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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경택(35) 감독의 영화 ‘친구’에 관객이 몰리고 있다. 같은 때부터 인기소설가 은희경(42)의 신작 ‘마이너리그’에도 독자들이 줄을 잇는다. 하 수상한 「시절」인 요즘, 비슷한 연배의 주인공들이 나오는 소설과 영화가 사람을 부른다. 영화 주인공들은 부산서 60년대 초반에 태어나 학창을 부산서 마친 네 사나이고, 소설 주인공들도 전주로 짐작되는 곳에서 58년에 태어난 개띠 동창생 네 명이다.
영화에서는 조폭 보스를 아버지로 둔 준석, 가난한 장의사의 아들 동수, 화목한 가정서 자란 상택, 밀수업자를 부모로 둔 중호 등이 흘러간 그 「시절」을 거침없이 불러내 관객을 사로잡는다. 카메라는 대목대목 번득이는 칼과 주먹으로 시류적 폭력성을 비추며 그들의 20년 우정과 의리를 쫓아간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유신 말기의 고교시절에 학교서 벌을 받다가 ‘만수산 드렁칡 4인방’이 된 김, 배, 장, 조 등 걸물들이다. 이들은 평생 운명처럼 동행의 굴레에 엮여 있다가 엉터리 사진작가의 조수, ‘사업구상업’이 직업인 건달, 그리고 광고회사의 카피라이터 등으로 어른이 돼 간다. 그러다 모처럼 의기투합했던 일이 비참한 결말로 이어지고 만다.
이 영화와 소설 탓에 문화판의 화두는 우연찮게 ‘친구’가 돼 있다. 고교 졸업앨범 사진이 보기 좋을 만큼 빛 바랬을 30~40대들이 ‘친구’와 ‘마이너리그’에 몰리는 것은, 지금의 현실이 갑갑하다는 것일까. 관객 동원에서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곽 감독은 “내가 이 영화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한 시절’과 그리움”이라고 말했다. 단방에 수백만명의 가슴을 훔친 사람은 「시절」을 읽어내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면, 분명 곽 감독의 눈에는 그 어떤 것이 보였다는 뜻이다. 그들은 무엇을 애태워하고 있는지, 그들은 무엇이 갈급한지, 어디가 가렵고, 왜 화가 나 있는지도. 육십을 훌쩍 넘겨 원로의 반열에 들어서고 있는 ‘4·19세대’에도 끼지 못하고, 첨단 대중문화의 주무대에서는 ‘신인류’에게 외면당하고 비켜서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이 땅의 ‘유신세대’(30~40대) 남자들…. 검정 교복, 교련, 빡빡머리, 중국집, 배갈… 등으로 표상되는 한 「시절」의 주인공들은 물러나버린 세대가 아니라, 지금 이 땅의 주역이라는 사실을 왜 우리는 그토록 자주 잊어버릴까. 그들 중 대다수는 서울대반, 연고대반 아이들에게 치여서 ‘기타반 아이들’로 분류 당했던 이·삼류 인생이었지만, 그 마이너리그에 속한 친구들 사이에 우리의 위안이 숨어있다는 것까지. ‘일류’는 아니었지만, 그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대중적 ‘주류’가 아니었을까. 정치·경제의 실체이며 사실상 문화계의 주체적 구매력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언제든 그들의 가슴을 훔치기만 하면, 그 힘이 폭발할 수 있다는 방증은 아니었을까. 아니, 물리적 실제 시공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그 시절」이 문화예술의 소재가 된다는 것도 새삼스럽지는 않다. 곽경택의 건달 친구들이 부산을 무대 삼았고, 은희경의 ‘마이너리그’가 전주를 연고지로 하고 있듯, 이는 동서를 막론한 전국 현상이다. 한 시절을 역류시켜 옮겨놓는 힘은 그리움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친구’와 ‘마이너리그’는 각각 남자 4명의 학창시절과 그후의 삶을 그리면서, 한국의 중년들에게 70년대·80년대·90년대는 진정 무엇이었는가 라고 물어봐 주고 있는 셈이다.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