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금북 7주차(모래재→보광산→보천고개→행치재)
2008년 8월 4일(월요일) 맑음
▶ 개요
-. 06:03 기상
-. 06:25 조식
-. 06:55 야영지 출발
-. 07:20 모래재 도착
-. 07:33 모래재 출발
-. 08:13 보광사 입구 임도
-. 08:34 보광산(539m)
-. 09:05 395.4봉(삼각점 음성 476)
-. 09:07 고리티
-. 09:42 백마산 갈림길
-. 10:18 377.9봉(삼각점 음성 437)
-. 10:47 보천고개
-. 11:24 378.5봉
-. 11:58 가정자고개
-. 12:40 행치재(금일 한남금북정맥 종주 도상거리 : 12Km)
-. 14:30 행치재 출발
-. 14:55 증평 우체국 앞 도착
-. 17:35 증평 출발
-. 18:05 야영지 도착
*현재까지 한남금북정맥 종주 누계 도상거리 : 107.7Km
▶산행기
-. 06:03 기상
-. 06:25 조식
-. 07:10 야영지 출발
-. 07:20 모래재 도착
(라면에 아침밥 말아먹기)
(모래재 의병 격전 유적비 앞에서)
범이 형의 기상 신호로 자리를 틀고 일어난다.
간밤에는 소맥의 술기운과 산행의 피곤함으로 독방 텐트에서 완전 골아 떨어졌었다. 계곡이 워낙 시원하여 모기며 벌레들의 방해도 없다보니 생각보다는 편안한 잠자리였다.
범이 형이 새벽에 먼저 일어나 라면을 끓여 놓고 모두들 기상을 시켰다. 아침 식사는 어제 저녁에 미리 지어 놓았고 라면 국물에 말아 먹는다. 찬이야 김치면 그만이고....
미리 준비해 둔 과일이며 음료수를 배당하고 간단하게 배낭을 꾸려놓고 텐트를 철수 하고 야영지를 나서니 계획을 하였던 시간보다 많이 늦었다. 기상 시간부터 지키지 못하였다. 모두들 어제의 더위에 너무 지쳤었나보다.
야영을 한다는 것이 자유롭게 자연을 즐길 수 있지만 이렇게 준비 및 철수 시간으로 허비되는 시간을 감안 해야 할 것 같다.
모래재 고갯마루 조금 못 미쳐 도로 변에 애마를 주차해 두고 약간을 걸어서 올라간다.
-. 07:33 모래재 출발
(7주차 들머리 낚시터 입구)
어제는 모두들 지쳐서 촬영치 못한 모래재의병격전유적비 앞에서 출발 신고를 마치고 보광산으로 향한다.
날씨는 활짝 개여 있지 않고 안개가 자욱하다. 아마 오늘도 푹푹 찌는 더위가 우릴 시련에 빠지게 하지 싶다.
들머리는 보광산연수원 정문에서 2차선 34번 구 도로를 가로 질러 수암 낚시터 진입 도로를 따른다. 왼쪽은 가족 묘지이고 오른쪽은 논이다. 잠시 후면 낚시터이고 신설 도로의 굴다리를 지나 보광산 등산안내도 입간판 앞에서부터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 08:13 보광사 입구 임도
-. 08:34 보광산(539m)
(보광산 들머리와 고추장군 이정표)
(봉확사지 5층 석탑)
(보광산 정상비)
오른쪽으로는 시멘트 포장 소로이고 마루금은 왼쪽 산길을 따른다. 백두대간을 통해서 익히 알려진 괴산의 고추장군이 그려진 이정표가 보광산을 안내하고 서있다.
숲길로 접어들자 오른쪽에 큰 무덤들이 나타난다. 꽤나 행사 했을 어느 양반집 묘지라 문무석 상석이며 규모가 크다. 어제 택시 기사 분에게 전해 들었다며 삼래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따르면....
옛날 이곳에는 명주실 한 타래가 내려갈 정도로 깊은 우물을 가진 유서 깊은 절이 있었는데 명당을 차지하고 있는지라 어느 양반이 권력을 이용하여 절의 스님들을 쫒아 내고 자기네 조상들의 묘지 터를 만들었단다. 그러나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에는 후손이 끊어지고 멸문이 되었단다. 그래서 지금은 왕릉 같았던 무덤들이 황폐화 되고 있단다.
