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아리랑
김재학
이 땅에서 가장 위대한 어머니의 기도가 끝나는 순간, 나의 수능시험도 끝이 났다.
수능만 끝나면 내 인생에 고속도로가 놓인다고 생각했다.
수능만 끝나면 소설 속 캠퍼스의 낭만이 두 팔을 벌리고 어서오라며 환영할 것이라 믿었다.
수능만 끝나면 공부에서만큼은 완전히 해방될 것이라 여겼다.
수능만 끝나면 세상의 모든 일이 나의 뜻대로, 나를 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라 확신했다.
“오늘부터 공부로부터 완전 자유다.”
수능이 끝난 다음 날 솜사탕 같은 아침을 열며 외친 나의 즐거운 해방 노래에 대학생 누나의 연민 어린 위로가 서슬 퍼런 칼날이 되어 나의 목덜미를 겨누었다.
“동수야, 어쩌면 좋니.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인데……”
누나의 적극적인 권유와 여론의 협박에 밀려 나는 수능이 끝난 삼일 뒤 토익학원에 등록해야만 했다.
학원에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예비 신입생 대부분이 입학 전부터 사회적 분위기에 떠밀려 취업을 위한 선행학습을 하고 있었다.
대학에 입학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막대사탕 하나를 입에 물고 안개 같은 희망을 가슴에 담고 캠퍼스의 낭만을 찾아 나섰다.
처음에는 정말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설마를 두 손에 부둥켜안고 캠퍼스를 구석구석 뒤졌다.
어디에도 내가 찾는 낭만은 없었다.
어느 소설책에서 읽은 내용처럼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 따스한 봄 햇살을 안주 삼아 막걸리라도 한잔하고 싶었다.
그러나 누구와 한단 말인가?
아마도 혼자 잔디밭에 앉아 막걸리판을 벌인다면 누군가로부터 신고를 받은, 하얀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정신병동에 감금하러 오지나 안을까 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했는지 아니면 다른 고등학교로 전학을 왔는지 아침마다 헷갈렸다.
단지 교복을 입지 않아도 된다는 것 외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새벽에 고등학교에서 하는 영 교시 수업 대신 학원에 들러 토익강의를 들었다.
토익 강의가 끝나면 햄버거와 콜라를 손에 들고 버스를 타고 학교로 이동하여 정규 시간표에 맞추어 강의를 들었고, 강의가 비는 시간에는 도서관에서 스펙에 필요한 공부를 했다.
나의 눈에 들어온 캠퍼스는 곳곳이 고요와 우울이었다.
도서관은 전쟁터였고, 넓은 운동장은 무인도였다.
무인도는 체육대회 기간에만 빤짝 피고 지는 벚꽃 같았다.
내가 겪는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고 배우는 곳이 아니라 취업을 위한 전쟁터, 신용불량자 양성소, 입대를 위한 대기 장소였다.
과 선배들이 학비로 받은 융자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하루걸러 하나씩 도서관을 찾았다.
친구들은 미래의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기 위해 이른 새벽 도서관에서 시작해 늦은 밤 대로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로 마무리했다.
현실의 무게에 하루하루 겨우 버티어 가는 제자의 질문에 어느 교수는 “싫으면 하지 않으면 될 게 아니냐.” 라고 답했다가 강의 도중 쫓겨나기도 했다.
입학 전 내가 생각했던 캠퍼스는 낭만과 사랑이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였다.
그러나 내가 직접 접한 캠퍼스는 숨이 턱턱 막히는 사막이었다.
대학에 대한 나의 기대에 많은 실망이 마중하는 가운데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할아버지가 남긴 유언이었다.
오전에 있던 수업이 휴강이라 모처럼 나는 민혁과 함께 도서관 휴게실 나무 의자에 앉아 캠퍼스를 지배하고 있는 과도한 등록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언제 왔는지 미선이 자리를 비집고 앉으며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정말 등록금 걱정 없이 지성인답게 학문에만 전념할 수는 없는 것일까?”
“……”
미선의 물음에 우리 두 사람은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식어버린 커피만 마셨다.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전국의 모든 학생이 등록금 때문에 마음 한구석에 부모님에 대한 불효의 주머니를 달고 다녔다.
그렇게 매일매일 과도한 등록금 때문에 불효하는 우리에게 귀가 활짝 열리고 눈이 번쩍 뜨이는 기회가 왔다. 대선이었다.
