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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60년대 청계천과 현재의 청계천
차차차 추천 0 조회 28 08.05.07 15:27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청계천변 모습


서울역사박물관(관장:김우림)은 금년 2월에
일본인 노무라 모토유키씨(野村基之, 1931년생, 日本 山梨縣 거주)로부터
60년대 청계천 하류 사진자료, 스크랩북, 한국지도 등
826건을 일본 현지에서 기증을 받아왔다고 합니다.  

 

노무라씨는 목사이자 기독교 사회운동가로서
1968년 한국을 첫 방문한 이래 70년대 중반까지
당시 답십리를 중심으로 청계천 하류 판자촌의
가난한 주민들의 구호 활동을 벌였던 고마운 분이셨습니다.  

 

노무라씨는 이 자료들을 서독 등에
구호를 위한 원조를 요청하는데 사용하기도 했답니다.  

 

현재 국내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은 60-70년대의
청계천 하류의 모습과 판자촌 거주민들의 삶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져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이 자료는 청계천의 역사 연구 뿐만 아니라
도시사, 도시 빈민 등에 대한 연구 자료로서도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사진에 등장하는 지역은 현재 성동구 마장동·
사근동·용답동·송정동 일대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간절한 기도


기도


답십리 판자촌


비닐 움막집


살곶이다리부근에서 만난소녀


송정동전농배수펌프장(철거전)


송정동제방.jpg


우물가의 모녀


웃고있는 동심


이발소가 있는 판자촌 풍경


재활용 우산 만들기


철교아래 토굴


청계천 하류 송정동 판자촌 전경.jpg


청계천 활빈교회


쳔변의 아이들


판자촌


판자촌


판자촌


판자촌


판자촌 골목 풍경


판자촌 길가 풍경


판잣집 벽지 만들기


한양대 부근 판자촌 전경


한양대살곶이다리부근전경


한양대살곶이다리부근전경
 
오늘의 청계천

광통교



(대한제국시기. 사진위) 천변 호안석축은 잘 쌓여져 있고 군데군데 풀이 무성하다.
석축 위 천변길에는 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바쁘게 오가고 있는데,
양반 여인네들이 장옷을 입고 얼굴만 내놓은 채 걷고 있다.
청계천 남쪽을 촬영한 듯 길가 벽에는 창이 보이지 않는다.

(1900년경, ⓒ고종호 '京城名所' 사진엽서) 종로방향에서 광통교를 바라보고 찍은 사진이다.
광통교는 남대문로와 종로를 연결하는 길목으로 남대문에서 종로로 가려면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만 했다.
따라서 이곳은 시전 상업의 중심지였으며 도성에서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곳 중의 하나였다.
사진 중앙에는 광통교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한 난간석이 잘 보인다.



천변 빨래터



(1904년, ⓒ서희경) 청계천 상류는 물이 얕고 맑아 빨래를 하려는 주변의 아낙네들이 모여들었다.')


지게꾼



(대한제국시기, ⓒ서문당) 청계천을 따라 나있는 길이 좁은 듯 개천을 보호하기 위한 축대 밑에 과일가게가 있고, 그 옆에 곰방대를 쥐고 있는 중년 남성이 쭈그리고 앉아 있다.
그리고 지게에 무언가를 담고 가는 지게꾼이 보인다.
수표교 부근은 서울의 중심부였기 때문에 날품팔이 지게꾼들이 일이 걸릴까 하고 모여들곤 하였다. 당시 시골살림이 어려워 서울로 이사 온 사람들은 남정네는 지게꾼으로 아낙네는 행상으로 나서기가 십상이었다. 


수표와 수표교



(일제강점기, ⓒ국사편찬위원회) 수표교 남쪽을 바라본 사진이다.
수표교 남편에는 양 길가에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좌측 길모퉁이에 담배를 팔았던 연초煙草(タバコ)가게가 눈에 들어오고,
그 양옆에 약국과 중앙상회지점 간판이 보인다.
그리고 건너편에는 탕반, 탁주, 소주 등을 한자와 한글로 쓴 술집 간판이 보인다.

