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해남 3코스 역방향
산소마을-고천암방조제-가좌마을-대월산임도-명성마을-관두산임도-영터
20220706
1.오밀조밀한 해남과 진도 해안 풍경
서해랑길 4코스를 역방향으로 끝내고 쉴 틈도 없이 3코스를 역방향으로 탐방한다. 어제 한 코스, 오늘 2코스를 계속하여 탐방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즐겁지만 몹시도 힘겹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면서 몸은 더욱 지친다. 그렇지만 탐방을 멋지게 이어가서 제한 시간 안에 마치도록 하자.
산소마을 앞에서 안산길을 따라가다가 오른쪽 안산길 지선으로 들어간다. 안산길은 산소항 뒤쪽의 산 이름이 안산이기 때문에 안산길이라 몀명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산소마을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하다가 그대로 지나쳐 걷자니 허기가 진다. 그렇지만 한자리 일대의 간척농지의 푸르른 농작물과 멀리 중앙에서 흰구름이 일어나는 두륜산은 길손의 몸을 일으켜 세운다. 태양광발전소 집광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그 뒤에 왕새우양식장이 있는 곳에서 서해바다 건너편으로 진도의 첨찰산이 신호를 보낸다. 첨찰산에 올라 이곳을 조망하던 지난 시절이 많이 흘러갔다. 그리운 것은 언제나 아득함으로 밀려들어와 가슴을 뒤흔든다.
그곳에서 조금 더 나아가 안산길 61-97 집에서 여주인에게 승락을 받아 처마 아래 놓인 탁자에서 점심을 먹었다. 마음씨 고운 여주인이 커피대접까지 해 주셔서 길손의 마음이 풍요해졌다. 감사하는 답례를 오직 인사치레만 하고 헤어져 미안한 마음이 지금도 있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니 힘이 솟는다. 속도를 붙여 서해랑길을 잇는다.
이제부터는 복잡한 방조제길이 이어진다. 섬 3개를 이어 방조제 4개를 건넌다. 유수지에서는 갈대들이 푸른 잎을 넘실거리며 무성히 생장하고 간척농지에서는 작물들이 자라는 소리들이 들려오는 듯하다. 섬 3개라고 하지만 정확하게 징의도를 포함하면 4개의 섬을 잇는다. 서해랑길은 징의도로 들어가지 않고 징의도 입구에서 간척농지로 내려가 고천암자연생태공원으로 향한다. 그렇지만 징의도는 육지와 육지를 잇는 방조제 2개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짧은 방조제에 의해 한자리 신정마을과, 고천암방조제에 의해 화산면 율동리와 이어지며 드넓은 간척농지를 형성했다. 맑은 옷을 입은 징의도 앞 바다 갯벌은 여름의 햇볕 때문인지 거북등껍질처럼 딱딱하게 갈라져 있는 것 같다. 징의도 위쪽으로 이어지는 바닷길이 명량해협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그 바닷길을 이렇게 직접 걸으며 보니 가슴이 무너지며 무너지며 다시 일어선다. 이순신 장군의 판옥선이 해남 어란진에서 출발하여징의도 왼쪽 뒤 진도의 첨찰산을 바라보며 벽파진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징의도 앞 작은 섬으로 이어지는 방조제 옆에는 왕새우양식장이 조성되어 있는데, 방조제가 생겨나기 전에는 이곳에 염전이 흥성했다고 한다. 그 염전시설물과 건물들이 폐허처럼 버려져 있는데 고천암로 버스정류장 이름은 여전히 부광염전이다. 부광염전 버스정류장 앞에서 드넓은 간척농지로 내려가서 고천암자연생태공원으로 향한다. 여전히 두륜산은 흰구름과 놀면서 길손에게 눈길을 준다.