소나무 숲길의 한적한 소로를 따라 작은 봉우리 하나 넘고 내려서니 임도이다(08:13). 삼거리 이다. 왼쪽이면 보광사로 가는 차도이고 오른쪽으로 인도를 따라 마루금을 연결하다 잠시 후 다시 숲속으로 들어간다.
가스가 찬 날씨라 아침부터 후덥지근한 것이 오늘도 악전고투가 예상된다.
구릉을 지나 다시 오르막이 시작될 즈음에 왼쪽 사면으로 높다란 석탑이 서있다(08:28).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인‘괴산 봉학사지 5층 석탑’이다. 이곳 앞에도 문무석 상석이 도열한 무덤들이 있는 것을 보아 아까 그 무덤들의 가문들의 무덤 같다.
조금 전 임도를 따라 계속 올라오면 아마 이곳으로 바로 오나 보다.
다시 마루금을 회복하여 잠시 올라가니 삼거리 이고 왼쪽이면 보광산이고 오른쪽이면 고리티로 내려가는 삼거리 이다.
선두가 당연히 보광산으로 향했거니 하고 왼쪽으로 올라간다. 잠시 만에 검은 대리석 정상석이 있는 보광산 정상이다(539m 08:34). 둥근 마당 같은 운동장이다. 그란데 아무도 없다. 이눔의 구신들이 그대로 직행을 했구먼...
배낭을 소도구 삼아 한 컷하고 돌아 서는데 인기척이다. 놀래서 돌아보니 범이 형이 나타난다. 독실한 불교신자(?) 이신지라 보광사에 들려서 무탈 산행을 빌고 온단다.
-. 09:05 395.4봉(삼각점 음성 476)
-. 09:07 고리티
(395.4봉)
(고리티재에서 휴식)
다시 등로는 얌전한 산책로 같다. 오른쪽에 널따란 임도를 보고 안부에 내려서니 희미한 소로가 지나가는 4거리 안부다(09:04). 고추장군 이정표는 내려온 길로 보광산 40분, 직진이면 백마산 40분, 왼쪽은 둔터골 30분, 오른쪽은 소암 30분이라고 가르쳐 준다. 고추장군을 뒤로하고 마저 올라서면 395.4봉이다(09:05). 잡초 덤불속에 음성 476 삼각점이 있고 국토지리원에서 세워 놓은 안내문도 있다. 또한 ‘준.희’씨의 흰 푯말과 선답자들의 표지 기들이 형형색색으로 나부끼고 있다. 우리 산악회의 김내곤 선생의 빨간 표지기도 아직까지 달려있다. 조망이 없는 평범한 봉우리이라 그냥 지나쳐서 잠시 내려서니 큰 임도가 지나가는 고리티 황토 길이다(09:07).
임도를 가로 질러 숲 속으로 접어들면 ‘고리티 고개. 백마산 화살표’가 그려진 하얀 푯말이 나무에 걸려있다.
-. 09:42 백마산 갈림길
-. 10:18 377.9봉(삼각점 음성 437)
-. 10:47 보천고개
(백마산 갈림길 푯말)
(377.9봉)
(보천고개 노거수)
등로는 큰 요동은 없으나 잡목의 방해는 심하다. 작은 봉우리 서너 개 넘고 널따란 삼거리 안부를 지난다(09:42). 왼쪽 소나무에 왼쪽이면 백마산이고 오른쪽이면 주봉저수지라고 선답자가 푯말을 달아 놓았다. 백마산은 마루금이 아님으로 오른쪽으로 향한다. 이제부터 마루금의 왼쪽은 음성군이고 오른쪽은 괴산군이다.
성황당 흔적이 인지 돌무덤의 흔적이 있는 안부를 지나고 무궁화가 곱게 핀 무덤을 지나 길게 올라서니 377.9봉이다(10:18). 437 삼각점이 있고 ‘백곰 & 백곰2’가 달아 놓은 코팅지 표지도 있다. 오른쪽으로 산 아래로는 마을이 가깝게 내려다보인다. 멀리서는 충북선 열차 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묵은 무덤을 지나 가파르게 올라서 봉우리 하나 넘고 다시 가파르게 내려섰다가 봉우리에 올라서 왼쪽으로 벌목지대 사이로 주봉리를 내려다보고 오른쪽으로 완만하게 내려서면 2차선 아스팔트 도로가 지나가는 보천고개이다(10:47). 오른쪽이면 괴산군 소수면 방면이고 왼쪽이면 음성군 원남면 방면이다. 괴산 쪽으로 노거수가 푸른 녹음을 자랑한다. 괴산 보호수 85호인 느티나무 이다.
