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정재희 소화데레사 59세, 대구교구 복현 성당
+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부족한 저는 1남1녀의 부모님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주인집 아래 15채 가구 안에 저희의 월세집이 있고
공동 화장실을 쓰는 아주 허술한 집에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남의 집 머슴살이하다가, 목수 및 잡다한 일을 하였고,
엄마는 시내 식당일을 해가며 집한 채를 마련하여
잠깐이나마 보람되고, 행복을 맛보기도 하였다며,
딸내미인 저에게 엄마는 말해 주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하혈을 하여 대 수술을 하게 되었고,
전 재산인 집을 팔아 엄마의 병원비로 쓰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아버지는 술만 먹으면 집이 없어진 것을
엄마 탓으로 돌리고, 술을 물 마시듯 마시며 몸짓도 삐뚤,
사고도 꼬일 때로 꼬여버린 사람,
세상의 비관자로, 돌아가신 할머니의 탓으로
욕설을 해 대는 아버지 밑에 살았습니다.
평소엔 점잖고 양반인 아버지이지만, 술만 들어가면
사람이 점점 악마, 괴물이 되어 온 집안을 휘젓고
자식들과 엄마는 늘 도망 다니는 신세가 되어,
겁도 나고 막막한 생활의 연속되는 가운데, 한 번은
연탄가스에 취해 온 가족이 다 죽을 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돈이 없어 병원은 못 가고 이웃집에서 동치미 국물을
가지고 와서 먹고 나았고, 주인집 아저씨가
방을 고쳐주지 않아서 가족모두 죽을 뻔했다며
크게 분노하며 주인과 싸운 적이 있었지요.
아버지는 자식들이 죽기를 바라지는 않으셨던 모양입니다.
그날 이후 큰 병에 담긴 꿀을 마련하여 동생과 나만 먹이셨던
아버지의 사랑도 보았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혼자 있게 된 제 친구를 조건 없이
3년간 저의 집에서 같이 살게 해 준 기억도 있습니다.
그 DNA는 제가 아버지를 조금 닮은 것 같아요.ㅎㅎ
사회에 한이 많았고, 할머니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아버지는,
날마다 술을 벗 삼아 처자식의 돌보기는커녕,
자기 자신도 지탱하지 못하고,
세상의 불만을 집안에 다 풀어내는 아주 못나고 어리석은 자이자,
사회패륜자로 부족한 어린 저는 그렇게 아버지를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점점 미워하는 마음이 커져만 가고
아버지가 빨리 죽어야만 세 식구가 살겠다 싶어, 교회에 가서
“아버지를 빨리 데려가 주십시오.”라고 주님께 기도하곤 하였습니다.
사악한 기도를 했던 기억과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 싫고 부끄러워,
그런 모습을 보며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였습니다.
술만 드시면 이유 불문 하고 아버지의 매타작이 시작되고,
쨍그랑 그릇 깨지는 소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왔고,
아버지의 무섭고도 두려운 고함소리에,
남동생과 엄마와 저는 겁에 질려 매일같이
오들오들 사시나무처럼 떨어야 했습니다.
매일 같이 도망갈 준비를 해야 해서,
잠옷 한 번 입은 적이 없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동학대인 거죠,
이 비참함과 절망감은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때는 서너 집 건너서 이런 행위들이 일어나곤 하였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가기 전까지 주야 상관없이
외상으로 술을 가져와야 했으며,
가게 주인아주머니가 나를 불쌍히 바라보던
그 눈빛을 희미하게나마 떠올리니 눈물이 납니다.
수탉도 나를 우습게 봤던지,
새벽 담벼락 위에 있다가 푸드덕 날아들어
저의 코와, 입을 쪼아서 다치고, 엎어져서 술은 쏟아진 채
주어 담을 수도 없어 빈 주전자를 들고 집에 왔더니,
아버지는 다친 저는 처다 보지도 않고, 술 없이 왔다고 나를 혼낸 기억이
파노라마(연속시진)처럼 되어 흐릅니다.
너무나 불쌍하고 초라한 기억입니다.