고천암자연생태공원을 스쳐지났다. 관심을 두면 제한 시간에 늦어지고, 관심을 버리면 탐방이 비어버리는 것 같다. 햇볕의 열기와 맨 꽁지라는 압박감은 관심과 흥미를 버리며 스쳐지나간다. 고천암방조제로 나갔다. 남파랑길에서 고흥만방조제와 보성방조제를 건넜다. 대단히 긴 방조제다. 고천암방조제는 그들에 미치지 못하지만 오늘 걸어온 방조제들보다는 몇 배가 길며 고흥과 보성의 방조제들과는 달리 철새들의 낙원 고천암호를 형성해 놓았다는 것이 자연생태의 아름다움이다. 해남천과 삼산천의 하구는 고천암방조제에 의해 갇혀 황산면, 해남읍, 화산면에 걸쳐 드넓은 담수호가 조성되어 겨울철이면 철새들, 그중에서도 가창오리떼의 군무가 환상적이라고 한다.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다. 고천암방조제 중간쯤에서 황산면 한자리에서 화산면 율동리로 넘어간다. 고천암호 동쪽에서 두륜산이 흰구름과 함께 춤을 춘다. 춤추는 두륜산이 끊임없이 흘려보내는 물이 삼산천으로 흘러들어 고천암호에서 출렁거리는가? 고천암호에는 두륜산의 그림자가 비추고 철새들이 춤을 추는 것은 두륜산과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일까? 고천암호에 비치는 두륜산과 흰구름 그리고 겨울철새들의 모습을 상상한다.
고천암방조제를 건너 화산면 가좌리 고갯길을 올랐다. 고개에서 내려보는 가좌리 일대는 옹기종기한 작은 봉우리들이 보호하고 있는 것 같다. 들녘으로 내려가 농지를 가로질러 가좌리 마을로 올라갔다. 지칠 대로 지친 것인지 물이 부족해서인지 갑작스레 피로가 몰려온다. 주인이 보이는 집으로 들어가 양해를 구했다. 얼음을 넣어준 냉수를 마시니 피로가 사라진다. 1년 전 이곳에 집을 사서 남양주에 가족을 두고 홀로 내려와 살고 있다고 한다. 김 양식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페트병에 물을 채워 고마움을 전하고 작별했다. 체격이 단단한 50대로 보이는 분이 베풀어준 따스한 마음을 길손 또한 누군가에게 베풀 기회가 있을 것이다.
가좌리마을을 빙 돌아서 해안으로 나갔다. 중도와 증도, 2개의 섬이 방조제 앞에 있다. 지금부터는 2개의 산자락 임도를 따라가는 길이다. 대월산 자락길과 관두산 자락길, 이 길에서 오늘 걸어온 탐방길이 눈에 선하게 조망되고, 명량해협으로 이어지는 해남과 진도 사이의 바닷길이 훤하게 보인다. 건너편 진도에는 멀리 명량해협의 진도대교와 망금산 위의 녹진전망대 진도타워, 하얀빛의 진도기상대 건물이 있는 첨찰산, 진도 꼬리에서 뾰족하게 솟은 여귀산이 증표가 되어 위치를 잡아준다. 해남에서는 역시 작은 거인, 옥매광산의 상처를 드러내며 옥빛으로 반짝이는 옥매산이 기준점이 되어 해남해안의 위치를 밝혀 준다. 탐방길이 확실하게 잡힌다. 바다에서는 해남과 진도 사이에 있는 해남군 화산면 삼마리에 속하는 삼마도가 멋지게 탐방길을 빛내준다. 상마도, 중마도, 하마도, 그리고 상마도와 중마도 사이의 안도, 네 개의 섬이 길손의 성에 차지 않는 마음을 채워준다.
관두산 자락길 명성-관동 임도 끝자락에서는 관동방조제, 관두포, 평호리 해안의 구성마을, 다박포선착장과 삼마도선착장이 가슴을 뜨겁게 한다. 그리고 관동방조제 뒤쪽으로 해남 남동쪽을 지배하는 달마산이 길게 이어져 명화를 그려낸다. 그 왼쪽에 오늘 중요한 지표가 되어준 두륜산이 여전히 흰구름과 희롱하며 길손에게 눈짓을 보낸다.
2.탐방 과정
왼쪽 전봇대 기둥에 서해랑길 4코스 시작점 표지, 오른쪽에 서해랑길 안내도가 있다.
서해랑길은 안산길을 따라 한자마을 방향으로 가다가 서해랑길 이정목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이어간다.
오른쪽 뒤에 황산면 한자리 산소항이 있다. 서해랑길은 이와 반대 방향 한자마을 쪽으로 안산길을 따라간다.
안산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고천암자연생태공원 방향으로 이어간다.
중앙 왼쪽에 산소항, 오른쪽에 동그마한 별도, 그 뒤에 진도의 최고봉 첨찰산이 보인다. 하얀 진도기상대 건물이 증표이다.
안산길 지선을 따라 진행하는데 정면에 두륜산이 우뚝하다. 송신탑이 증표이다.
