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29:1-6> 신년 나팔을 불라 , 유대인의 신년 나팔절, 복음의 나팔, 기도의 나팔을 불라
1. 유대인의 신년 맞이 (로쉬 하샤나) - 나팔절 (욤 테루아, 쇼파르)
※ 로쉬: 머리, 시작 / 하샤나 :년,해 / 인사말: 샤나 토바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2022년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누구나 새해를 맞이하면 새해에는 뭔가 새롭게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2021년을 코로나로 혹독하게 보낸 우리 모두는 더더욱 2022년에는 코로나도 종식되고 더 좋은 일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태양력으로 1.1일을 신년의 첫날로 보내고, 또 음력 1.1일을 설날로 정하여 명절로 지내고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도 유월절이 있는 니산월 (태양력 3,4월)을 유대력(종교력) 1월이지만 (출 12:2), 티슈리월 초하루인 7.1일을 또 신년의 첫날로 지키고 있습니다 (태양력 9~10월), 오늘날 유대인들은 실제로 이날부터 2박3일 동안 흰옷을 입고 절기를 지키는데 쇼파르(나팔)을 불며 한해 동안 자신들이 지은 죄를 회개하며 기도하면서 보냅니다. 그리고 사과를 꿀에 찍어 먹습니다. 또 이들은 죄를 씻기 위한 상징으로 강이나 냇가로 가서 기도하며 죄의 상징인 빵을 물에 던지기도 합니다. (타슐릭)
성경적으로 본다면 이날은 월삭(매월 초하루)이기도 하므로 절기가 성대하게 지켜집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나팔절에 대한 말씀이 레23:24-25절에도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이날은 ① 성회로 모이고 ②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③ 나팔을 불고 ④ 그달의 번제와 소제, 상번제와 별도로 제물을 드립니다.
이에 대한 의미를 간단하게 살펴보고 오늘날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알아봄으로 신년의 시작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보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나팔절의 의미와 적용
1) 성회로 모인다는 것은 거룩한 모임을 가진다는 것이므로 오늘날 거룩한 예배의 모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새해의 시작을 예배로 하나님께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 첫날에 해돋이 구경 가고 거기서 떠오르는 해보고 소원을 빌고, 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피조물에게 소원을 빌고 죽은 조상에게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귀신을 섬기는 일입니다.
[고전 10: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떠 오르는 태양을 보고 소원을 빌면 태양신을 섬기는 죄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새해 시작부터 귀신들과 교제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모여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과 교제를 해야 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오늘 그래서 모인 것입니다. 참으로 탁월한 선택을 했습니다. 성경적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해에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해나 달에게 아무리 빌고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도 복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저주를 받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새해에 복을 받고 싶으면 예배의 자리에 있으시면 됩니다.
복이란 물질적인 복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아야 합니다. 구원의 복이 가장 큰 복입니다. 하늘의 복이 큰 복입니다. 성경 인물 중 괜찮은 인물은 다 예배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그리고 신약의 인물들도 다 예배자들입니다.
2022년에는 예배로 축복을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는 것은 안식과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안식일 곧 주일에 다른 것 하지 않고 교회에 옵니다.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신 것은 천지창조가 하나님 뜻대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창조의 시초에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 가운데 있었지만 (창1:2) 이런 것들을 하나님께서 조화롭게 질서 있게 하나님 뜻대로 돌아가도록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 우주 (COSMOS, 질서)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죄로 인하여 온 세상이 사망의 땅이 되어 흑암과 그늘 가운데 있었는데 죄의 문제를 해결하심으로 세상을 재창조하여 안식을 가져오시는 것입니다. 주님 재림하실 때 완전한 창조와 완전한 안식이 주어질 것입니다.
[마태복음 4:16]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12:8, 눅6:5)
오늘날 우리들에게 적용해 본다면 주님 안에서 땅과 하늘인 곧 영과 혼과 육이 재창조되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을 때 진정한 안식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신년 첫날에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단지 일을 하지 말라는 차원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죄의 문제가 해결됨으로 영혼육이 재창조 되어 진정한 안식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주님 외에는 오늘날 우리에게 참 안식을 주실 분도 없습니다. 주님 외에 참 안식을 누릴 곳도 없습니다. 주님 안에 거할 때 가능합니다. 단지 일을 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의 주인되신 예수님 안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사탄에게 속해 있다면 안식이 있을까요? 사탄은 안식을 주지 못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죽이고 멸망하게 하고 도둑질합니다 (요 10:10), 어리석게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세상의 것으로 안식을 누리고자 찾아 다닙니다. 세상은 죄로 물든 곳이기에 결코 진정한 안식이 없습니다.
