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상8:1 <언약궤를 성전으로 옮기다(대하 5:2-6:2)>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에게로 소집하니
왕상8:2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에다님월 곧 일곱째 달 절기에 솔로몬 왕에게 모이고
왕상8:3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이르매 제사장들이 궤를 메니라
왕상8:4 여호와의 궤와 회막과 성막 안의 모든 거룩한 기구들을 메고 올라가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것들을 메고 올라가매
왕상8:5 솔로몬 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그와 함께 그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지냈으니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더라
왕상8:6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자기의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성전의 내소인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왕상8:7 그룹들이 그 궤 처소 위에서 날개를 펴서 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
왕상8:8 채가 길므로 채 끝이 내소 앞 성소에서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그 채는 오늘까지 그 곳에 있으며
왕상8:9 그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맺으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왕상8:10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왕상8: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왕상8:12 <솔로몬의 연설(대하 6:3-11)> 그 때에 솔로몬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왕상8:13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 하고
왕상8:14 얼굴을 돌이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니 그 때에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서 있더라
왕상8:15 왕이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입으로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의 손으로 이루셨도다 이르시기를
왕상8:16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내 이름을 둘 만한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고 다만 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 하신지라
왕상8:17 내 아버지 다윗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더니
왕상8:18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왕상8:19 그러나 너는 그 성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네 몸에서 낳을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시더니
왕상8:20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도다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 아버지 다윗을 이어서 일어나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왕상8:21 내가 또 그 곳에 우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그들과 세우신 바 여호와의 언약을 넣은 궤를 위하여 한 처소를 설치하였노라
왕상8:22 <솔로몬의 기도(대하 6:12-42)> 솔로몬이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왕상8:23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왕상8:24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지키사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과 같으니이다
왕상8:2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자기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 것 같이 내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네게서 나서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왕상8:26 그런즉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주는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
왕상8: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왕상8:28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왕상8:29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왕상8:30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왕상8:31 만일 어떤 사람이 그 이웃에게 범죄함으로 맹세시킴을 받고 그가 와서 이 성전에 있는 주의 제단 앞에서 맹세하거든
왕상8:32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행하시되 주의 종들을 심판하사 악한 자의 죄를 정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돌리시고 공의로운 자를 의롭다 하사 그의 의로운 바대로 갚으시옵소서
왕상8:33 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성전에서 주께 기도하며 간구하거든
왕상8:34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왕상8:35 만일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께 벌을 받을 때에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들의 죄에서 떠나거든
왕상8:36 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이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시오며 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
왕상8:37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막론하고
왕상8:38 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왕상8:39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들의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왕상8:40 그리하시면 그들이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신 땅에서 사는 동안에 항상 주를 경외하리이다
왕상8:41 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왕상8:42 그들이 주의 크신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왕상8:43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시오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
왕상8:44 주의 백성이 그들의 적국과 더불어 싸우고자 하여 주께서 보내신 길로 나갈 때에 그들이 주께서 택하신 성읍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이 있는 쪽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
왕상8:45 주는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옵소서
왕상8:46 범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적국에게 넘기시매 적국이 그들을 사로잡아 원근을 막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
왕상8:47 그들이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반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왕상8:48 자기를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 곧 주께서 택하신 성읍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왕상8:49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아보시오며
왕상8:50 주께 범죄한 백성을 용서하시며 주께 범한 그 모든 허물을 사하시고 그들을 사로잡아 간 자 앞에서 그들로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하사 그 사람들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게 하옵소서
왕상8:51 그들은 주께서 철 풀무 같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주의 소유가 됨이니이다
왕상8:52 원하건대 주는 눈을 들어 종의 간구함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간구함을 보시고 주께 부르짖는 대로 들으시옵소서
왕상8:53 주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주의 종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심 같이 주께서 세상 만민 가운데에서 그들을 구별하여 주의 기업으로 삼으셨나이다
왕상8:54 <솔로몬의 축복> 솔로몬이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이 기도와 간구로 여호와께 아뢰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일어나
왕상8:55 서서 큰 소리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며 이르되
왕상8:56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그가 말씀하신 대로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통하여 무릇 말씀하신 그 모든 좋은 약속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도다
