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피어나는아침님의 홈피에서 담아 왔습니다.
대구분인것 같은데...
2005년 7월 28일 ~ 8월 3일까지 6박7일간
베트남 가족 배낭 여행을 다녀 왔다.
아내와 큰 아들(초등 5학년)과 나는 각자 메모를 여행중에 적어서
나중에 종합 하기로 했는데 아내와 아들의 여행소감은 각 날짜별로 부분적으로 첨부하기로 한다.
이동경로및 소요경비 역시 상세하게 밝힌다.
프롤로그
우리 가족 여행은 올해 3월경에 처음으로 계획되었다. 함께 가족 배낭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라는 나의 제의에 아내가 흔쾌히 동의하고 6월말부터는 본격적으로 구상이 시작되었다. 가족이 단체로 움직이는지라 실수하면 안된다는 강박감에 태국을 여행지로 결정했다. 이 곳은 올해 1월에 혼자서 다녀온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탑여행사라는 할인항공권 전문 여행사에서 예약한 티켓은 과다발급이라는 황당한 사유로 취소 되어 버리고 좌석이 가능한 곳을 찾다가 결국은 베트남으로 행선지가 바뀌게 되었다. 하노이행은 좌석이 없고 남부 호치민행만 좌석이 남아 있단다.
애초 예정했던 태국 방콕행은 항공권이 세명 합쳐서 130만원 정도였는데 호치민은 무려 180만원이다. 물가가 태국보다 싸다는 점을 위안 삼고 여행 준비에 들어 갔다.
"트래블게릴라"라는 인터넷사이트와 "인사이드베트남""just go 베트남"이라는 가이드북을 숙독하며 여행 루트를 짜고 최신 정보도 모아 나갔다. 큰 트렁크 하나에는 주로 세명의 옷을 넣고 큰 배낭에는 기타 여행물품과 컵라면통조림등을 넣고 소형배낭에는 디카등 기록매체를 넣었다.
7월 27일 저녁 퇴근후 고속철도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작은 애를 서울의 큰 처제네에 맡기기 위해서였다.
7월 28일 - 여행 첫째날
아침 7시 10분 창동의 처제집에서 택시를 타고 인천공항행 리무진을 타기 위하여 노원역으로 이동했다. 마침 공항으로 들어 가는 택시가 있어서 22,000원으로 갈 수 있었다. 비가 많이 내린다.
공항 여행사 부스에서 항공예약권을 찾고 아내의 로밍 휴대폰을 수령한 다음에 vn항공의 티켓을 발권 받았다. 시간이 여유 있게 남아서 식사를 할 까 하다가 참기로 한다. 베트남항공의 기내식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게이트앞에서
독서중인 아내와
여행에 들떠서
왔다갔다 하던 치은이...
인천공항은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뒤지지 않는
첨단 공항이다...
10시 50분 vn659는 인천공항을 이륙했다.
탑승후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여승무원의 아오자이였다. 한복을 능가하는 아름다운 옷이로구나! 하얀색 하의를 덮는 자주색 윗옷의 아오자이! 눈매가 착하고 고왔던 베트남 승무원 아가씨.
우리 가족에게는 오른 쪽 창가의 세 좌석이 배정되었다.
타이항공의 기내보다는 좀 더 단정한 느낌이었고 승무원들도 절제된 서비스 수준을 보여 주었다.
베트남 남부 코스가 북부보다는 인기가 덜한 것인지 뒤로 빈 좌석이 보인다. 우리 주위로는 한국인과 일본인팀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치은이는 어느새 좌석에 부착된 모니터를 보며 게임을 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륙후 한 시간쯤 지나서 물수건과 차가 서비스되더니 기내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이한 것은 4페이지 분량의 메뉴표가 나누어 진다는 점이다. 메뉴는 두가지.
스테이크종류의 양식과 밥중 내가 선택한 메뉴.
맛은 그런대로 깔끔했다. 고추장볶음도 보인다.
약 5시간을 날아서 비행기는 베트남 상공으로 진입하였다.
승무원이 나누어 주는 베트남 출입국신고서를 가이드북 참고하여 끙끙거리며 세장을 모두 적어서 여권에 끼워 넣고는 창문밖으로 베트남의 첫인상을 구경하였다.
저 강이 메콩강인지는 잘 모르겠다
입국수속대로 접어 드니 치은이가 제일 먼저 해보겠다고 도전한다. 베트남의 공무원들은 모두 북한 군복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어서 위압감을 준다고 하더니 실제로 보니 정말 녹색 군복을 입고 있는게 아닌가. 하지만 거부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여행 도중 무슨 기념관등의 매표대에 근무하는 공무원들도 예외 없이 군복을 입고 있었다. 개혁개방을 향해 달려 가면서도 군복을 입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베트남 의 지나온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아닌가 싶다. 전 인민이 일치단결하여 프랑스,미국등의 외세를 축출하고 남쪽의 매판독재정권을 뒤엎고 마침내 사회주의통일을 이루어 낸 무력항쟁에 대한 긍지 같은 것... "촌스런 복장"등의 선입견은 용감한 무식이다.