후보들은 경쟁적으로 반값등록금 공약을 내세웠다.
뼈다귀 해장국집에서 날씬한 개미허리로 버티고 서서 식기를 닦던 미선도, 통닭집에서 수탉처럼 수컷의 냄새를 물씬 풍기며 스쿠터에 몸을 싣고 통닭을 배달하던 민혁도, 그 후보의 공약을 믿고 인심 쓰듯 표를 주었다.
다행히 그 후보는 나보라는 듯 당선이 되었다.
가녀린 몸에 비해 남자보다 터프한, 그래서 상고머리를 한 나를 늘 동생처럼 보호하던 미선은 언제쯤 식기 닦는 아르바이트를 그만둘까 고민했고, 조각칼로 깎아 놓은 것 같은 날카로운 턱선만큼 세상을 예리하게 비평하는 민혁은 이번 달까지만 스쿠터를 타기로 했다.
대선은 끝났지만, 인수위가 가동되었지만, 반값 등록금에 대한 발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오직 후보자의 반값 등록금 공약만 믿고 표를 주었는데 그 약속을 껌으로 씹었는지, 씹다 만 껌을 어느 골목에서 유세하다 뱉어 버렸는지, 아니면 유세 중 삼켜 똥으로 싸버렸는지, 계절이 바뀌었는데도 반값 등록금 공약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긴 웨이브 머리에 짙은 쌍꺼풀과 오뚝한 코로 짓궂은 손님들의 시선으로 샤워하는 미선은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 호프 잔을 날랐고, 하이틴 만화의 주인공처럼 개성 있는 얼굴에 염색한 투 블록이 잘 어울리는 민혁은 당선자가 뱉은 껌을 찾는 심정으로 골목골목 스쿠터를 계속 탔다.
미선과 민혁은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같은 과 친구였다.
민혁은 집이 시골이었다.
집이 시골이라 해서 특별히 학비에 부담을 느낀다든지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친환경 농법으로 특용작물을 재배하는 민혁의 아버지는 연봉으로 따지자면 대기업 임원인 미선의 아버지 연봉에 절대 뒤지지 않았다.
민혁은 철저한 현실주의자다.
주는 만큼, 일한 만큼 뭔가 돌아와야 직성이 풀리는 친구였다.
그는 대선에서 본인에게 더 큰 이익을 줄 수 있는 후보를 선택했다.
그 후보는 당선되었지만, 그의 선택은 실패했다.
그 후보는 당선되자마자 국민을 상대로 한 약속을 껌으로 씹고 똥으로 싸버렸다.
그는 술에 취하면 잘못 선택한 자신의 손목을 잘라버리고 싶다며 푸념하곤 했다.
그 이후 그는 선출직 공무원이 하는 말은 그 누구의 말도 믿지 않는다.
그들이 내뱉은 말에 반대로 행동하면 중간은 간다는 것이 그 친구의 논리였다.
미선은 입학과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했다.
부모님께 효도를 위해서도 학비에 보태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미선은 누구보다 세상을 빨리 알고 싶어 했다.
뭐든지 경험하고 싶어 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기성세대에 맞서고 싶어 했다.
그녀는 주인 정신이 실종된 노예근성으로 쌓은 경험도 경험이라며 기득권을 쥐고 놓지 않는, 늙은 기성세대들이 이끌어온 세상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는 선배들이 조금 먼저 경험한 논리를 내세워 세상을 독점하려는 꼴이 정말 보기 싫다며 술만 취하면 목소리를 높이는 친구였다.
중간고사가 끝이 나고 축제가 시작되었다.
역시나 나의 기대는 산산이 무너졌다.
축제는 총학의 집행부, 단대의 집행부, 학과의 집행부, 동아리의 집행부, 즉 집행부만의 축제였다.
대학마다 값비싼 행사비를 지급하고 경쟁적으로 초대한 아이돌 가수의 무대에 재학생은 없고 학교 주변에서 몰려든 중·고등학생뿐이었다.
그렇게 가슴 떨리며 기다렸던 축제였는데…… 내 앞에 나타난 축제는 현실을 직시 못 한 몇 명의 신입생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 선배가 어깨에 견장 달고 학과를 찾는 특별한 날로 변질되어 있었다.
어깨에 견장을 달고 지갑을 활짝 연 학과 선배는 술에 취한 채 늘어난 테이프처럼 회사에서 단 한 줄도 써먹지 못하는 학과 공부를 왜 그렇게 열심히 해야만 했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며 넉살을 부렸다.
