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웨이 울트라의 세계(41)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E플랫 장조 Op.73 <황제>
가슴 뭉클하게 살아야한다 / 양광모
어제 걷던 거리를 오늘 다시 걷더라도 어제 만난 사람을 오늘 다시 만나더라도 어제 겪은 슬픔이 오늘 다시 찾아오더라도 가슴 뭉클하게 살아야 한다.
식은 커피를 마시거나 딱딱하게 굳은 찬밥을 먹을 때 살아온 일이 초라하거나 살아갈 일이 쓸쓸하게 느껴질 때 진부한 사랑에 빠졌거나 그보다 더 진부한 이별이 찾아왔을 때 가슴 더욱 뭉클하게 살아야 한다.
아침에 눈 떠 밤에 눈감을 때까지 바람에 꽃 피어 바람에 낙엽질 때까지 마지막 눈발 흩날릴 때까지 마지막 숨결 멈출 때까지 살아 있어 살아 있을 때까지 가슴 뭉클하게 살아야 한다.
살아 있다면 가슴 뭉클하게 살아 있다면 가슴 터지게 살아야 한다.
#울트라교향곡_성지순례_2023 #울트라_2023 #성지순례_2023 다시 <Do의 행복>을 만끽하며
<우중 동반주의 추억>
예년에 비해 참가자가 많지 않지만 뜻밖에도 십여년 전 원년 멤버도 참가하고 낯익은 주자들도 많아 더욱 반갑고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선을 박차고 나간다.
한강주로에 내려서며 얼마 전 접한 미드풋 주법으로 경쾌하게 달리는데 예상보다 이른 시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주로는 질척거린다. 오랜만에 만난 류광 후배와 우중 동반주를 시작한다. 나는 '동반 주자가 있건 없건 My Way를 고수하라'는 울트라 모토를 상기하며 이후 남한산성 유원지까지 멋진 동반주를 한다.
우중주도 쉽지 않지만 수리산 성지 CP 이후 빗길의 수리산길은 미끄럽고 위험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주로 찾기도 쉽지 않아 알바생을 많이 배출하는 곳이기도 하다. 달리기는 젬병이지만 이곳 주로에는 밝은 내가 앞장 서다 보니 이곳에선 My Way를 고수할 수 없다. 첫 참가자들은 나의 길 안내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비가 내려 질척거리는 국사봉 오름길 마치 미드풋으로 달리듯이 짧은 보폭으로 오르면서 앞서 간 주자들을 하나 둘씩 추월한다. 비록 가파른 오르막도 있지만 수리산길보다는 어렵지 않은 구간이다.
하우현 성당 CP의 대회 진행요원이 충분히 완주할 수 있다고 응원을 보내지만 나는 마음을 비우고 제한시간에 연연하지 않기로 마음을 정한 터였다. 하지만 일단 손골성지까지는 최선을 다해 보자고 다짐하며 국사봉을 오른 다음 뒤따르는 일행을 기다리지 않고 내처 달려 내려간다. . . 탄천구간은 오전시간대로 더위와의 싸움에 항상 힘겨웠던 구간이다. 아직도 간간히 비가 내리고 주로는 질척거리지만 선선한 날씨 덕에 달리기는 편했다. 그럼에도 끝없이 이어지는 둔치길은 역시 힘들었다.
나는 체력이 서서히 고갈되어 뒤쳐졌다가는 따라붙으며 탄천 IC 못미쳐 여수대교에 도착한다. 기대하지 않았던 임시 CP에서 에너지를 보급하고 시간을 확인해본다. 남은 시간은 1시간 45분 정도 아까 손골성지에서 나는 2시간 정도의 여유시간을 가지려고 했는데 역시 탄천구간은 만만치 않아 시간이 많이 소요된 것이다.
다음 구간은 성남시내길과 남한산성 오르는 길인데 만만찮은 코스로 제한시간이 촉박하다. 나는 다시 한번 두 주자에게 내 마음을 전했다. 나는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 내가 무슨 미련이 남아 있겠는가? 언제든지 먼저 치고 나가라고
역시 성남시내길은 횡단보도 지체시간도 많고 은근한 오르막은 페이스를 떨어뜨린다. 그래도 앞서가는 두 주자를 열심히 따라붙었는데 아뿔사 남한산성 유원지 횡단보도에서 꼬리가 잘리며 멀어져 가는 두 주자를 마음으로 배웅한다.
