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TV에 꼭 만나고 싶습니다라는 프로에 이제 30세 밖에 되지 않은 한 젋은이의 기구한 인생역정이 있습디다
학교갈 버스 차비가 없어 학교다닐 수 없을 정도의 어려운 형편에서도 꿋꿋하게 잘 사는 모습이 행복해 보입니다
버스타고 학교가는 것을 보니 중학교때 버스 타고 다니던 추억이 납니다
77년도 2월에 중학교 반배정을 한다고 할 때 부터 통학버스를 타게 된 것 같네요
그 당시 버스 차장도 있었고 버스는 앞문 뒷문도 있고 제일 뒷좌석 좌측에는 짐을 싣고 내리는 쪽문도 있는 그런 버스였습니다
지금은 앞문하나만 있는 버스가 많지만 그당시 버스는 창문을 제외하더라도 많았지요
돌이켜 본다면 세상사는 문은 점점 좁아지는 것이 그 이치인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당시 버스는 거의 1시간당 1대씩 오곤 하였는데 오전 8시 10분경인가 1대였지요
그 버스에는 지품초등선후배 모두 산청에서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선후배들이 모두 버스 한대에 다 타야하니 정말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의자에 앉으면 가방을 받아 무릎에 쌓으면 사람이 안보여 차비를 안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그 비좁은 데도 출입문이 3개나 있어 일단 타고 나면 어디로 내릴지 몰라 버스 안에서 차비를 받았잖아여
장날이라도 되면 더 했지요 그래도 장에 온 부모님을 만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고 신이 났던지!
비좁아 버스를 못타면 지각은 정해논 것이지요
난 아마 한달에 한번정도는 지각한 것 같은데
버스 놓치고 나면 우리동네 애들은 학교 안가고 진주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뺑소니 치기도 했습니다
난 학교가서 친구가 아파서 못왔다고 선생님에게 거짓말 하였습니다
아 그 지옥같았던 통학버스도 놓치거나 비좁아 못타거나 차비가 없으면 5킬로되는 길을 걸어다녔습니다
그런데 정곡 내정 묵곡 애들은 걸어다니기도 하였는데 자신 아래 동네 학생들이 산청까지 걸어서 학교가는 것을 보지 못햇다는 것입니다
하교길에 다시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 가면 같은 선후배 들이 모두 모여 있다가 버스 타고 집에 오곤 하였는데 머리속에만 남은 추억일뿐입니다
반배정 시험을 보고 오다가 주창장 허름한 판자집에서 파는 풀빵이란 것이 1개 10원하였는데 그렇게 맛있는 빵은 처음 먹어본 시절이었습니다
주차장부터 중학교까지도 1킬로미터나 되는 거리 정말 산청이 크다는 것도 그 당시는 진실로 알았습니다
차비가 없는 날이나 차가 안올 것으로 보이는 날은 내리 강을 따라 내려와서 묵곡을 지나 집에 오기도 하였지요
아니면 산청 남동에서 바로 부리 산길을 가로 질러 삐삐를 뽑아 먹거나 입구에서 산 과자부스러기를 먹기도 하였습니다
부리정도 오기도 전에 산청 건달이나 놈팽들이 가로막고, "먹을 것 있냐?" 하거나 "이리와서 담배피워보라"고 억지로 담배 피우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는 가끔 본의아니게 담배피워보기도 하고 "앉아 ! 서 !"도 몇번하였습니다
그래도 요즘처럼 돈을 내놔라거나 크게 폭행을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던 것 으로 기억됩니다
소위 학원폭력이라고 보기 어렵지요
하지만 요즘 귀가하는 애들을 잡고 야! 이리와바 ! 담배피워봐! 라고 하면 바로 학원 폭력이라고 신고들어 갈 겁니다
구름처럼 가버린 그 통학애환을 가끔 낙향하면 그냥 휙 지나가는 차량이 얄밉지만 정말 이 길을 그렇게 3년동안 다녔던 길인가 하는 꿈속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려!
다른 분들은 그렇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