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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운동의 도전 컨콜디아신학교교수:지원용 현대의 생활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나타나는 "복수 현상(plurality)" 종교계에도 나타나고 있으며,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오고 있다. 과거에도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오늘날은 그 문제의 복합성이 생각 이상으로 대단하다. 안팎으로 오는 도전의 물결 가운데 한가지를 과거와 비교하면서 서술하려 한다. 요한 1서4장6절에 나오는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이라는 말에 특별히 주목하고 싶다. 이 말씀의 배경 또는 사도 요한의 첫째 편지가 쓰여진 당시의 사상적 배경으로는 바벨론, 애굽,페르샤, 인도 등 이른바 동양 종교사상과 신화 그리고 옛 희랍 철학사상 등의 혼합주의였고 극히 합리적인 종합 종교이며, 보편적 성격과 복잡성을 겸한 노스티스즘(Gnosticism:영지주의)이 있었다. 이 이단사상이 침투하여, 그리스도교의 복음이 팔레스틴에서 희랍과 로마의 세계로 전해지기 시작한지 아직 역사가 길지 않은 때에 큰 위협을 가하여 오고 있었다. 영지주의 사상은 우선 기독교의 핵심교리인 '그리스도론'에 대한 전면 도전이었고, 기독교의 윤리의싯을 크게 위협한바 있었다. 그후 200년 가까이 교회 안에서 극성을 부리면서 그리스도교의 공동체 가운데서 이단적이며 파괴적인 영향력을 행세했다. 그 이후에도 영지주의적 경향은 기독교사와 신학역사에 있어서 계속 문젯거리를 주고 있다. I. '뉴에이지운동'이란 무엇인가 ? 20세기를 마무리 하면서 21세기를 바라보고 있는 이때 새로운 20세기판 노스티스즘이 일어나고 있다. 그 복합성이나 복잡성, 내세우는 현실성이나 신비성, 혼합적 종교성과 무속성, 그리고 정통 기독교에 대한 도전성 등 지난날 그렇게도 끈질지게 기독교에 달려 붙던 영지주의를 연상케 하는 것이 있는데, 이른바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이라는 것이다. 내용으로 보아 옛 영지주의와 다른 점도 있으나, 유사점이 너무나 많다. 뉴에이지 운동은 우선 어떤 한 교조나 지도자에 의하여 이루어진 "종파"나 좁은 의미에서의 "종교"라고 하기보다는 하나의 "운동"이다. 그러기에 더 복잡성을 띨 수 있고,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층의 관심을 끌 수 있고,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층과 지식인 층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요인이 많다. 학자들과 문필가, 예술가 등이 있는가 하면, 셜리 맥클레인 같은 널리 알려진 영화배우도 있다. 그들은 여러 종류의 글을 발표하였다. 뉴에이지 운동이 얼마나 매력적이며 시대적인 표어인가! 현혹하게 매우 알맞는 이름이다. 이 이름의 뒤에는 기독교에서 용납할 수 없는 여러가지 사상이 내포되어 있음을 명심하고 경계해야 될 것이다. 뉴에이지운동은 여러가지 성격을 지니고 있다. 철학으로서, 휴머니즘으로서, 신비주의로서, 생활철학으로서, 건강과 치병 수단으로서, 예술과 음악으로서, 정신집증 수단으로서, 혹은 무속적 종교로서, 원 하는 방향에 따라 다양한 모양으로 나타난다. II. 서양문명의 위기 뉴에이지 운동의 발생은 기독교의 영향으로 밑에서 여러 세기동안 내려온 현대 서방세계의 고민점과 약점과 쇠토현상을 명백히 나타내주고 있다. 서방 세계는 피곤을 느끼고 물질문명에서 오는 여러가지 모순과 부조리로 인하여 사회적으로 사상적으로 종교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 같다. 그와 같은 싹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서방세계에 대한 비판이나 후퇴와 위기를 외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은 아니다. 많은 역사 비판가들과 문명 비판가들에 의하여 이야기된 바 있다. 이미 20세기초 오스왈드 스펭글러(Oswald Spengler 1880-1936)같은 사람은 [서양의 몰락 (Der Untergang des Abendlandes)]이라는 책에서 흥미있는 관찰을 한 바 있다. 자연세계가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거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문명이 그와 같은 단계를 거친다는 것인데, 이른바 서양문명이 봄과 여름을 거쳐서 가을에 다다랐다는 말이다. 그에 따르면 이런 현상은 이미 19세기초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그의 견해는 그 많은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유럽과 미국에 걸쳐 지성인들의 흥미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 영국의 유명한 역사비판가 아놀드 토인비의 글이나, 미국의 라인홀드 니버의 글 역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의 사상가요 무교회주의 운동 창시자인 우찌무라 간조(1866-1930)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세속주의와 현대문명의 물결과 파산한 서구의 기독교 원리(Failure of the West in living up to the christian principle, under secularization and modernizati on)"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한 이후 나타난 것이 종교와 종교적 현상 및 종교생활이었다. 종교는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하여 계속되어온 것이다. 그리고 종교는 인간문화의 기초와 기반이 되어 문화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여 왔다. 그런가하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문화는 이른바 문명으로 탈바꿈을 하는 것이다. 완전히 다른 것으로써가 아니라 그 형태의 변화 내지 인간 생활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영향 등의 새로운 국면을 보여주게 된다. 그런 점으로 볼때 문명은 문화의 산물이라 하는 것이 타당성이 있다. 어떤 문명이든 영구히 계속하는 것은 드물었다. 그 이유는 인간문명은 시간이 감에 따라 후퇴하고 몰락현상에 이르게도 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여 인간의 정신적, 영적 생활 및 도덕적 가치관이 부패하게 되고 그 대신 물질주의와 쾌락주의가 사람들의 삶을 주관하게 될 때 문명은 반드시 후퇴하는 것이며 결국에는 몰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인류 역사에서 한때 화려하던 문명이 영구히 땅에 묻혀 버리고 이제는 고고학자들의 학문연구의 관심거리 정도로 남아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모르나, 알베르트 슈바이낫 자신의 책[문명의 철학] (1960)에서 인간문명의 윤리적 성격을 특별히 강조한 바 있다. 그는 문명이란 인류의 복지와 향상과 발전을 위하여 우리 자신을 주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 말했다.(Civilization consists in our giving ourselves for the advancement and progress of human welfare). 현재 되어가는 여러가지를 종합하여 볼 때 온 인류가 당하는 문제나 어 려움은 말할 것도 없겠으나 지난 18세기 계몽주의 사상이래 온 세계를 지도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이른바 선진문명, 선진국가라는 대명사를 갖고 발전해온 서방세계가 당면한 여러가지 문제를 잘 알 수 있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일어나는 현상들을 하나하나 들어서 관찰할 수 있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소련의 작가 솔제니친의 충고가 생각난다. 그는 어떤 민족과 문명을 뒷받침하고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물질 발전에 앞서 '윤리의식'에 있다고 했다. 어쨌든 서방세계는 많으니 문젯거리를 안고 쇠퇴현상에 이르렀다고 하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서방사회의 정신세계는 특별한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그런데그 서방세계의 정신적, 영적 생활의 지주역할을 하여 온 것이 이른바 유태교-기독교(Judeo-Christian)의 영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2천년 역사를 내려오는 동안 여러 가지 굴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서방 기독교가 그들의 정신생활의 구심점이 되었고 구심력 역할을 하여 왔다. 