<Do의 행복을 만끽한다>
횡단보도에서 기다리는 사이 여러 사람이 물어온다. 어디서부터 언제부터 달려오는 거냐고 명동성당을 지난밤 8시에 출발하여 수리산과 청계산을 넘어 달려왔다고 하면 다들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그래. 어차피 제한시간내 주파는 어려울 테지만 이곳까지 달려온 내가 오히려 대견하지 않은가? 그리고 달리는 내내 살아있음을 온 몸으로 느끼며 나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이것이 바로 진정한 <Do의 행복>이리라.
예년이라면 봄의 향연으로 가득했을 남한산성 오르는 길이 이제는 안개에 쌓여 나는 몽롱한 기분으로 자연에 젖어들었다. 꿈속에서 깨어난 듯 이제는 남한산성이 보이는 곳에서 등산객에게 시간을 확인하니 1시 58분이란다.
그렇구나. 이제 레이스를 마칠 때가 되었구나. 스트레칭을 하고 천천히 걸어오르니 문득 2017년의 레이스가 떠올랐다. 당시 나는 탄천구간의 더위에 지쳐 이곳에서 중도포기를 선택하면서 '컷오프시킨 욕심'이라고 위안을 삼았었지.
남한산성 남문을 지나 천천히 달려내려가니 제한시간을 10여분 넘기고 있다. 처음 참가해본 101키로 하프 코스 어차피 이곳은 골인 아치도 레드카펫도 없는 남한산성 CP이니 골인 세리머니가 싱겁기 그지 없다.
멋쩍은 웃음으로 인증 샷을 남기며 돌아서는데 18시간 완주 기록증을 준다. 우중주의 인저리 타임 (injury time)을 감안한 것일까? 나는 완주증에 연연하지 않는 편이지만 대회 주최측의 배려가 고맙기도 하다.
<꼴찌라도 당당한 나는 울트라러너!!>
물론 가슴 벅찬 완주의 희열은 없다. 그럼에도 나는 해냈다는 대견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울트라러너가 되었다는 잔잔한 기쁨과 행복을 맛본다.
참으로 3년의 공백은 길었다. 내 몸은 이미 울트라러너로서의 기본을 잃어버리고 뒤뚱거렸다. 청남대 울트라 85키로에서 중도포기를 하면서도 나는 '거기까지의 울트라'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나는 이번 성지순례 울트라에서 우중주 속에서도 101키로를 주파하지 않았는가? 제한시간이 무슨 대수인가? 나는 다시 내 두 발로 그 거리를 주파한 것이다. 그만하면 됐다. 나는 또 다시 시간외완주라는 기록을 남겼지만 나는 이제 당당한 울트라러너로 돌아온 것이다.
<황제> 협주곡
나의 울트라 주제가는 베토벤 교향곡 7번이지만 이 곡 또한 내게 늘 힘을 주는 My Way 황제다.
관현악이 튜티로 으뜸화음, 버금딸림화음, 딸림7화음을 차례로 연주하면 피아노가 분산화음을 카덴차풍으로 응답한 다음 당당하고 장대한 제1주제가 연주되며 비로소 제시부가 시작되는데
나는 이 E플랫장조 으뜸화음이 울려퍼지면 닫혔던 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신천지로 들어서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곳에는 화성의 신비라는 토대위에 축조된 클래식 음악세계가 펼쳐진다. 마치 풀코스를 넘으면 울트라의 세계가 광활하게 펼쳐치듯이.....
내게 이 곡의 첫번째 매력포인트는 관현악으로 제시되는 활기 넘치며 당당한 제1주제이다. 그런데 이 주제는 단순한 제1주제가 아니라 전악장을 관통하여 종횡무진 내달리는 추진력을 갖고 있다.
Beethoven - "Emperor" Concerto - Rubinstein\Leinsdorf Boston SO (Vinyl)
추억의 사진들을 보노라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나의 족적이 남아 있는 울트라 주로 함께 달리고 함께 웃고 울던 울트라패밀리가 만들어 가는 역동적이면서도 각본없는 휴먼 드라마 울트라여행 이 멋진 여행에 동참할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이었던가? 이것이 바로 '울트라를 하는' <Do의 행복>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