입국심사에 도전하는 치은이. 동작이 무척 느렸던 아가씨.
호치민의 떤션넛공항은 서울의 강남터미널 정도의 수준이다. 편의시설은 오히려 강남터미널쪽이 더 나은 편이다. 짐을 찾아서 공항밖으로 나오니 북적대는 사람들과 함께 베트남의 뜨거운 공기가 우리를 맞이한다.
가방을 들고 택시 승강장을 향해 가고 있으니 웬 아저씨가 택시 탈거냐고 묻는다. 여행자 거리가 있는 데탐거리까지 6$에 가기로 하고 우선 공항앞의 환전소에 갔다. 10$를 주니까 153,000동을 주는 것이다. 출발당일 서울에서 확인한 환율은 1달러당 15,850동. 158,500동을 주어야 하는데 5000동 정도를 덜 주는 것이다. 계산이 틀리다고 항의하니 자기네 환율은 달러당 15,000동이란다. 우리돈으로 330원 정도 가지고 싸우기도 뭐해서 그냥 물러 섰다.(근데 거스름돈 덜 내주는 게 이 나라의 관례인지 달러당 15,000동으로 계산해서 지불해도 흔히 1,2000동 정도는 태연하게 잘라먹고 안준다.팁이란 말인지 뭔지...).
우리가 탄 택시는 불법자가용 영업이었다. 차는 거의 폐차 직전이고... "이거 택시 아니구나"했더니 자신의 택시 기사 자격증을 내보이고 난리다. '어차피 그 자격증도 가짜겠지 뭐.. 제대로 데려만 다오' 라고 맘 먹으며 창밖을 내다 보다 기절할 뻔 했다. 첫째는 도로를 가들 메우고 달려 가는 오토바이 행렬때문이고 둘째는 오토바이나 차나 교통질서를 아예 무시하는 점 때문이었다. 한국이 자가용이라면 중국은 자전거, 베트남은 오토바이이다. 베트남 성인의 대중적인 자가용인 셈이다. 외국인의 눈에 위험해 보이기 그지없는 이러한 개판5분전의 교통상황에도 질서가 존재한다고는 하나 처음 보고는 정말 놀랐다.
(치은이의 일기 : 어떤 친절한 택시 기사가 숙소까지 데려다 준다고 했다. 돈은 6달러를 받았다...그런데 베트남 교통을 보니까 신호등도 없고 맘대로 가고 오토바이가 많았다. 그래서 횡단보도를 건널 때 아찔했다...)
데탐거리의 sihn cafe앞에 내려서 미리 공부해둔 괜찮은 미니호텔에 들리니 모두 방이 없다. 와중에 베트남 호객꾼이 끈질기게 달라 붙어서 호텔을 안내하겠다고 한다. 나중에는 아예 무시해 버리고 사거리에 위치한 꿘탄호텔이란 곳을 하루 12$X4일=48$에서 2$ 할인하여 46$에 묶기로 하고 3층에 짐을 풀었다.
뒷 편에 보이는 하얀색 건물이 꿘탄호텔
배낭과 트렁크를 방에다 두고 길을 나서니 너무나 홀가분하다.
같은 여행자 거리지만 데탐거리는 방콕의 카오산로드에 비하면 뭔가 어수선한 느낌이다. 읍소재지에서 면소재지로 온 느낌이랄까? 폭주하는 오토바이를 힘겹게 피하며 거리 구경을 하다가 식사를 하러 들어 갔다. 베트남에서 처음으로 우리 가족이 사먹는 식사다.
나는 쌀국수(퍼보), 아내는 새우볶음밥 치은이는 비프스테이크.
베트남 물소의 화신인 비프스테이크는 조금 질겼고 쌀국수는 맛있었음.
첫날은 시내 구경하다가 야간 사이공 디너크루즈를 타는 걸로 계획했기 때문에 여유가 있었다.
여행자 거리에는 신카페, 김카페등의 투어상품 사무실이 가장 많았고 두번째로 그림 가게가 꽤 보였다. 모나리자등의 명화를 모사하여 액자에 담아 판매하는 곳인데 그런대로 실력이 있는 편이다.
그리고 기념품 가게, 소수민족의 의상및 소수민족의 색상을 응용한 소품들을 다양하게 진열해 놓은 가게들이 보였다.
선물 구입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사이공강 선착장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도착 후 보니 시간이 오후 5시. 배 출발까지는 무려 세시간이나 남았다. 라이브 공연을 보며 식사를 하고 사이공강을 돌아 오는 디너크루즈 배는 두군데 있었는데 윗쪽에 위치한 걸로 나중에 승선했다.