(1950년대말~1960년대초, ⓒ기성철) 어느 한가한 날 수표교를 찍은 사진이다.
수표교 난간 위에는 한 사람이 올라 앉아있는데, 사진소장자 본인이라고 한다.
그 뒤로는 사람들이 오가고 있고, 담뱃가게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 속 수표교에는 난간석 1조가 없는데, 소장자의 증언에 의하면,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인한 상처라고 한다. 

청계천 주변천



(대한제국시기, 삼청동천, ⓒ김종영(朝鮮風俗-井戶ト水汲夫사진엽서))
나무 뒤로 경복궁 건춘문이 가려져 있고, 천변 우물가에 물장수가 물지게를 지고 있다.

(1927년, 금청교, ⓒ고종호) 금청교는 청계천에 처음 놓인 돌다리로 청계천 상류 부근에
체부동과 통의동, 적선동, 내자동으로 통하는 십자로에 있었다.

 

판자촌



광복과 한국전쟁 후 서울로 피난 온 피난민들은 청계천변을 따라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청계천변 판잣집은 불결과 빈곤의 상징이었다. 
큰 비가 쏟아지면 집을 떠받치고 있던 나무기둥이 불어난 하천에 쓸려가 버렸다.
이로 인해 집 전체가 무너지기도 했다.
한편, 판자촌 거주민들이 버린 생활하수가 그대로 하천으로 배출되어 청계천은 심한 악취가 진동하고 각종 쓰레기로 몸살을 앓았다.


염색공장



(1960년대말, ⓒ원종철) 한 아저씨가 염색한 천을 말리기 위해 대나무로 만든 대 위에 널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모든 물자가 부족했다.
그나마 미군부대 등 군대에서 흘러나온 군용 물자만이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군복을 염색해서 많이 입었다.

당시 청계천변에는 군복을 염색하는 업체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방출된 하수는 그대로 청계천으로 흘러들어 갔다.
이 때문에 청계천 하류의 물빛은 언제나 짙은 회색을 띄고 있었다고 한다.


복개 전 풍경



(1965년, ⓒ국가기록원) 오간수문 밖 하류 청계 6가 청계천변의 당시 일상 풍경이다.
열 지어 늘어서 있는 콘크리트 기둥 사이에서 뛰놀며 물놀이 하던 아이들은 지친 듯 늘어놓은 콘크리트 파일 위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아이들은 과연 곧 닥쳐올 청계천 판자촌의 운명, 청계천이 복개될 것을 알고 있었을까.


평화시장



(1965년, ⓒ국가기록원) 평화시장은 청계천이 오간수문까지 복개되면서 함께 문을 열었다.
시장 이름은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월남한 피난민들이 세웠기 때문에 평화를 기리는 실향민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이 시장은 1960년대 한국 수출산업의 선구적 역할을 톡톡히 담당했다.
그러나 또한 당시 노동자들의 한숨과 분노가 스며 있었으니 1970년 겨울,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한 곳도 이 시장 앞이었다.

가두노점



(1965년, 서울특별시) 복개된 후 청계천로를 찍은 사진으로 중앙에 보이는 가두노점이 인상적이다.
요즘 길가에 보이는 가판대와는 많이 다르지만 크기나 기본적인 모습은 거의 흡사해 보인다.
한편 이곳이 건널목인 듯, 한 사람이 차도로 내딛고 있다.

최신 건축물, 세운상가



(1968년, ⓒ서울특별시) 세운상가는 건축가 김수근씨가 최신 건축사조를 끌어들여 만든 최첨단 건물이었다.

