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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90년대 초중반 정도로 봄. 80년대 후반부터 한국 학원축구가 일본 학원축구한테 지는 빈도가 늘었는데 이전까지만해도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었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음. 그때 깨어있는 전문가들은 이제 일본이 한국 넘어서는건 시간문제라 했음 즉, 유소년-청소년대표-올림픽대표-국가대표 단계별로 지는 횟수가 계속 늘어나니까 축구 전문가 입장에선 더이상 일본은 물로 볼 상대가 아니고 조만간 한국을 넘어설 존재라고 생각한거임. 1992년 5월에 서울 잠실운동장에서 UAE에서 열리는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 동아시아지역 예선에 열렸었는데 당시 일본 청대는 예선 한달전부터 부산에 캠프를 차리고 동의대, 영남대, 울산대같은 영남 명문대학들이랑 연습경기까지 하면서 예선에 대비했음. 당시 영남대에겐 3-0으로 지고, 동의대에겐 2-1로 졌었는데 당시 연습경기를 봤던 한국 관계자들에 따르면 일본선수들이 한두살 많은 성인상대로 오히려 기회도 창출 해냈고 미드필더진에서의 패스플레이가 옛날의 일본이 아니었었다고 함. 당시 한국 청소년대표팀은 고교 최고의 명장이었던 박상인감독을 비롯해 고교 최고의 스트라이커 최용수, 그리고 우성용, 김대의, 조현두, 이기형등 훗날 K리그에서도 맹활약했던 스타플레이어들 주축이었고 1983년 멕시코대회 박종환사단이후 세계무대 4강에 도전할 황금세대로 평가 받음. 당시 일본 청대감독은 훗날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일본의 16강을 이끈 니시노 아키라였고 한국은 예상과 달리 경기내내 일본에게 무력하게 끌려다니며 서울에서 일본에게 1-0으로 지며 2위로 간신히 예선통과함 스코어를 떠나서 경기내용 자체가 일본에게 완전 밀려버렸고 특히, 미드필더진에서의 패스플레이에 제대로 당하며 3점차 이상으로 질수도 있었다고 함. 다음날 아침 스포츠 신문 헤드라인이 ‘뛰는 일본축구와 제자리걸음 한국축구’ 였을 정도 당시만해도 무슨 헛소리냐, 원래 인프라는 일본이 한국보다 나쁜적 없었다 했지만 1994년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때는 안정환 세대가 당시 일본의 브라질유학파 1세대였던 나카타 히데토시, 모리오카 류조, 마츠다 나오키가 버티던 일본한테 발려서 조별리그 탈락해서 1995년 카타르에서 열릴 세계대회도 못나가자 그제서야 한국에선 슬슬 일본축구 경계 시작함. 당시 MBC 해설위원이었던 신문선은
“우리가 현역 때엔 대표팀이든 프로팀이든 혹은 대학팀, 고교 팀, 중학교 팀, 초등학교 팀 가릴 것 없이 일본만 만나면 우스갯소리로 ‘목발 짚고 싸워도 쟤네는 이긴다’고 할 정도였어요. 그만큼 우리에게 있어서 일본축구는 그저 한국축구의 엉덩이만 쫓아오는 정도로 인식했죠.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초등학교 팀이, 중학교 팀이, 고등학교 팀이 일본에게 자꾸 진다는 소식이 들려오더니 몇 년 후에 대학교 팀과 프로팀들도 패하기 시작했고 지금 이 순간 A대표팀 포함 각급 연령별 대표팀들까지 일본축구에 위협을 당하게 된 겁니다.”
라고 논조. 96년 한국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 준결승에서도 한국이 경기내내 나카무라 슌스케를 주축으로 한 일본의 패스플레이엔 밀렸지만 특유의 피지컬 철퇴로 간신히 1-0으로 승리함. 당시 훗날 한일월드컵에서 트루시에의 오른팔이자 아테네올림픽에서 일본 올림픽대표팀을 맡기도 했던 일본 청대감독 야마모토 마사쿠니는 "오늘 준결승에서 운나쁘게 한국에게 졌지만 내년에 말레이시아에서 열릴 세계대회에선 우리가 더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다."라고자신 했었을 정도. 당시 한국청대는 70년대 한국축구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던 박이천이 감독이었고 이관우, 김남일, 양현정, 박진섭, 심재원, 정유석, 고종수등 진정한 황금세대가 나왔다고 언론에서 자화자찬 했었고 실제로 한국축구협회가 2002월드컵 대비해 제대로 황금세대 한번 만들어보려고 각종 해외전지훈련을 비롯해 애지중지 키우던 세대였음. 하지만 야마모토의 예언대로 1997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렸던 세계대회에서 한국은 쿠칭의 비극으로 끝난 반면, 일본은 나카무라 슌스케, 미야모토 츠네야스, 토다 카즈유키, 야나기사와 아츠시, 묘진 토모카즈등 훗날 프랑스의 명장 필립 트루시에의 지휘를 받으며 한일월드컵 16강, 아시안컵 우승의 주역이 되는 황금세대를 앞세워 사상 최초로 세계대회 8강진출까지 달성함. 