영업 준비중인 여 복무원들
강가에 조금 앉아 쉬다가 남는 시간동안 인근의 동코이 거리를 구경 하기로 했다. 선착장에서 약 1킬로미터 남짓 전개되는 동코이 거리는 호치민의 번화가이다. 유서 깊은 호텔과 식당, 가게 그리고 인민위원회가 소재한 거리이다. 선착장에서 왕복 8차선의 도로를 건너는데 10분 넘어 소요를 했다. 도대체 달려 오는 오토바이 물결을 가로지를 엄두가 나지 않은 까닭이다. (길 건너는 요령은 그 다음날 아내가 터득한 기술에 의해 익힐 수 있었다. 오토바이와 눈을 마주치지 말고-> 느린 속도로->그냥 건너면 오토바이가 알아서 피해 간다!는 길건너기 기술)
옛 프랑스 식민지의 유산인가? 조금만 큰 가게에는 꼭 입구에 문지기(?)가 제복을 입고 보초를 서고 있다. 1시간 정도 가게 구경도 하고 치은이가 여자친구들에게 줄 조그만 천손가방도 구입하고 그러다 보니 날이 조금씩 어두워 진다. 선착장으로 다시 향했다.
저녁 7시. 배에 올랐다. 음식을 주문하고 보니 배는 8시30분이 되어야 떠난다고 한다.
중앙의 20석 정도에는 무슨 기념 파티인지 베트남인들이 벌써 건배를 하고 떠들석하다.
게 찜요리와 맥주 두병, 콜라, 쥬스를 시켰는데 21$. 여행자로선 좀 사치스런 식단이다. 출발을 기다리며 내다 본 강변은 호치민의 청춘남녀의 파격적인 데이트 장면이 펼쳐진다. 그러나 꼭 부둥켜 안고 강변에 앉은 그들의 모습이 왠지 풋풋하고 정겨워 보인다. 솔직함이 오히려 낫다.
게가 4마리 정도 나왔는데 껍질이 좀 단단한 선착장 부근의 야경
편이고 향신료가 들어서 특이한 맛이 났다
오늘의 지출 : 공항이동 택시비 22,000원. 담배 한보루 14,000원. 껌 4,000원. 떤션넛공항~데탐거리 택시비 6$. 호텔비 12$. 점심 109,000vnd. 데탐~선착장 택시비 16,400vnd. 선물구입비 18$. 디너크루즈 식대 21$. 선착장~숙소 택시비 27,400vnd. 총계 141,230원.
7월 29일 - 여행 둘째날
여행자거리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된다. 고기를 화덕에 구워서 밥에 얹어 주는 고기덮밥을 먹고 싶었는데 끝내 못먹었다. 나머지 두명이 완강히 거부...
오늘은 호치민 시내를 여기저기 둘러 보기로 계획한 날이다.
그런데 숙소가 사거리에 위치하다 보니 너무 시끄러웠다. 오토바이 소음에서 벗어날 길이 없을까하고 가이드북을 들쳐 보다가 가까운 거리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호텔이 있다고 나와 있었고 조용한 곳이라 한다. 임시회의를 통해 숙소를 옮기기로 결정했다.
신카페에 들러서 내일모레의 투어상품을 예약하고 그 다음날의 므이네행 오픈버스 티켓을 구입했다. 실내장식이 아름다운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했는데 입맛에 꼭 맞는 메뉴를 발견했다. 해물볶음밥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 fried rice of sea food - 큰 조개와 새우를 듬뿍 넣고 볶은 아주 맛나는 것이었다.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duong hoang hotel"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는데 택시기사가 대충 내려 주고 가 버리는 바람에 한참 고생을 했다. 무더운 날씨에 30여분만에 찾은 호텔은 가이드북의 안내와는 달리 한국인 숙소도 아니었고 한국음식이 제공되는 것도 아니었다. 아마 몇년 사이에 주인이 바뀐것인가. 그러나 방은 필요 이상으로 넓었다. 오토바이 소리도 데탐보다는 약했고...
첫 코스로 들린 벤탄시장. 한국의 남대문시장과 흔히들 비교한다. 남대문과는 달리 주인들이 모두 가게앞에 나와 앉아 있는게 재미있다. 저렴한 서민용 시장 - 활력이 넘친다.
벤탄시장에서 통일궁으로 이동했다.
남베트남의 청사인 통일궁에는 전쟁 당시 북베트남의 탱크가 정문을 부수며 돌격했다 한다.
청사를 들어 서자 오른 쪽으로 그 탱크가 전시되어 있다. 베트남 관광객이 탱크위에 올라가서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통일궁은 아름다웠다. 분수가 뿜어져 나오는 중앙의 넓은 잔디밭과 옥상에 올라 내려다 본 시원한전망. 직선으로 곧게 뻗은 사이공시의 중심부가 한눈에 들어 왔다. 이 건물에서 당시 남베트남의 권력자는 민족과 인민을 위한 고민이 아니라 소수 지배자의 영원한 영광을 꿈꾸었으리라.
민족의 단결을 의미하는 노란 별과 혁명의 피를 의미하는 붉은 바탕의 국기
아오자이의 나라에서 아오자이를 보기가 참 힘들었다. 여학생의 교복으로 많이 입고 일반인은 명절에나 입는다고 하더니 사실인 모양이다. 왼쪽은 통일궁의 시청각실 안내를 맡은 아가씨..급한 마음에 양해도 얻지 않고 그냥 사진기를 들이 대었다. 오른쪽은 통일궁 기념품점의 여주인.
아오자이는 너무 아름다운 옷이다.
