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무뚝뚝한 대답엔 복사꽃을 꽃놀이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상춘객을 향한 불신이 묻어났다. 상춘객의 볼은 순간 발그레 달아오른다. 그러고 보니 이곳의 농부는 유독 객에게 심드렁한 표정이다. 장사꾼이 다 된 다른 관광 명소의 농부와 사뭇 다르다. 군청에 들어가서야 연유를 알았다.
영덕은 원래 복숭아 천지가 아니다. 1959년 태풍 사라가 논밭을 휩쓸고 간 뒤 이곳의 농민들은 오로지 생계를 위해 복숭아를 심고 가꿔 내다 팔았다. 7, 8월 뙤약볕을 고스란히 받아가며 복숭아를 따왔지만 지금은 그마저 신통치 않다. 당분 높고 자극적인 열대 과일이 대거 수입되면서 복숭아 판매량이 해마다 급감한 탓이다.
지난해만 해도 영덕의 복숭아 재배 면적은 430㏊였다. 일년만에 60㏊가 줄었다. 80년대 말엔 700㏊가 넘었다. 농민들은 지금 평생을 함께 늙어온 복숭아 나무를 뽑고 그 자리에 배와 사과나무를 심는다.
군청에서 나와 다시 복사꽃 단지로 돌아왔다. 분홍 복사꽃 사이에 흰 배꽃이 핀 걸 보고 한 관광객이 "기막힌 조화"라며 연신 카메라 셔텨를 눌러댔다. 기자도 셔텨를 눌렀다. 하지만 이유는 달랐다. 앞으로 5년만 지나도 이 천상의 풍광은 사라질지 모른다는 조바심이 더 컸다. 지금 영덕의 복숭아 세상이 1600년 전 중국 무릉의 복숭아 들녘처럼 다시는 찾아갈 수 없는 곳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축제 정보 : 영덕군청 054-734-2121, 영덕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http://tour.yd.go.kr 가는 길 : 영덕은 서울에서 참 멀다. 승용차를 이용한다면 5시간은 족히 걸린다. 방법은 두가지.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서안동 나들목에서 나온다. 거기에서 34번 국도를 타면 영덕읍까지 70㎞ 거리. 가는 중간에 복사꽃 군락지가 있다. 또 다른 방법은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동해안을 따라 내려가는 길. 6시간은 각오해야 한다. 숙소 : 영덕 축제가 열리는 강구항 근처에 몰려 있다. 영덕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에 모두 53곳의 호텔.모텔.여관과 504곳의 민박집에 대한 정보가 있다. 민박집 대부분이 모텔급 시설을 갖췄다. 요금은 주중 3만원, 주말 4만원(4인 1실 기준). 모텔은 주중 4만원, 주말 8만원(2인 1실 기준). 대게가 물린다면 물회를 추천한다. 잡다한 생선회를 갖은 야채와 함께 고추장에 비빈 뒤 물을 부어 국처럼 떠마신다. 대부분의 식당에서 먹을 수 있다. 1인분에 1만원. |
>> 꽃놀이만 하고 가기 아쉽다면
꽃놀이하러 그 먼길을 떠난다지만 꽃구경만으로 여정을 다 채울 수는 없는 노릇. 영덕이 자랑하는 다른 명소를 소개한다.
■ 해안도로 드라이브 : 강구항에서 병곡까지 30㎞나 이어지는 7번 지방도로는 소문난 해안도로 드라이브 코스다. 해맞이공원을 지나 대게 원조마을인 경정리, 축산항, 대진항을 거쳐 대진해수욕장에서 고려불해수욕장까지 명사20리 길이 펼쳐진다. 갯내음 물씬 풍기는 시골 어항의 정겨운 모습이 동해와 함께 이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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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보산 : 7번 국도를 타고 울진으로 올라가기 직전에 칠보산 진입로가 있다. 그때부터 마음을 다잡도록. 경사와 굴곡 모두 심한 산악도로가 8㎞나 이어진다. 최고속도 20㎞ 구간을 한없이 오르다 보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편으로는 칠보산 자연휴양림이, 오른편으로는 신라 때 지었다는 유금사가 있다. 두 곳 모두 갈림길에서부터 2㎞쯤 자갈길을 거쳐야 한다. 특히 유금사가 있는 금곡3리는 산골 깊숙이 박힌 오지마을이다.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경험이다. 자연휴양림은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전국 휴양림 가운데 가장 고도가 높고, 유일하게 바다 조망이 가능하다. 시설도 우수하다. 워낙 인기가 좋아 주말에 숙박을 하려면 최소한 한달 전에 예약해야 한다. 054-732-1607, www.huyang.go.kr |
■ 기타 : 7번 국도를 타고 포항으로 넘어가기 직전 경보화석박물관이 있다. 한 개인소장가가 20여년 동안 20여개 나라에서 수집한 화석 2000여점을 전시한다. 국내 유일의 화석 전문 박물관이다. 054-732-8655, www.hwasuk.org
강구항 바로 아래의 삼사해상공원은 유명한 해맞이 명소다. 34번 국도상에서 영덕읍 진입 5~10㎞ 사이의 오천솔밭.삼화리(옛 삼협마을)는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복사꽃 사진 명당이다.
발췌 : 애니카 라이프 > 자동차로 떠나는 여행 > 주말 가족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