왼쪽 전봇대 뒤쪽에 옥매광산 흔적이 보이는 옥매산이 분명히 보인다.
간척농지에 농작물들이 햇볕을 받으며 자라고 있다. 정면 중앙의 두륜산이 길손의 길잡이가 된다.
오른쪽길은 왕새우양식장 가는 길이다.
태양광발전소 집광판 뒤에 왕새우양식장이 있다. 중앙 뒤에 진도의 여귀산, 오른쪽 뒤에 첨찰산이 분명히 확인된다.
오른쪽에 보이는 마을은 한자리 신정마을인 듯.
저 집 나무 뒤 처마 아래에 있는 탁자에서 친절한 아주머니 덕분에 점심을 편안히 먹을 수 있었다.
왼쪽 뒤에 흰구름을 머리에 두른 두륜산이 길손의 마음을 포근하게 한다.
서해랑길은 오른쪽 방조제로 이어진다.
여기서부터 방조제가 이어져 오른쪽 건너편의 징의도까지 계속된다.
간척공사가 있기 전 황산면 한자리 지역은 다섯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섬의 형태가 모두 새끼를 막 낳고 대해로 첫발을 디디는 자라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본래 두 개의 섬으로 돼 있던 징의도는 1961년 신정마을과 징의마을이 제방으로 연결되었고, 1974년 큰 제방으로 작은 섬과 큰 섬이 연결되었다. 한쪽 끝은 발근포(돈이 많이 난다는 곳. 지금의 고천암)가 화산면과 연결되면서 완전히 육지가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점심을 먹은 안산길 61-97 주택이 정면에 보인다. 왼쪽 옆 작은 섬으로 이어진 방조제가 끝나고 두 번째 방조제로 들어왔다.
작은 섬 2개가 방조제 2개로 이어져 있다. 서해랑길은 2번째 섬에서 오른쪽 해안으로 이어지지 않고 왼쪽으로 내려갔다가 세 번째 방조제로 올라가 방조제길로 이어진다.
두 번째 섬에서 세 번째 방조제길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맨 왼쪽에 진도의 여귀산, 중앙에 첨찰산, 진도 해안을 따라 울돌목(명량해협)이 오른쪽 끝에 있을 것이다.
방조제는 세 번째 섬을 오른쪽 해안으로 돌아나가 네 번째 방조제길로 이어진다. 장앙 뒤에 두륜산이 흰구름을 쓰고 있다.
방조제 뒤 숲으로 들어가 해안을 따라 네 번째 방조제길로 나간다.
작은 섬 2개가 보인다. 황산면 한자리 육지-섬1-섬2로 이어진 방조제 3개를 걸어오고 있다.
왼쪽에 징의도, 중앙에 준도, 오른쪽에 두 번째 섬, 중앙 뒤에 첨찰산, 모두가 분명하게 확인된다.
세 번째 방조제길에서 세 번째 섬으로 건너왔다. 해안에서 두 번째 섬에서 이어지는 세 번째 방조제를 다시 보았다.
왼쪽은 예전에 염전이었을 것인데 지금은 왕새우양식장이 되었다.
왼쪽에 징의도, 중앙 오른쪽에 준도, 그 오른쪽 뒤에 산소항, 맨 오른쪽 섬 2개가 방조제로 이어져 있다.
준도 오른쪽의 한자리(閑子里) 육지-섬1-섬2-섬3(맨 오른쪽)으로 이어진 방조제길을 따라왔다.
왼쪽에 태양광발전소 집광판이 설치되어 있고, 앞에는 예전 염전 사무실이었던 같다.
고천암로 부광염전 버스정류장 옆이다. 서해랑길은 고천암로를 가로질러 들녘의 농로로 내려간다.
한자리 육지와 징의도가 방조제로 이어져 있다.
고천암로에서 들녘으로 내려와 농로를 따라왔다.
왼쪽 뒤에 두륜산이 보이고, 서해랑길은 앞쪽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산모롱이를 돌아나간다.
오른쪽으로 빙 돌아 중앙 왼쪽에 보이는 고천암자연생태공원 건물 뒤편으로 들어간다.
고천암방조제에 의해 간척된 농지에 벼들이 푸르게 자라고 있다. 왼쪽 뒤에 두륜산이 머리에 흰구름을 두르고 있다.
고천암호에 출현하는 조류를 테마로 새집을 제공할 수 있는 솟대를 조성한 길이다.