왕상8:5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함께 계시던 것 같이 우리와 함께 계시옵고 우리를 떠나지 마시오며 버리지 마시옵고
왕상8:58 우리의 마음을 주께로 향하여 그의 모든 길로 행하게 하시오며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키게 하시기를 원하오며
왕상8:59 여호와 앞에서 내가 간구한 이 말씀이 주야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있게 하시옵고 또 주의 종의 일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일을 날마다 필요한 대로 돌아보사
왕상8:60 이에 세상 만민에게 여호와께서만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없는 줄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왕상8:61 그런즉 너희의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온전히 바쳐 완전하게 하여 오늘과 같이 그의 법도를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킬지어다
왕상8:62 <성전 봉헌식(대하 7:4-10)> 이에 왕과 및 왕과 함께 한 이스라엘이 다 여호와 앞에 희생제물을 드리니라
왕상8:63 솔로몬이 화목제의 희생제물을 드렸으니 곧 여호와께 드린 소가 이만 이천 마리요 양이 십이만 마리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성전의 봉헌식을 행하였는데
왕상8:64 그 날에 왕이 여호와의 성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히 구별하고 거기서 번제와 소제와 감사제물의 기름을 드렸으니 이는 여호와의 앞 놋제단이 작으므로 번제물과 소제물과 화목제의 기름을 다 용납할 수 없음이라
왕상8:65 그 때에 솔로몬이 칠 일과 칠 일 도합 십사 일간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로 지켰는데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강까지의 온 이스라엘의 큰 회중이 모여 그와 함께 하였더니
왕상8:66 여덟째 날에 솔로몬이 백성을 돌려보내매 백성이 왕을 위하여 축복하고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열왕기상 제 8장
=====8:1
이에 - 본절 초두에 나오는 '이에'(* , 아즈)란 말은 솔로몬이 장로와 족장들
을 소집하는 행동이 7:51의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드는 모든 것을 마
친지라"에 이어지는 행동임을 시사해 준다. 그런데 문제는 2절에서 보듯, 장로와 족장
들이 솔로몬 왕에 의해 소집된 시점이 유대 종교력 '칠월'이라는데서 발생한다. 왜냐
하면 6:38은 성전 건축을 마친 시점이 솔로몬 즉위 11년 '불 월' 곧 '팔 월'이라고 분
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팔월'에 끝난 일 다음에 '이에'로 이어
지는 사건이 '칠월'일 수 있는가? 이러한 문제, 즉 성전 봉헌식이 이루어진 시기 문제
에 대하여 크게 다음 세 가지 견해가 있다. 즉 (1) 성전이 완공된 해(솔로몬 즉위 11
년)의 7월이라는 견해(Ewald, Hammond). 이는 8월에 가서야 비로소 성전이 완공되었으
나(6:38). 거족적인 대절기인 초막절에 맞추기 위해 한달 앞당겨 봉헌식을 거행했다는
견해이다. (2) 성전 완공 다음 해의 7월이라는 견해(Bahr, Patterson). 성전은 솔로몬
즉위 11년, 즉 B.C.959년 8월에 완공되었으나 성전 기구를 만드는 데 근 1년 정도 걸
렸을 것이므로(7:13-50), 봉헌식은 건축 후 11개월만에 비로소 거행될 수 있었다는 견
해이다. (3) 솔로몬의 궁전 완고(7:1-12) 이후하는 견해(Keil, Thenius). 이들은
9:1-10에 근거하여 성전 봉헌식은 성전 완공 13년 후인 궁전 완공 이후에 거행되었다
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전 완공 후 봉헌식까지 13년이나 기다렸다는 이 세번째의 견해
는 무리이다. 여기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첫번째 견해의 입장에서 다음 몇 가지를 생각
해 볼 수 있다. (1) '아즈'(* )는 상당히 폭넓은 말이므로 성전 완성 한달전도 지
시 가능하다. (2) 6:38의 '팔월'은 본장의 봉헌식까지 다 끝난 시점일 수 있다. (3)
모든 마루리가 팔월에 끝났더라도 성전의 봉헌식은 전통적인 절기, 즉 칠월의 장막절
에 맞추는 것이 의의가 깊으므로 앞당겨 했을 가능성이 있다. (4) 오랜 숙원 사업이자
거국적 최대 관심사인 성전 봉헌식을 해를 달리할 정도로 미루었을 까닭이 없다
(Pulpit Commentary).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성전 기구 제작(7:13-50) 기간을 고
려한다면, 그래서 완전한 끝마무리 이후에 성전의 봉헌식을 치루었을 것이라고 본다
면, 두번째의 견해도 일리가 있다(Expositor's Bible Commentary).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 여기서 '시온'
(Zion)은 예루살렘 남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구릉 이름인데, 이곳에 세워진 산성을 다
윗이 여부스 족속으로부터 빼앗아 '다윗 성'(the City of David)이라 명명하였다(삼하
5:7). 그리고 다윗은 이곳 다윗 성에다 장막을 설치하고 여호와의 언약궤(법궤)를 임
시로 안치하여 놓았었다(삼하 6:1-19).
이스라엘 장로와...족장들을 예루살렘 자기에게로 소집하니 - 광야를 유랑하던 시
절의 모세 성막에서 이제 영구적 건물인 솔로몬 성전으로 법궤의 자리를 옮기는 봉헌
식은 이스라엘 민족의 뜻깊은 역사적 순간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의 모든 지도
자들과 백성의 대표자들이 모두 소집된 자리에서 성전 봉헌식은 공시적으로 성대히 거
행되어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장로와 족장들'은 중앙 집권적 정부가 임명하는 관료
와는 구별되는 존재들이다. 즉 그들은 인격이나 지혜, 무용 등의 탁월함으로 인해 혈
연 및 지파 공동체 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른바 자연 발생적인 공동체내의 유지
나 지도자들이다(Davies). 그런고로 이들은 성전 건축에 관해 의논할 당시에도 다윗에
의해 소집된 바 있으며(대상 28:1-3), 건축 재료를 위해 자신들의 보물들을 기꺼이 바
치기도 하였다(대상 29:6-9). 이렇듯 성전은 범민족적 사역에 의해 건축 되었으므로,
그 봉헌식에 있어서 국민의 대표자인 이들을 소집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다
윗 역시 궤를 옮겨오던 당시 "이스라엘에서 뺀 무리 삼만"을 소집하였었다(삼하 6:1).
=====8:2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모이고 - '이스라엘'은 열 두 지파로 구성된 민족 전체
구서가원들을 호칭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소집된 사람들, 즉 열 두 지파의 대표자들
(장로와 족장들)이 모인 것을 전 백성이 모인 것과 다름없는 것으로 본 것이다(Keil).
가장(家長)이 곧 가족 전체를 대표하던 고대의 사고 방식을 기억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에다님월 곧 칠월 - '에다님'(* , 에타님)은 '시내에 물이 흐른다'는 뜻
이다(Gesenius). 유대 종교력으로 7월(오늘날 태양력의 9-10월에 걸쳐 해당)에는 특별
히 건기가 끝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고 한다(Robinson). 곧 이른 비가 내리는 때
로서, 이때 시내가 흘러내리기 때문에 명명된 월명(月明)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특
별히 '7월'이란 설명 어구가 첨가된 것은 이 달의 이름이 바벧론 포로 이후에는 '티스
리'로 바뀌어졌기 때문이다(Keil).
절기에 - 원래 '절기'에 해당하는 '하그'(* )에 관사를 붙여 '헤하그'(* )
가 되면 그 자체로 '초막절'(장막절)을 의미하는 이름이 된다(대하 7:8;느 8:14;사
30:29;겔 45:23, 25). '초막절'은 유대 종교력 칠월 15일부터 시작하여 칠일간 거행되
는 절기로, 연중 절기 중 가장 크고 즐거울 뿐만 아니라 제일 마지막으로 거행되는 수
확의 절기였다. 그리고 본래 이 절기는 광야의 유랑 생활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출 23:16;34:22;레 23:33-36;민 29:12-32;신 16:13-16). 그런데 이 초막절은 그 순서
에 있어 계약 율법이 낭독되었는데, 이로 미루어 '초막절'은 계약 갱신의 목적을 지닌
것이기도 하였다(Rylaarsdam). 따라서 바로 그러한 절기에 율법의 판이 담긴 법궤를
성전에 안치하는 것은 매우 의미 깊은 일이었다. 아울러 초막적(장막절, 수장절) 행사
는광야 생활 동안 지켜 보호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면서, 동시에 약속의 땅으
로 인도하사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하는 절기였다. 이런
의미에서 초막절을 맞이하여 광야 생활 이후 유리 방황하던 언약궤를 영구한 안식의
장소인 솔로몬 성전에 안치시키는 일을 매우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8:3
제사장들이 궤를 메니라 - 민수기의 규례에 따르면, 벰궤는 레위인들이 메어야 했
다. 그러나 손을 대어 만질 수는 없었다(민 4:15). 그런데도 다윗은 블레셋인들에게
빼앗겼던 법궤를 회수할 때 그것을 수레에 싣게 하였고, 게다가 웃사는 손을 대가까지
함으로써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적이 있었다(삼하 6:3-7). 이제 솔로몬은 규정대로 궤
를 운반하였다. 한편, 병행 구절인 대하 5:4에서는 '레위 사람이 궤를 메니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궤를 멘 자들은 '레위족 제사장
들'이었기 때문이다(대하 5:7). 원래 언약궤의 운반은 레위인 가운데서도 고핫 자손에
게 맡겨졌으며(민 3:30, 31), 언약궤(법궤)에 덮개를 씌우거나 벗기는 일 등 언약궤를
실제로 돌보고 감독하는 일은 언제나 고핫 자손 중에서도 제사장 계통인 아론의 자손
들에게 속한 일이었다(민 4:5-15). 그런데 여기서 솔로몬이 언약궤의 운반을 고핫 자
손에게 맡기지 않고 상위 직위인 제사장들에게 직접 맡긴 것은, 성전 봉헌식을 더욱
경건하고 비중있게 거행하려는 의도에서였던 것 같다(수 3:6, 15, 17;대상 15:11,
12). 그리고 이처럼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직접 멘 실례는 매우 의의 깊은 역사적 사
건, 예를 들면 요단 강 도하시(수 3:6, 17), 여리고 성 포위시(수 6:6)등에 이미 시행
된 적이 있었다.