통일궁에서 나오지마자 베트남의 "낮잠시간"에 걸려 버렸다.
오전 11시 30분~오후 1시까지는 모든 관공서, 관광지가 문을 닫고 식당등만이 문을 연다.
통일궁 마당 벤치에서 가이드북을 펴놓고 식당을 고르기로 했다. 좀 좋은 곳으로 가서 먹기로 하고 중심가 동코이 거리의 <미스 사이공 레스토랑>으로 택시로 이동했다. 유명한 곳이라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가이드북의 경고와는 달리 빈자리가 많이 보였다. 파인애플 볶음밥 2개와 쌀국수, 왕새우 한접시, 쥬스 2잔에다 맥주 1병을 합해서 25$가 나왔다. 국내 물가의 절반, 비싼 편이다.
한 상 가득 음식을 두고 흐뭇...
총 16마리. 가격이 9000원 정도였으니까 한 마리당 562원.
새우나 게등 sea food는 동남아의 가격이 국내에 비해 많이 싸지는 않다
식사 도중에 스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동남아 여행을 계획한다면 "우기"라는 말에 겁먹지 말아야 한다. 실제 여행 일주일 동안 단 두번 정도만 비를 만났고 그것도 정오 무렵에 한시간 정도 퍼붓다가 활짝 개이는 장대비에 지나지 않는다.
우산이 한 개뿐이라 이동에 지장이 많고 오전 내내 시내를 걸어 다녀서 피곤하다는 여론에 따라 숙소로 귀환하여 우리도 낮잠을 잠시 즐기기로 하였다.
노랑 해바라기 그림액자 아래서 커텐으로 햇살을 막은 다음 낮잠을 자다
다시 힘을 내어서 택시를 타고 전쟁기념관으로 이동을 했다.
(이 날은 택시를 6번이나 탔다. 시간도 시간이고 가족여행이라 무조건 고집하기는 어려웠다)
서양관광객과 여행자가 유독 많았던 전쟁기념관.
6개의 건물로 이루어진 기념관은 사진과 각종 자료로 베트남 전쟁의 성격을 알리고자 하고 있었다.
미군의 잔학성을 폭로하는 자료 옆에 박정희정권이 파병한 한국군의 기록도 눈에 보인다.
베트남의 전사가 투옥된 감옥을 재현하고 있다
감방 뒷쪽 벽에 쓰여진 한시는 이 전사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身體在獄中(신체재옥중) 몸은 비록 감옥에 갇혔으나
精神在獄外(정신재옥외) 마음은 이미 바깥에 있네
欲成大事業(욕성대사업) 큰 일을 이루고자 하면
精神更要大(정신갱요대) 이 마음 굳게 벼려야 하리
(엉터리 번역이다. 하지만 대략의 의미는 이런 것 같다)
한 건물의 벽면에는 베트남과 연대하고자 하는 국제운동의 기록이 있었다
일본공산당, 일본민주청년동맹등에서 제작한 포스터가 보인다
197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반전운동은 학생그룹의 대대적인 진출로
세계에서 유례를 보기 힘들 정도로 고양되었다
방명록에 흔적을 남기다
내가 쓴 글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아래는 터키의 청년여행자가 글을 적었다
1975 - 2005
통일 30주년을 자축하는 베트남의 긍지가 기념관 입구에 대형 걸개로 나타나 있다
전쟁기념관--서울 용산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을 두고 말들이 많다. 그것은 1950년에 발발한 내전이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이유와 그리 떳떳하지 못한 남한의 역사때문이리라. 베트남의 경우는 - 자연스러운 느낌이다. 항쟁의 기억을 위해 전쟁을 "기념"할 자격이 있는 민족이다.
노틀담성당으로 이동했다.
프랑스 식민지의 영향을 한 눈에 보여 주는 건축물이다. 성당 내부의 입구쪽에 건축물 축성에 물질적 기여를 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긴 명패가 줄지어 부착되어 있어 이채롭다. 아름다운 성당이지만 아무런 감흥이 없다. 베트남에 자리한 중세양식의 건축물에서 대체 무엇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네온으로 장식된 성모 마리아상.
왼쪽에 기부자 명패가 있다. 스테인드글래스는 아름답다.
노틀당성당 오른쪽에는 호치민 중앙우체국이 있다.
회랑의 중앙 높은 곳에 자리한 호치민의 대형사진으로 인해 유명한 곳이다. 베트남의 우체국은 단순히 우편물의 배송뿐만이 아니라 전화업무를 중요하게 취급한다. 공중전화가 많이 없는 호치민에서는 특히 국제전화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우체국을 찾아야 한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동네마다 하나꼴로 우체국이 있고 업무도 오후 늦게까지 본다고 하는데 우체국 내부에 들어가 보니 여행자와 현지인이 반반의 비율로 북적대고 있었다.
중앙우체국전경.. 베트남 아가씨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호치민(Ho Chi Minh.湖志明)사진
프랑스선의 견습요리사로 프랑스로 건너가 식민지 해방운동을 시작해 프랑스공산당원으로 활동하다 베트남으로 들어와서는 탁월한 게릴라전을 지도하여 대프랑스전을 승리로 이끌고 대미항전을 지도하여 승리의 주춧돌을 놓은 베트남 인민의 위대한 지도자.