그럴 때마다 저의 피신처는 동네에 있는 작은 교회였습니다.
주일날 하루만큼은 제 마음에 평화를 얻고, 편안함을 얻고,
제 또래들과 마음껏 놀 수 있었기에 너무 좋았습니다.
제 어린 시절은 거의 교회에서 보냈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없었지만,
교회에서 행하는 부활절과 성탄절은 모든 시름을 싹~ 잊게 하는
저의 유일한 큰 즐거움의 쉼터이고 장소였습니다.
사랑하는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당신의 눈동자처럼 저를 돌보고 계심을 느꼈습니다!
나의 주인이신 하느님 아버지, 참으로 감사하고 뜨겁게 사랑합니다!
아버지의 술 폭력에 벗어나고 싶은 간절한 소망에,
현재 저의 남편을 만나서,
저의 바람대로 순하고 자상한,
나만 사랑해 주고 바라봐주는 협조자로, 가정에 충실하고 반듯한,
친정아버지와 정반대의 소유자를 만나서 정말 행복하였습니다!
첫아들을 낳았으나, 심장판막증으로 3일 만에 천국으로 갔습니다.
첫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많은 날을 헤매기도 하였지만,
그 이후 다이아몬드 같이 빛나고 멋진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 부부에게 주신 아주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형편만 되면 아이들을 많이 낳아 기르고 싶었습니다.
어리석고 죽을 죄인이, 거내영 안에서 거룩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 자체도 저에게는 너무나 큰 기적이고 신비입니다.
옆지기인 제노도 저와 비슷한 처지였기에,
결혼식은 못하고 혼인신고만 하여 그냥 결혼식은 형편 되면 하기로 하고
힘겨운 생활이지만 남들 사는 것과 별반 다름없는 단란한 가정생활로,
제가 꿈꾸던 생활이었고 만족해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의 말씀으로 살지 않았기에
저의 삶은 힘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파트 분양을 해도 부도가 나서 15년을 데모현장에 다녀야 했고,
경찰이던 남편은 늘 허약하여 감기몸살만 하여도
몇 며칠씩이나 힘들어야 했고,
상사 눈치가 보여서 아파 신음하였음에도 일을 하였고,
그러한 몸을 이끌고 일을 하다가 큰 사고가 몇 번이 나고...
참 힘겨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 아픔을 겪는 와중에도 시어머니의 생활비를 꼬박꼬박 드려야 했고,
집과 병원을 오가면서 수발을 들고는 쪽잠을 자야 했습니다.
고3 수능시험이 코앞인 큰 아들에게는 남편 간호 때문에 따뜻한 밥 한 번 못해 주고,
챙겨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뒤이어 친정엄마가 중풍으로 쓰러져 저희와 함께 살았는데,
엄마는 언어와 지능이 초등학교 5학년 수준이 되어 저를 무척 애먹였습니다.
수시로 집을 뛰쳐나가는 바람에 늘 찾아다녀야 했고,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면 아기가 된 엄마를 데리고 와야 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황무지에 저만 내동댕이쳐진 기분이 들었고,
참으로 이 고난이 빨리 지나가길 기다리면서
엄마와 함께 이대로 죽으면 참 좋겠다,며 몹쓸 생각도 했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우울증이 있었던 엄마는 저의 집 5층에서
뛰어내려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너무 힘들었던 저는 너무 당황스러웠고,
막막하여 하늘만 쳐다보며 울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그날 새벽 3시쯤 저의 작은 아들인 요셉이 가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서 뇌전증을 판정을 받았고,
몇 개월이 지나 시어머니께서 치매판정받았고,
몇 개월이 지나 시동생의 아들인 조카가 지적장애 판정을 받고,
저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속은 곪아 썩어 있었고,
정신은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그야말로 딱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친정일 및 집안의 모든 대소사를 제가 다 도맡아야 했고,
그 누구에게도 맡길 수가 없었고,
쉴 새 없이 벌어지는 감당 못할 모든 상황에,
아버지 하느님께 무릎을 꿇어 빌었습니다.
