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몽골 고원을 자전거로 달린다

[허수아비(종구)]

[해외 자전거여행] 몽골 고원을 자전거로 달린다

울란바토르~아우자카~뫼뢴~제르가당~홉스콜 답사

작년 여름 MTB대회에 들떠있던 나에게 박현우 언니는 몽골 투어에 동행하라고 제안했다. 자전거를 타고 나만의 여행을 하고 싶던 터라 남편과 의논하니 열심히 하라며 자전거를 새로 꾸며준다. 각자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면 함께 몇 번 야영하고 짐을 꾸리기로 했다.

6월 중순 출발 직전 언니의 제안으로 두 분의 동행이 생겼다. 김국현 선배는 현우 언니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준 사부란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고, 언니가 대회에 나가 우승할 수 있도록 해준 분이다.

▲ 천상화원. 꽃이 다칠세라 조심스럽다. 홉스콜 호수가 내려다보인다.

또 이봉만 선배는 자전거보다 산으로 더 유명하시단다. 남편과 함께 고산원정을 하셨고, 산악사진작가로 활동하시는 분이란다. 큰 키에 훤칠한 이 선배는 운동복 차림에도 신사의 멋이 배나오고, 예쁘고 멋진 사진을 가질 수 있으리란 생각에 행복했다. 첫 만남에 어색하지만 인사를 드리고 예쁜 척 잘 보이려 웃음으로 시작했다. 37세의 나이에 두 아이 엄마가 투어팀의 귀여운 막내로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험악한 비포장도로에 첫날부터 엉덩이 통증

인천공항을 떠난 지 3시간만에 몽골에 도착, 짐을 찾고 공항 밖으로 나와 보니, 공항은 청주공항 규모밖에 안되었다. 몽골 현지가이드와 운전기사를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운전기사 자담바는 서울 수유동에서 3년 동안 일한 경험이 있어 한국말을 제법 잘 구사하는 30대 초반의 남자였다.

“태영씨~, 9시가 벌써 넘었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아침식사를 10시까지밖에 제공하지 않는단다.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급히 일어나 대충 씻고 호텔 식당으로 내려갔다. 식사를 마치고 식료품 구입과 시내 구경을 위해 호텔을 나섰다. 택시요금은 언제나 다르기 때문에 흥정을 하거나 현지 사정에 익숙한 척 제시해야 하지만, 어쨌든 아주 저렴하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영어 몇 마디로 서로 의사소통을 한다. 시내 안내와 몽골 가이드는 이 선배 담당이다.

▲ 야트막한 산봉들이 고원평야와 잘 어우러진 아르항가이 라이딩.

스카이쇼핑센터는 꽤나 넓다. 아파트단지 앞 마트 정도의 규모다. 우리나라 식료품과 일본 등지의 생필품이 눈에 들어왔다. 지방의 어느 한 곳에 머무는 느낌이다. 화장품은 90%가 우리나라 것이다. 이 선배 말씀으로는 몽골은 요즘 한국 물건뿐 아니라 음악과 드라마 연예인을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자동차 또한 눈에 익은 현대 대우 기아 브랜드가 무척 익숙하다. 상태는 한국에선 폐차할 것을 가져다 놓은 듯하다. 재미있는 것은 버스에 한국 번호판과 행선지 안내판을 그대로 달고 다닌다는 점이다. 미술학원도 피아노학원도 모두 그대로다. 한국 글씨가 있는 차가 매매시에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단다. 현우 언니가 미아리라 쓰인 버스를 보고 “이것 타면 미아리 가나?”며 웃겨준다.  

6월21일 수요일 오전 8시 자전거 복장으로 갈아입고, 오전 10시30분 드디어 울란바토르에서 출발한다. 심호흡을 하고 페달을 힘차게 밟아본다. 아름다운 몽골 초원과 마을 풍경을 보겠다는 기대와 달리 울란바토르 시내를 벗어나 외곽도로를 진입하였지만, 시내를 벗어나는 대형 트럭들과 자가용으로 복잡하고 심한 매연과 무질서에 실망이다.

몽골의 노면은 정말 열악했다. 첫날부터 엉덩이가 너무 아파온다. 도로라 하여 길이 좋다 생각하면 큰 오산이었다. 시내 한복판의 노면은 외곽의 비포장도로보다 더 안 좋다. 한눈팔고 가다보면 깊이 패인 곳에 박혀 넘어져 다치기 십상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한참 내달리다 보면, 어느새 20~30km를 후딱 지나쳐왔다.

fontSet();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몽골의 자연풍광

외곽도로를 나오니 몽골의 자연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 폭의 그림 같다. 하늘은 너무나도 드높고 파랗다. 찌든 도시를 벗어나 자전거에 몸을 실어 저 멀리 지평선을 향해 달리니 몸속의 노폐물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 무아지경에 달리고 있다. 더 힘차게 달리고 싶다.