설계방식은 60년대 이후 서울이 개발되는 과정을 그대로 상징하는데, 1~4층은 상가로 하되 1층을 자동차 전용 공간으로 설정하고 대신 3층을 보행자 전용도로로 건설하는 등 엘리베이터까지 갖춘 주상복합타운이었다. 당시에는 보기 드문 획기적인 설계방식쟁

 

청계천 그때 그시절

 
 
'광통교'..



(대한제국시기. 사진위) 천변 호안석축은 잘 쌓여져 있고 군데군데 풀이 무성하다. 석축 위 천변길에는 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바쁘게 오가고 있는데, 반 여인네들이 장옷을 입고 얼굴만 내놓은 채 걷고 있다. 청계천 남쪽을 촬영한 듯 길가 벽에는 창이 보이지 않는다.

(1900년경, ⓒ고종호 '京城名所' 사진엽서) 종로방향에서 광통교를 바라보고 찍은 사진이다. 광통교는 남대문로와 종로를 연결하는 길목으로 남대문에서 종로로 가려면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만 했다. 따라서 이곳은 시전 상업의 중심지였으며 도성에서 사람들이 가장 붐비는 곳 중의 하나였다. 사진 중앙에는 광통교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한 난간석이 잘 보인다.



'천변 빨래터'...



(1904년, ⓒ서희경) 청계천 상류는 물이 얕고 맑아 빨래를 하려는 주변의 아낙네들이 모여들었다.')



'지게꾼'...



(대한제국시기, ⓒ서문당) 청계천을 따라 나있는 길이 좁은 듯 개천을 보호하기 위한 축대 밑에 과일가게가 있고, 그 옆에 곰방대를 쥐고 있는 중년 남성이 쭈그리고 앉아 있다. 그리고 지게에 무언가를 담고 가는 지게꾼이 보인다.

수표교 부근은 서울의 중심부였기 때문에 날품팔이 지게꾼들이 일이 걸릴까하고 모여들곤 하였다. 당시 시골살림이 어려워 서울로 이사 온 사람들은 남정네는 지게꾼으로 아낙네는 행상으로 나서기가 십상이었다.



'수표와 수표교'...



(일제강점기, ⓒ국사편찬위원회) 수표교 남쪽을 바라본 사진이다. 수표교 남편에는 양 길가에 가게가 들어서 있었다. 좌측 길모퉁이에 담배를 팔았던 연초煙草(タバコ)가게가 눈에 들어오고, 그 양옆에 약국과 중앙상회지점 간판이 보인다. 그리고 건너편에는 탕반, 탁주, 소주 등을 한자와 한글로 쓴 술집 간판이 보인다.

(1950년대말~1960년대초, ⓒ기성철) 어느 한가한 날 수표교를 찍은 사진이다. 수표교 난간 위에는 한 사람이 올라 앉아있는데, 사진소장자 본인이라고 한다. 그 뒤로는 사람들이 오가고 있고, 담뱃가게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 속 수표교에는 난간석 1조가 없는데, 소장자의 증언에 의하면,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인한 상처라고 한다.



'청계천 주변천'...



(대한제국시기, 삼청동천, ⓒ김종영(朝鮮風俗-井戶ト水汲夫사진엽서)) 나무 뒤로 경복궁 건춘문이 가려져 있고, 천변 우물가에 물장수가 물지게를 지고 있다.

(1927년, 금청교, ⓒ고종호) 금청교는 청계천에 처음 놓인 돌다리로 청계천 상류 부근에 체부동과 통의동, 적선동, 내자동으로 통하는 십자로에 있었다.


'판자촌'...



광복과 한국전쟁 후 서울로 피난 온 피난민들은 청계천변을 따라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청계천변 판잣집은 불결과 빈곤의 상징이었다.  큰 비가 쏟아지면 집을 떠받치고 있던 나무기둥이 불어난 하천에 쓸려가 버렸다. 이로 인해 집 전체가 무너지기도 했다.