그런데 지금에 이르러 당면한 문제가 우리의 관심을 끌게 되는 것은 이와 같이 오랫동안 기독교의 영향 밑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선교하는데 앞장섰고, 특히 지난 2,3백년 동안은 선교하는 일에 온갖 힘을 집중하여 힘써 온 서방세계내의 정신문화와 종교생활 가운데 염려할 만한 질병이 생기게 되었다는 점은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에게 어떤 질병이 있게 될때 그들의 영향을 직접 간접으로 받아온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가 일어날 것이냐 하는 점은 너무나 분명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서방국가의 정신세계의 약화나 몰락현상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 오게 될 것이다. 이른바 뉴에이지운동의 발생의 원인을 생각할 때 미국 사회 현황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III. 뉴에이지운동의 활발한 움직임 뉴에이지운동의 사상적 배경은 1,2백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미국에서 표면화하기 시작하여 대중 속에 (교회를 포함)깊이 파고들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로 볼 수 있다. 1960년대 중반에 아시아인들에 대한 미국 이민법의 개정으로 많은 아시아 사람들의 이민 붐(boom)이 일어나게 되었다. 잘 아는대로 이민법 개정의 결과로 수많으니 한국 사람들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 이민들 가운데는 특히 힌두교 계통의 종교 지도자들(Guru)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은 미국에서 적극적인 포교에 나섰다. 미국 안에는 그렇지 않아도 기성 기독교에 관심 약화되어 가고 있고, 아울러 전통 가치관과 윤리관의 몰락, 폭력과 마약의 성행, 그리고 한계를 모르는 자유와 욕망의 세계 등, 정신적 영적으로 지칠대로 지친 서방세계 특히 미국 사회의 새로운 관심이 아닐 수 없다. 여러 계층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이른바 동방종교들(동방영성 등) 에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뉴에이지운동은 현대인의 복잡다단한 문제를 해겨하여 줌으로써 만족을 줄 수 있는 길을 동방 종교 사상과 그 세계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며 2천년동안 이끌어온 유대교-기독교 중심의 서양 세계관에 깊은회의를 나타낸다. 출발점과 방향의 전적인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른바 필연적인 "보기의 변화(paradigm shift)"라고 볼 수 있다. 그 출발점의 기초를 힌두교에 둔다고 말하는데 필자의 견해로는 그 이상 더 넓은 폭을 가졌다고 본다. 어쨌든 뉴에이지운동의 가르침의 주요 부분은 힌두교의 범신론적 교리를 짙게 풍기고 있으며 여러가지 사상(동학사상 참고) 복합된 혼합성을 지니고 있다. IV. 뉴에이지 운동의 내용 뉴에이지운동의 가르침의 내용 가운데 몇가지 중요한 점만을 추려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1. "당신은 신이다." 뉴에이지 운동의 가르침 가운데 크리스챤인 우리들의 큰 관심을 끄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신에 대한 이해이다 (범신론). 뉴에이지운동은 힌두교의 최고 신인 브라만을 생각하며, 인간은 모두 브라만을 생각하며, 인간은 모두 브라만의 작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힌두교 자체가 범신론이요 다신교라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힌두교에는 3,300만의 신이 있다고 한다. 수 많은 신이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든다면 최고 신인 브라만은 발전소와 같고 개개 인간은 친구와 같다는 말이다. 모두가 브라만에 연결되어 있도 브라만의 일부라는 말이다. (참고:철학자 B.deSpinoza, 1632-77; G.Bruno, 1548-1600,Campanella, 1568 -1639). 모든 인간은 신인데, 바로 "당신은 신이다"라는 말이 된다. 이런 주장은 창세기 3:5절을 생각나게 하는데, 하나님처럼 되기 위하여 처음 인간을 유혹한 자는 말하고 있다. 즉 하나님처럼 되기 위하여 그의 명하심을 거역했다는 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창조자와피조물의 관계에 이상이 생기도록 한다. 사실, 뉴에이지운동 자체는 이른바 일원론(Momism)인데 모든 것은 하나요 한개의 원천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신은 모두요, 모두는 신이라는 뜻이다. 비인격적인 힘을 주장하는 범신론이다. 물론 이런 가르침은 유일신과 인격적인 신을 가리키는 기독교의 가르침과는 정면으로 대항하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을 정면으로 대항하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을 뉴에이지운동의 입장에서 본다면 소외당한 민중(Dalit) 과 천민계층을 위하여 희망의 서광이라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부정당한 위치에서의 신의 위치로 올려 놓았다는 말이 된다. 이상의 관점은 기독교의 가르침 혹은 성경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이해하기도 쉽지 않고 받아들일 수도 없다. 우선 성경은 창조자와 피조물을 명백히 구분할 것을 말하고 있지만, 뉴에이지운동은 인간과 창조주를 혼동하거나 동일시하는 것 같이 보인다. 우선 에스겔 28:2절은 인간은 신이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강조하고 있으며, 이사야 45:8-16절은 역시 한 분이신 하나님만이 계시며 인간이 결코 신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사야 47:8-10절 특히 10절에서 이 세상에는 야훼 하나님 밖에 다른 분이 신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로마서 1장21-32절에서는 창조주와 피조물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또는 구분하지 않으려는데서부터 오는 결과가 어떨 것이라는 것을 경고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이상과 같은 뉴에이지 운동의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비교적 최근부터 나오기 시작한 정신 세계사의 출판물들을 일선 목회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훌륭하게 번역,편집, 출판된 이 도서들은 많은 젊은이들과 지성인들의 관심을 끄는 모양이다. 어떤 것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는 말도 들었고 연극화되었다는 말도 들었다. 버스 정류장의 출판물 매점까지에 진열된 것을 볼 수 있다. 그 책들의 내용이 무엇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정도는 목회자들이 꼭 알아야 할 줄 안다. 범신론적 사상과 힌두교 불교적인 교리가 그 기반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한두가지 실례로서 미국에 있는 슈피즘(Sufism Reoriented,Inc.)의 출판물인 [꼬마성자(원명:The Search for the King)]와 스리라마재단의 출판물인 [성자가 된 청소부(원명:Sweeper to Saint)]를 들수 있다. 지난 3월중손에 서울에서 모였던 정의, 평화, 창조, 질서의 보존 세계대회(JPIC) 기간중 독일의 철학자 바이체커 교수와 김지하 시인의 대담에서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관계를 구분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점이 언급된 것이 주목할 만하다. 이런 점에 관련지어 우리나라 동학의 가르침인 "인내천"의 사상을 주목할 만하다. 2. 윤회설 뉴에지운동의 가르침 가운데, 모든 인간은 다시 난다. 곧 윤회란다는 것이 있다. 이 윤회설은 불교나 힌두교에서 가르쳐 온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인간이 죽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으로 끝장인가. 