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 입고 임종 맞은 남편, “천사를 봤다”
6일 오후에는 서울 북아현동에 살고 있는 김복림 씨(54)를 찾았다. 북아현동 언덕빼기에 빼곡히 들어찬 집들 사이로 그녀가 산다는 단독주택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안이 캄캄하다. 갑자기 쏟아진 비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가만 보니 집안의 문들이 모두 닫혀 있다. 그런데도 김씨는 불을 켜놓지 않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방안에 빗소리만 그득했다. 방들은 방금 청소를 한 것처럼 깨끗하다.
“말도 못하고 꼼짝을 못해도 그 양반이 누워 있을 때는 문을 열어놓았었는데, (남편이) 가고 나니까 혼자 있는 게 무서워서 항상 문을 닫아요.”
김복림 씨는 지난 8월 폐암으로 보낸 남편을 떠올리고 내내 눈물을 훔쳐냈다. 아들과 함께 사는 그녀는 아들이 회사에 가고 없는 낮 시간에 이렇게 혼자 빈 집을 지킨다. 김씨의 남편은 오랫동안 고생하다가 세상을 뜬 경우다. 지난해 4월에 자각증상을 느끼고 병원에 갔던 것이 시작이었다.
“종아리랑 허리가 아프다고 해서 병원에 갔더니 디스크래요. 그래서 한약방에 계속 다녔죠. 그런데 아무리 약을 먹어도 나아야 말이지. 다시 병원에 갔더니 폐에 물이 찬 것 같다고,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랬더니 폐암 말기라는 거예요. 길어야 3개월 남았다고 했는데, 올 여름 가셨으니 오래 살다 가신 편이에요.”
그녀는 아직 빈 병상을 치우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믿고 의지하는 사람을 위해 그녀가 1년 넘게 헌신한 장소였다. 그녀는 아직도 남편이 임종맞이를 준비하던 며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가시기 전 날이었어요. 마침 친구들이 방문을 와서 여럿이 함께 목욕을 시켰어요. 머리도 감기고 손톱까지 깨끗하게 깎아줬거든요. 한두 사람이 하기는 힘들거든요. 이 양반이 그때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 물 한 모금 입에 안 대고 소변을 조금 본 것밖에는. 다음날 밤 9시쯤 됐는데 문득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히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회사 출근하던 양복 차림으로 갈아 입혔어요. 그리고 바로 11시쯤 눈을 감았어요.”
폐암으로 앓던 때의 고통을 겪던 것과는 달리 하도 깨끗하게 세상을 뜬 것을 그녀는 천만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딱 두 번 눈을 깜박거리고는 잠들 듯이 스르르 눈을 감아버렸다고.
김씨는 희한한 일을 경험했다고 한다.
“죽기 며칠 전이었는데,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놀란 표정을 짓는 거예요. 그때까지 한 마디 말도 안 하고 죽은 듯이 누워 있었거든요. 그러더니 앞을 보면서 손을 두 번 이렇게 흔들었어요. '뭐가 보여요?' 했더니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웃는 것 같았어요. “천사가 보여요?” 제가 물었더니 글쎄 이 양반이 엄지손가락을 추어 들지 않겠어요?”
이 일로 김씨는 남편이 천국에 갔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녀가 한 가지 후회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남편을 빨리 놓아주지 못한 것이라고 했다. “절대로 데려가면 안 된다”, “살려달라”며 신에게 끊임없이 기도를 했던 것. 1년도 넘게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남편을 지켜보던 그녀가 드디어 손을 놓아준 것은 바로 '천사를 봤다'던 전 날이었다고 한다.
“기도원에 갔지요. 거기서 처음으로 '남편 데려가셔도 좋다'고 기도했어요. '살려줄테면 얼른 일어나게 해주고 데려갈 거면 빨리 데려가라'고. 그랬더니 다음 날 천사를 봤다고 하고서 며칠 후에 눈을 감은 거예요. 신랑 시집보내기가 이렇게 힘들 줄이야….”