=====8:4
여호와의 궤 - '법궤'(레 16:2), '언약궤'(민 10:33), '증거궤'(출 26:33) 등으로
불리우는 이 궤는 다윗 성, 곧 시온 산 위 '다윗이 친 장막 가운데' 근 40여년간 머물
러 있었다(삼하 6:17).
회막 - 보통 '장막' 또는 '성막'으로 불리던 '회막'은 실로와 놉을 거쳐 당시에는
기브온에 있었다(대하 1:3). 따라서 '언약궤'는 다윗 성으로부터, '회막'은 기브온 산
당에서부터 각각 솔로몬 성전으로 운반되었다.
성막 안의 모든 거룩한 기구들 - 이 모세 성막의 옛 기구들은 이제 그것들(놋제단,
향단, 떡상, 촛대 등)을 대신할 솔로몬 성전의 새 기구들이 제작되었으므로(7:23-50),
더이상 사용되지 않고 옮겨져 성전 창고에 보관되었을 것이다(7:51).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것들을 메고 올라가매 - 제사장들은 특별히 언약궤를 메
고, 레위인들은 성막과 여타 성막의 모든 기구들을 광야 여정에서처럼 그 옮기는 방식
과 절차를 따라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으로 옮겼을 것이다(Keil; 민 4:1-33).
=====8:5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으니 - 아마도 법궤는 지성소에 안치되기 전
제단이 있는 안뜰에 우선 놓여졌던 것 같다. 그리고 왕과 백성들은 이때 법궤 앞에서
감사와 기쁨의 제사를 성대히 베풀었던 것 같다(Keil). 따라서 이때의 희생 제사는 단
순히 정결만을 위한 예식이라기보다 잔치와도 같은 기쁨과 감사의 행사인 것이다
(3:15). 즉 성전의 낙성식으로 갖는 축하의 순간인 것이다(Gates). 유대사가 요세푸스
(Josephus)는 법궤가 지성소에 안치되기까지 백성들이 노래하며 춤추었다고 한다. 한
편, 그런데 이때의 희생 제사는 감사와 축하의 의도 외에도 법궤와 관련된 이전의 불
상사들(삼상 4:17, 18;6:19;삼하 6:7)과 같은 화를 피하기 위한 의도도 분명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Hammond).
=====8:6
여호와의 언약궤를 그 처소로 - 성전의 핵심인 그 처소가 바로 하나님의 임재의 장
소이다. 그런데 원래 하나님의 임재를 실제로 나타내 주던 것은 법궤였다. 따라서 법
궤 자체가 하나님 자신과 동일시 되기도 하였다(민 10:35, 36). 그러므로 법궤가 성전
의 자기 '처소'(* , 마콤) 즉 제 위치에 안치됨으로써, 성전을 성전답게 하는
가장 요긴한 부분의 일이 마무리된 것이다. 아무튼 모세 성막의 다른 모든 기물들은
솔로몬 성전어가 규모에 맞추어 모두 새롭게 제작되었지만,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를
상징하는 이 언약궤(법궤)만은 시내 산에서 만들어진(출 25:10-22;37:1-5) 바로 그것
을 그대로 옮겨와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에 안치시켰던 것이다.
내전 - 본절에서 '내전'으로 번역된 '데비르'(* )는 6:16, 17에서 '내소'로
번역된 바로 그 단어이다.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 언약궤(법궤)는 금으로 만들어진 그룹들의 펼쳐진
날개 아래 안치되었다. 6:23-28 주석 참조.
=====8:7
날개를 펴서 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 - 법궤와 채(pole, 출 25:13), 곧 법궤에 속한
부분은 모두 그룹의 날개 아래 그늘에 있어 설혹 지성소 문을 열었을 때라도 항상 어
두운 상태로 있게 하였다(12절).
=====8:8
채가 긴 고로 채 끝이...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 본절이 설명하는 상태를 정확
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본절 수록의 목적이 전래의 성막 규정을 솔론몬 성전
역시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인 듯하다(Keil). 그런데 출 25:15의 규정
에 의하면, 채를 법궤의 고리에 꿴 채로 두어야 했다. 어쨌든 본절의 상태를 여러 가
지로 추측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있었으나, 다음과 같은 주장이 비교적 타당해 보인다.
(1) 동서로 길게 위치한 성전에 대해 법궤는 남북으로 길게 위치하였을 것이다(Bahr,
Patterson). 왜냐하면 성전 전면을 바라보고 서 있는 그룹의 날개 그늘에 법궤와 채가
온전히 덮일 수 있는 적절한 위치가 남북이기 때문이다. (2) 본절의 기록상 관찰자의
위치는 성소의 우편, 즉 지성소 휘장의 왼쪽을 젖혀 볼 수 있는 자리였을 것이다
(Hammond, Montgomery). (3) 그리고 이 관찰자는 아마도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
을 돕는 제사장 중 하나였을 것이다(Hammond).
그 채는...그곳에 있으며 - 법궤 운반용 '채'(pole)는 법궤의 고리에 꿰어진 상태
로 붙어있었는데(출 25:13, 15),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거 광야 생활 동안 나그네
로 지냈음을 상기시켜 준다(Patterson).
오늘까지 - 본서(열왕기서)는 바벧론 포로 이후에 기록되었다(서론, 기록 연대).