그는 다산의 목민심서를 항상 곁에 두며 읽고 정글의 '호치민루트'로 유명한 천재적인 전술가이자 작은 나무책상과 책과 시계만을 남기고 숨을 거둔 청빈한 지도자였다.
"깨우치는 자"라는 뜻의 호치민은 베트남 인민들에게 "바크 호(호 아저씨)"라고 불리우며 아직도 집집마다 초상화를 걸어 놓을 정도로 베트남 인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중앙우체국 내부의 모습
우체국에 앉아 잠시 쉬다가 다이아몬드프라자로 이동.
한국의 대우자본이 지었다는 현대식 백화점이다. 벤탄시장과 비교해 보니 물건값이 엄청나게 비싸다. 마치 대구의 동아백화점에 온듯한 느낌이다. 손님은 많지 않았다. 이 정도의 소비를 할 수 있는 사이공시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제일 꼭대기층으로 올라 가니 우리나라 80년대 분위기의 오락실이 있고 그 옆으로는 세계 어디에 가도 만날 수 있는(북한에만 없다던가?) 햄버거 가게가 성업중이었다. 목마르고 덥고 다리도 아파서 음료수 한잔 하며 쉬어 가기로 했다.
바로 옆 식탁에는 출장온 듯한 백인남자가 엄청난 양의 빵과 음료수를 앞에 두고 식탐을 부리고 있었다.
샤일록형제를 연상케 하는 오른쪽의 두 백인 남자.
식탁에 가득 햄버거와 케밥, 음료수를 올려두고 먹고 있다.
케밥을 먹으며 호치민 시내지도를 보고 다음 행선지를 토론했다.
시간은 어느듯 해거름으로 가고 있고 마땅히 갈만한 곳도 없었다. 다이아몬드프라자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과학기술대학이 보여서 대학교 구경을 하기로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베트남의 늦은 오후 한적한 외곽지를 대학교를 찾아 천천히 걸어 갔다.
대학교는 방학중이라서 문을 열지 않았다. 대신에 "영빈관"이라는 한국식당과 대학교 부근의 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직선으로 끝까지 걸어 가니까 동.식물원이 나왔다. 마감했을 것 같아 큰 기대를 안했는데 아직도 개장중이어서 동물원으로 들어 갔다. 원숭이와 새 몇마리를 보고 한국과 흡사한 분재 식물원을 둘러 보고 나서 다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베트남 청년들이 한가롭게 족구(?)를 하고 있는 식물원은 우리를 빼고는 관람객이 거의 없었다.
저 휴지통은 보는 순간 유쾌했다.
동식물원을 설계한 기술자의 유모어가 펭귄모양속에 녹아들어 있다.
나는 정면인물사진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거부감이 있다.
여행을 마친 후 부동자세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전형적인 사진을 볼 때면 지워 버리고 싶어진다.
증명사진및 단체기념사진을 제외하고는 부동정면사진은 찍지말아야 한다.
화단을 감상하다가 부르는 소리에 돌아 보는 모습 - 이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동물원을 나와서 걸어온 길을 거꾸로 걷기 시작했다.
대학교 앞의 서점에 들러서 30여분 책구경을 하고 올 때 봐둔 "영빈관"이라는 한국식당에 들렀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오징어덮밥 -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일본 미소된장이 아닌 진짜 한국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는 감동적이었다. 파도 숭숭 쓸어 넣고 두부도 큼직하게 들어간 맛있는 된장찌개. 밥도 고봉으로 담아 주고 딸려 나온 밑반찬도 정갈했다. 나올 때 보니 한국인 여주인도 순박해 보였다. 여행 마치기 전에 다시 오리라 다짐하고 명함까지 한 장 얻었으나 결국 두번은 들리지 못했다.
저녁식사를 끝으로 시내도보여행을 마치고 숙소로 향했다.
가이드북에 나오는 낭만적인 밤문화를 체험하고 싶었으나 일단은 편안한 휴식이 우선이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 나서 구찌터널로 가야 한다.
아내와 아들녀석의 샌들.
깊은 잠에 빠진 아내와 아들옆에서 잠못 이루고 깨어 있었다.
관광이 아닌 "여행"의 참 의미를 저들은 얼마만큼 깨닫고 있을까?
오늘의 지출 : 신까페 예약(7/30 구찌터널, 7/31 메콩강, 8/1 므이네행 버스티켓, 8/2 호치민행 버스티켓) 66$. 아침식사 8$. 호텔 체크인(3박 * 28$) 84$. 하루 총 택시비 8$. 통일궁 입장료32,000vnd. 기념품 구입(뺏지11$, 판넬 3$) 4$. 음료수 1$. 점심식사 25$. 다이아몬드프라자 케밥,음료수 22,000vnd. 저녁식사 13$. 합계 212.6$. 지출 누계 318.6$.
7월 30일 - 여행 셋째날
구찌터널 여행 출발이 아침 8시 15분이라서 새벽같이 일어 나서 부산을 떨었다.