가창오리 조형물이 조성되어 있다.
고천암방조제(庫千巖防潮堤)는 전라남도 해남군 황산면 한자리와 화산면 율동리를 이어준다. 1963년 12월 5일 해남 고천암 지구의 대규모 공유수면 매립권이 개인에게 부여되면서 바다를 메우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1964년 해남 지역 농민들의 항구적 자립과 농경지 확장에 따른 양곡 증산을 목적으로 보건사회부와 미국 민간구호단체인 CARE의 공동 지원 아래 간척공사가 시작되었다. 1985년 2월 6일 농업진흥공사는 해남군 황산면 한자리에서 화산면 율동리를 연결하는 방조제 공사를 시작하였다.
1985년 9월 1일에 착공하여 1988년 10월 30일 완공되었으며, 방조제의 길이는 1,874m이다. 방조제 완공으로 인해 총저수량 1만 7,103㎥의 고천암호가 생겼다. 고천암방조제 조성으로 인해 황산면 한자리와 화산면 율동리 사이의 이동시간이 크게 단축되었다. 또 고천암방조제 내 간척지에서 본격적으로 쌀농사를 시작하면서 철새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겨울에 들어서면 전세계 가창오리의 95%가 고천암호로 모여들며, 황새, 저어새 등의 천연기념물들도 이곳에서 월동을 한다. 특히 한꺼번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가창오리떼의 군무인 고천후조(庫千候鳥)는 해남 8경 중 으뜸으로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고천암방조제 건설로 인해 삼산천과 해남천 하구에 형성된,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과 황산면, 화산면에 이르는 담수호.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과 황산면, 화산면에 이르는 철새도래지.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철새 이동 경로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철새들의 번식지, 월동지,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하고 있다. 강, 하구, 호수, 갯벌 등 다양한 환경의 습지가 전국에 분포하고 있어 다양한 수조류(水鳥類)의 서식지로서도 이용되고 있다. 조류 54종[미확인종 제외], 즉 수금류 33종, 맹금류 5종, 명금류 및 기타 조류 16종이 발견되었다. 해남군에 있는 고천암호에서는 청둥오리, 고방오리, 흰죽지, 큰기러기, 쇠기러기 뿐만 아니라 고니[천연기념물 제201호], 재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3호], 저어새[천연기념물 제205호], 독수리[천연기념물 제243호] 등과 같이 희귀한 새들도 종종 눈에 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 황새[천연기념물 제199호]와 먹황새[천연기념물 제200호]가 발견되어 학계의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고천암호를 찾아오는 대표적인 철새인 가창오리는 국제 보호종으로 국제자연보존연맹(IUCN) 적색목록에 등재되어 있다. 가창오리는 맹금류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군집을 이루어서 날아다니며, 몸길이는 49㎝ 정도이다. 매년 고천암 철새도래지에서는 가창오리가 관찰되고 있다. 고천암호는 매년 겨울 수십만 마리의 철새들이 찾아오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철새 도래지이다. 매년 1월~2월 초 사이에 전 세계 가창오리 중 95%가 중국~일본 간, 시베리아, 알래스카~호주, 뉴질랜드 간 이동 통로의 중간 기착지로 고천암호를 찾아온다. 가창오리는 대부분 고천암호나 금강 하구, 서산 일대에서 지낸다. 가창오리는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 간월호에 9월 중순에 찾아와 10월 말이나 11월 초까지 머물고, 서해안의 금강 하구를 거쳐 해남으로 이동하여 월동을 많이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갑문다리를 건너 오른쪽 방조제로 올라가 방조제길로 이어간다.
고천암방조제(庫千巖防潮堤)는 해남군 황산면 한자리와 화산면 율동리를 이어주는 방조제로, 1985년 9월 1일에 착공하여 1988년 10월 30일 완공되었으며, 방조제의 길이는 1,874m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왼쪽은 화산면 가좌리, 바다에 뜬 섬은 상마도(중앙)와 안도, 오른쪽 건너편에 뾰족한 산은 진도의 여귀산이라 가늠한다.