어떤 형태로 계소될 것인가 또다시 이생으로 환원할 수 있을 것인가. 이른바 환생금세 라는 말이다. 죽음에 관한 수수께끼 또한 거기 관련된 문제와 공포심 등은 모든 인간의 관심이요, 수수께끼이다 어떻게 하면 죽음의 공포 속에서 전율하는 현대인들을 안신시켜 줄 수 있을까 하는 점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윤회설 그자체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게 된다. 몇해 전 미국에서 행한 어떤 설문조사에서 25%가 윤회설을 긍정적으로대답하였다는 것을 보았다. 주의를 끄는 것은 이 가운데 많은 숫자의 크리스챤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약 1년전 어떤 기회에 50명의 교인들에게 문의를 했는데, 그 가운데 8명이 윤회설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대답하고, 20명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응답하고, 나머지는 부정적인 대답했다. 물론 비율적으로는 적다고 할지 모르나 크리스챤들의 이와 같은 반응은 우리의 주의를 끌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문제가 역시 성경적으로 설명되고 해답되어야 한다. 이점은 독자들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3. 의식훈련 혹은 정신집중 훈련 뉴에이지운동은 초점과 조화를 이룬 인간의 마음과 생의 중심을 잡아 준다고 하면서 이른바 의식 훈련의 중요성과 정신통일을 중요시한다. 그리하여 힌두교들들이 하는 요가 훈련이나 선불교에서 행하는 좌선,TM, 마인드 컨트롤, 명사, 등 여러가지를 들 수 있다. 4. 뉴에이지운동의 중요한 관심을 차지하는 것은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 정신세계와 물질세계, 이생과 저생의 연결 혹은 어떤 신적인 황홀경이나 신비경의 체험, 무아상태에 이른 것을 시행하는 이른바 차넬링(channeling) 이라는 것이다. 무속종교에서 언급하는 무당, 점술사, 치병자, 마술사, 샤만 등과 비교할 수 있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이 문제 역시 성경적인 밝힘과 시정과 설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인 것이다. 5.뉴에즈운동은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인간의 신격화는 말할 것도 없고 새로운 세상, 악과 부조리와 불안과 질병과 죽음이 없는 황금시대, 한 이상시대를 뜻하는 "Aquarius) 의 시대" 구현될 것이라고 말한다. 글자 그대로 새로운 유토피아가 도래한다는 말이다. 이상의 다섯가지는 물론 뉴에즈운동의일부요 전체는 아니다. 그밖의 여러가지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상과 같은 뉴에이지운동의 거창한 도전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 모두가 큰 과제이기 때문에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뉴에이지운동 자체의 문제도 문제려니와 그들이 가르키고 있는 가르침에 직접 간접으로 동조하는 많은 지식인과 종교인들, 예술인들을 말할 것도 없고, 크리스챤을 생각할 때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의 몇가지 제안은 물론 완벽한 제안은 못된다. 그러나 무엇으로부터 출발할 것이냐 하는 점을 염두해 두고 관심있는 모든 크리스챤들의 기도와 염려와 지혜로운 판단과 연구에 맡길 수밖에 없다. 1) 성경연구에 계속 역점을 둘 것 기독교의 유일한 경전이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이야말로 뉴에이지운동이 제기한 모든 질문과 가르침에 대한 대답이요 대답의 원천일 수밖에 없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성경 연구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의 세계성에 각별한 관심과 역점을 두고 전달해야 하겠다. 2) 오늘의 교회는 '윤리 부재'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스도를 닮은 크리스챤의 "life style" 을 개발하여 세상의 "본"이 되어야 한다.(빌2:5,3:17,살전1:7) 몇 만명 밖에 안된다는 이단 종파나 진리를 왜곡하는 그릇된 사람들이 전체사회를 뒤흔드는데, 1천만명 크 리스챤들은 무엇하고 있는가를 묻게 된다. 3) 극심한 교파주의나 교회 분열 경항은 뉴에이지운동 같은 이단 사상운동을 부채질한다. 뉴에이지운동은 기독교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토끼 세마리가 감자 두개를 놓고 나누는 문제로 싸우고 있는데, 굶주린 호랑이가 나타나서 하는 말이 "감자는 말할 것도 없고 네 놈 셋 모두를 먹어야 하겠다.!" 고 하는 것 같은 절박한 현실이다. 4) 우리는 뉴에이지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인간의 가치에 대한 견해에 주의를 해야 될 것이다. 모든 인간은 높고 낮음이 없으며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식하고 그대로 삶에 반영시켜야 한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원 받은 자유인인 동시에 모든 사람을 섬겨야 하는 봉사자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5) 그리스도의 사랑 그리고 크리스챤으로서 구비하여야 할 빛과 소금의 사명을 충실히 실천하도록 힘써야한다. 개인생활, 가정생활, 사회생활에 실제로 적용해야 할 것이다.이 점이 실패할 때 뉴에이지운동같은 두려운 사상이 우리를 위협하게 된다. 기독교는 윤리종교는 아니지만 윤리적 종교임을 기억하고 이에 따르는 종교(신앙) 생활이 일반 생활면에 직접 반영해야 될것이다. 기독교가 우리나라 사회의 정신적, 윤리적 도덕적 지주 역할을 못하게 될 때 다른 종교가 대신하게 되고, 기독교는 점차로 외면 당하게 될 것이다. 6) 복음으로 완전 무장하는 일이다 (엡6:10 이하 딤전6:12) 방어와 공격에 있어서 필요한 "하나님의 전신감주"를 입고 담대히 증거하고 악과 더불어 싸우는 일이다. 21세기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줄 것이 분명하다. 그 가운데는 거창한 종교적 도전들도 많을 것이다. 지금까지 경험한 것 같은, 일어났다가 곧 시들어지는 비교적 단순한 사이비 종파들이 아니라. 이해하기 힘들고, 분간하기도 아리송하고,다루기도 만만치 않은 고도의 복합성과 복잡성 그리고 합리적 이론을 겸한 매혹적인 "미혹의 영"들이 날뛸 것이다. 과연 뉴에이지운동은 우리 모두의 경각심을 일으켜 주는 혼합사상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의 한두 가지 교리에 도전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리스도교 자체와 그 존재 이유를 뒤집는 거창한 대상이다. 뉴에이지운동을 저지하라(1) 리버티대학상담학 교수:게리 콜린스 우리는 고린도후서 5:17절에 나오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입니다. 동시에 새로운 피조물된 우리는 세상과 화목케 하는 직분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화목의 대사(Messenger)가 된 것이지요. 2년전 어느 교회에서 이 말씀을 가지고 강의할 때 [뉴에이지운동(New Age) 속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택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뉴에이지운동(New Age Movement)'이라는 것에 의해 흔미 가운데 빠져들고 있습니다. 뉴에이지운동은 오늘날 서양세계를 온통 뒤흔들고 있는, 동양의 사상이 서양으로 이전되어서 다시 일어난 운동입니다. 그것은 현재 미국과 유럽 특별히 호주에서 아주 크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운동이 사용하는 많은 용어는 신학적 심리학적 용어들이며, 어떤 사람은 뉴에이지운동을 '아주 그럴듯한 지적 용어로 포장된 사단의 운동'이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이 강의를 하면서 세가지에 초점을 두고자 합니다. 첫째, 뉴에이지운동이란 무엇인가. 뉴에이지운동에 입각한 사고방식은 어떤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뉴에이지운동의 정의가 될 것입니다. 둘째, 뉴에이지운동을 우리 크리스챤들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셋째, 뉴에이지운동이 크리스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쳐왔고, 또한 끼치고 있는가. 