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62년도에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두어해 동안 집에서 농사일을 돕다가 공부를 계속 해야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로부터 중학교 강의록을 받아 보게 되었다. 그러나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를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고 영어와 수학은 혼자서 공부하기에는 너무 어려워 조금 보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다가 같이 초등학교를 졸업했던 동기들이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자 나도 그들에게 뒤져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배움에 대한 욕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고급공무원 시험이나 사법시험과 고등고시 응시자격에 대학졸업자 라는 학력제한이 있었으며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사람들은 '사법 및 행정요원 예비시험'에 합격하여야만 이들 시험에 응시할 수가 있었다. 나는 이 시험에 합격하여 고급공무원이나 국가고시에 합격하는 것만이 동기들을 따라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시험 응시를 위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하여 신문배달, 행상, 연탄배달 등을 하면서 공부를 했지만 생활이 여의치 못하여 끝내는 시험 한번 쳐보지 못하고 군대를 가게 되었다. 그 시절의 어려움을 여기에 모두 쓰려면 끝이 없을 것 같아 생략하기로 한다.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를 하자 각종 국가고시에 학력제한이 철폐되고 내가 준비하던 시험도 자동적으로 학력이 폐지되어 버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법시험에 응시할 생각으로 법학공부를 시작하였고 공부할 시간이 많은 탄광 광부, 출판사 수금사원 등을 하면서 틈나는 데로 공부를 계속하여 사법시험(1차)에도 두어 번 응시해본 경험이 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적어도 국가에서 시행하는 시험에는 학력제한이 없기 때문에 학력에는 그리 연연하지 않았으며 검정고시를 치러야 겠다는 생각도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1978년도에 우연한 기회로 현 직장인 임업협동조합(당시 산림조합)에 입사하게 되었고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같이 입사한 동료들의 신상명세를 보게 되었는데 동료들 중에 나만이 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이었고 학력 때문에 호봉사정에서도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 때부터 정식으로 학력 취득을 위한 공부를 시작하였다. 1980년도에 처음으로 고등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에 응시하기 시작하여 영어와 수학 때문에 3년만인 1982년도에 전과목을 합격하였고 1983년도부터는 고등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를 시작하여 1985년도에 전과목을 합격하였고 공교롭게도 그 해에 호봉을 조정하는 기회가 있어서 두호봉을 더 받았다. 그러나 그때는 대학을 독학으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학력을 취득할 길은 없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내가 몸담고 있는 직장과 관련된 임업분야의 기술자격을 획득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하여 필요에 따라 두서 없이 습득한 임업에 관한 지식을 좀더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하였고 1988년도에 산림경영산업기사(당시의 영림기사2급) 시험에 도전하여 합격하였다.
o 학위취득시험에 도전
- 도전 과정 1990년도에 독학에 의한 학사학위 취득시험이 시작되었다. 나는 이제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전공을 이전에 공부를 한 적이 있는 법학으로 결정하고 시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 기분으로는 1년만에 전 과정을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에 한해에 4단계 전체시험을 치르지 않는 것이 답답하기만 했다. (1993년도부터 한해에 전 단계 시험을 모두 치르게 되었음) 그러나 내 그런 자신감과는 달리 1990년도에 치러진 1단계 교양과목에서 국사와 영어를 제외한 나머지 과목만 합격하였고, 1991년도에는 불합격한 1단계 시험과목 중에 국사만 합격했으며 2단계 전공기초과정에서는 상법I를 제외한 나머지 과목은 모두 합격하였다. 1992년도에는 1단계 시험에서 영어를 합격하여 1단계를 모두 통과하였으나 2단계 시험에서 상법I은 또 합격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3단계 전공심화과정에서는 상법II를 제외한 나머지 과목을 모두 합격하였고 틈틈이 임업분야에 대한 공부를 겸하여 산림공학기사(당시 영림기사 1급)시험에 합격하였다. 1993년도에 2단계 시험에서 상법Ⅰ을 합격하여 2단계를 모두 통과하였으나 3단계에서 상법II는 또 합격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시험공부 중간에 내 업무에 필요한 부기를 공부하여 여고생들 틈 사이에서 치른 부기2급 시험에는 합격하였다. 1994년도와 1995년도에는 3단계의 상법II 한과목만 응시하였으나 계속 불합격했고 그 때문에 시험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지만 지금까지 해 놓은 것이 너무 아까워서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이 되지도 않는 공부를 계속 한다며 흉을 볼 것 같아 공부를 하는 것이나 시험을 친다는 것을 남들이 모르게 주위 사람들과 적당히 놀아주면서 공부를 하였다. 1996년도에는 3단계의 선택과목인 상법II가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 노동법으로 바꾸어서 하기휴가 1주일 동안 아무 곳에도 가지 않고 집에서 책과 씨름하여 공부한 결과 3단계를 완전히 통과하게 되었고 대망의 학위취득 종합시험에 응시하게 되었다. 그리나 4단계는 1996년도, 1997년도 2회에 걸쳐 불합격하고 딸아이가 대학교에 진학한 1998년도에 가장 경제적인 점수로 정말 아슬아슬하게 합격하였다. 시험을 치고 나서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여 합격자 발표에도 그리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가 혹시나 해서 합격자 발표일이 지나고 그 다음 일요일에 집안식구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방송통신대학 부산지역 학습관으로 갔다. 여기 저기 게시판을 살펴보았으나 합격자 명단이 부착되어 있지 않아 당직자에게 물어보려고 건물 안을 돌아다니다 보니 자동증명발급기가 눈에 들어왔다. 혹시나 하면서 300원을 넣고 지시하는 데로 작동을 하였더니 성적증명서가 나왔는데 1, 2, 3단계 합격 년도와 함께 4단계 성적이 인쇄되어 있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총득점 361점, 평균60.17이었다. 생각 밖으로 형법에서 72점이 나와서 총득점이 361점이나 되었고 총득점의 60%인 360점이 넘어 합격한 것이었다. 1990년도에 시작한 독학학위 취득시험을 장장 9년만에 합격한 것이다. 합격을 확인하고 나니 마치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먼길을 걸어오던 나그네가 목적지에 다다라 그 짐을 벗어버린 것 같은 너무도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고 그 자리에서 집으로 전화를 걸어 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합격하였음을 자랑(?)하고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음악을 크게 틀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제 다시는 사서 고생하는 이런 시험은 치지 않을 것이라고. 평소에는 떠들썩하게 벌리는 각종 행사를 낭비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래서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면 잘 참석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너무나 어렵게 취득한 학사학위인지라 학위 수여식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망설이던 차에 가족들의 권유와 상경 경비까지 마련해 주면서 학위취득을 축하해준 직장 동료들의 격려로 1999년 2월 1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학위 수여식에서 학사모를 쓰고 학사학위증을 받았다.