맑은 옷 같은 섬인 ‘징의도(澄衣島)’는 방조제에 의하여 이제 육지가 되었다. 앞에 보이는 고천암 선착장은 예전에는 돈이 많이 난다는 뜻의 발근포라고 불렸는데 지금은 고천암(庫千巖) 포구라고 불린다. 선착장 방파제에 있는 넓은 바위를 고천암(庫千巖), 고천바위라고 부르는데 밀물 때는 바닷물에 잠기지만 썰물 때는 평평한 너럭바위가 되어 놀이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황산면 한자리에서 화산면 율동리로 넘어간다. 서해랑길은 방조제 끝에서 고개를 넘어 화산면 가좌리 마을로 이어진다.
고천암 방조제 조성에 의해 총저수량 1만 7,103㎥의 해남군 해남읍과 황산면, 화산면에 이르는 담수호 고천암호가 형성되어 철새도래지가 생겨났다. 겨울에 들어서면 전세계 가창오리의 95%가 고천암호로 모여들며, 황새, 저어새 등의 천연기념물들도 이곳에서 월동을 한다. 특히 한꺼번에 하늘로 날아오르는 가창오리떼의 군무인 고천후조(庫千候鳥)는 해남 8경 중 으뜸으로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뜨거운 여름날 한 낚시꾼이 갯벌낚시를 즐기고 있다. 무슨 고기를 잡을까? 짱뚱어일까?
왼쪽에 여귀산, 중앙에 첨찰산, 오른쪽 끝에 벽파진과 명량해협(울돌목)을 확인한다.
화산면(花山面) 율동리(栗洞里) 고천암방조제 남단에서 오른쪽 화산면 가좌리 고천암로를 따라 고갯길을 오른다.
고천암방조제 북단 왼쪽에 황산면 징의리(징의도) 고천암 포구가 보인다.
서해랑길은 중앙의 주택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가좌리 마을로 올라간다.
가좌리(可座里)는 본래 해남군 화이면 지역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지동리, 입암리와 무학리, 율동리, 관동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해남군 화산면 가좌리로 개설되었다. 현재 가좌마을, 무학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가좌리는 간척으로 농토가 생기기 전에는 어업이 중심이었던 마을이었다. 현재 지형을 보면 서쪽은 바다를 접하고 있고, 간척으로 인하여 크고 작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다. 마을의 중심에는 간척으로 넓은 농토가 펼쳐져 있어 쌀이 생산되고 있고, 가좌리회관 동쪽으로 저수지가 있어 농업용수로 사용되고 있다. 무학마을은 진도와 관두산이 인접하여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종려나무일까? 무성한 것으로 봐서는 키가 크고 잎이 무성한 것으로 야자수 같다. 가좌리마을회관은 직진, 서해랑길은 오른쪽으로 꺾어 진행한다.
서해랑길 3코스 시작점까지 8.5km가 남았다.
서해랑길은 이 길을 따라가다가 가좌길 마을로 올라가서 마을을 빙 돌아 해안으로 나가서 왼쪽에 보이는 대월산 임도를 따라 관동리 명성마을로 내려간다.
서해랑길은 가좌길을 따라서 마을을 한 바퀴 돌아 해안으로 내려간다. "가좌(可座)마을은 기와를 굽는 터였다고 하여 ‘와등’, ‘왓등’, ‘와초’라고 불리었다가 가좌로 명칭이 변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카카오맵에서는 이름이 없고, 네이버지도에서는 중도라고 적혀 있다.
중앙 뒤에 송신탑이 솟은 두륜산 산줄기가 분명히 확인된다. 두륜산은 서해랑길의 표지가 되어준다.
서해랑길은 태양광발전시설 옆길을 따라 왼쪽 대월산 임도로 올라간다.
중도는 썰물 때 육지와 이어진다. 뒤쪽의 섬은 증도인 듯. 서해랑길은 대월산 자락 가좌-명성 임도를 따라 이어간다.
화산면 가좌리에서 관동리로 넘어왔다. 뒤돌아서서 가좌-명성 임도를 따라 명성마을 방향으로 이어간다.
진도 해안에서 왼쪽 첨찰산, 오른쪽 뒤에 녹진전망대 진도타워, 그 뒤에 진도대교가 분명히 가늠된다. 그 오른쪽에 해남의 전라우수영이 있다. 벽파진에서 명량해협으로 이어지는 바닷길 폭이 좁아지는 것이 보인다.
본선 거리 총 1.98km, 가좌에서 780m 지점이다.
