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아브람의 아름다운 선택!
*설교: 김인삼 집사
*말씀: 창 13:1~13
저는 오늘 "아브람의 아름다운 선택!"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선택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 하면 우리가 현재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성경에 보면 올바른 선택을 하여 축복의 삶을 산 사람도 있고 잘못 선택을 하여 불행을 초래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선택을 잘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은 대표적인 사람은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후기브온의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렸을 때 꿈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열왕 3:5) 그때, 솔로몬은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도록 지혜를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솔로몬은 장수와 부귀와 지혜의 축복 중 지혜를 선택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크게 기뻐하시고 지혜뿐만 아니라 부와 영광을 함께 주셨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합당한 선택을 하여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람이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선택을 잘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아브람이 어떤 선택을 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았는지 알아봄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아브람은 화목을 선택했습니다.
아브람이 애굽에서 돌아 왔을 때 아브람에게는 가축과 은과 금이 많았습니다. 사실 아브람의 재물은 정당한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내 사래로 인해 바로에게서 받은 재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을 따라 나온 롯에게도 육축이 많았습니다. 사람들은 물질이 적을 때는 서로 돕고 화목하게 잘 지냅니다. 그러나 물질이 많아지면 자연히 분쟁이 생기고 다툼이 일어납니다. 아브람과 롯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땅은 좁고 소유가 많아지니까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자주 다투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과 롯이 동거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물질은 사람이 이 세상을 편리하게 살아가는데 분명 도움을 주지만 동시에 분쟁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날 재산문제로 부모와 자식간에 그리고 형제끼리 싸움을 하는 경우를 신문지상에서 종종 봅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형제가 화목하지 못하고 싸움만 하면 절대 행복이 없습니다. 가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과 화목입니다. 교회도 사랑을 외치면서 주안에서 한형제요 자매라고 말하면서 교인끼리 서로 미워하고 싸움을 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세상사람들에게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분쟁의 상황에서 아브람은 '누가 잘했다, 잘못했다'고 비난하면서 잘잘못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아브람은 롯에게 서로가 한 친족임을 인식시키며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고 제안합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창 13:8)고 말합니다. 아브람은 화목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권리주장보다 먼저 화해를 청했습니다. 화목하지 못하고 서로 다투면 둘 다 불행해 집니다.
깊은 산속 조그마한 연못에 붕어 두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두마리 붕어들은 서로를 늘 미워하며 자주 다투웠습니다. "저 놈만 없으면 내가 이 연못을 독차지할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하며 서로 미워하며 지냈습니다. 어느 날 붕어 두 마리가 심한 싸움을 하게 되어 서로에게 큰 상처를 입혔습니다. 며칠 후 더 큰 상처를 입은 붕어는 죽고 말았습니다. 싸움에서 이긴 붕어는 너무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제는 내 세상이다. 이 연못에서 혼자서 마음껏 지낼 수 있다." 그러나 죽은 붕어의 몸이 썩으면서 물에서 악취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연못의 물이 오염되어 결국 혼자 남은 붕어도 죽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화목하지 못하면 모두가 불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화평하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Make every effort to live in peace with all men and to be holy; without holiness no one will see the Lord.)"(히 12:14) 다투나면 일시적으로 기분은 좋을지 모르지만 기쁨이 사라지고 마음도 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도도 잘 되질 않고 기도의 응답도 없습니다. 화목을 깨뜨려가면서 얻는 것은 아무리 많이 있어도 축복이 아닙니다. 우리도 분쟁이 생겼을 때 아브람같이 화평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먼저 화해를 청하는용기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둘째, 아브람은 사랑의 언어를 선택했습니다.
아브람은 롯과 분쟁이 생겼을 때 아름다운 언어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롯과 한 친족임을 강조합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창 13:8)고 말합니다. "우리는 한 친족“이라는 말은 영어로 We are brothers. 즉, 우리는 한 형제”라는 말입니다.