- 공부방법
나는 1990년부터 개인용 컴퓨터를 가지고 업무에 활용하였으며 지금도 거의 모든 업무에 컴퓨터를 활용하고 있다.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떠한 경우라도 직장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공부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그래서 짧은 시간에 최대의 효과를 거두기 위하여 가능하면 분량이 적으면서 기본에 충실한 책을 골라서 처음에는 책을 전체적으로 한 번 자세히 보면서 워드프로세서로 주요 항목과 내용을 요약하여 노트처럼 작성하고 그 다음에는 노트로 공부를 하다가 모르는 부분은 연필로 체크를 한 후 책을 찾아보고 내용을 확실히 습득하였고 그 다음부터는 연필로 체크를 한 부분만 보면서 확실히 알게되면 체크한 것을 지우는 방법으로 공부를 하였다. 이렇게 하면 처음에는 한 번 보는데 한 달이 걸리던 것이 그 다음에는 일주일이면 가능해지고 다음에는 5일, 마지막에는 하루에 한 과목씩도 볼 수가 있게 된다. 그리고 시험에 떨어지게 되면 그 다음에는 떨어진 원인을 분석하여 우선 노트를 보완한 다음 보완된 노트로 다시 공부를 하였기 때문에 내가 작성한 노트의 두께는 시험을 치른 회수에 비례한다. 그리고 시험을 치고 나면 언제나 좀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바로 다음날 부터 시험 준비를 하지만 며칠을 못 가서 나태해 지고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는 느긋한 마음으로 거의 1년을 보낸 후 다시 원서를 제출하고 나면 그때서야 다급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되는데 좀더 꾸준히 공부를 하였더라면 한두해 더 빨리 합격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o 요즈음에는
독학에 의한 학사학위 취득시험에 합격한 후 당분간 쉬다보니 할 일없이 지내는 것이 무료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내가 근무하고 있는 임업분야의 기술자격 중에서 최고인 산림기술사 자격을 취득하기로 마음먹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1999년 7월에 산림기술사 시험에 응시,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을 거쳐 9월에 산림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리고 내가 어렵게 공부를 하였기 때문에 나와 같이 어려운 처지에서 공부를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독학네트워크 자원봉사자로 지원하였고 내가 공부하면서 정리한 노트의 일부분을 한국방송대학교 PC통신 (천리안,하이텔,나우누리 GO KNOU 독학학위검정부 자료실) 및 인터넷(http://www.knou.ac.kr/office의 독학네트워크 학습자료실)에 올려 놓았으며, EMAIL과 전화 등으로 상담을 하고 있다. 또 산림 기술사 시험에 관한 노트는 농림수산 정보센타의 임협방(NFCF)에 올려놓았다.
나는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고는 철이 들고 부터 아직까지 책을 완전히 멀리한 적이 없다. 항상 책을 곁에 두고 잠시라도 무료한 시간이 있으면 책을 보곤 했으며 독학학위 취득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다시는 공부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지만 또 산림기술사 시험을 쳤다. 그리고 요즈음에는 뚜렷이 공부를 할 것이 없어서 월간지 고시연구를 보고있지만 결국 나는 또 무엇이든 공부를 해야하고 어떤 시험이든 시험을 쳐야하는 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이래서 인간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하여야 한다는 말이 생겨난 것 같다. 그리고 이 기회를 빌어 그 동안 공부를 한답시고 모든 일에 좀더 신경을 써주지 못한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며 학위취득을 자기 일처럼 기뻐해 준 직장동료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o 나는 1949년 생으로 1962년도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학교(학원) 교육은 단 한번도 받아 본적이 없으며 1978년도에 임업협동조합(당시 산림조합)에 입사하여 1982년도에 고입 검정고시 1985년도에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1999년도에 독학에 의한 학사학위(법학) 취득시험에 합격하였으며 1988년도에 산림경영산업기사(당시 영림기사 2급) 1992년도에 산림공학기사(당시 영림기사1급) 시험에 합격하고 1993년도에 부기2급 1999년도에 산림기술사 시험에 합격하여 1999년 12월 현재 양산시임업협동조합 상무로 재직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