그러므로 본서가 기록될 당시에 솔로몬 성전은 파괴되었고(B.C.586년), 따라서 법궤에
딸린 채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 '오늘까지'란 말은 솔로몬 성전의
파괴 이전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러한 사실은 저자가 본서를 기록할 때 이전의 기록물
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Keil, Hammond).
=====8:9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 히브리서 9:4에 의하면, 언약궤 안에는
본래 '십계명 두 돌판'외에도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었
다. 그러나 솔로몬 성전 완공 후(B.C.959년) 법궤를 지성소에 안치시킬 때 십계명 두
돌판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을 보면 나머지 것들은 모세 시대 이후 여호수아 시대와
사사 시대, 그리고 사울과 다윗 시대를 거치는 근 500여년 동안의 어간에 없어진 듯
할. 아마도 엘리 제사장 시절 법궤가 블레셋에게 일시 탈취당했을 때(삼상 4:3-11) 유
실된 듯하다(Hammond). 한편, 그러나 혹자들은 본래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 두 돌판만
들어있었을 뿐(출 25:16;40:20;신 10:5), 만나 항아리와 싹난 지팡이는 '여호와 앞에'
(출 26:33) 곧 '증거궤 앞에'(민 17:10) 두었었다고 본다(Keil, Bahr). 그리고 히브리
서 9:4의 말은 후대 유대 전승에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견해 역시 완전히 배
격할 수는 없다.
호렙 - 시내 산의 여러 봉우리중 하나로 추정되는 '호렙 산'(Mt. Hored)은 율법이
주어지고 하나님과의 언약이 맺어진 곳으로(신 4:10-13), 통칭 '시내 산'과 같은 의미
로 사용되는 이름이다. 출 3:1 주석 참조.
=====8:10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매 - 혹자는 여기서 '구름'을 번제단 위에서 타오른
희생 제물의 연기 구름일 것이라고 보았으나(Bertheau), 전적으로 잘못이다. 여기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시적으로 드러내주는 영광스러운 '그 구름'(the cloud)이
다. 한편, '구름'으로 번역된 '아난'(* )에는 '흐림', '안개'란 뜻도 있다. 그
러나 한글 성경에는 언제나 구름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리고 성경에서 사용된 구름은
항상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연관되어 등장한다(시 18:11;사 4:5;단 7:13;마 17:5;계
1:7). 예를 들면 시내 산과 그리고 출애굽의 여정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나타내실 때
는 항상 구름이 그분을 둘러싸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출 19:16;24:15-18). 원래 구
름은 신의 직접적인 광채를 대면할 때 파생되는 인간의 죽음을 방지하기 위한 신의 옷
이라는 사상이 이러한 기록의 배후에 있다(Moor). 그러므로 구름은 곧 하나님의 영광
스러운 임재를 가시적으로 볼 수 있는 표식이된다. 이러한 구름이 이전에 성막 봉헌
시에도 나타났고(출 40:34, 35), 지금 성전 봉헌시에도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이 사
실이 의미하는 바는 이전의 모세 성막을 승인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새로이 솔로몬
성전을 자신의 임재 처소로 승인하셨다는 것이다(Patterson, Hommond, Keil)>
=====8: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 이 장면 역시 구름
때문에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던 모세와 비교된다(출 40:35). 즉 그때의 일이 지금에
도 되풀이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전의 모세 성막과 마찬가
지로 솔로몬 성전 역시 자신의 영광의 거처로 인정하셨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는 것이
다.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과 동일한 것인가 아니면 구별되는 다른 것인가로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다. 혹자는
다른 특별한 언급이 없고, 12절은 단지 '캄캄한 곳에 계신 하나님'을 말하므로 본절은
그저 캄캄한 구름을 지칭한다고 본다(Bahr). 그러나 더 많은 이들은 여기서 '영광'은
'구름'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보고, 어떤 '밝은 빛', '맹렬한 불'같은 것으로 설명한다
(Hammond, Keil). 여기서 우리는 그 구체적 형태는 결정할 수 없더라도 '영광'은 '구
름'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밝힐 수 있다. 우선 '구름'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밝힐 수 있
다. 우선 '구름'과 '영광'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본래 하나님의 영광은 너무 강렬해
서 인간이 직접 대면할 수 없는 것이다(출 33:20).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구름은, 인간
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외피(外皮) 구실을 하는 것이다(10절).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구름이 곧 영광 자체일 수 없음도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본절이 전해 주는
바 '짙은 구름'은 그만치 강렬한 하나님의 영광을 반증(反證)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영광' 자체와는 구별되는 것임을 알게 해준다. 한편, 이처럼 구약 시대에는 '빽빽한
구름'으로 당신의 임재의 가견적 표식을 삼으신 하나님께서는, 신약 시대에는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로써 당신의 임재를 알리사 교회의 시작을 기념하셨다(행 2:2).
=====8:12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 언제 어디서 하나님이 그같은 말
씀을 하셨는지 다른 본문에서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 혹자는 본절을 "여호와께서...
계시려고 의도하셨사오나"라는 뜻으로 이해한다(Thenius). 본절에서 '말씀하다'에 해
당하는 '아마르'(* )는 '의도하다'라는 뜻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
르'는 그 동사의 주어가 하나님이신 경우에는 대체로 계시, 즉 당신을 알게 하시는 행
동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절의 의미는 '하나님은 캄캄한 데 계신 분이심을 알게해 주
셨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구름과 흑암속 캄캄
한 곳에 거하신다가 구절은 많이 찾아 볼 수 있다(출 19:9;20:21;레 16:2;신
4:11;5:22;시 18:11;97:2). 따라서 솔로몬은 이러한 상황을 기억하고 이처럼 말한 것
같다. 그런데 그 구절들에서 '흑암' 또는 '캄캄함'이 의미하는 바는 인간의 접근 불가
능함, 또는 사고 불가능함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절의 '캄캄한 데 계신 하나님'이란
표현은 결국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의 지존(至尊)하심을 시인하는 표현
이다.
=====8:13
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전을 건축하였사오니 - 본절은 외견상 12절의 내용
과 상충(相衝)되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12절은 제한받을 수 없는 하나님의 초월
성과 지존하심을 고백한 구절인 반면, 본절은 바로 그 하나님을 성전이라는 한 장소에
제한시킬 수 있는 양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절은 솔로몬이 성전에 구름이
가득함을 보고 하나님의 임재가 허락되었음을 확신하고 하는 말이다(Keil). 결국 성막
에서든 성전에서든 그곳을 자신의 처소로 삼으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지, 인간의 자
의적 결정이 하나님의 처소를 고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본절의 표현 속에
는 그렇듯 지존하신 하나님을 감히 모시고자 하는 솔로몬의 겸비함이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27절). 그러므로 12절과 13절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 계시는 '지존하신 하나
님'을 강조하고 있음과 아울러, 그렇듯 고귀하신 하나님을 감히 성전에 모시고자 함에
서 연유한 솔로몬의 겸비한 심령이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주께서 영원히 거하실 처소 -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근거로 다음 두 가지가 제시
된다. (1) 광야를 유랑하던 시절의 성막이 갖는 이동성과 임시성에 대해 정착과 안정
이 있는 성전의 영구성. (2) 다윗과 그의 후손에게 영구한 왕위를 세워 주시겠다는 삼
하 7:14-16의 약속.