“저의 조상과, 부모와 제가 당신께 큰 죄를 지었으니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푸소서!”
제 안에 하느님 아버지를 모시지도 않았고, 내 의지대로 하니,
힘겨움이 고스란히 짜증과 불만과 분노와 억울함이 되어
늘 사랑하는 제 가족들에게 표출되었습니다.
제 가족들이 부족한 저로 인해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고,
많은 희생을 하였는지를,
아버지를 뜨겁게 사랑하게 되니, 고스란히 느껴지고 보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아들 요셉의 병세는 처음엔 경미하였으나,
점차적으로 강도가 높아져 저의 불안과 두려움이 한층 더 가중되어 갔습니다.
아이가 저와의 말다툼으로도 쓰러지고,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는
이래 가지고는 정말 아이를 영영 잃어버리겠다는
두려움과 무서운 생각들이 밀려왔습니다.
짧았지만, 저는 처음으로 우울을 경험했고,
밥알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와 남편이 꼴도 보기 싫었고,
늘 정리정돈 되었던 집안 살림도 엉망진창이 되어갔습니다.
사랑하고 아끼는 우리 아들 요셉과,
나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저는 다시 툴툴 털고 일어나야 했습니다.
이유 없이 아버지께 매 맞던 그 긴 세월 보다,
지금이 더 아프고 가슴이 미어지던 저는,
한 가정에 엄마이자 아내이기에 무너질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만 생각나 수 없이 불렀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친정엄마가 많이 보고 싶네요.
고생과 희생만 하신 울 어머니, 모진 세월 어떻게 사셨나요.
요셉이 가 처음 발작을 일으켰을 때,
“예수님! 요셉이 가 죽는 병만 아니면 당신을 다시 믿겠습니다.”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검사 후 몇 시간 뒤에 곧바로 당신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담당 의사 선생님께로부터 “일단은 죽는 병은 아닙니다.”
라고 하며 “어머니와 아들의 정성을 필요로 합니다.”
하실 때에 예수님이 제 말을 듣고 계시는구나 하고 알아차렸습니다.
저는 감사기도를 드리고 조만간 성당에 나가야겠다고 마음을 굳혔습니다.
하지만, 쉽게 되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점점 심해졌고, 그럴 때마다 안절부절못하며 약을 챙겨야 했고,
저의 잔소리는 이것도 하지 마라, 저것도 하지 마라, 수위가 높아가니,
아이가 갈 곳을 잃고 엄마가 시키는 반대의 길로만 들어갔습니다.
“엄마, 나 그냥 병 있어도 이대로 살래.”
“엄마의 잔소리에 나는 지금 자살을 하고 싶어.”라고 강력하게 말하였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서 충격을 받고는, 한참을 멍 때리고 있다가,
나란 인간은 차라리 태어나지나 말지,
왜 이리 태어나 내 아이까지 힘들게 하는 건지,
이 아이가 살아갈 길이 막막할 것이 훤히 보여서 고통스러웠습니다.
동서를 제가 중신했는데 지적장애였고, 태어난 조카도 지적장애였고,
둘째도 행동불안장애였는데, 2년 치료하니 괜찮았어요.
이 모든 일들 앞에 대체 나에게 왜! 왜! 왜! 하며,
원망을 하며 한숨만을 내쉬었습니다.
“남들도 다 이렇게 살겠지, 그래, 인생이 원래 쓴맛이지,”
큰 고통과 인생사가, 뭔지 모르게 신의 능력 하에 움직이고 있다는 ‘감!’
그것을 지금 거내영 으로 본다면 ‘영감’인 거죠.
모든 것 접고 다 때려 엎어 버리고 도망치고, 또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숨 쉴 구멍조차 없어 답답하고 막막해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그랬고, 나 또한 내 인생의 그림, 스케치 밑그림을 잘 그려야 되겠지,
라며, 인내하였습니다.
맏시누형님, 남편의 폭력행사로 인하여,
사흘이 멀다 하고 오시면 3~4개월 있다가 가시고, 오 시고를 여러 번 급기야,
매를 견디지 못하고 7년을 저와 시어머니와 같이 살다가,
시누가 남편에게 가게 되면서 시어머니와 저희들과 함께 살게 되었답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살아가니, 이 또한 받아들여야할 내 몫이였습니다.