앞 나무 뒤에 옥매산이 분명히 확인된다. 삼호마을, 삼지원, 옥동마을, 옥동포구가 분명히 가늠된다. 중앙에 명량해협(울돌목)과 진도대교, 그 왼쪽에 우뚝 솟은 진도 녹진전망대 진도탸워, 그 왼쪽 아래 쑥 들어간 곳이 벽파진이라고 가늠한다.
오른쪽 섬이 상마도, 그 아래가 안도, 맨 왼쪽이 중마도인 듯. 상마도 뒤쪽 건너편의 뾰족한 산은 진도의 여귀산이다.
왼쪽 길 위에 관동리(關東里) 명성마을회관이 있다. 서해랑길은 바로 아래 명성길을 따라 해안 방향으로 이어진다.
왼쪽은 가좌리 무학마을, 위쪽은 관동리 명성마을, 오른쪽 아래는 명성마을 해안으로 이어진다. 서해랑길은 명성마을 해안 방향으로 이어지는 명성길을 따라간다.
위쪽으로는 화산면 가좌리 무학마을회관 방향이다.
명성마을은 관동마을에서 분리되어 새롭게 형성된 마을이라고 한다. 왼쪽 위에 명성마을회관이 있다. 서해랑길은 오른쪽으로 빙 돌아서 해안으로 나간다.
서해랑길은 앞의 (주)푸른농협 건물 앞에서 왼쪽으로 나가 오른쪽 관두산 자락길로 이어진다.
왼쪽에 관동리 명성마을회관이 있다. 그리고 관두산 자락에 봉우사 절이, 그 너머에 관동마을이 있을 것이다.
절임배추공장 (주)푸른농업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가다가 오른쪽으로 올라가 관두산 자락길을 오른쪽으로 따라간다.
왼쪽 큰 섬은 증도, 그 오른쪽 작은 섬은 중도인 듯. 증도 왼쪽 뒤에 작은 거인 옥매산이 분명히 보인다. 서해랑길 탐방을 옥매산을 중심하여 오른쪽으로 빙 돌아서 이곳 남쪽으로 내려왔다. 중앙 왼쪽에 명량해협(울돌목) 위에 놓인 진도대교, 그 왼쪽에 망금산의 녹진전망대 진도타워가 선명하게 보인다.
대월산 자락 가좌-명성 임도를 내려와서 명성길을 따라와 관두산 자락길로 올라왔다.
중앙에서 왼쪽 끝에 명량해협 위의 진도대교, 그 왼쪽에 녹진전망대 진도타워가 분명히 확인된다. 중앙 뒤에 나즈막하게 둥그스름한 산은 옥매광산이 있는 옥매산, 그 앞을 거쳐 오늘 걸어온 서해랑길이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것이 가늠된다.
오른쪽부터 상마도(上馬島), 안도, 중마도, 하마도인 듯. 오른쪽 끝에 진도의 여귀산이 뾰족하게 솟아 있다.
삼마리(三馬里)는 상마도, 중마도, 하마도의 3마도의 뜻을 따서 삼마리라 하였다. 상마도(上馬島)는 말 형국인 상마도·중마도·하마도 세 섬 중 가장 위쪽에 있어 웃마도리, 상마리도, 상마리 등으로 불리었다. 제주도에서 말을 싣고 오다가 풍랑이 심하면 상마도에서 머물렀다 하여 마유도(馬留島)로도 불렸다. 하마도는 삼마도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어서 아랫머리, 하마, 하마리도, 하마도리 등으로 불렸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본선 총 거리 3.17km 중 870m 지점을 통과한다.
풍혈(風穴)[air-hole]은 산림 내 분포하는 애추, 암괴원, 암괴류 등 사면에서 여름철에는 찬공기가 나오고 겨울에는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구멍이나 바위틈[바람구멍 또는 바람굴]을 말하며, 국지적인 특이 기후환경을 형성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 ‘밀양 얼음골’을 비롯하여 총 25개소의 풍혈이 존재한다. 해남군 화산면 관동리 관두산 자락에 있는 관두산 풍혈은 화구 중심에 발달한 전단 파쇄대(破碎帶)[단층을 따라 길쭉한 띠 모양으로 암석이 부스러진 부분]에 있으며 지하 온천과 관련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관두산은 중생대 백악기층 지질로 지체 구조는 영동-광주 함몰대에 속하며 반상복운모 화강암으로 구성되었다.