=====8:14
얼굴을 돌이켜 - 그때까지 솔로몬은 성전에 구름이 나타나는 장면을 응시하고 있었
음을 알 수 있다(Hammond). 이것은 13절의 솔로몬의 말이, 성전에 가득한 구름이 내리
임함을 보고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여 발언한 내용이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뒷받침
해 준다.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니 - 축복은 제사장만의 고유 권한이라는 데 근거해서(민
6:22-27), 혹자는 본절의 솔로몬의 축복을 "권한은 없지만 그저 축하로서 했을 뿐"이
라고 해석했고(Hammond), 혹자는 "제사장의 축도를 대신 수해한 것"이라고 각기 해석
했다(Stanley). 그러나 (1) '축복하다'에 해당되는 '바라크'(* )의 용법은 실로
다양한데, 때로는 백성이 왕을 축복하는 경우에도 사용되었고(66절), (2) 그리고 축도
가 아닌 광범위한 의미의 '축복'은 제사장에게만 국한된 것이 결코 아니었다(창
14:19;신 7:12-16). 결국 문맥으로 보아 보넣마의 축복은 하나님의 축복을 확신한 공
동체의 우두머리가 백성들에게 선포하는 경축사와도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8:15
여호와께서 그 입으로 나의 부친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 -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
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약속으로서, '와위'(王位)와 '성전 건축'등에 대한 '다윗 계
약'을 가리킨다(삼하 7:2-17;대상 22:6-12;28:1-10).
그 손으로 - 성경에서 '손'(* , 야드)이란 말의 사용 용법이 여러 가지이므로,
그 의미 또한 다양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과 같은 형태로 사용되게 되면 보통 그
것은 하나님의 주권 또는 능력을 의미하게 된다. 좀 더 살펴보면 '손'은 (1) 어떤 사
람이나 사물에 대한 책임 및 권한을 나타내며, (2) 어떤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실질적
능력 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로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말씀하
신 바를 이루실 능력도 가지고 계신 분이심을 본절의 솔로몬은 고백하는 것이다.
이루셨도다 -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말씀하신 바대로 (1) 아들 솔로몬을
세워 다윗의 위(位)에 앉도록 하사 나라를 견고케 하셨다(삼하 7:12). (2) 또한 하나
님께서는 말씀하신 바대로 솔로몬으로 하여금 여호와의 집, 곧 성전을 건축케 하셨다
(삼하 7:13).
=====8:16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 - 이 날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총과 도우
심으로 말미암아 오랜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날로서, 선민 이스라엘이 신정 국가로서
첫 발을 내디딘 날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역사의 주요 국면, 주요 사건 등에서 이 출
애굽 사건은 끊임없이 상기되고 회고된다.
내 이름을 둘 만한 집 - '이름을 두는 집'이라 해서 "하나님이 기신(寄身)하실 곳
이 아니고, 그의 이름을 전파하실 곳"으로 이해하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 그것은 이
름을 내용과 관련없는 피상(皮相)으로 보는 사고 방식이다. 그러나 구약 사상에서 '이
름'(* , 쉠)은 단순한 호칭이나 명찰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이름은 그 이름의 소
유자가 갖고 있는 총체적이고도 본질적인 성품을 나타낸다(창 27:36;32:28;삼상 25:25
등). 즉 이름은 바로 그 이름을 가진 존재 그 자체이다. "이름이 있는 곳에 그 이름의
주인공이 있다"(Schmidt). 그러므로 성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둔다는 것은 곧 하나님
자신의 임재를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 당신의 존재를 그곳에 계시하시고, 또한 당신
의 권위와 영광을 그곳에 두시겠다는 의미이다(신 12:5). 그런고로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에 관심을 갖고 거룩히 지키시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신다(겔 20:9;39:7). 결국 이
름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30절)이 땅의 백성들 사이에 있을 수 있도록 하는 통로요
매개체(媒介體)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둔 집, 성전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 사
이에 임재하신 처소로서 하나님께 '허락 받은' 곳이 된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
은 '이름을 두는' 주체는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성전이든 성물
이든 그 자체가 하나님을 속박해 둘 수 없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후일 이스라엘 백성
들이 여호와 신앙에서 돌아섰을 때 성전은 무의미한 건물로 전락되었고 결국 파괴되지
말았다(사 1:10-17).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고 - 본절과 병행 구절인 대하 6:5, 6을 참고컨대, 이
말은 '다른 지파의 어느 성읍도 뽑히지 않고 오직 유다 지파의 예루살렘이 뽑혔다'는
의미를 보충해야 뜻이 분명해진다.
다만 다윗을 택하여 - 본절은 수많은 나라들 중 유독 이스라엘을 택하사 제사장 나
라로 삼으시고(출 19:6), 또한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 유독 다윗을 택하사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상기시키고 있다(시 78:70). 한편 본절을 통해 솔로몬은
(1) 자신을 비롯한 전백성들이 자고함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였으며 (2) 하나님의 크
신 위엄과 주권 앞에 전적으로 순종할 것을 다짐하였고 (3) 하나님의 은총을 찬양하고
자 하였다.
=====8:17
마은이 있었더니 - '마음'으로 번역되는 '레브'(* ) 또는 '레바브'(* )는
'심장'(heart)이란 뜻을 갖고 있다(렘 11:20;17:10). 따라서 본절의 '마음'은 단지 의
도, 사고, 기억 같은 개별적인 심리 기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장을 비롯하여 감
정, 의지 등을 통틀어 열렬히 희망함을 의미한다. 한편, 삼하 7:2;대상 17:1 등을 보
면, 다윗은 성전을 건축 하고픈 마음을 강렬히 시사했었다.
=====8:18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 다윗이 품은 성전 건축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일단 그 자체는 기쁘게 생각하심을 표현한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본절
을 "네게 있는 것은 좋도다"로 이해하면 문맥상의 뉘앙스가 보다 잘 전달된다. 공동
번역은 "...생각하는 것은 기특한 일이다"로 번영하고 있다.