다시 예수님을 떠올리며 예수님께 한 번 더 살려달라고
울부짖게 되고 성당문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를 부양하고, 아이들의 필요한 것을 해줘야 하고,
밤이 되면 쓰러져자고, 일어나면 계획된 시간표대로 움직여지고 시간이 주어지는
그대로 흘러가지더군요.
우선순위를 예수님께 두고 모든 일을 하게 되니
저는 마냥 더없이 좋았습니다.
남편의 건강도 점점 좋아졌습니다.
남편은 농담 섞인 목소리로 하느님께 소화데레사를 빼앗겼다고 하소연하며
안일한 가운데,
요셉은 말이 더 없어지고 낮과 밤이 바뀐 채 쳇바퀴 돌듯이 하였습니다.
그렇게 또 하루를 주심에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먼 길을 돌고 돌아 이제야 예수님께 왔습니다.
저의 형편을 다 아시는 아버지께서는
당신(아버지)의 때에 모두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이 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 잦아지더니,
아예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물어보아도 대답도 하지 않고,
아버지(남편)와도 사이가 좋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피하기만 하고, 피하기만 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남편)는 마음 아파했습니다.
아들은 어색하기만 하니까,
밖에서 오락실에서 오락을 하다가 쓰러져 119에 실려 오기 여러 차례,
그것을 바라볼 때마다 너무나 안쓰러웠습니다.
어느 날, 본당 거내영 선배언니가 전해준
창화살(창에 찔린 예수 화살에 꽂힌 신부) 책 제목에
이끌려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3일에 걸쳐서 다 읽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신앙생활은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창조주의 뜻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
제가 온갖 시련을 겪어온 것이 어려 풋이 감지되는 것 같았고,
기쁨에 잠식되어 그냥 빠져들었습니다.
방법은 끊임없는 화살기도, 아버지기도만을 머리에서, 입에서, 마음에서,
술술 나오도록 능구3개월을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선배님들의 도움을 받아 가입을 하고 능구3개월을 신청하고
가르침대로 순명하여 아버지기도에만 집중몰입 하였습니다.
드디어 거룩한 봉헌을 하고, 예전의 모든 것을 에포케(멈춤)로 이끌어 주셨고
잘 몰라도 생명 말씀을 매일 봉독하고 아버지를 뜨겁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거룩한 무형의 성전에서 머무는 시간이 얼마나 즐겁고 기뻤는지 몰라요.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시는 모든 것을 역경이던, 순경이던 다 받아들이게 되고,
그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즐기게 되었고,
그 무엇이 됐든지 간에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우뚝 서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부족하고 죄 많은 저를 긍휼히 여기사,
영혼구원사업에 부족한 저와 동행하시고자,
보잘것없는 저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니, 그 은혜가 무궁무진합니다.
지금까지 이끌고 오신 것도 모두 다 아버지이시니까요. 감사합니다!
요즈음 제 일상을 아름답고, 복되고, 행복한 나날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전혀 없습니다.
걱정과 불안을 달고 살던 사람이, 고함을 내지르던 수다스러운 아줌마가
이렇게 물같이, 바람같이 유유히 흐르며 즐기며 산다는 것이 크나큰 은총입니다.
내가 변하니 남편과 두 아들이 바뀌었습니다.
저는 거내영을 하기전에는 남편과 자식이 먼저 변화 되어야 된다고 생각했었고
남편과 자식을 제 손아귀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제가 거룩한 < 내맡김 화살기도 >을 통하여
저도 모르는 지혜가 떠오르고 내가 하려하는게 아니라
아버지께서 전적으로 이끌어주시는 내맡김의 신비를 저는 새롭게 체험합니다.
시어머니의 임종때 자연스레 이끌려 드려 어머니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맞추게되고
깜짝 놀라시는 시어머니께서는 힘껏 소리내어 "나는 가니 너희들 잘 살거라", 라며
유언의 마지막 말씀을 하시고 일주일만에 하늘로 가시고 영의 식구님들 기도 안에 어머니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겨드렸습니다.