홍천 비발디를 가본 적이 있습니다. 레저 왕국 같았습니다. 그런 공기 맑고 자연경관 멋진 곳에서 잠시 휴식은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안식을 줄 수는 없습니다. 죄를 짓고 도망한 자가 잠시 그곳에 피한다고 하여 안식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안식은 없습니다.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있을 때 참 안식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3) 이날에는 양각 뿔 나팔(쇼파르)을 붑니다. 그래서 나팔절이라고도 합니다. 히브리어로 욤 테루아 라고 부릅니다. 중요한 것은 숫양의 뿔 나팔을 분다는 것입니다. 숫양하면 무엇이 생각이 나십니까?
▶ 숫양의 뿔과 관련이 있는 사건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바칠 때 등장합니다. 한 숫양의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아브라함이 숫양을 이삭 대신에 번제로 드린 것입니다 (창22: 13)
이전에도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짐승을 잡아 번제를 하나님께 드려왔습니다.
이삭 사건 이전에는 아브라함의 마음에는 번제물을 드리면 번제물을 하나님께서 취하신다는 의미로 번제를 드렸을 것입니다. 오늘 날 많은 우상숭배하는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물을 드리면 신이 와서 먹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이삭 사건을 통하여 숫양이 이삭 대신에 번제로 죽는 것을 보고 아브라함은 ”대속적 번제의 의미“를 깨달은 것입니다.
”숫양이 이삭 대신에 죽었다. 숫양이 죽음으로 이삭이 살아났다“
이후에 수많은 어린양들이 번제물로 드려졌는데 이제는 속죄의 의미로 드려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숫양의 뿔을 볼 때마다 이삭 대신 죽은 숫양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오늘날로 본다면 숫양은 바로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뿔 나팔을 분다는 것은 대속과 관련이 있고 예수님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① 그러므로 오늘날 뿔나팔을 분다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나를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원자임을 선포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참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숫양의 뿔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뿔인 것입니다 (삼하22:3, 시18:2).
[누가복음 1: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그래서 죽을 죄인이 제단으로 달려가 제단의 뿔을 잡으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왕상1:51, 아도니야가 솔로몬 왕을 두려워하여 제단 뿔을 잡음). 뿔은 우리를 구원하는 뿔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뿔 나팔을 분다는 것은 우리들을 구원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행동이요 고백인 것입니다.
② 또한 오늘날 우리들이 뿔나팔을 분다는 것은 대속적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십자가의 복음을 입술로 세상에 전파하는 행위입니다.
▶ 우리들의 복음의 입술이 오늘날 뿔나팔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외식하는 자에게 “나팔을 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 6:2). 입술을 나팔로 비유한 것입니다.
에스겔에게도 그를 영적 파수꾼으로 세우시고 나팔을 불게 했습니다. 이 때의 나팔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하는 에스겔의 외침입니다. 입술이 나팔이 되는 것입니다.
[겔 33:3] 그 사람이 그 땅에 칼이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우리 입술에 예수의 십자가의 복음이 터져 나올 때 입술은 숫양의 뿔나팔이 되는 것입니다.
어린양 되신 예수님이 모리아산에서 죽은 숫양처럼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사함을 얻고 의롭게 되어 살 수 있다고 외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모리아산은 바로 예루살렘성과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숫양처럼 모리아산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입술로 전하는 행위가 오늘날 뿔나팔을 부는 행위입니다.
2022년에는 할 수만 있는 대로 만나는 자마다 예수의 십자가 복음을 전하시는 뿔 나팔의 입술이 되시길 바랍니다.
③ 또한 뿔 나팔을 분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속죄의 은혜를 입은 자는 의롭게 되어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갈 수 있는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지 않고는 거룩하지 못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피로 죄 사함을 받는 우리들은 기도의 향단에 설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으로 성소 휘장이 찢으지심으로 (마27:51, 막15:38, 눅23:45) 제사장 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성소에 들어가 우리도 분향단 앞에 설 수 있는 은혜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의 뿔 나팔을 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의 뿔나팔을 부시면 하나님께서는 속죄의 어린양 되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④ 우리들의 입술로 뿔나팔을 불 때 하나님은 그 나팔소리에 반응을 하십니다.