영혼은 2∼3일 동안 서서히 빠져나와
이처럼 누구나 죽음을 맞는 과정을 경험한다고 한다. '임종과정'이라 불리는 이 단계는 사망하기 2∼3일 전쯤 시작된다. 몸이 극도로 쇠약해지고 기운이 떨어진다. 호흡이 불규칙하거나 약해지고 식사량과 배설량이 줄어든다.
이상한 것은 대부분 '헛것'을 본다는 것. 기독교인인 경우 '하나님을 봤다', '천국을 봤다'거나, 비종교인인 경우 어머니나 아버지 또는 이미 고인이 된 친척들을 보고 '문앞에 서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귀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는 사람도 있다.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없지만 종교계에서는 이것을 영적 세계를 경험하는 것으로 얘기한다. 죽음의 세계로 돌입하기 전, 영혼의 반이 빠져나가 '이승과 저승에 반쯤 걸쳐 있는' 경우라는 것이다. 이것을 최 선생은 이렇게 설명했다.
“장갑을 끼었다 벗으려면 손이 빠져 나오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우리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갈 때는 대개 2∼3일 정도 걸리는 거죠. 이보다 더 일찍 일어날 수도 있고요. 그때 잠깐잠깐씩 양쪽의 세계를 다 보게 되는 것입니다.”
3년 전 선고받은 전춘수 할머니
“외로운 게 무섭지, 죽는 게 머시 무서버?”
기적처럼 살아 아직까지 정정하신 분도 있다. 서울 방배동에 사는 전춘수 할머니(74)가 그 주인공. 전 할머니의 상태는 위암에서 폐, 뇌, 뼈에까지 종양이 전이된 상태다. 본인도 이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다. 게다가 골다공증까지 겹쳐 거동이 불편할 줄 알았다. 하지만 전 할머니는 도저히 말기 암환자라고는 볼 수 없었다. 전 할머니는 방배동 은파 복지소에서 혼자 생활을 하며 국가가 주는 생활 보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가정 형편으로 봐도 나이로 봐도 이틀간 만난 암환자 중 가장 불리한 경우였다.
그런데, “위암…이시죠?” 하고 조심스럽게 확인차 물었더니, “아니, 아니야. 폐암이야. 3년 전에 폐에 종양이 생겼다고, 얼마 못 산다고 그랬어∼” 하며 눈을 흘긴다. 그것도 마치 옛날 얘기 들려주는 듯한 목소리로. 병원의 진단 차트를 확인하고 다시 '위암인데요' 했더니, 폐암이라고 우긴다. 무슨 감기 걸렸다는 듯이 말씀하시는 폼이 천년만년 장수할 기세다.
3년 전에 말기암 선고를 받았다는 것부터 신기하다. “1년도 못 한다고 했는데 3년을 살았응께.”
남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약이나 치료의 혜택을 더 못 받았다는 것이다. 딸 셋이 있지만 모두 형편이 빤하고 전라도에서 먹고 살기 바쁜 터에 어머니 곁에 있어줄 수가 없다고 한다. 무엇보다 할머니가 내려가고 싶지 않다고.
“나 살고 즈그들 돈 다 써버리면 뭣해요? 아니, 어차피 오래 못 산다고 그랬어요. 그러구, 난 살만큼 살았어! 죽는 거 걱정 안 해요. 딸들이 의사 앞에 데려가서 수술받아 보자는디 '에그, 무서버서 죽고 말지!' 하고 냅다 한마디 던지고 나와부렀어요.”
암을 무시해버린 것이다. 할머니에게 암보다 더 무서운 것은 '외로움'이라고 했다. 전 할머니라고 안 아플까. 가끔 2∼3일씩 드러눕는 경우가 있는데, 어느 날 혼자 그러고 누워 있으니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리더라고 했다. 그것을 발견하고 할머니의 사연을 들은 복지소 봉사자가 호스피스 기관에 연락한 것.
할머니는 그래도 요즘 행복하다고 했다. 둘째 사위가 없는 형편에 매달 70만 원어치의 약을 보내고 주위의 봉사자들이 매일 찾아와주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일찌감치 죽음의 위협을 떨쳐버렸다.