어느날 남편도 단식을 하는 저에게
" 당신은 참으로 거룩하다" 라고 표현하고
제 아들(요셉)이가 "엄마가 너무 좋게 변해줘서 고마워"라고 말을 건내는
아빠 눈치도 보지 않고 "엄마 아빠 사랑해요" 를 자주 거네는
자상하고 반듯한 아들로 새로 재창조 되었습니다.
요셉과 요셉의 미래의 짝지와 부족한 저는 거룩한 내맡김삶의 매료되어
서로가 끌어주고 밀어주며 <거내영>안에 머무릅니다.
엄마로서 자식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부분들까지도 < 거내영 >을 통하여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시고 이끌어가 주시네요.
이제껏 모르고 쑥스럽고 실행하지 못하고 않았던 것들을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저에게 꼭 필요하고 해야만 하는 예쁜말들로 이끌어 주셔서 아들과 남편에게
사랑해, 감사해, 고마워, 상대방의 기분을 좋게하는 단어가 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좋으시고 선하신 아버지,
아버지의 그 사랑이 저희 작은가정 안에도 안착되었습니다.
그 무엇을 해도 사랑이 흐르고 기쁨이 샘솟습니다.
아버지만을 뜨겁게 사랑한다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영혼에게
그냥 무상으로 주어지는 자비의 은총입니다.
단순하고 철부지 저같은 무지랭이에게 함께 하고 계신 아버지,
부족한 저의 모든 것을 통하여 무한찬미영광 받으소서!
늘 아버지 은총 안에 자부심의 겸손과 순명으로
오직 아버지만의 작은 꽃이 되렵니다.
아멘!
아버지의 크신 은총으로
시대적 복음인 거내영을 만나,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밝고 명랑 쾌활한 모습으로
온 존재를 변화시켜 주신
반전의 명수이신 아버지의 이끄심이 그저 놀라울 뿐이지요.
지금껏 허락된 아픔과 긴 고통의 시간들이
아버지께서 그토록이나 원하고 원하시는 영혼구원을 위한 도구로
그 어느 것 하나 제외되지 않고 남김없이 쓰여지고 있음이 신비 자체이며,
딸랑님의 거룩한 증언으로 인하여,
수많은 이들이 구원의 반열에 들어설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오네요.
참으로 감사드리고
뜨거운 사랑드립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딸랑 2 증언>과 내맡긴 영혼 딸랑의 모든 것을 통하여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크게 드러내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거내영 안에서 거룩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 자체도 저에게는 너무나 큰 기적이고 신비입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전혀 없습니다.
걱정과 불안을 달고 살던 사람이, 고함을 내지르던 수다스러운 아줌마가
이렇게 물같이, 바람같이 유유히 흐르며 즐기며 산다는 것이 크나큰 은총입니다.>
아멘! 아멘!
사랑하는 딸랑님,
거룩한 증언으로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귀한 나눔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님의 증언을 읽으며 참말로 산전수전 다 겪으시고 그동안 살아내시느라
너무나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이제는 거내영을 통해 거룩한 내맡김으로 모든 것이 아버지께로
아버지 사랑으로 뒤바뀐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는
유유히 흐르는 참말로 크나큰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딸랑님의 아버지만을 향한 사랑으로 함께 공명 되어지며
옆에 마주하고 있는 듯 눈 망을 동글동글 반짝반짝 하신
딸랑님을 꼭 안아드립니다. 함께여서 감사하고 고맙고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딸랑의 증언을 통하여 아버지 마음껏 찬미와 영광을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시는 모든 것을 역경이던,
순경이던 다 받아들이게 되고,
그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즐기게 되었고,
그 무엇이 됐든지 간에 흔들리지 않고 우뚝 서 있게 되었습니다.>
아멘 아멘!!
사랑하는 딸랑님,
거룩한 증언을 올려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 아픈 시간 속에서도 어쩜 그리도 밝은 모습인지요.