축제 중에도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외국어를 공부했고, 검은색 초미니스커트에 프릴이 화려한 흰색 블라우스를 입은 미선은 자리를 옮겨 카페에서 칵테일 잔을 날랐으며, 찢어진 청바지에 카키색 점퍼를 걸친 민혁은 통닭집에서 열심히 스쿠터를 탔다.
화려하게 아이돌 가수를 내세워 시작한 축제는 학우들의 외면으로 초라하게 끝이 났다.
기말고사를 끝낸 나는 미리 준비된 일정대로 여름 방학을 이용해 석 달간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왔다.
석 달간의 짧은 어학연수가 나의 영어공부에 실질적인 도움이 된 것은 없지만, 남들이 다 하는 어학연수를 갔다 오지 않음으로써 혹 면접 시 기업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지나 않을까 하는 심리적 불안만큼은 분명히 덜어냈다.
내가 어학연수를 마치고 온 날에도 미선은 카페에서 열심히 칵테일 잔을 날랐고, 민혁은 통닭집에서 열심히 통닭을 배달했다.
미선도 민혁도 이번 방학 때는 아니지만, 졸업 전에 분명히 어학연수를 갔다 와야 하고 또 갔다 올 것이다.
이런 형식적인 겉치레가 대학생이 가져야 할 스펙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다.
매일 각종 언론 매체에서 토해내는, 만무방 같은 정치인들의 거짓 청사진은 젊은이의 뜨거운 가슴에 숨겨둔 내일에 대한 희망을 잔인하게 짓밟았고, 통계청으로부터 쏟아내는 통계는 전생에 철천지원수였는지 발표하는 내용마다 젊은이의 가슴을 후벼팠다.
미선은 정부 기관에서 발표하는 통계는 믿지 않는다면서도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자료를 살펴보았다.
상상을 초월한 청년실업에 대한 여론의 악화를 막기 위해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정치권에서는 몇백만 개의 일자리 창출을 약속하며 민혁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지만, 민혁은 가증스러운 상판대기로 매시간 뉴스를 장식하는 그들을 향해 침을 뱉았다.
그들이 경쟁적으로 토해내는 정치적 말치레는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더러운 쓰레기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저녁 9시 뉴스, 메인 앵커의 우울한 클로징 멘트가 그것을 입증했다.
‘대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들은 불투명한 미래 경제라는 핑계를 앞세워 올해 신입사원 모집인원을 예년보다 30% 이상이나 줄인답니다.’
연일 빚쟁이처럼 찾아오는 우울한 소식에 학과 친구들이 한 명 두 명 휴학계를 제출했다.
군대 갔다 오면 지금보다는 낫겠지 하는 희망 섞인 바람과 캄캄한 현실에 대한 탈출이었다.
민혁과 내가 국방의 의무를 하는 그 시간에 미선은 휴학하고 어학연수를 떠났다.
나와 민혁은 운 좋게도 제대 후 잉여의 시간 없이 복학할 수 있었다.
여느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복학과 동시에 진로에 관해 고민해야 했다.
취업준비를 할 것인지, 전공을 살려 대학원을 진할 할 것인지, 아니면 혼자서 오랜 시간 갈망해오던 창업을 할 것인지, 친구들이 취업준비에 온 정열을 쏟으며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며 다양한 스펙을 쌓는 동안 나는 창업 준비를 위해 마지막 학창시절 일 년을 현장에서 발로 뛰며 곳곳에 발자국을 남겼다.
현장을 뛰어다닌 일 년의 시간은 공부하는 것보다 힘들었고 괴로웠다.
그중에서도 가장 나를 힘들게 만든 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이었다.
아무리 철저한 준비를 한다고 해도 정말 창업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나의 발걸음을 세워놓고 자주 되돌아보게 했다.
그날도 창업에 필요한 시장조사를 마치고 열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시장조사 결과가 예상했던 것보다 좋게 나와 기분이 좋았다.
자축하는 의미로 캔 맥주를 샀다.
덜컹거리는 열차에서 마시는 맥주는 시원하게 목을 타고 넘어갔다.
그렇게 한 모금 두 모금 부드럽게 넘어가던 맥주의 질감이 어느 순간 가슴에서 무겁게 느껴졌다.
마음 한편에서 알 수 없는 뭔가가 자축을 방해했다.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정체가 무엇인지 천천히 생각해보았다.