=====8:19
그러나 너는 그 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한 이유를
우리는 다음의 두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다. (1) 삼하 7:5-7: 여기서 하나님은 백향목
집(성전)을 별로 필요없는 것으로 말씀하신다. (2) 대상 22:8: 여기서 하나님은 다윗
이 피를 많이 흘린 사람이라는 이유로 성전 건축을 허락지 않으신다. 그런데 이 둘은
서로 무관한 이유들을 제시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다. 즉 (1)에
서 하나님이 성전을 원치 않으신 이유는 이스라엘의 천막을 치고 옮겨 다녀야 하는 불
안정한 처지 때문이었고, (2)는 다윗이 수많은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의 안정을 위해
노력해야 했던 인물임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다윗은 이전 시대와 마찬가지
로 성전을 지으리만치 안정된 시대에 속한 인물이 못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안정의
이유'로 인해 평화 중에 건축되어야 할 성전은 차기 세대로 미루어져야만 했다. 그리
고 바로 그런 까닭에 하나님은 다윗이 성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네 아들 그가...전을 건축하리라 - 여호와를 향한 다윗의 열심은 성전 건축을 위한
소원으로 불타올랐으며, 이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다윗은 건축 자재를 마련하는 등 다
각도의 노력을 기울였다(대상 22:2-16).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다윗의 마음을
기쁘게 받으셨을 뿐만 아니라 성전 양식까지 소상히 계시해 주셨다. 그렇지만 정작 성
전 건축 사업만큼은 솔로몬에게 위임하셨다(대상 28:12-20). 여기서 하나님의 주권 개
념이 여실히 드러났으며, 그러한 하나님의 뜻 앞에 흔쾌히 순복한 다윗의 신앙 자세
또한 후세의 귀감이 될 만한 것이었다.
=====8:20
이제...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도다 - 본절에서 '이루다'로 번역된 동사 '쿰'(*
)은 원래 '일어나다' 또는 '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절은 '말씀하신 대로 세우
셨다'로 번역할 수 있다(Hammond). 그런데 '쿰'이 하나님의 언약과 관련된 문맥에 사
용될 때면 '확립하다' 또는 '확정짓다'란 의미를 띠게 된다. 즉 체결된 언약을 확실하
게 하는 순간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본절은 솔로몬이, 이전에 부친 다윗과 하
나님 사이에 맺은 언약(삼하 7:13)이 눈 앞에서 실현됨을 보고 하는 말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 '이름'은 그것에 의해 호칭되는 사물이나 사람의 '존재'
그 자체를 상징한다. 따라서 '여호와의 이름'은 곧 그분의 존재 자체를 의미한다(16
절). 이런 점에서 성전은 하나님의 지상 임재의 상징적이고 가견적인 처소인 것이다.
=====8:21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 이처럼 '출애굽'사건과 '성전 건축' 사
건을 긴밀하게 연관시키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1) 성전의 핵심, 즉 성전의
가치를 결정짓는 요체는 그 곳이 하나님의 임재가 약속된 장소라는 데 있다. (2) 그런
데 이 임재를 보증 또는 표징하는 것은 바로 '언약궤'이다. (3) 그리고 이 언야궤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출애굽 당시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언약의
사실에 기인한다. (4) 고로 성전 건축의 의의 및 가치는 출애굽을 기점으로 해서만 설
명될 수 있다(6:1).
세우신 - 여기서 '세우다'는 '쿰'이 아니라 '카라트'(* )이다. 그런데 '카라
트'는 언약과 관련된 문맥에서는 '쿰'과는 달리 '언약을 체결하다' 또는 '언약을 개시
(開始)하다'라는 의미를 띠게 된다(20절;5:12).
여호와의 언약 넣은 궤 - 즉 '법궤' 또는 '증거궤'로도 불리는 '언약궤'를 가리키
는데, 이 언약궤 속에는 여호와 언약의 핵심이자 요체(要諦)인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판이 들어 있었다(출 25:16;40:20;신 10:5). 그리고 이 언야궤는 성전의 가장 깊숙
한 내소, 곧 '지성소'에 안치되어 있었다(6절).
=====8:22
회중을 마주서서 - 여기서 솔로몬의 자세와 방향이 의문시 된다. 왜냐하면 (1) 본
장 54절과 대하 6:13은 솔로몬이 무릎을 끓고 기도하였다고 명백히 밝히고 있으며,
(2) 성전을 향해 등을 돌리고 회중을 향하여 기도했다는 것은 있음직하지 못하다는 의
심 때문이다. 이에 대해 (1) 솔로몬의 자세 문제는 그가 처음에는 일단 섰다가 곧 무
릎을 끓었던 것으로 보이며(Montgomery), (2) 방향 문제는 본문을 그대로 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답변할 수 있다. 비록 수정하자는 주장이 있긴 해도(Hammond), 특별히 그
래서는 안된다는 규정을 발견할 수 없는한 무리한 수정을 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 예
배의 사회자가 회중을 마주 향한 자세로 기도하는 일은 흔치 않은가! 한편 솔로몬이
봉헌 기도를 드리기 위해 서있는 자리는 번제단 앞뜰 가운데 특별히 마련된, 길이와
너비 5규빗(약 2.3m) 높이 3규빗(약 1.4m)되는 일종의 연단(演壇)이다(대하6:13).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 성경 용례상 '하늘 또는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편다'는
말 자체가 곧 '기도하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종종 사용된다(Hammond; 출 9:29;사
1:15). 그런데 '파라스'(* ), 즉 손을 펴거나 뻗치는 행위는 보통 '간청'을 의
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동작을 하늘을 향하여 하게 되면 곧 하나님께 간구하는 의미의
자세가 되기 마련이다. 아무튼 여기서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자로서 공적 예
배를 인도하는 목자 또는 중보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하 전개되는 솔로
몬의 기도는 성경 중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공중 기도의 하나이다.
=====8:23
상천 하지(上天下地)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 이 말은 많은 신들 중에 이스라
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제일(第一, the first)이라는 뜻이 아니라, 천지간에 이스라엘
의 하나님 여호와만이 유일(唯一, the only)하신 신임을 의미하는 말이다(삼하
7:22;22:32). 비록 타민족의 눈에 여호와는 이스라엘만의 국가신으로 비쳤지만(왕하
5:17), 이스라엘은 천지간에 여호와 하나님만이 오직 한분이신 유일신으로 알고 믿었
다(신 6:4). 한편 본절과 비슷한 표현을 우리는 출 15:11;신 4:39;시 86:8 등에서 발
견할 수 있다.