용굴동이라고도 불리던 관두산 풍혈은 숲이 우거지고 엄나무가 많아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웠다가 관두량과 관두산 봉수대 복원을 위하여 등산로를 내면서 발견되었다. 관두산 풍혈은 관두산 정상에서 해안 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작은 봉우리에 있다. 화산 분화구 모양의 봉우리 둘레 암벽 사이로 1m 정도 들어가면 높이 60㎝, 왼쪽은 2m, 오른쪽으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굴이 나온다. 주민에 따르면 한겨울에도 눈이 쌓이지 않고, 용굴을 중심으로 사방의 바위 틈과 굴에서 김이 솟아 오른다고 한다.
1872년에 편찬된 『호남읍지』에 따르면 “관두산 아래는 제주를 왕래하는 배가 머물고 정상에 봉수가 있으며, 그 아래로 굴이 있는데 찬바람이 일어 낙엽이 펄펄 날리며 그 깊이와 끝을 알 수 없다.”라는 기록이 있다. 1925년의 『해남군지』에는 “석굴에서 바람이 나오기 때문에 풍혈이라 말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관두산 풍혈에는 용굴을 중심으로 11곳의 풍혈[바람구멍]이 있다. 용굴 앞에 형성된 와지(窪地)[움푹 패어 웅덩이가 된 땅]는 풍화작용으로 동굴이 침하하면서 폭 10m, 길이 30m, 높이 5~8m 정도의 함몰 지형이 형성된 것이다. 용굴로부터 와지로 연중 17~20℃ 정도의 바람이 나온다. 관두산 풍혈은 지하로 유입된 물이 지하의 열원에 의하여 데워져 수증기가 되고, 이 수증기가 관두산을 이루는 암석 틈새를 통하여 더운 바람으로 올라오는 현상으로 추정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해안 위쪽이 관두포라고 생각한다. 중앙 뒤에 흰구름 피어나는 곳은 두륜산이다.
관두포(舘頭浦)는 관두량, 관두, 관머리라고도 칭하며 조선시대 제주를 왕래하는 관리들이 이용했던 포구이다. 관리들의 편의를 위하여 관을 설치하였다. 인근에는 봉화, 관터, 영터(營터)가 있었다고 전한다. 관두포 관터는 화산면 관동리 944-2 쌍봉수산 인근이며, 선창은 동쪽 갯고랑이다. 관두포 부근의 관두산에는 관두산 봉화대가 있었으며 한겨울에도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관두산 풍혈이 있다. 관두포 관터 서쪽에는 영터가 있는데 수군이 주둔하면서 지켰던 곳이라 한다. 관두포 주변 영터에서는 조개무지와 청자, 백자 파편이 출토된다. 관두포의 정확한 위치는 한국전쟁 후 방조제가 들어서고 간척공사가 진행되어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명칭 유래] 관머리산, 즉 관두산에서 관두포 명칭이 유래하였다.
관두포는 고려 때 송과의 국제 무역항이었다. 1074년 고려 문종은 송과 국교를 정상화하기 위해 김양일을 송에 보냈다. 김양일이 송으로 출발한 항구가 해남의 관두량이었다. 이후 관두량은 고려와 송 사이의 관무역에서 중심이 되었다. 1127년 송이 멸망하여 관무역이 끊어진 후에는 중국과의 사무역이 이어진다. 조선시대에 중국과의 사무역이 줄어들고 제주도 교역이 활발해졌다. 1429년(세종 11) 고득종(高得宗)의 건의로 관두포에 제주를 드나들던 사람들을 위한 숙박관소인 해진성관(海珍城館)이 개설되었다. 해진성관은 제주와 육지와의 출장 관리의 숙박, 제주 공마(貢馬)에 대한 사료 보급 등을 위해 설치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관동방조제 남단 왼쪽에 평호리 좌일리마을이고, 오른쪽 방파제 뒤에 화산만호조선소, 맨 오른쪽 끝에 평호리 구성마을이 모두 보인다. 그리고 정면 중앙 뒤에 해남의 명품 달마산이 길에 이여져 있다.