모든 것이 계획했던 대로 진행되었다.
금방이라도 내가 원하는 창업의 형체가 드러날 것도 같았다.
그런데 좀처럼 그 형체가 실루엣에 가려 드러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뭔가에 발목이 잡혀 있는 기분이었다.
나의 발목을 잡고 더는 나아갈 수 없게 물고 늘어진, 나의 자축을 방해한 그 녀석은 바로 창업자금이었다.
모든 과정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젊은 혈기와 건강한 육체 덕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도 몸으로 때우고 발품을 팔아가며 여기까지 올 수가 있었다.
그러나 자금문제가 가로놓이면서 나는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다음날 나는 자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중 금융권을 찾았다.
금융권에는 주체할 수도 없을 만큼의 좋은 제도와 선심성 홍보가 어서 오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들은 너무나 쉽게 다양한 방법으로 내가 원하면 뭐든지 다 들어 줄 것만 같았다.
나는 그들의 달콤한 홍보 문구를 굳게 믿고 창업에 필요한 대출상담을 담당자와 시작했다.
그렇게 다정하게 어깨를 두드리며 뭐든지 다 들어줄 것처럼 격려하던 문구들은 하나둘 얼굴을 붉히며 담당자 뒤로 물러났다.
그들이 뒷걸음질로 물러난 자리에는 자다가도 경기를 일으킨다는 연대보증이라는 도둑놈과 부모님의 집을 담보물로 내놓으라는 날 강도가 입맛을 다시며 내 목을 옥죄었다.
금융권의 창업지원정책 중, 나 같은 사회 초년생을 위한 지원제도는 말 그대로 그림의 떡이었다.
결국, 나는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사업계획서를 제대로 브리핑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기득권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에 걸려 돌아서야만 했다.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었다.
나는 학교 앞 주점에서 매일 술로써 세상과 싸웠다.
아르바이트 시간이 다른 미선과 민혁은 윤번으로 찾아와 나를 위로했다.
그러나 그 어떤 위로도 나의 가슴에 깊게 팬 상처를 다독여주지는 못했다.
그날도 학교 앞 주점에서 세상과 싸우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끝낸 민혁이 지도 교수와 함께 주점으로 찾아왔다.
술에 취한 나는 세상에 대한 원망을 핑계로 지도 교수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지도 교수는 안절부절못하는 민혁에게 괜찮다며 나의 맞은편에 앉았다.
“동수야, 세상이 참으로 미울 것이다. 불이라도 지르고 싶은 네 심정 내 충분히 이해한다. …… 나를 욕해.”
지도 교수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술잔을 들어 단숨에 마셨다.
잔이 비워지자 지도 교수가 술을 채워주었다.
그렇게 몇 잔을 더 마셨다.
“그래, 이렇게 술에 취해 지내니까 세상이 조금 달라 보이니? 다른 사람들이 너의 말을 들어주니 세상이 바뀌는 것 같니? 뭐가 그렇게 억울한데? 뭘 그렇게 큰 것을 잃었는데? 이렇게 지내면 누가 알아줄 것 같아? 어리석은 녀석. 세상에 가장 못난 사람이 세상이 뜻대로 안 된다고 자신을 자해하는 사람이야. 넌 지금 너의 몸과 영혼을 술로써 자해하고 있어. 이 못난 놈아…….”
그렇게 지도 교수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내심 따뜻한 위로를 기대했던 나는 지도 교수의 냉정한 일침에 놓아버렸던 정신 줄을 찾았다.
“동수야, 돌아서고 포기하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분명 아닌 것 같다. 죽어가는 환자를 의사가 수술로 살리듯 너의 창업계획에 냉정하게 메스를 가해보아라.”
술에 절어있던 몸을 추스르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
정상 컨디션을 찾은 나는 지도 교수의 말대로 창업계획에 대대적인 수술을 집도했다.
수술을 끝낸 후 나는 창업계획서를 들고 지도 교수를 찾아갔다.
변경된 계획서를 검토하던 지도 교수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입은 마음의 상처를 다독여주었다.
지도 교수는 산학협력 창업지원제도를 활용할 것을 제안하며 창업과 연계할 수 있는 산업체 몇 군데를 추천해 주었다.
졸업식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내가 구상한 창업도 그 구체성을 드러냈다.
지도 교수가 추천해준 기업체 한곳으로부터 협력업체 요건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라는 통보가 왔다.