특별히 교회와의 관계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가. = 뉴에이지운동은 반기독교 운동= 그럼 뉴에이지운동이 무엇인지 알아 봅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운동을 정확하게 말하기가 아주 어렵다고 합니다. 지난 수년간 이 운동에 관한 책이 여러 권 출판되었는데. 어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정의를 써 놓았다. 이 뉴에이지운동이라는 것은 영적인, 사회적인, 정치적인 것의 혼합체이며 사회학, 신학 그리고 순수과학을 다 포괄하고 있는 운동이다. 또한 그것은 의학이나 인류학, 역사학까지도 포괄하는 운동이며, 인간의 잠재력을 중요시하는 운동 가운데 하나요, 스포츠, 공상과학소설, 영화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운동이다. 그만큼 이 운동은 여러 사상이 혼합된 복잡다단한 것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운동을 신봉하는 사람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이렇습니다. 이 세계는 심오한 돌파구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낡고 오래된 사고방식에 젖어왔다 이 세계는 아주 혁명적인 사고의 변화(전환)가 일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사고의 전환이 앞으로 계속해서 일어나게 되면 20년후, 이 세상엔 평화와 번영이 찾아올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옛 윤리에 얽매일 필요가 없고 뉴에이지운동에 입각하여 새롭게 선과 악을 구분하는 사고를 갖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 세상 속에 일같은 전혀 새로운 뉴에이지의 변화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그래서 세계 곳곳에서 , 특별히 미국에서 뉴에이지운동 세미나가 활발히 열리고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서점이든 한쪽에 뉴에이지운동에 관한 책들이 비치되어 있을 정도입니다. 뉴에이지음악도 있고 이 운동에 입각한 식사법가지도 개발된 상황입니다. 호주에서는 호주 돈으로 약 1000만불의 돈이 매년 뉴에이지운동에 관한 출판과 세미나를 위해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와같은 현상을 결코 소홀히 지나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뉴에이지적인'사고방식에는 반기독교적인 이단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운동에 의하면 성윤리와 여러가지 선과 악을 분별하는 가치관이 점점 타락하게 됩니다. 흔히 이 운동을 주도하는 데는 많은 사람이 그룹으로 활동합니다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지는 한 사람은 여배우 셜리 맥클레인이란 사람입니다. 알다시피 미국은 배우출신 대통령이 8년동안 통치했습니다. 그러데 그뿐 아니라 미국을 사로잡고 있는 뉴에이지운동의 주도자 한 사람이 여배우란 사실에서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받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이 운동이 일시적으로 일어났다 사라지는 그런 운동 되길 바랍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발행된 한 잡지는 이 뉴에이지운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종교이다. 그것은 기독교와도 어느 정도 희미한 연관을 갖고 있고 또한 동양의 여러 신비종교와 연관을 갖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마술이나 범신론도 관련되어 이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를 도래시키기 위해서 합리적인 사고를 다 벗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도의 기술문명을 배제시킨다. 그 사람들은 우리에게 특별한 통찰력이 생겨서 이 우주와 특별한 접촉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와같이 뉴에이지가 도래하게 되면 모든 사람에게 행복이 주어지고 번영이 약속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이 운동을 현대 심리학의 요체라고 설명하고, 또 다른 사람은 뉴에이지운동에 상당한 매력을 가지고 자기 이론을 전개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신유운동을 하는 많은 사람이'뉴에이지적인' 사고방식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의학 의료분야 등 전문적 분야에도 뉴에이지 운동이 깊숙히 침투되어 있습니다. = 범신론에 근거한 뉴에이지운동 = 이와같은 뉴에이지운동은 비록 현대에 발생한 현상임에도 그 사상의 뿌리는 대단히 오래된 것입니다. 그 특징은, 그들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들은 '모든 것은 하나(All is one),라는 주장을 합니다. 인간,동물, 식물, 책상 등 모든 것은 하나이고 동시에 그것들은 하나의 여러 측면이라고 말합니다. 둘째, '모든 것이 신(All is God)'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크리스챤이 믿는 것처럼 유일한 분,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이고 동시에 신이다 (범신론)"라고 말합니다. 셋째, '모든 인간은 신'이라고 주장합니다. 당신 신이고 나도 신이고 모두가 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맥클레인이라는 여배우는 세미나에 나가서 "나는 신이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당신은 다른 어떤 신을 경배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바로 신이기 때문이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12장 내용을 기억하십니까? 21절 이하에 보면, 사람이면서 신이라고 추앙받는 한 인물의 종말을 보게 됩니다.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행12:21-24). 만일 우리가 뉴에이지운동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대로 나도 신이고 여러분도 신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즉, 여러분이 신이라면 다른 어떤 사람의 말도 들을 필요가 없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으며, 원하는 것은 다 가질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물질주의적이 될 수 있고 원한다면 비도덕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거기는 죄가 있을 수 없습니다. 넷째, 그들이 강조하는 것은 '계몽'입니다. 우리 모두는 신이라는 사 실을 깨우치게 되면 얼마든지 삶 속에서 적용할 수 있게 되고 우리가하는 사업하는데 성공할 수 있게 되고 우리가 하는 사업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신이 사업하는데 성공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병들었을 때도 그렇게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적극적 인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지니스에 대한 세미나를 열어, 어떻게 하면 비지니스 세계에서 성공할 수 있나를 가르칩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사고방식을갖게 되면 스포츠에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도한 학자들도 적극적이고 새로운 사고방식을 갖 게 되면 학자로서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온갖 종류의 약속을 보장해주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들어면 흥분하고 놀랍니다. 