참으로 잘 견디어 내시었네요.
거내영으로 그토록 아픔과 슬픔 모든 고난을 내어 맡겨드리며
오직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기쁘게 살아가시는 님께 감사와 사랑 드립니다.
아버지를 찾지 않고 내 뜻대로 살 때도 아버지께서 늘 곁에서
지켜 주시고 보호하여 주셨음을 부족한 저는 거내영 아버지 사랑을
느끼며 알게 되었지요.
저도 님처럼 역경이든 순경이든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아버지의
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니 존재의 가벼움 입니다.
님과 함께 여서 참으로 기쁘고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모든 사제와 <딸랑2 증언>과 딸랑의 모든 것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전혀 없습니다.
걱정과 불안을 달고 살던 사람이, 고함을 내지르던 수다스러운 아줌마가
이렇게 물같이, 바람같이 유유히 흐르며 즐기며 산다는 것이 크나큰 은총입니다. >
아멘 아멘!!
사랑하는 딸랑님!
님의 증언이 올라온날, 단숨에 읽었지만, 눈물이 앞을 가려 도저히 댓글을 쓸수가 없었답니다.
언제나 밝고 친절하고, 사랑이 넘치는 딸랑님의 모습, 어디에서도 그런 아픔의 흔적을 찾아 볼수가 없는걸 보면, 고난의 길에 함께 하셨던 아버지께서, 당신의 사랑으로 모두 치유시켜 주신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딸랑님!
다음 피정때 만나서 꼬옥 안아 드릴게요~♡
사랑하는 아버지!
딸랑과 < 딸랑 2 >증언자 들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 무한 찬미 영광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정말 놀라우신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신앙생활은 하느님의 뜻대
로 사는 것,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창조주의 뜻
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
<방법은 끊임없는 화살기도, 아버지기도만을 머 리에서, 입에서, 마음에서,
술술 나오도록 능구3개월을 하면 된다는 것입
니다.>
<가르침대로 순명하여 아버지기도에만 집중몰
입 하였습니다.>
<거룩한 봉헌을 하고, 예전의 모든 것을
에포케(멈춤)로 이끌어 주셨고
잘 몰라도 생명 말씀을 매일 봉독하고 아버지를
뜨겁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무형의 성전에서 머무는 시간이 얼마나 즐겁고
기뻤는지 몰라요.>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시는 모든 것을 역경이던, 순경이던 다 받아들이게 되고,
그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즐기게 되었고,
그 무엇이 됐든지 간에 흔들리지 않고 우뚝 서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변하니 남편과 두 아들이 바뀌었습니다.>
<엄마로서 자식에게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부분들까지도 < 거내영 >을 통하여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시고 이끌어가
주시네요.>
긍정의 끝판왕이신 사랑하는 딸랑님,
딸랑님의 글 안에 녹아있는 고통의 삶들이 요즘 약을 먹으며
밤 잠을 자던 저를 깨우고 읽게 만들었어요.
힘들고 고통스러운 힘든 삶을 굽이 굽이 잘 헤쳐
오셨네요.
가족들의 모임때 저를 어찌 아시고, 마주칠때마다
호탕하게 웃으시며 격려하시던 딸랑님을 기억합니다.
세상에나...
예수오빠가 걸으셨던 길을 정말 따라쟁이 하셨네요.
거룩한 성전안에 이렇게나 따라쟁이 하고싶은
가족들이 바닷가 모래알처럼 많은 은총에
눈물나게 감사하고 고마워요.
어느것 하나도 놓칠 수 없는 증언글을 성전에도
올리고 자주 읽으며 따라쟁이 하려고 따로
저장도 했답니다.
저는 이제 정말 살아 보려고 해요.
오는 고통과 어려움들을 사랑하는 딸랑님처럼
승화시켜 하느님아버지께 올려 드리지
못했었 거든요.
오뚜기처럼 화살기도에 집중 몰입하며, 아버지만
사랑의 아버지만 바라보며 시작할께요.
아버지 아버지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딸랑 2증언>과 딸랑의 모~든 것을 통하여
거룩하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