2박 3일의 오리엔테이션은 졸업식과 겹치고 있었다.
나는 오리엔테이션 참석을 위해 졸업식 참석을 포기해야 했다.
그동안 본인의 일처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지도 교수께는 다녀와 찾아뵙겠다는 말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지도 교수는 오히려 고군분투하는 내가 또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이라도 할까 격려했다.
“성공과 실패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걷는 너의 파란 발자국이 후배들에게 희망의 디딤돌이 될 것이다. 그러니 멈추지 말고 걸어라. 너의 파란 발자국이 너를 축하할 때까지.”
2박 3일간의 오리엔테이션은 나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었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연수원 정문을 나서는데 포기하고 돌아섰던 아픈 시간과 때로는 자기만족에 가슴 설렜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쳤다.
오리엔테이션에서 돌아온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친구들과의 약속을 생각하며 짐도 풀지 않고 진눈깨비를 맞으며 이야기은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귀를 베는 바람에 더욱 한산해진 거리에는 화려하지 않은 몇몇 간판만이 진눈깨비를 마중했다.
시내를 휘젓고 다니는 바람에 멱살을 잡힌 채 흔들리는 간판들 사이로 이야기은행이라는 노란 명찰이 반가운 친구라도 부르는 듯 손짓했다.
이야기은행은 막걸리와 소주를 파는 주막집이었다.
대학 시절 우리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기도 했다.
나의 연인이었던 주미의 간절함도, 민혁의 연인이었던 승주의 울음도, 미선의 연인이었던 인호의 열정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이야기은행은 낮인데도 실내가 어두웠다.
추위에 움츠렸던 몸이 실내 환경에 적응하자 실루엣에 가려져 있던 물체가 하나둘 드러났다.
이야기은행 주인장은 볼록 나온 배를 앞세워 집 나갔던 자식을 반기듯 나의 손을 꼭 쥐며 졸업을 축하했다.
실내에는 몇 명의 손님이 술잔에 시간을 팔고 있었다.
입가의 팔자주름이 인상적인 주인장은 요즘 같은 불경기에 술 한 잔이라도 팔아주는 손님이 고맙긴 하지만, 마냥 즐거워할 일만은 아니라고 했다.
손님들의 대화 내용이 최근 들어 부쩍 정부정책에 대한 불신과 위정자들에 대한 비판으로 노골화되었다고 했다.
손님의 대부분은 기쁨을 나누기 위해 술을 마시기보단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마신다고 했다.
주인장의 넋두리를 듣고 있는 사이 주막의 출입구가 활짝 열리면서 미선이 들어왔다.
“졸업 축하한다.”
“그래, 너도 졸업 축하한다. 오리엔테이션 갔던 일은?”
“그럭저럭.”
나는 미선에게 졸업식장 분위기를 물었다.
미선은 말없이 술잔을 들이켠 후 긴 한숨을 내 쉬며 졸업식장 분위기를 전해주었다.
눈치 없는 진눈깨비가 찬바람과 함께 무법자처럼 설쳐대는 졸업식에 미선은 부모님께 연락도 하지 못하고 졸업식에 참석했다고 했다.
인생의 낙오자라는 낙인이 등에 찍히는 상상 속에 소름 돋는 나날을 보내야 했던, 꿈에도 소원이었던 취업이라는 녀석을 여인으로 두지 못하고 짝사랑만 하다 졸업식에 참석한 친구들의 표정은 냉동실에 갇힌 동태 같았다고 했다.
즐거운 졸업식이라는 말은 옛 유행가 속에서 꿈틀거릴 뿐 졸업식 행사는 무겁고 침울했으며, 졸업식장에 참석한 졸업자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찾은 친지들의 표정은 웃음을 잃어버린 마네킹 같았다고 했다.
미선은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생각하며 숨쉬기조차 불편한 졸업식장을 화생방 실습실 탈출하듯 빠져나왔다며 졸업식장의 분위기를 전해주었다.
미선의 입을 통해 들은 졸업식장 소식에 나는 가슴이 뭔가에 짓눌린 것처럼 먹먹했다.
졸업식장에서 쓸쓸하게 돌아서야 했던 미선도, 졸업식장도 참가하지 못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동분서주해야만 했던 나도, 이 시대의 위정자들이 저질러놓은 정치놀음의 희생물이 아닐까 생각하니 가슴이 더 시리고 아팠다.
미선과 나는 위로와 축하로 소주와 생맥주로 폭탄주를 만들어 마셨다.