그들은 여러분이 깊이 명상하는 법을 배우면 우주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되고 그것이 여러분의 모든 점에서 다 유익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또한 그들은 모든 종교가 실패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이 이미 옛날 종교는 실패했다고 인정한다면 여러분이 우주의 중심이고, 신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고 스스로 의식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와같이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합리적으로 접근해서 이야기하기가 참 힘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합리적인 사고 자체를 던져버렸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시 태어나는 것, 즉 환생을 믿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와의 대화를 믿고, 사후 세계의 경험을 믿습니다. = 뉴에이지운동과 위험한 '중매자' 사상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계몽, 즉 깨우침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봅시다. 물론인류는 한 형제입니다. 성경에서도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한 형제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은 신자가 되고 어떤 이는 불신자로 남아 있기 때문에 크리스챤들이 보기에는 이 세상은 신자와 불신자로 나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류는 한 형제'라는 것만을 강조합니다. 깨우침의 두번째 내용은 우리 속에 굉장한 잠재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될 것은 사람들 속에 있는 잠재력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잠재력을 주셨고 능력을 주신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능력이란 더럽혀진 상태에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될 때에만 비로소 하나님께서 우리의 잠재력을 사용하여서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뉴에이지운동에서는 그와같은 사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깨우침의 세번째 내용은 우리 모두 명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도 명상을 아주 중요시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1편이나 119편 보면 우리가 무엇을 명상해야 되는 가는 보여줍니다. 성경은 우리 내부에 있는 어떤 잠재력에 대해서 명상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잠재력을 묵상합니다. 또한 그들은 어떤 중매자로부터 통찰력을 얻어야 된다고 말합니다. 뉴에이지운동에서 이러한 중매자의 사상은 가장 위험스런 사상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중보자, 중매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특별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로서,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주는 사람들이며, 마치 점쟁이나 동양 종교에서 말하는 스승 (구루)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어떤 신봉자들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무조건 다 믿으며, 그것이 궁극적이으로 진리인 것처럼 따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보면 이와같은 중매자들에 대해서 굉장히 경계하고 있는 것은 무조건 다 믿으며, 그것이 궁극적으로 진리인 것처럼 따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보면 이와같은 중매자들에 대해서 굉장히 경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성경은 이런 중매자들이 하는 이야기는 진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진리라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든 종교는 하나라고 주장합니다. 모든 종교는 서로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종교는 서로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금보다도 더 나은 세계가 곧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무제한적인 인간의 잠재력이 표출되는 그런 세계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세계에서는 우리 각 사람이 자기가 따라야 할 도덕을 정하는 자기 중심적인 도덕이 있는 세계입니다. 그 세계는 우리가 어떤 것을 상상하기만 하면 그것은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이 세상에는 강력한 어떤 힘(잠재력)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 생명적인 세력과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접촉을 해야하며, 생명력있는 에너지 세력을 우리가 있는 곳으로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그 생명력의원천, 그 세력에 접촉하기만 하면 우리는 지금까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런 힘과 생명력을 갖게 되며, 그렇게 되면 우리의 미래는 무한정 열려있게 되고, 놀랄 만한 잠재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또한 병 같은 것은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며 우리가 원하는 것을 주장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얻을 수있는 그런 세계 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뉴에이지운동을 저지하라(2) = 뉴에이지운동의 허황된 약속 = 그렇다면 이운동을 크리스챤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자유주의적인 교회는 운동에 대해서 대단히 개방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많이 수용하고 있고, 반면에 보수적인 교회들은 이 사상이 교회에 스며들고 있는 것 조차 잘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 운동이 크리스챤에게 위험한 첫번째 이유는 그리스도가 없는 복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게 헌신함이 없이도 우리가 얼마든지 해방되고 자유롭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두번째는 회개나 중생이 없이도얼마든지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약속합 니다. 죄를 믿지 않으니까 죄를 용서해 달라는 요청을 할 필요가 없는 것 이지요. 그들은 뉴에이지운동 세미나에 참석하면 여러분의 사고가 완전히 전환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죄를 속죄받을 필요가 전혀 없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세번째로 뉴에이지운동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깨우침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깨우침을 얻을 필요가 없이 그들 세미나에 가면 아까 말씀드린 생명력있는 어떤 세력에 접붙임을 받아서 여러분도 생명력을 얻게 된다고 말합니다. 네번째로 그들은 합리적인 생각없이도 얼마든지 성숙할 수 있다고 주장 합니다. 일반적으로 열심히 일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개발하면 할 수록 사 람은 점점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뉴에이지운동에서는 그런 것은 필요없다고 말합니다. 생각하지 않고는 얼마든지 성숙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이 셜리 맥클레인 세미나에 참석하면 생명력 있는 세력에 접붙임을 받게 되고 금방 여러분도 성숙할 수 있습니다. 즉, 어떤 노력과 수고가 없이도 성숙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그들은 고난 또는 실재가 없는 낙관주의를 주장합니다. 