이후로 한국축구는 일본한테 시원하게 이기는 경기가 드물어지고 이겨도 경기내용은 지고 반일국뽕로이드 철퇴로 이기는 경기가 많아짐 이당시 유소년세대들이 계속 일본에게 밀렸던 이유가 중요한게 J리그 출범이후 J리그 시스템하에서 키워온 유소년선수들과 브라질 유학파 세대들의 힘으로 슬슬 한국에게 앞서나가기 시작했고 그것이 결국 오늘날의 결과를 불러오는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는 것임. 보통 청소년선수들중 한두명만 국가대표에 올라와도 대박이라고 하는 판에 일본은 그 선수들이 단순히 청소년연령대에서 성과를 내는게 그친게 아니라 세계대회 16강, 8강, 준우승 주역 청소년선수들 주축 대부분이 국가대표팀으로 승급되서도 성과를 내었다는게 전문가들 입장에선 충분히 미래를 두려워 할만 했음. 대충 90년대 한국청대만 봐도 훗날 국가대표로 자리 잡은 선수는 많이 봐도 서너명 정도고 나머지는 거의 일반인으로 살아갔음. 번외로 만약 중국축구가 한국축구를 넘어서고 싶다면 국가대표 몇경기에서 이긴다고 넘어서는게 아니라 일본처럼 밑바닥부터 서서히 한국을 앞지른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함. 그 결과 일본은 아직도 라이벌의식을 가진 한국에겐 인정 못받을지라도 적어도 옛날처럼 한국이 일본을 물로 보지는 못하게 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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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90년후반아니였나요? 그 올대 도쿄원정에서 4대1로 털리던거 정말 끔찍했네요 ㅠ 94년 아시아청대 그게 예선 마지막경기로 기억함 제가 생방으로 봤었는데
패널티킥으로 1대0으로 져서 예선탈락 졸전은 펼쳤으나 발린거까진 아니였어요 일본이 그때 준우승했었고 95년 카타르 세계대회가서 8강갔던 기억이 나네요
97년대회때 일본이 최초로 8강이라고 적혀있는데, 최초는 95년대회입니다 물론 그때는 16개팀 참가라서 예선 통과하면 바로 8강이였죠
80년대까지는 한국이 일본 상대로 압도하는 경기를 했었는데 90년대 초중반부터 일본을 쉽게 이긴 경기가 별로 없었죠. 역전할 기미를 보인 건 90년 초중반이 맞고요. 그래도 90년대 중반까지는 일본이 개인 기량으로는 한국에 밀렸었는데 90년대 후반 나카타 같은 브라질 유학파 세대들이 등장하면서 일본이 달라졌죠.
94년 19세이하 아시아청소년선수권은 SBS 중계이고 지역민방 개국 전이어서 수도권 외에는 시청이 불가능했죠ㅠㅠ
확실히 방향성 잡고 투자해서 많이 올라오긴 했고 이런 부분만큼은 우리보다 잘한 부분도 있는거 같기는 한데 뭐랄까 그래도 아직까지는 우리만큼 일본 때려잡는법 아는 팀도 없는것도 사실인거 같기는 해요 ㅎ
정확하게 말하면 1992년부터임..그전까지는 일본축구가 성장한다는것을 느꼈어도 한국의 라이벌이라는 인식은 전혀 없었음,,..1992년 아시아청소년축구예선에서 지고 그해 8월달 다이너스티컵에서 지면서 서서히 일본축구를 경계하기 시작햇음,,,,그런데 그해 10월에 열린 아시아청소년축구최종예선에서는 한국이 일본을 이기고 일본을 세계대회 탈락시켰죠...1993년 일본아 j리그를 발촉시키면서 엄청 성장을 하고 1993년 월드컵최종예선에서는 일본에게 졌습니다...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1990년대 일본과 전력비교를 하면 연령별대회는 한국이 밀리기 시작했고 대표팀경기는 한국팀이 우세한경기를 펼쳤습니다,....정확하게 말하면 한국축구는 나이먹어가면서 어떻게 해야 일본축구를 이길수있는지 그방법을 안다고 볼수있죠...그러니까 경기내용에서는 지더라도 스코어상으로는 이기는 경기가 많아진겁니다..
사실 뭐 우월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60년대부터 유럽과 같은 10부리그제 도입 검토하고 크라머같은 외국인 지도자들 모셔와서 올림픽 동메달도 따고 해서 대중들에게 축구를 친밀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많이 했죠. 거기에 일본은 그 당시에도 생활체육중심이기에 유럽과 같은 선진 유스 시스템 도입하는데 축구계에서 아무 거부감이 없었죠. 우리나라는 워낙 선수들 재능자체가 뛰어나서 동유럽마냥 열악한 환경에서도 신기할 정도로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온거지 근데 그거 때문에 기존 선수들의 기득권이 공고해서 시스템 갈아엎는데 많은 반발과 그에 따른 진통이 있어서 일본보다는 시스템 상의 발전이 많이 느리죠.
솔직이 리그나 투자 같은것만 봐도 우리 국대가 이정도라도 해주는게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j리그 관중석 보면 정말 너무 부럽더라구요
93이 국대 기점 같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