한편, 판자촌 거주민들이 버린 생활하수가 그대로 하천으로 배출되어 청계천은 심한 악취가 진동하고 각종 쓰레기로 몸살을 앓았다.


'염색공장'...



(1960년대말, ⓒ원종철) 한 아저씨가 염색한 천을 말리기 위해 대나무로
만든 대 위에 널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에는 모든 물자가 부족했다. 그나마 미군부대 등 군대에서 흘러나온 군용 물자만이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군복을 염색해서 많이 입었다.

당시 청계천변에는 군복을 염색하는 업체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방출된 하수는 그대로 청계천으로 흘러들어 갔다. 이 때문에 청계천 하류의 물빛은 언제나 짙은 회색을 띄고 있었다고 한다.



'복개 전 풍경'...



(1965년, ⓒ국가기록원) 오간수문 밖 하류 청계 6가 청계천변의 당시 일상 풍경이다. 열 지어 늘어서 있는 콘크리트 기둥 사이에서 뛰놀며 물놀이 하던 아이들은 지친 듯 늘어놓은 콘크리트 파일 위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아이들은 과연 곧 닥쳐올 청계천 판자촌의 운명, 청계천이 복개될 것을 알고 있었을까.



'평화시장'...



(1965년, ⓒ국가기록원) 평화시장은 청계천이 오간수문까지 복개되면서 함께 문을 열었다.시장 이름은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월남한 피난민들이 세웠기 때문에 평화를 기리는 실향민들의 염원을 담고 있다.

이 시장은 1960년대 한국 수출산업의 선구적 역할을 톡톡히 담당했다. 그러나 또한 당시 노동자들의 한숨과 분노가 스며 있었으니 1970년 겨울, 청년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한 곳도 이 시장 앞이었다.



'가두노점'...



(1965년, 서울특별시) 복개된 후 청계천로를 찍은 사진으로 중앙에 보이는 가두노점이 인상적이다.요즘 길가에 보이는 가판대와는 많이 다르지만 크기나 기본적인 모습은 거의 흡사해 보인다. 한편 이곳이 건널목인 듯, 한 사람이 차도로 내딛고 있다.


'최신 건축물, 세운상가'...



(1968년, ⓒ서울특별시) 세운상가는 건축가 김수근씨가 최신 건축사조를 끌어들여 만든 최첨단 건물이었다. 설계방식은 60년대 이후 서울이 개발되는 과정을 그대로 상징하는데, 1~4층은 상가로 하되 1층을 자동차 전용 공간으로 설정하고 대신 3층을 보행자 전용도로로 건설하는 등 엘리베이터까지 갖춘 주상복합타운이었다. 당시에는 보기 드문 획기적인 설계방식이었다.

이 세운상가는 국내 전자산업이 태동할 당시 전자부품이 집결되는 곳으로 70~80년대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청계천 개통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복원된 청계천은 하천 주변의 온도를 내리고 각종 환경오염물질 농도도 감소시키는 등 벌써부터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화려한 조명 속에 물이 흐르고 있는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동아일보사) 앞 청계광장

■▶ [자료출처 : http://photo.donga.com]

사라진 고가도로, 뻥 뚫린 청계천


★...서울 도심의 빌딩숲 한 가운데를 가르며 시민들의 가슴을 탁 틔워줄 청계천이 10월1일 공식 개통된다. 사진은 헐리기 이전의 고가도로가 있는 청계천(오른쪽)과 개통을 3일 앞두고 시원스럽게 뚫린 청계천 모습

■▶ [자료출처 : http://photo.donga.com]