온 마음으로...행하는 종들에게...은혜를 베푸시나이다 - 신 7:9과 동일한 의미한
함축한 구절로서, 이는 솔로몬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진솔한 신앙 고백인 동시에
오늘날 성도들에게 던지는 신앙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각박하기 이를 데 없는 생활 전
선(戰線)에서 시달리는 자들에게 있어 '온 마음으로'(wholeheartedly) 하나님을 섬기
기란 불가능해 보일 때가 많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
는 자에게는 당신의 베푸시는 은혜와 도우시는 권능이 반드시 함께 할 것이라고 약속
되었다(시 27:9;125:1). 또한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며 우리를 눈동자처럼 보호하시
는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시 17:8;마 10:30;히 13:8).
따라서 성도들은 목전의 환난에 좌우되지 아니하고 살든지 죽든지 하나님만 의지하고
그 뜻대로 살아감으로써, 성숙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영광스러운 면모를 드러낼 수 있
어야 할 것이다(빌 1:20).
=====8:24
허(許)하신 말씀 - '허하신'의 기본 의미는 '말하다'(* ,다바르)는 뜻이다.
그러므로 문자대로 번역하면 '말씀하신 말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맥상 '다바
르'를 '허락하다'란 뜻으로 번역한 구절이 몇 군데 있다(출 12:25;신 9:28;삼하 7:28;
렘 32:42). 한편 혹자는 '허락하다'는 '말씀하다'로 개역(改譯)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허락하다'란 인간이 먼저 청원한 것을 하나님이 승락하신다는 의미이므로 은혜의 성
격을 표현하기에는 적절치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바르'가 하나님의 말씀, 즉 계
시를 의미할 때는 오히려 '허락하다'라는 표현이 유용하다. 왜냐하면 계시가 본래 인
간이 알수 없던 것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취적 행동이라며나, 이에는 허용 또는
허락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 - 상천 하지의 유일하신 하나님 여호와는 천
지 만물을 홀로 주관하시는 주권자이시므로, 그분의 입으로 약속하신 바는 무엇이든지
주권자의 크신 능력의 손으로 반드시 이행하실 수 있다. 15절 주석 참조.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 '카욤 하제'(* ,as it is today)는 3:6에서
와 같이 눈 앞에 전개된 일들이 바로 하나님의 언약 성취임을 인식함과 동시에 하나님
의 신실성에 대한 감사를 담고 있는 표현이다.
=====8:25
여호와여 주께서...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 이 말씀의 핵심은 삼하 7:8-16의 메시
지, 곧 위대한 다윗 언약 속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보다 구체적으로는 솔로문에 대한
다윗의 마지막 유언(2:4) 속에 나타나 있다.
자기 길을 삼가서 - '삼가다'(* , 솨마르)는 '지키다', '주의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 말은 율법을 면밀히 주의하여 지키라는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출 20:6;레 18:26;신 26:16;겔 11:20). 주의할 것은 우리말로 '삼가다'는
'조심하다' 또는 '경계할'라는 소극적인 뜻에 그치는데 반해, 히브리 원문의 '솨마르'
는 보다 적극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즉 '솨마르'의 기본 개념은 '-에 대해
큰 관심을 기울이다'이다. 따라서 '솨마르'는 단순한 절제나 경계가 아닌 애정이 담긴
실천을 내포하고 있다. 즉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면밀히 계획, 실천하는 행동적 의미
가 짙은 말이다.
네가 내 앞에서 행한 것 같이 - 다윗은 향후 이스라엘 열왕들의 행적을 가치 판단
하는 표준과 척도로서 제시된다(9:4;15:11 등). 그런데 다윗이 그처럼 하나님의 마음
에 드는 인물일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그가 '하나님 앞에서 행하였다'는 말에 요약되
어 있다.
내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 조건절로 되어 있음에 주의하라.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
계는 곧 인격적 관계임을 강조해 준다. 사실 성전이든 언약궤든, 혹은 성례전이든 그
안에서 인간과 만나시는 분은 산 인격이신 하나님이다. 언약에서도 마찬가지로 언약을
매개로 인간과 대면하시고 만나시는 하나님은 그 언약의 주인으로서이지 결코 언약에
속박된 상태가 아니다. 그러므로 솔로몬 및 다윗 왕조에 주어진 언약도 인격적 관계가
그러하듯 계약 당사자의 성실이 바탕되어야만 했다.
이제...그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 다윗에게 약속하신 바대로 솔로몬이 다윗
의 왕위를 물려받았고, 또한 위대한 성전 건축 사업도 완료되었다(삼하 7:12, 13). 이
제 남은 것은 다윗 가계를 통해 영원토록 왕위에 오를 자가 끊어지지 않는 것 뿐이었
다. 솔로몬은 바로 이러한 약속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약속
에는 '만일 네 자손이 그 길을 삼가...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이라는 조건이 부가되
어 있었다(2:4). 하지만 말년의 솔로몬은 하나님의 율법을 거역하고 말았다(11:6). 그
결과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되었고, 북 왕국은 다윗의 혈통과 무관한
자에 의해 통치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은 유다 왕국 조차도 누적된
범죄로 말미암아 바벧론에 의해 멸망당하는 운명에 처해졌다. 그러나 이렇듯 표면상으
로는 하나님의 왕위 약속이 깨어졌다 하겠으나, 영원한 왕국에 관한 하나님의 숨겨진
경륜은 다윗의 자손으로 이 땅에 오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히 성취되
었다(눅 1:27). 요컨대 그러한 궁극적이고도 취종적인 약속 성취는, 첫째로 당신의 영
광과 이름을 위해서임, 둘째로 당신의 백성들을 향한 넘치는 사랑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시 23:3;요 13:1).
=====8:26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 - '확실하게 하다'로 번역된 원문은 '예아멘'(*
)이다. 그런데 이 말 속에 들어있는 기본형 '아멘'은 이미 말해진 것에 대해
확언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1:36). 따라서 25절 말미의 "-지키시옵소서"와 본절의 "-
확실하게 하옵소서" 같은 요구 형태의 기도는 이미 앞서 주어진 약속에 근거하는 기도
인 것이다. 물론 여기서 이미 주어진 약속은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주어진, 소
위 '다윗 언약'(삼하 7:12-16)을 가리킨다. 여기서 우리는 바람직한 기도의 한 모범,
즉 약속에 근거하여 드리는 기도를 발견할 수 있다.