낙관주의적 사고만가지면 되지 현실주의적이 될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내가 언급한 것처럼 이것은 동양의 신비주의가 서양의 옷을 입은 모습입니다. = 뉴에이지운동과 크리스탈의 비밀 = 이와같은 운동에 대해서 과연 크리스찬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지난 수년동안 뉴에이지운동을 비판하는 여러 서적들이 출판되었습니다. 물론 어떤 책들은 정확성이 없는 책들도 있습니다. 때로는 비판을 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까지 비판하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크리스챤 심리자들이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서 도매금으로 모든 크리스챤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물론 심리학 안에도 뉴에이지사상이 들어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나는 심리학자입니다. 그래서 나를 보고도 뉴에이지운동과 관련되어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굉장히 공평하지 못한 처사이이지요. 어떤 책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책들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뉴에이지운동 을 비판한 한 잡지를 보았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뉴에이지운동은 일종의 종교다. 그것은 기독교와 힌두교, 도교, 선으로 부터 끄집어낸 종교이다. 만약 우리 자신이 우리의 행동에 대해서 모두 책임이 있다면, 그리고 뉴에이지운동에서 말하는 대로 우리모두가 신이라면, 당신이 잘못이다. 또 그곳에 태어난 것은 그들의 잘못이기 때문에 다른 부유한 곳에 사는 사람들이 그들을 도울 필요가 없다. 그것은 그들이 전생에 잘못을 지었기 때문에 그렇게 환생한 것이다. 그 사람들이 그곳에서 착하게 살면 그 다음에 환생할 때는 더 좋은 곳에서 태어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재산을 축적해서 못사는 사람, 굶어죽는 사람을 도울 필요는 없다. 이것이 뉴에이지운동의 논리적인 결론이다. 또한 뉴에이지운동은 크리스탈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 크리스탈에는 어 떤 마술적인 힘이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크리스탈을 집에 갖다놓기도 하고, 자기집 수영장에 갖다놓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크리스탈은 사람에게 생명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에너지를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합리적인 사람들은 이와같은 사고를 할 까닭이 없겠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에 빠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운동이 장래의 번영과 성공을 약속하고 있고, 사람들에게 죄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아도 해방감과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운동은 아주 새로운 사고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 뉴에이지운동에 매료되는 이유 = 여러분 가운데 뉴에이지운동의 창설자나 기원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 이 많은 것으로 압니다만 대답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이 운동은 특별한 창설자가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 시작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것과 관련해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비틀즈에 대해서 아시지요? 그들은 팝싱어들입니다.그들은 마약에 깊은 관계를 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매료되었습니다. 또한 존레넌과 그 멤버들이 인도의 사상이 분명히 훌륭한 것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상이 문화속에 침투된 한 예로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한 영화들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영화들은 뉴에이지운동을 흡수해서 만든 것입니다. 기독교 사상이 없는 어린이들이 이 영화를 보면 많은 영향을 받게 됩니다. 또 하나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비즈니스계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뉴에이지운동'의 원리를 이용합니다. 그들은 세미나 방에 모여 명상 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잠재력을 개발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명상하는 것이 아니라 환상 속에 빠져드는 자아개발이란 점에서 매우 위험한 접근이라 하겠습니다. = 적극적 사고방식과 뉴에이지운동 = 또 어떤 사람은 로버트 슐러의 '적극적인 사고 방식'과 뉴에이지운동이 어떤 관계가 있는것인가, 하워드 클라인벨의 크로스 카운셀링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질문합니다. 이 두사람을 병행해 놓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의 강조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워드 클라인벨은 신학적으로는 자유주의적이지만 많은 목회자들에게 유익한 책들을 썼습니다. 그는 우리 속에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로버트 슐러는 어던 '가능성 있는 사고'를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어떤 것이든 계속 상상하면 결국에는 그것이 성취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를들어, 자신이 큰 크리스탈교회를 상상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나중에 건축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슐러의 '적극적인 사고방식'속에는 상당히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나는 슐러의 가르침 가운데 어떤 부분에 비판적 태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것을 계속 상상하면 그것이 성취된다는 약속이 성경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상상을 아무리 해도 성취되지 않은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고 슐러의 신학에는 죄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나는 로버트 슐러가 헌신된 크리스챤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죄애 대해서 듣고 싶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슐러는 분명히 복음을 들고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슐러는 결국 반쪽 복음만을 사람들에게도 슐러는 분명히 복음만을 사람들에게 전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면과 긍정적인 면만을 강조하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반면에 제자로서 치뤄야할 값 이라든지 회개해야할 측면들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나 자신은 내가 가지고 싶고, 도달하고 싶은 것을 상상이나 적극적인 사고만으로 성취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한국의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해서 한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지요. 우리는 어느 것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봐야 합니다. 