김 선배는 하늘을 보며 애국가의 한 소절을 읊으신다. 애국가의 배경에서나 볼 수 있는 하늘의 색채감을 이 몽골에서는 맘껏 즐길 수 있었다. 자동차의 사이드미러 속에 비친 하늘과 구름도 그림이다. 말과 양떼! 그 무서워하던 큰 개까지도 모두 사랑스럽다.

▲ 구름을 등에 지고 아르항가이의 내리막을 달린다.

도로를 따라 6시간 동안 125km를 달려왔다. 엉덩이 통증을 더욱 느껴질 때쯤 날씨가 변한다. 검은 구름이 우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서둘러 텐트를 치고, 차와 텐트로 피했다. 먹구름이 커튼을 드리우듯 하늘에서부터 땅끝까지 막을 치고 다가오며 번개 치는 모습이 그림책 그대로다. 정말 신기했다. 바람과 강한 빗줄기에 차량과 텐트로 나뉜 일행은 연락이 끊기고 무너져버릴 듯한 텐트는 무슨 일이 있는지 울퉁불퉁하다. 비바람과 전쟁 중인가 보다.

비가 그치고 나온 언니는 라면박스를 깔고도 배고픔에 시달리다 잠들었단다. 갑자기 피곤이 밀려온다. 우리가 도착한 룽이란 곳은 대자연 속의 들판이다. 예정에 미치지 못했으나 큰비를 피했으니 다행이다. 굵고 강한 빗줄기로 텐트 안은 엉망이다. 바닥깔개 중 하나를 천장에 받치고 벌서는 자세로 잠들었을 언니를 생각하니 미안하다.

자전거 타는 거만 빼고 모든 것이 신기하고 궁금하다. 소꿉장난 같기도 하고 다소 생소하기도 하지만, 언니나 선배는 그저 부딪치는 이 환경에 금세 적응하여 재미있기만 한 것 같다.

모래길에 박힌 유리에 펑크나기도

다음날 오전 9시 또다시 출발한다. 엉덩이가 많이 아프다. 그래도 참고 가다보면 어느새 진정되어 나도 모르게 페달에 힘이 실린다. 선배들은 “그러다 오래 못 간다”며 좀 천천히 가라 하시지만 나는 날아서라도 가고 싶다.

▲ 아르항가이에서 뫼론으로 향하던 중 제르가당 부근의 계곡에서 쉬고 있는 강태영시와 박현우씨(오른쪽)

룽을 지나 80km 지점에 도착해 작은 식당에서 만두를 먹었다. 선택하지 못하고 주는대로 먹는 것이다. 만두 속은 양고기가 가득하고 만두피도 쫄깃쫄깃 맛있다. 뚱보아저씨가 천천히 움직이고 주방에는 부인으로 보이는 예쁜 아줌마가 바쁘게 움직인다. 어디 가나 똑같아. 여자랑 남자 모습. 

식당을 출발하여 10km 지점은 모래 길이다. 맨 앞에서 달리던 나는 몸을 사리고 언니가 먼저 앞바퀴를 밀어본다. 비포장의 시작이다. 이제 포장도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눈으로는 비포장도로가 탈 만하고 좋아 보였다. 그런데 아뿔싸, 중간에 하얗고 예쁜 모래 길은 자전거 타이어를 묻어버리고, 곳곳에 빨래판 모양으로 패이고 굳은 곳은 페달링을 힘들게 하고 엉덩이를 부서지게 한다. 게다가 유리조각이 박혀 펑크가 나서 시간과 기운을 많이 빼앗긴다.

아우자카에 도착! 드넓고 척박한 초원에 몽골 전통가옥 겔이 보인다. 대여섯 채 정도의 휴양림이란다. 오늘은 겔에서 묵는다. 주인과 겔의 몽골인은 말없이 우리를 보며 친절하고 편안함을 주기 위해 애썼다. 몽골은 백야현상으로 밤 10시에 해가 지고 새벽 4시에 해가 뜬다. 처음에는 적응이 잘 안 되었지만, 이제는 즐기며 밤을 낮처럼 보내고 있는 우리들이다. 겔에서 저녁을 먹고 쉴 무렵 또다시 소낙비가 시원스레 내린다. 예정에 없던 날씨라 비를 좋아하는 언니는 걱정 반 즐거움 반이다.

몇 시간을 달려도 호수 주변

오늘은 차량이동이다. 400km 넘게 가야 한단다. 우리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다. 가도 가도 끝없는 황량한 벌판! 몽골 땅은 끝이 없다. 차만 타면 왜 그리 졸리는지. 몽골의 자연에 김 선배는 감탄사를 연발하시고 이 선배는 일행이 놓치지 않고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졸고 있는 우리를 간혹 깨우신다.