새 날고 물고기 노니는 생태숲 청계천


★...서울 도심의 빌딩숲 한 가운데를 가르며 시민들의 가슴을 탁 틔워줄 청계천이 10월1일 공식 개통된다. 청계천 시점부인 청계광장에서 종점부인 신답철교 부근까지 5.8km 물길에서 마주치게 되는 각종 조류와 식물, 조형물들을 미리 만나 보았다. 사진 맨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수크렁(벼과식물), 수세미, 꽃범의꼬리(꿀풀과), 꽃향유(꿀풀과), 중대백로, 잉어, 박, 방범용 CCTV카메라, 정조대왕 능행반차도(正祖大王 陵幸 班次圖,도자벽화), 대형잠자리 추상물(조각가 유영교 作), 쑥부쟁이(국화과)에 앉은 잠자리, 나팔꽃, 흰뺨검둥오리, 소망의벽, 징검다리, 참외, 박꽃, 광통교 돌받침에 새겨진 부조

■▶ [자료출처 : http://dicaevent.chosun.com]

청계천 징검다리 ''폴짝폴짝 재밌네''


★...청계천 복원 준공을 5일 앞둔 27일 오전 청계천 9가에 산책나온 시민들이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

■▶ [자료출처 : http://www.munhwa.com]

청계천 개통 행사 리허설


★...청계천 개통을 3일 앞둔 27일, 청계천 모전교 근처에서 시민들이 개통 행사 리허설을 지켜보고 있다

■▶ [자료출처 : http://www.goodday.co.kr]

화려한 변신


★...복개 47년만에 국민의 품에 돌아온 청계천의 야경이 눈부시다.청계천은 10월1일 개통 행사인 '새물맞이'를 앞두고 막바지 단장에 들어간 상태다

■▶ [자료출처 : http://hankyung.com]

청계천에 설치된 대형잠자리 추상물


★...청계천 개통을 축하하기 위해 조각가 유영교씨가 '에어 조이(Air Joy)'라는 제목으로 대형잠자리를 추상화한 설치물 100개를 청계천 2가와 3가 사이 물위에 설치, 시민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 [자료출처 : http://dicaevent.chosun.com]

청계천의 새로운 다리들


★...서울 도심의 빌딩숲 한 가운데를 가르며 시민들의 가슴을 탁 틔워줄 청계천이 10월1일 공식 개통된다. 청계천 시점부인 청계광장에서 종점부인 신답철교 부근까지 5.8km 물길에 세워진 각양각색의 다리들은 청계천을 걷는 시민들을 '피아노 거리'와 '동대문 쇼핑센터' 등 다양한 명소, 명물로 인도할 것이다. 왼쪽 위부터 바우당교, 새벽다리, 맑은내다리, 버들다리, 삼일교. 오른쪽 위부터 무학교, 두물다리, 나래교, 영도교, 다산교

■▶ [자료출처 : http://www.goodday.co.kr]

청계천 '베를린 광장' 개방


★...독일 베를린시가 청계천2가 삼일교 남단 한화빌딩 앞에 조성, 서울시에 기증한 '베를린 광장'이 27일 개방됐다. 30여평의 광장은 독일 기술자의 감독 아래 독일 현지에서 가져온 재료로 꾸며졌으며 베를린 장벽, 베를린 '곰(熊)상' 등이 설치돼 있다

■▶ [자료출처 : http://dicaevent.chosun.com]

시민 2만명 참여 ‘소망의 벽’


★...26일 공개된 청계천 양쪽 옹벽의 ‘소망의 벽’. 성동구 청계8가의 황학교와 비우당교 사이에 설치된 이 벽은 시민 2만여 명이 각자 자신의 희망을 적거나 그림을 그린 타일을 붙여 만들었다. 높이 2.2m에 길이는 50m

■▶ [자료출처 : http://photo.donga.com]

“청계천의 모든 것 한곳에서 즐겨요”


★...청계천 복원(10월 1일)을 앞두고 26일 개관하는 청계천 문화관 전시실. 청계천을 중심으로 한 서울 도심의 모습을 대형 위성사진으로 볼 수 있다. 문화관은 서울 성동구 마장동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옆에 있다

■▶ [자료출처 : http://photo.donga.com]