=====8: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 근동 지방의 무수한 신들이 땅이나 산 등 제
한된 지역만의 신으로 믿어지고 숭배되던 당시의 환경 속에서 이같은 솔로몬의 올바른
신(神) 지식은 매우 돋보인다. 분명 솔로몬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충만한 지혜로 인
해(3:12;4:29-34) 이같은 올바른 지식을 소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늘들의 하늘 - '하늘들의 하늘'로 번역된 '쉐메 핫솨마임'(* )
은 두 가지로 이해 가능하다. 즉 (1) 그것은 히브리어가 최상급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평범한 표현일 뿐이라는 견해(Gaster). 이 경우는 '하늘 끝' 또는 '아주 높은 하늘'
(the highest heaven)이라는 뜻이 된다. (2) 그것은 히브리인들이 갖고 있는 일종의
우주관, 즉 하늘이 층층으로 되어 있다는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견해(Schottgen).
이 경우 '하늘들의 하늘'은 그렇게 '겹쳐진 하늘 중 최상층'(heaven of heavens)을 의
미하게 된다. 참고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에서 최고의 신 아누(Anu)는 여러 층
중 최상층의 하늘에 거주했다고 한다(Gaster). 어쨌든 어느 쪽의 견해를 취하든 문맥
상 본절의 "땅과 하늘들의 하늘"은 천지, 곧 우주 전체를 의미하는 말이다. 즉 우주
전체로도 담아 낼 수 없을 하나님의 무한성을 수사적(修辭的)으로 표현한 말인 것이다
(렘 23:24).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 우주 전체로도 무한하신 하나님의 처소로서
는 부족하거늘 하물며 일개 건물에 지나지 않는 조그마한 성전이 감히 하나님의 처소
일 수 있겠느냐는 겸비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성전이 하나님의 처소일 수 있는 것은
성전 자체의 어떤 가치나 능력이 하나님을 메어 둘 수 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하나
님께서는 성전이 결코 감당할 수 없는 무한하신 분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직 은
총으로 성전을 인간들 사이에 임재하시는 당신의 처소로 삼으신 것이다. 이러한 역동
적인 사실을 망각하게 되면 심각한 오류를 낳게 된다. 실제로 후대의 타락한 이스라엘
은 그 역사에서 자주 불순종과 불의에 빠지면서도, 무조건 성전을 마치 하나님이 묶어
있는 장소처럼 생각하는 잘못된 신 개념을 가졌던 것이다(렘 7:4;미 3:11). 결국 본절
에 내포된 의미는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1) 하나님의 편재성(偏在性):즉 하나님
께서는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대주재(大主宰)이시므로, 사람의 손으로
건축된 전(殿)에 국한되실 수 없다(행 17:24). (2) 당신의 백성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지존하신 하나님께서 땅 위에 당신의 임재를 상징하는 처소를 마련토록
하셨다는 사실 자체 속에 하나님의 무한한 비하와 크신 긍휼이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비하(卑下)와 사랑은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죄인의 모습으로 성육신 하신 예
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절정에 달했다(롬 8:3;히 1:3).
=====8:28
기도와 간구 - 구약에서 '기도'를 의미하는 용어가 여럿 있지만 그 중에도 본절에
나오는 '테필라'(* )가 가장 많이 사용된다. 그리고 '테필라'는 동사 '팔랄'
(* )에서 파생되었다. 그런데 '팔랄'은 '중재하다'(intervene)란 뜻을 갖고 있
다. 본절은 솔로몬이 그의 백성들을 위해 기도 드리는 장면이다. 따라서 본절의 '테필
라'는 그 어원적 의미에 가장 적절하게 사용된 셈이다. 한편 '간구'(* , 테힌
나)는 '자비롭다' 또는 '불쌍히 여기다'는 뜻을 가진 동사 '하난'(* )에서 파생
된 말이다. 그런데 '하난'은 어떤 사람이 필요로 하는 바로 그것을 주어야겠다고 진심
으로 느끼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솔로몬의 기도와 간구는 이스라엘 백성들
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 주시도록 대신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의미에서 중보
기도의 모범적 형태를 보여 준다고 하겠다.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 - '부르짖음'은 '간구'와 마찬가지로 '하난'에서 온 말이다.
또한 '비는'이란 말로 '기도'와 마찬가지로 '팔랄'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하난'은
자비롸 동정을 필요로 하는 어떤 슬픈 처지를 전제(前提)한다. 여하튼 이러한 어휘가
구사된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오직 하나님만 의뢰코자 하는 간절하고도 절박한 심
정이 토로되었기 때문이다.
=====8:29
전에 말씀하시기를 - 아마도 선지자 나단이 다윗에게 성전 건축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전할 때(삼하 7:13)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Keil).
주의 눈이 주야로...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 성전에서, 그리고 성전을
향하여 기도를 드리는 근거가 제시되고 있다. 즉 그것은 성전 자체의 가치 때문이 아
니라 "주의 눈이 주야로"성전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전은 그곳을 향한 하
나님의 자비와 그곳을 향한 인간의 기도를 매개(媒介)해 주는 장소이다(단 6:10;시
5:7;욘 2:4). 이러한 성전의 핵심적 특성 및 기능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는 말
속에 잘 요약되어 있다(사 56:7;마 21:13). 한편 '주의 눈'에 대해선 9:3 주석을 참조
하라.
=====8:30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 사실 하나님은 무소 부
재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늘들의 하늘이라 할지라도 주의 거처로서 합당치 못하다(27
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심히 낮아지셔서 이 땅 위에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
을 짓도록 명하시고 허락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성전을 당신과 인간의 만남
과 교제의 장소로 삼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따라서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
아가 죄를 용서받고 상호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성전 뿐이었다. 이제 솔로몬
은 이러한 점을 상기하면서, 약속대로 성전을 통해 주께 나아가고자 하는 자를 하나님
께서 용납해 주실 것을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주의 계신 곳 하늘 - 비록 본문이 하나님의 임재 처소로서로 성전을 봉헌하는 장면
이지만, 하나님의 진정한 거처는 '하늘'이라고 거듭 밝힘으로써 성전을 상대화시키고
있다(34, 36, 39, 43, 45, 49절). 한편, 본절의 '하늘'은 우주 내의 어느 한 장소를
가리킨다기보다 성전을 포함하여 어떠한 제한된 장소라도 하나님의 참된 거처일 수 없
다는 점을 선포하는 데 강조점이 있다. 즉 본절은 솔로몬 성전이 하나님의 진정한 처
소일 수는 없으며, 다만 하나님께서는 언약에 의하여 당신의 백성을 만나실 장소로서
땅 위에 그곳을 지정하셨을 뿐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하늘에 계신다는 말
속에는 하나님의 전지 전능성이 내포되어 있다. 곧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모든 인간
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감찰하신다는 것이다(39절). 이렇듯 치밀하신 주의 통찰은
경건하 자의 간구에는 보호하시는 은총으로, 그리고 패역한 자에게는 진노의 심판으로
작용하게 된다(시 91:4;렘 1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