몇 차례의 폭탄주가 오고 가고 저린 가슴이 술의 위로를 받는 사이 이야기 은행 입구가 열리며 차가운 바람과 함께 민혁이 들어섰다.
“늦어서 미안하다.”
“어서 와, 우리도 조금 전에 왔어, 친구들은 다 잘 갔니?”
민혁은 어깨가 기울어진 친구들을 두고 차마 돌아설 수가 없어 학교 앞 주점에서 한잔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축 처진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사회라는 곳에 첫발도 내디뎌 보지 못하고 패잔병이라는 닉네임을 달아야 하는 현실을 한 잔 술로 위로했다고 했다.
“그래 다들 힘들 텐데 걱정이다.”
“말도 마, 방금 졸업했는데도 현실이 요 모양 요 꼴이니 벌써 내일에 대한 불안감으로 모두가 자라목이 되어버렸어.”
“술이나 한잔해라, 다시 한번 졸업 축하한다.”
“넌 학교에서 언제 사라졌는데? 졸업식 끝나고 한참 찾았다.”
“그냥 답답하고 숨이 막혀 식 끝나고 곧바로 이리로 왔어.”
우린 서로의 졸업을 축하하며 잔을 들었다.
주인장은 졸업 선물로 안주를 공짜로 준다며 뭐든지 시키라고 했다.
그러나 이야기은행의 경제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우리였기에 안주를 추가할 수가 없었다.
주인장은 고갈비를 맛나게 구워서 내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연거푸 몇 잔을 들이켠 민혁은 졸업식장에서 느낀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 3년, 대학입학을 위해. 대학 4년, 취업을 위해. 군 2년, 조국을 위해. 한 줄로 줄을 세워 앞만 보고 달리라고 해서 달려온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오늘같이 좋은 날 이렇게 죄인처럼 굴어야 한단 말인가?”
민혁의 원망 어린 외침에 얼굴이 상기된 미선이 장단을 맞추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기생충 같은 정치인들이 대중스타라도 된 것처럼 특수계층의 인기에 영합하는 사이, 위정자에 빌붙어 사는 진득이 같은 고위 공무원들은 백성들의 핏대에 빨대나 꽂는 이런 현실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숨 막히듯 적요했던 이야기 은행의 실내가 담금질을 기다리는 쇳덩이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인격 형성의 중요한 청소년기에 누구 하나 참사람으로 살아갈 소양 교육을 제대로 가르쳐주었던가?
그렇다고 대학에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예비교육을 가르쳐주었던가?
오로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길 외에 무엇을 가르쳤단 말인가?
결국, 우리 스스로 배울 수밖에 없었던 참 사회인이 되기 위한 소양 교육을 가르쳐준 것은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각종 언론매체가 아니었던가?
우리가 접한 언론매체에 드러난 참인간의 진실이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법을 잘 지키며 착하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아니라, 편법·불법·탈법에 능한 사람이 아니었던가?”
계속 이어진 미선의 이야기를 계산대에서 듣고 있던 이야기은행 주인장이 사회 선배로서 너무나 부끄럽다며 불룩 나온 배를 앞세워 슬그머니 우리 테이블로 합류했다.
“어른들의 시선에서 보고, 어른들의 수준에서 생각한 많은 일이 자네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고, 자네들의 자아 형성에 얼마나 큰 혼란을 주었을까를 생각하니 참으로 등골이 오싹하네. 이런 혼란 속에서 자네들이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보고 들은 것을 참이라고 생각하고 선택했을 것을 생각하니 섬뜩한 생각마저 드네. 참으로 어른으로서 자네들에게 부끄럽네.”
이야기은행 주인장은 정말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비워진 술잔에 잔을 채우며 사죄했다.
주인장이 채워준 잔을 비운 민혁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일례로 며칠 전 있었던 장관들의 인사청문회를 보지 않았습니까? 청와대에 제대로 된 인사 검정시스템이 작동했다면 어떻게 그런 인간들을 후보로 내세웠겠습니까? 위장 전입, 불법 투기, 탈세, 비정상적인 재산증식, 금품수수, 병역기피, 논문표절, 음주운전, 거기다 위증까지. 한 나라의 부처를 이끌어 갈 수장을 뽑는 후보자의 약력이 이러할진대, 이 땅에서 참되게 사는 것이 어떠한 삶인지, 이 땅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들이 너무나 명백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 아닙니까?”