분쟁이 생길 때 잘잘못을 따지면 오히려 사이가 더 나빠집니다. 정의감에 불타서 잘잘못을 따지다 보면 감정만 상하게 되고 문제는 더 커지게 됩니다. 옳고 그른 것을 아무리 따져보아야 서로에 상처만 남습니다. 아브람은 누가 맞았다, 틀렸다는 말보다 "우리는 한 골육이라"고 부드럽게 말합니다. 우리도 가정에서나 교회에서 서로 갈등이 생길 때 우리는 주 안에서 한 형제와 자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말을 하며 살아갑니다. 말은 정말 중요합니다. 말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으로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우리가 무심코 한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도 하고 큰 상처와 고통이 주기도 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과 악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옛날 어느 임금이 신하를 둘을 불러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과 가장 악한 것을 구해오라고 했습니다. 두 신하는 가장 선한 것과 가장 악한 것을 찾아 온 세상을 돌아 다녀습니다. 얼마 후에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과 가장 악한 것을 구해 임금 앞에 왔습니다. 여러분, 그들이 가져온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의 혀였습니다. 우리가 혀로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혀로 칭찬의 말을 하기도 하고 남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도 혀요, 가장 악한 것도 혀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The tongue has the power of life and death, and those who love it will eat its fruit.)”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혀를 잘 사용하면 복이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큰 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혀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 한마디에 힘을 얻을 수도 있고 낙담할 수도 있습니다. 말한마디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신문에 보니 중국에서 한 초등학생이 장난삼아 한 말로 인해 10명의 초등학생이 죽음을 당했다고 합니다. 중국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마치고 교실에서 나오는데 한 학생이 “귀신이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소리에 학생들이 놀라 아래층으로 급히 달려 내려오다 넘어지면서 10명이 사망했고 25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무심결에 던진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에디슨이라고 합니다. 에디슨은 저능아라고 초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했습니다. 에디슨이 달걀을 품고 엉뚱한 실험을 하고 엉뚱한 일을 자꾸 하자 담임선생님은 에디슨 어머니를 불렀습니다. “에디슨 어머니. 에디슨은 학교에서 너무나 엉뚱한 일을 많이 하고 또 엉뚱한 질문을 해서 수업 분위기도 해치고 너무나 저능아라서 학교에서 도저히 가르칠 수 없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에디슨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 아이는 저능아가 아닙니다. 에디슨은 호기심이 매우 많은 아이입니다. 제가 집에서 가르치겠습니다.”
그리고 에디슨에게 말했습니다. “에디슨아! 너는 창조적 두뇌가 뛰어난 아이다. 너는 앞으로 훌륭한 발명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늘 격려해 주었습니다. 에디슨은 어머니 격려의 말씀에 힘과 용기를 얻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위대한 발명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만약에 에디슨 어머니가 “이 바보 같은 녀석아. 너는 왜 그렇게 엉뚱한 짓을 많이 해서 엄마 속을 썩이고 애를 먹이냐?. 너 같은 놈은 꼴도 보기 싫다”고 에디슨에 말했다면 발명왕 에디슨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끊없는 격려와 자신의 불굴의 의지와 열정으로 위대한 발명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언어는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한 말도 중요하지만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은 더욱 중요합니다. 늘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안된다. 나는 못한다. 나는 망했다. 나는 끝장이다."라는 부정적이고 원망적인 말을 늘 하다보면 우리의 삶은 부정적이 되고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자신있다. 해내고야 말겠다. 나는 사랑받고 있다. 나는 앞으로 큰 인물이 될 사람이다"등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을 늘 사용하다 보면 우리의 인생이 긍정적이게 되고 행복과 성공과 기쁨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말 한마디가 성공과 행복의 씨가 될 수 있고 실패와 불행의 씨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잠언 16장 24절은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우리도 아브람과 같이 아름다운 언어를 선택하고 사용해야 하겠습니다.
셋째, 아브람은 양보의 미덕을 선택했습니다.
아브람은 양보의 미덕을 베프는 너그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좋은 땅을 선택하라 롯에게 우선 선택권을 줍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고 말합니다. 아브람은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줍니다. 이것은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사람들은 이때 아브람이 자식도 없고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양보하기가 쉬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작은 일을 양보하기 쉽지만 정말 큰일들은 양보한다는 것은 결코 쉽질 않습니다.
이때, 롯은 요단 지역에서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함을 보고 소돔과 고모라 방향의 땅을 선택합니다. 롯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풍요로움만을 바라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실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때는 요단지역은 물이 넉넉하여 여호와의 동산같고 애굽땅과 같이 좋게 보였지만 그의 선택은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전 재산을 잃어버리고 그의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고, 딸과 관계를 가져 그의 후손을 낳는 불행한 일을 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눈을 들어 바라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랐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기준은 세상적인 성공과 물질의 풍요로움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람이 화목을 선택하고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하고 양보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축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창세기 13장 14~15절에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날마다 크고 작은 선택의 문제를 만남니다. 이 때 우리는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고 하나님께 지혜를 받아 선택하고 행동해야 하겠습니다. 선택은 마치 씨를 심는 것과 같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아브람이 어떤 선택을 해서 복의 사람이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아브람은 화목을 선택했습니다. 둘째, 아름다운 언어를 선택했습니다. 셋째, 양보를 선택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나님의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선택을 잘하여 아브람처럼 하나님의 복을 받고 이 세상에서도 승리하고 성공하고 행복하고 기쁨이 가득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