청계천의 화려한 밤


★...이번 주말에 개통될 서울 청계천 주변 가로수와 산책로에 화려한 야간조명이 완성됐다. 25일 저녁 산책 나온 시민들이 청계천2가 주변에서 ‘청계천 야경’을 즐기고 있다

■▶ [자료출처 : http://eyenews.hankooki.com]

문화광장으로 태어나는 청계천


★...오디션을 통과한 거리 예술가에게 '청계천 아티스트' 자격을 부여하고 새롭게 복원되는 청계천변에서 활동하게 하는 청계천 아티스트 공개 오디션이 열린 23일 오후 서울 청계천 장통교에서 한 행위예술가의 연기가 시민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오디션을 통과한 거리 예술가에게 '청계천 아티스트' 자격을 부여하고 새롭게 복원되는 청계천변에서 활동하게 하는 청계천 아티스트 공개 오디션이 열린 23일 오후 서울 청계천 장통교에서 한 행위예술가 연기하고 있다

■▶ [자료출처 : http://eyenews.hankooki.com]

물길따라 15理 청계10景


★...서울의 명물로 등장한 청계천. 옛날에는 서민들 애환을 담고 흘렀고 6ㆍ25전쟁 후에는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터전이 되기도 했던 곳. 그 청계천이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새로운 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시청 뒤에서 시작해 동대문구 신답철교까지 5.84㎞에 달하는 청계천 새 물길을 따라가면 과거와 현재, 자연과 첨단이 공존하는 청계 10경을 만날 수 있다


■▶ [자료출처 : http://inews.mk.co.kr]

청계천 나비


★...23일 오전, 가을비가 흠뻑 내린 후 청계천변에 나비가 꽃 위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자료출처 : http://eyenews.hankooki.com]

청계천 인공폭포


★...23일 오전, 가을비가 흠뻑 내린 후 청계천 인공폭포 사이로 맑은 하늘이 보이고 있다

■▶ [자료출처 : http://eyenews.hankooki.com]









청계마당




모전교에서 바라본 청계마당






청계천 산책로를 찾은 시민들이 높이 3.5m, 길이 186m로 세계
최대 규모의 도자벽화인 '정조대왕능행 반차도'를 감상하고 있다.




청계천 복원공사가 착실히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6월27일 밤
청계천 평화시장 앞에서 시민들이 시범가동 되고 있는 고사분수를
감상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청계천8가 비우당 터널분수
6월20일 저녁 8시에 비우당 터널분수가 시험가동을 하고 있다.
비우당 터널분수는 청계천
비우당교와 무학교 사이 천변에
새로 설치된 분수로 높이 5m 폭 50m 구간의 벽에 42개의 노즐에서
물줄기가 터널 모양으로 다양한 조명과 함께 16m가량 뿜어져나온다.




청계천에 물이 ‘콸콸’
6월28일 서울에는 100mm가 넘는 많은 비가 내렸다.
마무리 복원공사가 한창인 청계천은
주변에서 많은 빗물이
흘러들어 제법 하천 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황학 리듬 벽천




철교 부근 야경




청계 빨래 터 야경.




성북천과 합류하는 두물다리




세월교 야경




버들 습지




평화시장 앞 나래교
















`청사랑' 홍보대사 위촉식


★...청계천 자원봉사자 모임 `청계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청사랑)' 홍보대사로 위촉된 개그맨 박수홍(앞줄 맨 왼쪽), 방송인 노홍철(앞줄 왼쪽 두번째), 박경림(앞줄 오른쪽 세번째)이 29일 서울시청 태평홀에서 위촉식을 갖고 이명박 서울시장(앞줄 왼쪽 세번째)과 기념촬영 하고 있다

■▶ [자료출처 :
http://eyenews.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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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5.10 21:54

    첫댓글 어렷을적 정감은 없지만 그래도 피폐한 청계천보다는 정돈된 청계천이 좋으네요. 실제 가보면 그렇지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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