민혁의 말을 듣고 있던 이야기은행 주인장은 청문회만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화딱지가 난다며 앞에 있던 술잔을 비우고 민혁의 말을 바로 받았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청문회장에서 그런 후보를 옹호하는 여당 의원들을 보면서 참 시궁창의 구더기만도 못한 저런 인간을 여의도로 보낸 그 의원의 지역구 유권자의 뇌 구조가 의심스러웠네.”
이야기 은행 주인장은 인사청문회만 떠올리면 토악질이 난다며 연거푸 몇 잔을 더 삼켰다.
“내 자네들에게 어른들을 대신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싶네.”
이야기 은행 주인장은 불콰해진 얼굴로 무릎이라도 꿇을 것처럼 몸을 웅크렸다.
“아저씨가 왜 저희에게 용서를 구합니까? 정작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은 지금 이 시각에도 서민 중산층의 핏대에 빨대를 꽂아놓고 몇cc씩 나누어 먹을까 고민하는 버러지 같은 위정자들이지, 아저씨같이 세금 꼬박꼬박 내고 사는 착한 서민들이 아닙니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지금껏 그런 쓰레기들을 정치인으로 뽑아온 우리 어른들을 대신해 용서를 구하고 싶다는 것이네.”
“아저씨도 아시겠지만, 이번 인사청문회 보지 않았습니까? 장관 후보로 추천받은 후보 중 국민의 상식 수준에 자유로운 사람이 몇 명이나 있었습니까?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에게 직접 가르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나라에서 나라를 운영하는 조직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국민의 상식 수준의 자격을 가진 사람이 아닌 탈·불법에 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은행 주인장은 민혁의 말에 어떠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민혁의 말을 듣고 있던 미선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폭발시키듯 민혁의 말을 받았다.
“땅 투기, 위장 전입, 탈세, 등등 비리 백화점을 만들어 놓고 자신은 모르는 일이고 자기의 아내가 다 알아서 했다며 오리발을 내미는 후보자를 보면서 저들은 자기 자식들에게는 어떤 교육을 할까?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
잠시 침묵이 흐르고 우리는 다 같이 잔을 부딪치며 보이지 않는 내일을 위해 건배를 했다.
건배 잔을 내려놓은 민혁은 안주도 먹지 않고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자조적인 불만을 표출했다.
“청년실업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위정자들은 청년실업 해소를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저들은 엄연히 다른 노인 문제와 청년실업 문제를 연계해서 저울질하겠습니까? 표를 계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젊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주어진 참정권을 십분 활용한다면 저들의 태도는 분명 바뀔 것입니다.……”
이야기은행에서 술을 마시는 그 누구도 민혁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모두가 민혁의 말에 무언의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내뱉는 민혁이 너무나 부러웠다.
대화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고 겉도는 내가 너무 미웠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일 정도로 들어온 세상에 대한 고마움, 세상에 대한 감사를 외치던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6.25 참전 용사였다.
그리고 산업개발시대의 주역이었다.
할아버지는 희생의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아니 자랑스러워했다.
할아버지는 태극기를 보물처럼 소중히 여겼다.
국경일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태극기를 대문에 달아야 했다.
할아버지는 늘 말했다.
“나라가 있어야 국민도 있는 것이다.”
그럼 나는 곧바로 아버지가 말했던 것처럼 할아버지의 말을 바로잡았다.
“할아버지, 국민이 있어야 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늘 세상에 고마워하며 살았다.
길을 가다가도 공무원을 만나면 큰 죄를 지은 죄인처럼 굽실거리며 인사했다.
“할아버지는 왜 할아버지가 낸 세금으로 월급 주는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죄인처럼 굽실거리십니까?”
할아버지의 굽실거림이 부끄러워 내가 물었다.
“나랏일 하는 사람들이잖니.”
할아버지는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관공서에 필요한 서류가 있어 내가 가면 금방 떼어올 것도 할아버지가 가면 글자를 잘 모른다는 이유로 담당자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한나절을 기다리게 했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늘 그들에게 나랏일 한다고 고생한다며 음료수 박스를 놓고 왔다.
그런 날이면 아버지는 할아버지께 얼굴을 붉히곤 했다.
“아버지, 이제는 제발 노예근성에서 벗어나 주인의식을 가지고 사세요. 이 나라는 저들의 나라가 아닙니다. 아버지의 나라이고 우리들의 나라입니다. 왜 아버지는 평생 저들을 일본 앞잡이나 총칼 든 군인처럼 무서워하십니까?”
