 소름을 끼치게 한다. 이윽고 실신하는 듯한 관준의
신음소리)
[백가] 이봐, 구니모도!
[구니] 핫!
[백가] 그만 중지하고 회장목사를 들어 오라고 해!
[하야시] 핫! (헌병에게) 회장목사를 들여 보내!
[헌병1] 핫!
[백가] 그리고 그자를 끌어내려!
[하야시] 핫!
(이윽고 고문실에 조명이 밝아진다. 고문대위에 꺼꾸로 매달려 있는 관준 거의 실신한 듯 느려져
있다. 감옥안에서 철창을 통해 고문을 당하고 있는 관준을 바라보고 있는 기독교 교인들 이윽고
땅바닥에 쓰러진채 움직임을 모르고 있는 관준. 백가 관준에게로 다가가 무자비하게 그의 머리체를
잡아 당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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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 이봐요. 박관준선생! 현시국은 결전중에 있는 전시체제로서 모두 천황폐하의 지극하신 성은에
보답하기 위해 국민 모두가 폐하께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이 비상시국에 국가 변란을 획책해! 그리고
유독 당신 혼자만이 기독교 총회에서 이미 오래전에 가결된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있는 그 이유가 뭐야!
[관준] ---도대체 몇번이나 더 설명을 해야 알아 듣겠오. 난---
[백가] 좋소! 나도 그 얘긴 더이상 듣고 싶지도 않소! 그렇다면---
[관준] (억지로) 여보시요--- 당신은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뭐라고 답변을 할려고 사람을
이렇게--- 이렇게 막 고문을 하는거요?
(이때 구니모도가 회장목사를 데리고 들어온다. 백가 회장목사에게 싸인을 보낸다. 회장목사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관준에게로 다가간다.)
[목사] 장로님 앞으로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신다고 이런 곤욕을 당하시요? 남은 여생 조용히
사십시다. 그리고 신사참배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일종의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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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와도 같은 것이요. 몇몇 분만 조용하게 계셔 주시면 우리 교계도 시끄럽지 않게 될것이고---
[관준] 목사님--- 목사님이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시요. 이 일은 나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
사십만 성도 모두의 싸움입니다. 목사님은 저 차디찬 감방에서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저 성도들의
모습이 보이시지 않읍니까? 우린 한시라도 주님의 계명을 어겨서는 안됩니다. 절대로 안됩니다.
[백가] (화가 난듯 큰소리로) 이봐!
[헌병들] 핫!
[백가] 처넣어 버려!
[헌병들] 핫!
(헌병들 관준을 질질 끌고 감옥 안으로 들어간다)
[백가] (회장목사에게로 다가가며) 목사님!
[목사] ---?
[백가] 목사님이 믿고 계신 하나님과 저분이 믿고 있는 하나님은 각각 다른 하나님이신가 보죠?
[목사] (괴로운듯) 그럴리가 있겠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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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 그러고보니 저 늙은이는 아버지는 같은데 배가 다른 모양이군! 갑시다! (퇴장한다)
(목사 멍하니 서 있다. 헌병들 감방에서 나온다.)
[헌병1] (목사에게) 나가시죠!
[목사] 네
(목사 헌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밖으로 나아간다. 주기철목사를 비롯하여 성도들이 관준의 주위를
애워싸고 있다.)
[주기철] 장로님, 기운을 내십시요!
[관준] 주기철목사님, 마지막으로 목사님의 설교가 듣고 싶읍니다. 부탁합니다! 저를 위해서---
그리고 이 연약한 양들에게--- 용기의 양식을 불어 넣어 주시기 위해서라도--- 한 말씀 부탁합니다.
[주기철] 알겠읍니다. 나 잠깐 저 구석으로 가서 기도 좀 올리고 오겠읍니다!
[성도1] 장로님 찬송가 불러 드릴까요?
[관준] ---그래요!