[민수기 10:10] 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 번제물을 드리고 화목제물을 드리며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시리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부는 뿔나팔 소리를 들으시면 먼저 우리들을 기억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기억하다” (직카론)는 것은 생각나게 하다, 회상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뿔나팔소리가 들리면 하나님께서는 나팔소리의 의미를 기억하고 그 나팔소리의 의미대로 반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뿔나팔 소리를 들으시고 가만히 있지 못하십니다. 뿔나팔 소리는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하나님의 귀에 들리는 나팔소리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나팔소리는 하나님의 강림과 관련이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강림하실 때 나팔소리가 들렸습니다 (출 19장)
[출 19:16]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출 19:19]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그러므로 나팔소리가 하나님의 귀에 들리면 오늘날 우리들에게 강림으로 임재로 반응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이 영적 뿔 나팔을 불면 하나님의 임재의 간구 소리가 되어 임재를 경험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재림의 나팔소리도 마지막 때에 주님 임재의 모습입니다. 나팔소리를 많이 분 자가 그 재림의 나팔소리를 듣게 될 것이고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 나팔소리는 전쟁과 관련이 있습니다.
[민수기 10:9]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크게 불지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의 대적에게서 구원하시리라
오늘날 우리가 영적 전쟁을 할 때에 뿔나팔을 불면 하나님께서 대적으로부터 승리를 안겨 주실 것입니다.
▶ 나팔 소리는 시작을 알리는 나팔이기도 합니다.
출발의 의미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절기와 초하루에 나팔을 불어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출애굽시 광야에서 회중을 모으고 진영을 떠날 때 뿔 나팔은 아니지만 은 나팔을 불었습니다.
[민 10:2] 은 나팔 둘을 만들되 두들겨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영을 출발하게 할 것이라
출발의 뿔나팔을 부시면 하나님께서 앞서 가십니다. 그러므로 뭔가 새롭게 시작하여 출발할 때 나팔을 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신년의 시작에 뿔나팔을 힘차게 불러 하나님과 동행하는 축복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3. 이날은 평소에 드리는 것 외에 별도의 제물을 드립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이 신년절의 의미가 너무 크므로 하나님께서 지정한 제물을 정성껏 드립니다. (수송아지 1마리, 숫양 1마리, 일년 되고 흠 없는 숫양 7마리, 숫 염소 한 마리, 소제로 기름 썩은 고운가루)
이 제물은 평소에 드리는 번제물과 소제, 전제물 외에 추가로 드리는 제물들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이 모자라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하에 있는 모든 것들이 주님의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보는 것입니다.
[시 50: 10-12]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11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보물이 있는 곳에 우리 마음도 있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6: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보물을 하늘 창고에 쌓아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들의 마음을 소망을 하늘나라에 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은 우리들의 마음을 하나님 나라에 고정하는 못과 같습니다.
이 땅에 재물을 쌓아두면 우리들의 마음을 이 땅에 고정하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아간 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천국에 다녀온 간증자들의 간증을 들으면 우리들이 올려드린 재료로 천국의 집이 지어진다고 합니다.
많은 재료를 올려 드린 자와 그렇지 못한 자는 분명히 구별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이 땅의 자연 법칙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계산을 해 본적이 있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빼고, 나머지 감사헌금, 주일헌금 등의 합계를 해 본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100배를 해 보았습니다. 이 금액을 년간 수입과 비교를 해보니 연간 수입이 훨씬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드린 것의 100배 이상 갚아 주신다는 사실을 이로서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경제 원리는 최소한 30, 60,100배입니다.
나팔절에 평소에 드리는 헌물 외에 추가적으로 드렸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하나님 앞에 넉넉한 마음과 풍성한 마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4. 맺는 말
나팔절을 지나면 바로 속죄일과 초막절(장막절)로 이어집니다.
이것의 의미가 매우 큽니다.
유대절기 7.1일은 나팔절, 7.10일은 대속죄일, 7.15일부터 일주일 동안은 초막절로 지냅니다.
나팔절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대속죄일과 결국 초막절로 이어지게 됩니다.
나팔절은 마지막 나팔이 불려지면 주님이 오시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과 연관된 절기입니다. (고전15:51)
주님이 재림하시면 나팔절이 신년이듯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대속죄일이 되면 온 국가적으로 죄를 회개하고 속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러므로 나팔소리는 심판이 있음을 알리는 경고의 소리요 회개를 촉구하는 소리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나팔절로부터 대속죄일까지 철저히 회개하는 시간을 갖는 이유입니다.
이것은 주님 나팔소리와 함께 재림하시면 전세계적으로 대속죄가 일어나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될 것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대속죄를 통하여 신령한 몸을 입은 자가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것처럼 대속죄를 한 자가 영적 초막절, 장막절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장막절은 영적으로 본다면 추수하여 알곡을 창고에 저장하는 추수감사 절기입니다. 이것은 주님 오시면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서 알곡은 창고에 들이는 절기인 것입니다. 주님 오실 때에 알곡 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풍성한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팔절, 시작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연초에 대속죄의 회개를 통하여 마침내 영적 장막절로 들어가고 하나님 나라에 알곡으로 들어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