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4]
말 씀 말라기 1장 10-14절
하나님께 사랑을 받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 소유의 많고 적음에 따라 신앙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에 관심을 갖고 인도하시는 은혜는 돈으로도 세상의 권력으로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택해주시고 불러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이용하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이 절대로 기만할 수 없는 거룩한 분이며, 인간이 가지고 누리는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분입니다.
이 사실을 온전히 깨닫는 사람은 절대로 교만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유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의 힘으로 생각했고, 고난과 가난은 마치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당한 것처럼 불평하는 불신앙을 보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고 조롱하며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길 이 백성을 위해서 기도하거나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지 말고 내게 간구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간구할지라도 듣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의 악행을 보신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말라는 엄청난 말씀을 하시며 보호의 울타리를 거두시자 이스라엘은 포로로 끌려간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며 하나님을 세상의 신들 중 하나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백성들의 속죄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이 우상을 숭배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타락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죄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방민족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평안하게 살았던 그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죄는 이방민족의 공격을 자초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포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배웠다면 귀환했을 때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믿음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포로전과 똑 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크게 진노하시며 그들이 제사를 드리지 못하도록 성전 문을 닫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지었을지라도 아버지께 간절히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면 그 죄를 기억도 하지 않고 용서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성전에 들어오는 제사장을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닫아버릴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은 곧 저주이며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더러운 제물을 하나님께 바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며, 백성들의 속죄를 위해서 제사를 드릴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요한복음 4장 23-24절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 즉 예배는 성령과 진리로 드리는 참된 예배입니다.
교인들이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는 절대로 받지 않으시지만 믿음으로 6일간의 삶을 살아내고 성령의 인도하심과 진리의 말씀안에서 거룩한 자녀가 드리는 예배는 기뻐 받으십니다.
성도가 온전한 예배를 실패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흐르지 않는 성도의 삶은 책망을 받고 있는 제사장들처럼 자기 마음대로 판단하고 계획하는 인간적인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저주하고 심판하실 수 있는 왕이십니다.
이방민족은 하나님 이름을 들으면 크게 두려워하는데 도리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무시한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무리 하늘의 은혜를 부어주고 싶어도 받을 그릇이 없는 백성을 보시며 안타까워하고 계십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진리와 성령으로 예배 드리는 자를 찾고 계시므로 여러분은 진리와 성령으로 정직하고 거룩한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거룩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6일의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6일을 성도로 살아내지 않고 거짓말과 도둑질과 간음과 세상을 우상처럼 숭배한다면 하나님의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 설교를 듣는 이 시간 죄가 생각나시거든 회개하시고 하나님께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들을 때 마음에 찔림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돌이키라는 말씀이므로 바로 돌이켜야 합니다.
13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운고 하며 코 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 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법대로 봉헌물을 올바로 드리는 것은 번거롭다고 하며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점도 흠도 없는 제물을 드리는 것이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때문에 그들은 훔친 물건과 병든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제사장들은 아마도 백성들이 제사를 위해서 병든 짐승을 가지고 와도 돌려보내지 않고 무조건 제사를 드린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모두가 영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제사장이나 백성 모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이나 백성들은 건강한 짐승이 없어서 병든 것을 드린 것이 아니라 건강한 짐승이 아까워서 하나님께 드리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신앙은 지금 교인들에게도 나타나는데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 것을 감사하고, 세상을 살아가도록 도와주신 것이 감사해서 헌금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복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 드리고 있습니다.
세상의 복을 위해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게 되면 모든 문제를 자기가 받을 축복과 연결하게 됩니다.
헌금을 드렸는데 왜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고난을 당하며, 병마에 시달려야 하느냐고 하나님을 향해 불만을 토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믿음은 하나님께 드릴 것을 모두 드리고도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헌금을 드린 사람의 마음과 믿음을 보시기 때문에 정직하고 온전한 믿음위에서 드려야 할 것입니다.