[성도2] 어떤 찬송을 불러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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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준] ---삼백---육십---사장---"내 주를---가까히 하려---함은" 그 찬송을---난---제일 좋아해요
(누구의 입에서 부터인지 찬송이 흘러 나온다. 이윽고 모두의 합창으로 변한다. 합창이 거의 끝날
무렵 하수 윗무대 위에 톱이 떨어지면 그곳에 주기철 목사가 서 있다)
[주기철] (설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 꼭 한가지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의", "의"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신민이 되고서는 충절의 의가 있어야 하고 여자가
되고서는 정절의 의가 있어야 하며 크리스챤이 되고서는 신앙의 정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중국의
제갈공명은 무너지는 한나라를 붙잡고 오장원에서 순절을 했읍니다. 백의와 숙제는 은나라의
신민으로서 주나라의 충성을 할수 없어,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다가 순절했으며,
우리나라의 정몽주는 고려의 충의를 다하기 위하여 선죽교에서 피를 흘렸으니 이것은 우리 선군들의
충의에 순절한 산 표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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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신앙의 대의를 지키기 위하여 풀무불에 뛰어 들었으며,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정신을 가슴에 품고, 사자굴로 뛰어 들었읍니다. 스테반은 돌에 맞아 죽었고 베드로는
십자가에 꺼꾸로 매달려 죽었읍니다. 백제의 도미부인은 개루왕의 협박과 부귀의 유혹도 물리치고
두눈이 뽑힌 남편을 찾아 조각배를 타고 그곳을 탈출하여 황주마을에서 한평생 불구가 된 남편을 위해
몸을 받쳤읍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딸들이 정결의 대우를 지키기 위해 싸워온 피눈물나는 역사의 산
기록인 것입니다. 역사의 기록이 이렇거늘 하물며, 주님의 택함을 받고 주님의 자녀가 되어 주님의
피흘리심으로 다시 살아난 우리가 어찌 주님을 배반하고 다른 신을 아버지라고 부를수 있겠읍니까!
주후 이백년경 칼타고의 벨베츄어는 이십대의 청춘으로 젖먹이 어린애와 아버지의 우는 소리를 뒤에
두고 형장으로 나아가 사나운 소뿔에 찔려 순절했읍니다. 천고의 벨베츄어는 주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승리의 찬송을 부를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못합니다! 절대로 못합니다! 우리는 절대로 이방신에게
우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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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절의 대의를 저바릴수는 없읍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일본신사앞에 나아가 허리를 굽혀서는
안됩니다! 더구나 이사람은 어려서부터 예수안에서 자랐고, 예수의 이름으로 밥을 먹었으며, 예수의
이름으로 영광을 얻었으니 오늘날 아무리 하나님의 계명이 땅에 떨어지고 예수의 이름이 뭇사람들에게
짓밟히고 있다고 해서 내 어찌 예수를 저바리며 하나님께 등을 돌릴 수가 있겠읍니까! 난 그렇게는
못합니다! 난 드리겠읍니다! 죽어도 드리겠읍니다! 이 천한 목숨이나마 주님께 다 드리겠읍니다!
칼날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화살이 나를 향해 날라오고 있다고 해도, 이 한 목숨 기꺼히 주님께
드리겠읍니다.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날이 날 위협할지라도
죽고 또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서라도 주님을 향한 일편단심만은 영원히 변치 않겠읍니다. 오직 십자가
앞에 주님이 내게 주신 십자가 앞에 주님이 지시고 가시던 그 십자가 앞에 이몸을 드리겠읍니다. 이
초로와도 같은 인생, 이제 살면 얼마나 더 살겠읍니까! 인생은 짧고 의는 영원한 것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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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 나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의에 죽고 의에 삽시다! 의를 버리고 더구나 예수를 향한 의를
버리고 산다는 것은 개나 짐승의 삶만도 못한 것입니다. 우리 다 같이 예수로 죽고, 예수로 삽시다!
기도하십시다.
(모두, 고개를 숙이는데-)
[성도1] (다급한 음성으로) 장로님! 장로님!
[성도들] 장로님!
(창살을 잡은 관준의 손이 마냥 떨리고 있다)
[관준] (애절하게) ---하나님 아버지, 이 죄많은 영혼을 기꺼히 받아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집은
나의 집이요. 아버지의 나라는 나의 고향이오니 더러운 땅을 밟던 내 발을 깨끗히 씻겨 주시어, 나로
하여금 하늘나라의 황금길 걷게 하여 주시오며, 세상에 살동안 죄악으로 더럽혀진 이 몸을 십자가에
못박히시던 주님의 그 손으로 깨끗히 씻겨 주사, 하나님의 존전앞에 서게 해 주시옵소서. 나의---나의
하나님---
(창살을 잡았던 관준의 손이 힘없이 풀리면서 "쾅"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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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 장로님! 장로님!---
("주여 불쌍히 여기옵소서"라는 성가의 합창소리가 점점 고조되면서 조명이 서서히 암전되면- 캄캄한
무대위엔 한동안 합창소리만이 은은히 울려퍼지고 있다. 이윽고 조명이 밝아지면 교회 안쪽에서 부터
영정을 든 영창을 선두로 관이 나온다. 그뒤를 이어 상복을 입은 부인 이관선과 신도들이 따라 나오고
있다. 긴 행렬이 천천히 무대 하수 쪽으로 사라져가면 "할렐루야"의 합창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지면서 막이 내려오기 시작한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