아침을 먹고 신카페앞에 늦지 않게 가야 하는 까닭이다. 다행히 숙소에서 택시로 이동하니 불과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아침을 먹기 위해 들린 데탐거리의 까페. 베트남인들은 아침5시면 오토바이를 몰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식당에 들린 아침 8시는 이들 개념으로는 '한낮'인 셈이다
신카페앞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면 갖가지 행상이 물건을 팔러 온다. 세계각국의 가이드북을 끈으로 묶어서 팔러 다니는 아줌마와 시계등을 취급하는 만물상 아저씨... 그리고 왼쪽의 꼬마처럼 '기브미 원달러'의 구걸 소년까지...
오믈렛과 해물볶음밥으로 아침을 때우고 이동노점상에게 치은이 손목시계를 하나 사고(8$을 깍아서 5$에 구입) 버스를 기다리니 행선지를 적지 않은 버스가 연신 들어 온다. 버스가 도착하면 행선지를 적은 코팅지를 버스 옆면에 붙이고 신카페 직원이 메가폰으로 안내를 하면 우~ 몰려가 타는 식이다.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기 위해서 경쟁이 치열하다. 서너번 정도 허탕을 친끝에 버스는 8시 25분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라는 멘트는 물론 없다. 한국의 대우버스를 개조한 비교적 무난한 버스.
가이드로 동승한 베트남 중년 아저씨는 회색머리와 사람좋은 웃음으로 인해 호치민을 연상시켰다. 출발후 약 20분동안 이어진 영어설명 - 오늘의 일정에 대한 - 을 들으며 함께 탄 한국여행객들이 열심히 번역을 하고 있다. 띄엄띄엄 이해한 설명은 카오다이사원에 들렀다가 구찌터널로 간다. 카오다이교는 이러이러한 특징이 있고 구찌터널은 이러한 것이다. 쉬는 시간과 출발시간을 지켜 주기를 바란다...이런 요지다. 재미 있는 것은 설명의 초반에는 아주 낮고 빠른 속도로 베트남어로 간단하게 설명하고(베트남 여행객도 몇명 있었다. '여러분은 설명 안해도 다 알겠지요? 설명은 생략합니다'..이렇게 말하는듯...) 곧 이어서 엄청나게 큰 소리로 "lady and gentleman..."을 이어 가는 것이었다. 대학교육을 받은듯한 냄새가 났다.
카오다이 사원에 도착했다.
유교,불교,도교등을 종합하여 창시했다는 카오다이교는 베트남에만 있는데 신도수는 약 200만명 정도. 내전 시기에 남베트남을 지지한 전력 덕분에 통일 베트남 정부와는 조금 껄끄럽다고 하나 구찌터널 투어의 필수코스로 편입되어 외화획득에 이바지하고 있으니 피장파장인 셈이다.
이들은 우주의 모든 것을 본다는 천안(天眼)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여기고 신성시하고 있다. 버스에 탄 투어참가자들은 그들이 정한 규칙대로 이동하고 입장해서 내부장식을 구경하고 종교 의식을 관람했다. 도교의 영향인듯한 관을 쓴 성직자들과 흰옷을 입은 신도들이 남녀를 구분하여 앉아서 차분하게 의식을 이어 갔다. 20여분간 2층의 합주단의 연주에 맞춘 단조로운 독경(?)을 듣다가 밖으로 나왔다.
카오다이교 사원의 바깥모습 천안(天眼)
여신도들 - 주로 50대이상 2층 회랑에서 의식을 관람하는 관광객들
식사후 구찌터널에 도착했다.
가이드는 일행을 조그마한 강당으로 몰아 넣더니 일단 터널을 소개하는 10분짜리 비디오를 감상시켰다. 이어서 대형 지도를 걸어 놓고 터널의 모양과 유래, 전쟁에 끼친 영향등을 아주 길게 설명했다. 터널을 만들기 위한 베트남 인민들의 피나는 노력과 지하터널의 기막힌 모양등을 설명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가득 베어 있었다.
우리는 A-4한장 크기라는 터널의 입구를 구경하고 적들을 잡기 위한 갖가지 함정과 나무에 설치했다는 부비트랩 그리고 부서진 미군탱크등을 구경했다. 그리고는 모두가 줄을 서서 터널체험을 시작했다. 관광객을 위해 내부를 넓혔다는 지하터널은 허리를 굽히고도 이동하기에 힘겨웠다. 지하 3층의 구조를 가지고 병원과 식당, 학교를 완비했다는 구지터널은 세계 전쟁사에서 특이한 작품으로 기록되어도 좋을 듯 싶다.
하지만 힘들게 떠난 가족 여행에서 굳이 구지터널을 코스에 넣은 것은 큰 실수인듯 싶다.