물론 슐러를 뉴에이지운동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고는 절대로 생각지 않지만, 뉴에이지적인 사고방식이 슐러의 가르침속에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 뉴에이지운동과 잠재력 개발 = 또한 초월명상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나타냅니다. 여기에는 힌두교적 요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흔합니다. 몇년 전에 이 문제를 가지고 미국에서 논쟁이 있었습니다. 어떤 공립학교 교사가 자기 학생들에게 초월명상을 가르치겠다고 주장했는데 학교 주위의 크리스챤 학부형들이 이를반대했습니다. 그 이유는 초월명상이 힌두교의 철학에 기초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법원에 소송되었고 판다는 초월명상이 힌두 철학이기 때문에 가르칠 수 없다고 판결내렸습니다. 그 후 어느 하버드 대학 교수가 사람들이 초월명상을 통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기도 하였지만, 크리스챤은 초월명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명상하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마음을 비우는 것이란 점에서 한치의 양보없이 반대하였던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나도 여러분이 초월명상에 빠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뉴에이지운동을 저지하라(3) = 뉴에이지운동과 잠재력 개발 = 또 어떤 사람은 제 3 의 심리학과 뉴에이지운동의 차이점을 밝혀달라는 질문을 합니다. 역사적으로 심릭학은 세가지 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프로이드로부터 시작하는 임상심리학으로서 심리적인 문제를 다룹니다. 두번째 흐름은 실험적인 연구와 조사에 초점이 되는 심리학입니다. 그것은 독일에서 시작되었고 실험심리학이라 합니다. 그런데 25-30년전부터 이 두 흐름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나타나났습니다. 이 두 심리학은 인간이 겪는 문제들을 현실적으로 다루지 못하고< 너무 복잡하기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세번째 흐름의 심리학이 등장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주의적인 심리학입니다. 바로 인간자체, 인간의 잠재력에 초점을 두는 심리학입니다. 프로이드 심리학에서는 종교는 해로운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험심리학에서는 종교는 별로 중요하지 않고 이 세상과 별 상관이 없다고 보았으며 인간주의적 심리학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인간의 잠재력을 믿는 종교를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내가 생각할 때, 뉴에이지운동은 바로 세번째 인간주의적 심리학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칼 라쥐라는 카운셀링의 한 지도자가 있었는데 그는 말년에 이단 사교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인도로 여행가서 동양 사상에 심취했고. 서양심리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가 바로 인간주의적 심리학자였습니다. 또한 아브라함 메슬러는 우리의 심리학을 최대로 살려서 개발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자기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직업하고 격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메슬러의 사고에서는 죄와 회개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인격적이고 전능한 하나님은 더군다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또한 셜리맥클레인이라는 뉴에이지운동 지도자는 자주 세미나를 통해 인간의 잠재력에 대해 말합니다. 자아실현이란 자아를 최대한 개발하자는 것인데, 맥클레인의 자아개발은 모든 주장의 핵심에 하나님이 빠지고 인간이 그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물론 크리스챤으로서 그 사람의 잠재력을 개발하도록 격려하고 도울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챤은 성령께서 우리 속에 살아계시고 우리에게 힘을 공급하며, 우리로 하여금 죄를 멀리하고 은사를 주어 그 은사의 활용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데 사용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아의 잠재력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잠재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우리 속에 살아계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개발시키고 우리를 도와서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는 그런 인물이 되도록 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 뉴에이지운동과 '마녀사냥(witch hunting)'= 이제 끝으로 크리스챤으로서 뉴에이지운동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운동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합 니다. 미국에는 뉴에이지운동 비판서적이 많이 나오는데 앞으로는 한국말 로도 출판되리라 생각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어떤 현상이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아덴에 있을 때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그들의 시까지도 인용할 정도로 깊이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바울은 그들의 문화와 사고방식 뿐 아니라 자신이 진정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바로 복음을 전해야 된다는 목표의식을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글쓰는 많은 사람들은 뉴에이지 운동에 대해서만 깊이 연구하고 분석할 뿐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자기의 할 일이 무엇인지 를 확인하는 일에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엑소시즘에 대해서 굉 장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 친구는 너무 그 일에 심취한 나머지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오히려 마귀에 대해서 더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일때가 있습니다. 늘 마귀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귀의 전설을 말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대단히 염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뉴에이지 운동에 대해 잘알고 있어야 함과 동시에 우리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늘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두번째로는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이 운동에 참여해야 된다는 것입 니다. 참여한다는 말에 오해없길 바랍니다. 그것은 관심을 적극적으로 가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연예계에는 이미 이 운동이 깊숙이 침투했고 교육 계와 비지니스계 그리고 세속 심리학 소게도 상당히 침투한 것으로 압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현상을 보고 그렇다면 나는 이 분야에서 손를 떼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심리학에 뉴에이지운동이 침투했기 때문에 나는 심리학과는 담을 쌓겠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도피하라고 부른것이 아니라 이 세상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운동을 잘 알고 참여하여 복음으로 그들과 대처해 야 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나는 미국 심리학협회의 한 회원입니다. 