지금 변질된 교회의 큰 문제는 백성들이 병든 짐승을 가지고 와도 상관치 않고 제사를 지냈던 타락한 제사장처럼 하나님께 헌금을 하면 세상의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성도들에게 가르치는 목회자들입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향해 진정과 신령으로 예배를 드리지 않고, 거룩한 믿음의 삶을 살지 않아도 헌금만 많이 하면 복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은 더러운 떡을 만왕의 왕께 드리는 제사장들과 같은 것입니다.
거룩한 믿음이 없이 바치는 봉헌물은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 제사장과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제물을 가져온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바치는 봉헌물을 받지 않기 위해서 성전문을 닫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토록 고통스러워 하시는데도 모두가 썩었기 때문에 눈먼 희생제물을 바치지 말라고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썩은 세상에서 함께 썩는 것은 쉽지만 썩은 세상 가운데 썩지 않기 위해서 믿음을 지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물이 고인 호수처럼 썩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썩은 물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교회를 향해 썩은 물에서 살겠다고 허우적거리는 영혼들을 구원의 방주로 끌어올려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성도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써 어둠 가운데 있는 영혼들을 향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성전 문을 닫으라고 하셨던 말씀대로 이제는 예수그리스도께서 문이 되어 주셨기 때문에 타락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절대로 그 문을 통과 할 수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거듭난 성도만이 하나님께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참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뵈올 수 없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병든 제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철저히 멸시하는 행동이며, 인간의 정성을 드리면서 축복을 원하는 외식적인 신앙은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불신자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과 사후를 주장하시는 왕이라는 믿음이 없으면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죄에 빠지게 될 것이므로 구원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17-18절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시지 않고 항상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아무리 자신이 믿음이 좋은 것 같이 보여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말씀만 선포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성도는 말씀으로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너무 잘 살아서 부족한 것이 없기 때문에 나는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랑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교회의 영적 상태를 보실 때 전쟁으로 인해 파괴를 당한 것처럼 영적으로 하나님을 섬길 힘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영적으로 혼란스럽고 더러워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품을 수 없는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이 영적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외식적인 신앙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 행위를 아는데 너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아서 역겨우므로 토하여 내치겠다며 진노하셨습니다.
그러나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다시 회개하고 돌이켜서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것은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케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서 보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는 말씀은 욥이 연단을 받은 후에 정금과 같은 믿음을 가진 것처럼 세상의 부요함으로 믿음을 치장하지 말고 진정한 믿음으로 삶을 살아내어서 그 안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라는 말씀입니다.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는 말씀은 인간의 의로 만든 더러운 옷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의인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옷을 입어 근본이 악한 인간의 죄를 사함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으면서도 모든 공로를 자신에게 돌립니다.
내가 정성을 드렸기 때문에, 내가 기도를 했기 때문에, 내가 더 열심히 했기 때문에 등등 많은 이유를 붙여서 자신을 드러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은 모든 공을 자신에게 돌리려는 열등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언제는 분란이 난 교회를 본 적이 있는데 교회를 향해 내가 지금까지 이 교회에 헌금한 돈을 내 놓으라고 말하는 성도도 보았습니다.
잘잘못이 누구에게 있든 헌금은 사람에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것과 같으므로 아주 잘못된 신앙 관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신앙을 역겨워 토해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어린 신앙을 버리지 못하면 영적으로 보지 못하는 맹인과 같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영적으로 볼 수 있는 안약을 하나님께 사서 자신의 신앙을 정확하게 보면서 성숙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바리새인과 같은 신앙을 왜 버려야 하는가 하면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더 많은 축복을 주고 싶어도 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자꾸 인정하고 높이게 되면 경쟁하는 마음이 생기고, 상대를 비판하고 판단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라오디게아교회를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타락한 제사장들과 정욕에 매인 우리들이 회복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신앙을 회복하는 것이며,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성령의 충만함으로 사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성도들이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려야 합니다.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신 그리스도의 뜻대로 삶을 살아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덧입으며 축복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험한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제사장들을 책망하는 말라기선지자의 말을 새겨듣고 그런 죄의 자리에서 돌이키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