다른 관광객들은 신기해하며 연신 사진을 찍어 대고 있었지만 한국 관광객들은 조금 시큰둥한 표정이다. 전쟁을 쉬고 있는 나라의 여행객이 아닌가! 땅굴,폭탄,탱크... 여기가 밀림이라는 것만 빼고는 다를게 없는 것이다. 이날 저녁 신카페앞에 도착해서 쉬고 있으니 한국 여학생이 어디를 가면 좋겠느냐고 물어 와서 구찌터널은 빼는게 좋을 거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
가이드의 열정적인 그러나 지루했던 강의
일본 청년이 자원해서 입구에 들어 갔다 나오고 있다
몸집이 작은 아들녀석은 여유가 있고 아내는 거의 기어 다니고 있다
신카페앞으로 돌아 와서 우리는 수퍼마켓을 찾아서 두리번 거렸다.
한국의 신라면을 판다는 정보가 가이드북에 있었기 때문에 밤참으로 먹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 보아도 수퍼는 보이지 않았다. '베트남 사람들은 과자도 안 사먹나?' 궁시렁댈 때 한국 여학생 둘이 골목을 지나 간다(20대의 여행자를 보면 나는 정말 부럽다. 나의 20대를 생각해보니... 내 아들은 여행을 많이 시킬 것이라고 다시 다짐해 본다). 반가워서 수퍼가 어디 있냐고 물어 보니 바로 우리가 서 있는 건물 뒷편이란다.
신라면(컵라면) 두개와 한국과자 한봉지 그리고 물을 샀다. 이리저리 데탐거리를 구경하다가 빵을 좋아하는 아내가 바게뜨빵을 사자고 한다. 조그마한 손수레에서 빵을 파는데 바게뜨빵을 반으로 갈라서 속에다 고명을 넣어 주는데 그런대로 맛이 있다. 그리고 싸다.
오늘의 지출 : 아침(오믈렛,해물볶음밥2,우유) 8$. 택시비 2$. 바게뜨빵 1$. 치은 손목시계 5$. 휴게소 야자수 5000D. 점심(튀김롤,쌀국수,쥬스) 169,000D. 터널 입장료 15$. 치은 선물(친구줄 총알 장식품 5개) 13$. 저녁(튀김롤,돼지고기 덮밥,해물찌개,맥주,아이스크림) 8$. 신라면,과자,물 4$. 합계 60$. 지출 누계 378.6$.
7월 31일 - 여행 넷째날
오늘은 메콩강투어를 떠난다.
1박2일투어도 잠시 고려했지만 너무 무리일 것 같아서 당일 코스로 하기로 했다.
어제와는 달리 가이드가 시골 아저씨처럼 순박하게 생겼고 영어발음도 벵글리쉬하게 구사 하는 바람에 알아듣기가 훨씬 편하다. 오늘의 투어 참가자는 동양인이 압도적이다. 약 40명중에 한국인이 7~8명 일본인이 10여명 정도. 그래서 식당등에서도 서양인 참가자들이 외곽으로 빙빙 돈다.
캄보디아와 베트남을 가로 지른다는 메콩강
한 버스에서 내린 투어 참가자는 배도 함께 타야 한다
그러나 선착장에서 가이드가 사라지는 바람에 배를 바꿔 타는등의 소동이 있었다
나중에 보니 이 가이드가 다른 버스의 참가자를 안내하는 "두탕뛰기"를 한 거였다
투어는 메콩강 지류의 섬을 세개 방문하고 이 사이에 작은 나룻배를 타보는 순서로 진행되었는데
첫째섬에서는 점심을 먹고 둘째섬에서는 과일과 꿀대접과 민속공연을 관람하고 나룻배를 타고 이동하여 셋째섬에서 코코섯으로 캔디를 만드는 수공업을 구경하고 쇼핑하는 식이었다.
점심을 먹었던 첫째 섬
코끼리귀처럼 생긴 생선튀김을 별도로 주문한 식탁에는 여종업원이 붙어서서
가시를 발라 주는등의 친절을 베풀었다
오른발이 부러져 세발로 뛰어 다니는 식당 강아지를 발견한 치은이가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같은 개띠라서 개를 좋아 하는가?
두번째 섬, 일본 젊은이들과 자리를 함께 하다. 오른족 청년이 미남이다
전통민요를 불러 주었던 아오자이 아가씨. 앵콜에 두곡 더 부르다.
이 섬에서 사고가 생겼다.
커다란 뱀을 목에 두르고 사진 촬영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던 모양인데 상자에서 뱀을 꺼내던 가이드가 그만 손목을 크게 물려 버렸다. 독은 없다고 하지만 뱀 이빨이 깊이 파고 들어서 출혈이 심했다.
모두들 비명만 지르고 있는데 베트남인들이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 준다. 역시 동족이다.
가이드는 손을 붕대로 칭칭 감고도 의연하게 업무를 계속했다. 진정한 프로의 정신이다.
한 배에 7~8명씩. 약 10여분 정도 수로를 항해하다.
나룻배에서 올려다 본 하늘
셋째 섬은 코코넛속으로 캔디를 만들고 코코넛 껍질로 각종 수공품을 만드는 곳이자 이 날 투어의 종합 쇼핑센터였다. 모두들 화장실을 다녀오고 서비스로 주는 캔디를 먹고 물건들을 감상했다.
이 곳에서 지갑을 열지 않은 참가자는 단 한명도 없었다. 코코넛 캔디 네 통, 아오자이 목각인형 다섯개, 코코넛 껍질 가방 하나등 우리도 많이 구입했다.