해남군 화산면 관동리와 평호리 사이에 이어진 방조제이다. 관동방조제는 화산면 방조제라고도 부른다. 1967년 관동방조제가 완공되었다. 관동방조제는 총길이 780m이다. 2000년 제12호 태풍 프라피룬으로 인해 일부 유실되기도 하여 보강공사를 하였다. 2014년 8월 31일에는 자정을 전후하여 화산면 관동리 관동방조제로 바닷물이 유입되어 간척지 논 207㏊ 중 100㏊ 가량이 침수됐다. 밀물 때 닫혀 있어야 할 배수갑문이 수 시간 이상 열려 있어 바닷물이 논으로 유입되어 염분으로 인한 농민들의 피해가 심각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오른쪽 맨 끝에 삼마도선착장, 그 왼쪽에 다박포선착장, 중앙 왼쪽 해안 마을은 구성마을, 방조제 끝 오른쪽 방파제 뒤에 화산만호조선소, 방조제 끝 왼쪽 마을은 좌일리마을이다.
왼쪽 삼마도 선착장 오른쪽에 하마도, 그 오른쪽에 중마도, 그 오른쪽에 안도, 맨 오른쪽에 상마도가 살짝 보인다. 아래 해안을 관두포(舘頭浦)라고 볼 수도 있을 듯.
2015년 5월에 해남군에서 군비 3억 3600만 원을 투입해 도선 삼마호[14t]를 진수하고 화산면 구성리 선착장에서 취항식을 가졌다. 삼마도 주민들이 육지를 왕래하는 데 편리함을 더해 주고 있다. 2014년에는 전국 최초·최대 신재생 에너지 자립섬이 구축되었다. 중마도 일원에 태양광발전 120㎾와 풍력발전 30㎾ 등 150㎾의 발전시설과 발전된 전기를 저장하는 1200㎾h 에너지 저장장치[ESS]가 구축되었다. 이로 인하여 기존 삼마도 자가 발전시설의 디젤발전은 보조 발전이 되고,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을 주발전원으로 하는 새로운 전력 공급 체계가 구축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방조제 왼쪽에 평호리 좌일마을, 방조제 끝 오른쪽 뒤의 산 아래에 구성마을, 그 오른쪽이 다박포선착장, 오른쪽 맨 끝에 삼마도선착장이라고 가늠한다. 그 오른쪽에 하마도가 해남반도와 마주보고 있다.
관두산(館頭山)[177m]은 해남군 화산면 해안가에 있으며, 조선시대에 봉수대가 있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봉수가 있다. 두륜산에서 뻗어 나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 봉수 조에 의하면 관두산의 봉수는 서쪽으로는 진도의 여귀산(女貴山) 봉수로 신호를 보내고, 남쪽으로는 영암의 마산(麻山) 봉수의 신호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 대에 지름 8m의 원형 석축으로 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 6월 29일 해남군의 향토유적 제29호로 지정되었다
관두산 아래의 좁은 해협이 관두량(館頭梁)이었다. 관두량은 고려시대 중국을 왕래하던 포구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제주도를 오가는 관문이었다. 그래서 이 지역을 관두리라 하였으며, 별칭으로 관동리, 관머리로 불렀다. 관두량에서 관두산(館頭山)의 이름이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관두산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경상계 만길리층을 하고 있으며, 응회암, 래피리응회암, 응회질 사암, 알코스사암 및 이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관두산에는 관두산 풍혈과 샘이 있다. 해남 관두산 풍혈 및 샘은 2015년 산림청에서 ‘산림 문화 자산’으로 지정하였다. 관두산 풍혈에는 용굴을 중심으로 11곳의 크고 작은 풍혈이 있는데, 겨울철에도 17~20℃ 온도를 유지하며, 풍혈 주위에 고사리와 이끼류가 자라는 특징이 있다. 관두산 풍혈에서 겨울에 더운 바람이 나오는 것은 지하로 유입된 물이 지하의 열원에 의해 데워져 수증기가 되고, 이 수증기가 관두산을 이루는 암석의 틈새를 통해 더운 바람이 올라오는 현상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화산면 삼마리(三馬里)의 삼마도를 다시 바라본다. 맨 왼쪽부터 하마도, 중마도, 안도, 상마도라 이르는 듯.
이 근처에 병사들이 주둔하던 진영(陣營)이 있었나 보다. 그 진영이 사라져서 영터라고 불리게 된 것 같다.
관두포(舘頭浦)는 관두량, 관두, 관머리라고도 칭하며 조선시대 제주를 왕래하는 관리들이 이용했던 포구이다. 관리들의 편의를 위하여 관을 설치하였다. 인근에는 봉화, 관터, 영터(營터)가 있었다고 전한다. 관두포 관터는 화산면 관동리 944-2 쌍봉수산 인근이며, 선창은 동쪽 갯고랑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