해발 2,000m가 넘는 곳에 있는 이름 모를 마을을 거쳐 다싱칠리 호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새벽 2시가 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많은 비로 인해 전기가 끊기는 불상사까지 발생해 차량 불빛에 의존해 겨우 휴양림을 찾았다. 겔은 습하고, 빗물이 얼굴로 떨어졌다. 음침하고 산만한 밤이다. 종업원은 친구들과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신 듯했다. 불만족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묵어야 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바로 취침에 들어갔다.

다음날 아침 늦은 취침으로 늦잠을 자고 싶었으나, 이 선배는 호수의 태양에 들떠 우리 모두를 깨운다. 다싱칠리 호수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모두 감탄사를 연발하며 몽골의 대자연을 만끽하는 행복한 아침이다.

▲ 전형적인 몽골의 풍광을 보여주는 차간노르. 라이딩 도중 지나치는 마을이다.

또다시 언니와 자전거를 탄다. 호수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넓은 길이다. 몇 시간을 달려도 호수 주변일 뿐이다. 가슴 벅찬 오르막을 일부러 힘든 길을 택해 언니와 앞서거니 하며 오른다. 이렇게 달리다보면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조금 덜할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지워질까? 문명과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전기도 없고 전화도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신랑, 준혁, 민혁, 어머니 모두 모두 그리워진다. 어느새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북서쪽으로 이동하다 보니 숲이 보인다. 황량한 벌판만을 달리다 숲 우거진 계곡을 보니 살 것 같다. 생명이 느껴지는 나무와 숲이 반갑다. 제르가당은 숲 아래 계곡이 흐르는 주변 마을이다. 굵은 나무가 하늘 높이 들어차고 늑대가 나온다는 야영장 옆에 휴양지가 있다. 사흘만에 머리를 감고 샤워를 했다. 매일 물티슈로 얼굴과 손을 닦고 살았는데, 오늘 목적지는 몽골 유일의 온천이란다.

온천 휴양림은 너무 깨끗하고 주변도 아름답다. 숲이 울창하다 보니 현우 언니는 야영하고 싶어한다. 몽골은 물이 무척 귀한 나라라고 들었는데, 숲으로 인해 계곡물이 있고, 온천까지 나오니 샤워 중에도 충분히 물을 즐길 수 있다.

라이딩과 차량 운행을 섞어가며 도착한 뫼뢴은 자그마한 도시다. 몽골 도시 치고는  경비행장도 있고 큰 건물들도 있지만 황폐하게 느껴진다. 때가 많이 묻은 도시의 느낌이다. 

바다를 연상케하는 홉스콜 호수

홉스콜까지 차량으로 이동하여 나흘을 지내는 일정이다. 홉스콜 국립공원 입구에서 입장료를 내고 자연보호에 협조하라는 공무원의 주의사항을 들었다. 에델바이스가 가득한 풀밭은 너무도 아름다워 눈이 부시다. 홉스콜 호수는 바다를 연상케 한다. 너무 아름다워 숨이 막힌다.

이 선배의 안내로 해발 3,000m 고지에 올랐다. 고소로 머리가 무거워 힘들게 올랐다. 넓은 산 위에는 형형색색의 야생화가 자태를 뽐내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떡잎 하나 없이 어찌 그리 맑은 꽃이 있을 수 있는지. 입을 다물지 못할 만큼 감탄사만 연발한다. 자전거로 다운힐하고 싶은 충동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흥분하게 만든다.

자전거의 아쉬움을 달래듯 언니는 승마를 했다. 재미있다는데, 정말로 재미있을까? 나는 무섭기만 하다. 언니는 엉덩이에 상처가 나도록 사흘 내내 말을 타고 이곳저곳을 산책하고 어두울 녘에 달려서 돌아왔다. 하루 하루가 다르게 안정감과 속도가 붙는 듯하다. 

홉스콜의 마지막 밤을 위해 숙소에서 파티를 해준다. 장작이 높이 쌓이고 우리를 돌보던 소녀와 말고삐를 잡아주던 청년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하던 몽골사람들, 우리처럼 몽골의 하늘과 구름, 밤하늘의 별을 찾아 먼 길 찾아온 외국인들까지 함께하는 밤이다.

봉사단원으로 왔다는 한국 학생의 입을 빌어 지난밤 우리의 소곤거림에 잠을 설친 외국인 가족에게 사과와 건배를 할 수 있는 밤이다. 우리의 매트리스를 넓게 깔고 그들을 먼저 앉히고, 음악을 듣고 몽골 노래와 한국 노래를 교환한다.

몽골인들은 하늘색을 귀하게 생각하며 좋아한다. 맑은 하늘을 사랑하기 때문이란다. 아름다운 하늘색이 계속될 수 있도록 기원하며, 하늘색과 구름, 별보다 더 가슴에 남을 몽골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한다.

글= 강태영 대전페달파워 
사진= 이봉만 한국산악회 회원

fontSet();

font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