얌전한 섬 아가씨들이 코코넛 캔디를 만들고 있다
이 목각제품들은 아마도 다른 곳에서 만들고 이 곳에 진열하는것 같았다
여행 나흘째.
아내와 아들은 깊이 잠들고 나는 티브이를 시청한다. 베트남 방송에는 유달리 퀴즈 프로그램이 많이 나온다. 재미있는 것은 중앙무대 양켠에 시상품을 진열해 놓고 진행하는데 한국 냉장고와 티브이가 아닌가! 대우자본이 일찍 진출한 것으로 아는데 상품들은 대게 삼성 아니면 엘지이다.
베트남 여대생이 승승장구 문제를 풀더니 냉장고를 상으로 받아 들고 감격에 겨워 한다. 어릴 적 시골 면대항 체육대회에서 한 동네가 우승하면 동네사람들에게 큰 냄비 하나씩을 주던게 생각났다. 돈을 걸고 퀴즈프로를 진행하지 않는게 보기 좋다.
새벽 3시까지 노먼베쑨을 읽다
오늘의 지출 : 택시비 2$. 아침(오믈렛2,게살스프,아니스크림,물) 4$.점심 2.5$. 코코넛섬에서 쇼핑(캔디 4통,목각인형5개,가방) 25$. 컵라면(저녁),과자 3$. 합계 31.5$. 지출 누계 410.1$.
8월 1일 - 여행 다섯째날
오늘은 짐을 다 챙겨 들고 므이네해변으로 가는 날이다.
우리나라의 어떤 소설가가 므이네의 고요함속에서 소설 한편을 썼다고 하던데...
해변이 거칠어서 수영은 못하지만 붉은 모래사막은 어서 올라 가고 싶다. sand dune - 내게는 이 곳이 베트남 여행의 키포인트인 것이다. 사막과 눈물의 샘, 어촌을 돌아보는 반나절 현지투어가 있다는 정보를 이미 알아 두었다. 오토바이도 빌릴수 있지만 가족이 세명이라 불가능하다.
므이네행 버스를 기다리며 아침을 먹는데 어떤 중년의 한국남성이 다가 왔다.
"제 조카가 어제 베트남 아가씨와 결혼해서 므이네로 신혼여행을 가는데 길안내등을 좀 부탁합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웬 한국 청년과 애띤 베트남 아가씨가 식사를 하고 있다.
그러겠다고 대답하고 이 신혼부부팀과 버스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한국청년은 부산에서 왔고 베트남 아가씨는 후에 근처의 산골 오지 마을 출신이었다. 21살의 베트남 아가씨. 차창에 기대어서 눈을 감고 있다. 한국청년은 베트남어를 전혀 못하고 베트남 처녀는 영어를 또 전혀 못한다. 의사 소통은 오직 손짓발짓이다.
내 옆좌석에는 다른 한국남성이 앉았다. 자녀 둘과 아내 그리고 어른을 모시고 여행하는 대가족이었다. 중년의 이 아저씨는 처음 말문을 트자마자 자신의 여행담과 항공권을 싸게 구하는 법등에 관해 강의를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45인승 버스에 한국 여행자가 16명 남짓이다. 엄청나다.
해외여행 초기의 패키지 바람과는 달리 시간이 갈수록 "여행자"들이 엄청난 속도로 늘어 나고 있는 것이다.
약 5시간을 달려서 므이네에 도착했다.
버스가 도착하는 곳에 위치한 <므이네 리조트>에 무작정 들어 가니 다행히 방이 있었다.
므이네 리조트! 이 지역을 가는 사람이 있으면 권하고 싶다. 호치민의 뭔가 삭막한 숙소에 비해서 리조트는 너무 아름답고 포근했다. 짐을 풀고 눈물의 샘과 모래사막을 둘러 보는 투어를 예약한 다음 리조트 중앙에 위치한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했다.
고맙게도 큰 타이어가 있어서 타고 놀았다(수영을 못해서...)
평화..평화..평화...
아름다운 창문..
부산-베트남 부부는 왼쪽에 우리는 오른쪽에...
저 방이 그립다
부산 새신랑이 영어회회책을 빌리러 왔길래 가이드북 뒷쪽에 붙어 있는 베트남 회화 부분을 찢어서 주었다. 그 편이 그나마 의사소통에 도움이 될 것이기에... 베트남 색시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침대에 누워만 있다고 한 걱정이다. 스물 하나에 이국의 남성과 결혼을 했으니 적응과 문화적 차이 극복에 시간이 걸릴 것이다. 모래사막 투어에는 같이 가자고 하니 그런다고 한다.
오후 두시가 조금 넘어서 10명으로 이루어진 투어팀이 꾸려지고 승합차에 올랐다. 한-베 국제 부부와 우리 식구 서울에서 혼자 여행 온 아주머니 그리고 서양인 남녀, 한국 남녀 한 쌍.. 베트남 색시는 여전히 말은 없지만 다행히 표정이 밝다.
눈물의 샘(pink stream). 미국의 캐년을 축소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