할아버지는 나라 잃은 백성으로 일본 앞잡이, 친일 매국노에게 혹독하게 착취당하며 살았고, 광복 후 신분 세탁한 독재군인들의 총칼 앞에 평생을 휘둘리며 살아오신 분이었다.
할아버지는 정년퇴직하는 그 날까지 하루의 결근도 없이 열심히 일했다.
쉬는 날에도 회사에 일이 있다고 하면 집안의 모든 일을 제쳐두고서라도 회사로 달려갔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신분 세탁한 독재군인들에 충성하고 재벌기업 살찌우는데 평생을 받쳤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에게 가끔 묻곤 했다.
“할아버지, 그렇게 해서 할아버지가 얻은 게 무엇입니까?”
할아버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너희 이만큼 키운 것이 다 나라 덕이고 회사 덕이 아니겠니.”
피와 땀으로 얼룩진 자기의 희생을 스스럼없이 나라와 회사 덕이라며 자랑스럽게 말하던 할아버지는 결국 본인의 아지트인 노인정에서 쓰러졌다.
연락을 받고 출동한 119 응급차는 할아버지를 신속하게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정밀 검사를 끝낸 의사는 원망 어린 눈빛으로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이 지경이 되도록 몰랐습니까? 암세포가 모든 장기에 전이되어……”
가족들의 눈물 어린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는 끝내 수술을 거부했다.
대학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할아버지는 말을 잃어버린 사람 같았다.
가끔 아주 가끔 할아버지는 먼 산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뭔 영화를 보려고 그렇게 시키면 시키는 대로 노예처럼 살아왔을까? 가끔은……”
할아버지는 말을 잇지 못하고 ‘가끔은’을 반복했다.
그날 이후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할아버지는 가슴 깊이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말의 잠금을 풀었다.
할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자기의 삶을 강요한 것에 대해 크게 후회했다.
“이 할아비는 평생을 남의 눈치만 보며 노예처럼 살아왔다. 식구들에게 가장 미안한 것이 있다면 억지로 할아비의 삶을 강요한 것이다. 특히 동네 사람들 눈이 무서워 네 아비가 민주화운동으로 잡혀가 옥살이할 때 면회 한 번 못 간 것이 천추의 한으로 남아있다. 이제는 안다. 네 아비의 행동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고 그 희생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동수야, 너는 절대로 강요된 삶을 살면 안 된다. 네 아비의 말처럼 이 땅의 주인은 바로 너다. 노예근성이 아닌 주인 정신으로 당당하게 살아라. 평생을 나처럼 남의 눈을 의식하며 종처럼 살아온 삶은 살아도 산 삶이 아니다. 동수야, 너는 절대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말고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마음껏 너의 꿈을 펼치며 즐겁게 살아라.”
할아버지가 병원에서 퇴원하고부터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참으로 가엾은 분이라며 자주 눈가를 적셨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할아버지의 말벗이 되어드리라고 했다.
나의 그림자만 보여도 공부하라고 야단이셨던 할아버지는 퇴원한 그 날부터 공부하라는 말을 잃어버렸다.
나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아버지의 방에서 숙제하며 할아버지와 함께 지냈다.
할아버지는 귀천할 시간을 알고 있었는지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당신의 어리석은 삶을 식구들에게 강요한 것에 대해 사죄하며 눈을 감았다.
나는 힘들 때마다 할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과연 내가 하는 이 일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맞는지 되돌아보곤 했다.
나는 술잔을 내려놓고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다짐했다.
‘할아버지, 아무런 경험도 없는 저가 세상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는 모습이 할아버지 눈에는 불안해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맨손으로 산업화를 이루었고, 아버지가 맨몸으로 총칼 앞에 맞서 민주화를 이루었듯이 우리에게도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있을 것입니다. 절대로 물러서지 않고 당당히 부딪히며 이루어 내겠습니다.’
세상에 대한 치기 어린 불만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미선의 외침을 끝으로 우린 마지막 잔을 들었다.
이야기은행 주인장은 출입문까지 우리를 배웅했다.
깊은 겨울바람이 비틀거리는 우리를 차갑게 후려쳤다.
우리는 쓰러지지 않기 위해 어깨를 걸고 바람과 맞서며 어둠 뒤에 숨어있는 내일을 향해 힘차게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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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도시 월간 통권 16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