그 협회 안에는 뉴에이지운동을 강조하는 심리학자들이 많습니다. 어느 심리학자는 더 이상 그런 분위기에 는 적응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탈퇴한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들의 어떤 확신이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 존중합니다. 그러나 나는 협회에 계 속 남아있길 결심했고, 비록 작은 힘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이라도 미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의미 에서 난 우리가 세계 속에 깊이 참여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세번째,우리는 '마녀'사냥(witch hunting)'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마녀사냥이란 중세에 유행했던 하나의 어두운 현상입니다. 당시 교회 안에는 '마녀'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들을 가려내어 불태워 죽이는 일을 자행했습니다. 누가 마녀인지를 가려<내기 위해서 여러가지 이상한 질문과 방법들을 개발해냈습니다. 마녀가 발견되면 호수속에 익사시키기도 했습니다. 호수 속에 던져 넣어서 시체가 떠오르면 마녀였다고 확신하고 그 시체를 끄집어내어 불태우고, 만일 시체가 떠오르지 않으면 마녀가 아니라고 간주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죽어간 애매한 사람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지난달 미국에선 [마녀사냥](Witch hunting) 이라는 한 권의 책이 출판된 일이 있습니다. 두 명의 헌신된 크리스챤이 공동 저술한 그 책에서는 교회 안에서 뉴에이지운동을 하는 사람을 가려낸다고 남을 무조건 의심하거나 비판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혹 어떤 사람은 로버트 슐러가 '뉴에이지운동가'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조용기 목사가 그렇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지난 수년간 큰 영향력을 미쳐왔던 데이빗헌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두달전 뉴질랜드의 한 교회에서 설교를 하면서 뉴에이지운동에 대해 경계해야 할 사람을 지적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교황으로부터 모든 사람들을 예로 들어가면서 경계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듣고 있던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당신이 비판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한사람이라도 있는가?" 데이빗 헌터는 과잉반응을 보였던것입니다. 또 한번은 내가 썼던 한 책에 대해서 비판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내 책의 20페이지 밖에 읽지 않고 "이 책은 너무도 나쁘다. 이단 사설로 가득차 있으며 더이상 읽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마태복음18장에 의거해 그사람이 적어도 나를 비난하는 책을 쓰기 전에 먼저 나에게 대화를 요청하길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러질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의 책을 일부분만 읽고 < 책의 전체를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미국에서는 많은 크리스챤들이 진정 해야할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에게 제자로 삼는 일보다는 다른 크리스챤들을 헐뜯고 비판하는 일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교회 안에서 다른사람들의 조그만 결점을 가지고 그 사람을 헐뜯고 비난하면 교회만 분열 될 뿐입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설교할 때 아덴 사람들에게 여러분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 경배하지만 나는 여러분에게 진짜 신을 소개하겠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사상이나 입장을 알고 난 뒤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긍극적인 목표가 될 것입니다. = 뉴에이지운동 분별방법 = 우리는 목회자로서 상담을 자주 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뉴에이지운동에 대한문제로 갈등과 충돌을 빚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런 경우를 당하면 우리는 뉴에이지운동에 대한 잘못된 사고를 도려내고 하나님의 말슴에 입각한 성경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이 뉴에이지운동에 사로잡혀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탭 성경적인 사고방식인가 알 수 있을 까요 여기서 몇가지 기본적인 분별방법을 제함으로써 본 강의를 끝맺겠습니다. 1) 모든 상황 속에서 경건한 삶을 살고 영적인 성숙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상담자 자신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경건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적인 상담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 영적인 삶을 실제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2) 규칙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공부를 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너무 바빠서 실제로는 못할 때가 많지요. 3)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인용할 때는 말씀 앞뒤에 있는 문맥을 반드시 알고인용해야 합니다. 즉, 말씀 하나만 뚝 떼어서 전혀 상황(context) 에 맞지 않은 해석을 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4) 우리는 모든 상담 방법, 가정 (comsumption), 가치관, 조언, 충고들은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서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상담을 비롯 우리가 하는 활동의 모든 것을 테스트하는 기준은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5) 여러분 상담을 하면서 <성령인도를 계속해서 구하십시오 보통 우리가 접하게 되는 모든 문제는 각각 독특한 것입니다. 때문에 성령께서 우리는 도우셔서 효과적인 상담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6) 성경이 직접적으로 상담에 대한 공식을 우리에게 제공한다고 기대해서 않된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성경은 우리 인간이 필요로하는 것에 대해서 답변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성경이 마치 교과서처럼 우리가 카운셀링을 할 때 필요로하는 모든 것을 다 대답하고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다만 우리가 카운셀링을 갖는데 꼭 필요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7) 상담방법에는 성경적인 방법이 단 한가지 밖에는 없다고 가정해서는 않됩니다. 우리는 여러교단에 속해 있습니다. 각자의 선교에 대한 전략도 다양하고 성경귀절에 대한 해석도 각기 분분한것이 사실입니다. 또한 상담 방법도 가지각색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의 개성이 다르기때문에 우리의 개성과 병행 조회되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상담을 할 수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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