“죽을라믄 벌써 세 번은 죽었을거요”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고생한 터에 이제 왠만한 어려움도 대수롭지 않다는 것. “영감이 마흔둘에 죽어 자식 새끼들을 혼자 키웠”고, 원래 아들 둘이 있었는데, “한 놈은 위암으로 먼저 세상을 뜨고 그걸 본 또 한 놈이 심장마비로 뒤따라 갔다”고 했다. 또 그때까지 모았던 재산은 아들 죽고 며느리가 다 가져가 버렸다고 한다.
“아프고 외로우까봐 무섭지, 죽는 게 머시 무서버?”기자가 이틀에 걸쳐 방문한 사람은 총 6명. 그 중 유가족인 김복림 씨를 빼고 나머지 다섯 명이 말기 암환자였다. 이 중 네 사람이 폐암 환자, 또 그 중 세 사람이 여자다. 60세 정모 씨와 49세 신모 씨는 말 한마디 못하고 누워 있는 경우였고 경기도 일산 69세의 한 할아버지는 몸만 쇠약해졌을 뿐 아직 정정해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 이 세상 분이 아니다. 10월 15일 일산의 할아버지를 끝으로 한 달 사이에 차례로 숨을 거두었다. 특히 60세 정모 씨의 경우 독일에 사는 딸이 와서 간병을 하다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돌아간 후에 사망했다.
그리고 또 신희정 씨가 위독하다는 소식과 전춘수 할머니가 기력이 조금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먼저 가신 분께 애도의 마음을, 살아 계신 분께 평화의 기도를 고개 숙여 올린다.
호스피스 최화숙 선생이 말하는 잘 죽는 방법 7가지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
1. 진실되고 정직하게 살아라
임종을 맞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제일 먼저 후회하는 것은 그동안 자신이 해온 나쁜 일에 관한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도록 노력하자. 남이 보아주든 아니든 우선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자녀들 보는 앞에서도 떳떳하게 눈을 감을 수 있다.
2. 사랑하며 살아라
이 세상은 사랑만 하고 살기에도 충분히 모자라다. 우선 가정을 중요시하고 가족을 사랑하자. 따뜻한 정을 나누며 사랑을 베풀수록 죽을 때 함께 울어주는 사람이 많다. 빈소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쓸쓸한 죽음, 꽃 한 송이 없는 썰렁한 빈소도 있었음을 알리고 싶다.
3.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어라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내가 한낱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형편이라도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반을 건네보라. 그는 평생 당신에게 고마워할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와 가족을 위해 관심을 보내고 내가 가진 건강과 시간과 돈을 주어라.
4. 죽음과 관련된 책을 읽고 공부하라
죽음은 모든 사람들의 삶의 일부이다. 눈앞에 닥쳤을 때 당황하지 않으려면 미리 공부해야 한다. 매일같이 죽음을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평소 책 한두 권쯤은 읽어둘 필요가 있다. 병에 걸렸다면 그 질병에 관한 전문서적까지 읽어보기를 권한다.
5.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라
죽음에 대한 느낌과 의미를 나누는 워크숍이나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은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유익한 기회가 된다. 때로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내 장례식은 어떻게 해주기를 원하는가”, “내가 입던 옷이나 아끼는 물건들을 어떻게 처리해 주기를 원하는가” 등에 대해 서로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6. 유언장을 작성해 두어라
생일날 저녁에 유언장을 작성해보아라. 매년 생일을 맞을 때마다 지난 일 년간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다가올 새로운 한 해의 삶을 계획하면서 “금년에 죽는다면?” 하는 마음으로 매년 업데이트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번 뉴욕 테러와 같은 예기치 않은 일을 만나게 되어도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이다. 물론 유언장이 실제 효력을 발휘하려면 공증이 필요하지만.
7. 종교를 갖거나 관심을 보이고 공부해 보라
죽음은 현실이지만 철학적 명제요, 종교에서 많이 다루는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죽음이나 내세와 관련된 종교적 교훈에 유념하여 성찰하고 평소의 삶을 잘 꾸려 나간다면 훨씬 풍요롭고 너그러운 삶이 될 것이다. 위엄 있고 숭고하게 죽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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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유나니 기자(nani@chosun.com)┃사진·허재성 기자, 조선일보 DB┃도움·이화여대 최화숙 호스피스 책임자 (02-312-4100·www.24hospic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