느티나무 그늘아래에서 더위를 피하며 쉬고 있는데 노인 한분이 작은 세발 오토바이를 타고 오신다. 아마 들일 나오셨나보다. 바나나를 건네며 인사를 나눈다. 그분은 이곳을 옥현고개라 하신다.
-. 11:24 378.5봉
-. 11:58 가정자고개
-. 12:40 행치재(금일 한남금북정맥 종주 도상거리 : 12Km)
(378.5봉을 오르며 되돌아 본 원남면)
(378.5봉)
(가정자고개)
(절개지에서내려다 본 행치재)
(행치재 기사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노인 어르신의 얘기도 들으면서 한참을 쉬다 올라간다. 노거수 옆 콩밭의 두렁을 따라 올라서자 널따라게 잘 다듬어진 무덤이다. 무덤의 가장자리를 따라 봉우리로 향하며 뒤돌아보니 음성의 원남면과 들녘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인다.
등성이를 회복하여 왼쪽으로 휘어지며 덤불속을 헤매다 살짝 올라서니 378.5봉이다(11:24). 잡초 속에 도엽명이 희미한 삼각점이 있고 나무에는 ‘준.희’씨의 하얀 푯말도 있다. 사방이 녹음으로 가려있어 그냥 지나쳐 간다.
이제 마루금은 괴산군을 뒤로하고 음성군 원남면 속으로 덜어간다. 등로는 큰 요동 없이 나아가나 잡초 덤불과 키 작은 잡목의 방해로 인해 여간 성가시지가 않다.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와 지면에서 솟아오르는 열기, 또한 잡초덤불의 방해로 인한 삼중고로 인해 속도는 더디어 지고 짜증은 높아가고...
겨우 벋어나니 시멘트 포장소로가 지나가는 안부이다(11:53). 소를 가로질러 검은 차양 막을 두른 인삼밭 뒤로 마루금을 연결하여 등성이로 올라서니 다시 잡초덤불속이다.
큰 유명산 등로도 아니고 한남금북정맥 답사 팀이나 겨우 지나다니니 등로가 정비될 수가 없기는 하겠다만,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열악하다. 여름 녹음 속에는 이 코스를 지나지 않는 일정을 잡아야할 것 같다. 겨우 겨우 참아가며 작은 봉우리를 넘는다. 열차가 달리는 소리가 가까이서 들린다. 지금 우리는 충북선 미송터널 위를 지나고 있을 것이다. 내려서니 다시 포장 소로가 지나가는 가정자 고개이다(11:58). 오른쪽이면 상노리이고 왼쪽이면 보천 방면이다.
무덤으로 올라서 등성이를 회복하니 다시 잡초 덤불속이다. 여긴 아예 밀림이라 미로 속을 헤매듯 나아간다. 다행히 잠시 만에 내려서니 또 포장 소로이고 무궁화가 곱게 핀 별장 같은 전원주택이 있다(12:02).
태양 빛이 너무 따갑다. 숲속이지만 방해꾼이 많아 왕짜증이고 다행히 간간히 만나는 산딸기를 따서 입속에 담으며 위로 받고는 올라간다.
고만 고만 연봉을 넘으며 지루하게 나아간다. 전신은 땀으로 젖은 지 오래고 시원한 물에 손이라도 잠시 훔치면 날아갈 것 같다. 배도 서서히 고파온다. 오늘 점심 식사는 행치재에서 매식을 하기로 하고 따로 준비를 하질 않았다. 그래서 인지 이놈의 행치재가 더욱 멀게만 느껴진다.
더디어 차량의 질주소리가 희미하게 덜려온다. 요번 봉우리만 넘으면? 또 아니다. 탈진 일보 직전이다. 이대로 그냥 주저앉아 버리고 싶다.
광명의 빛이다. 눈앞이 환하게 열리며 절개지 앞에 선다(12:25). 멀리 행치재 4차선 도로가 작열하는 태양에 이글거리며 지나간다. 절개지 아래는 석재상이다. 눈앞에 목적지를 두고도 나무 그늘에 앉아 나아가기가 싫다. 한참을 쉬다 절개지를 그대로 내려서 석재상 작업장 마당을 지나 굴다리를 통해서 도로를 횡단하여 올라서니 행치재이다. 반기문 총장의 고향방문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마을 진입로 입구에 걸려있다(12:40).
행치재 주유소 수도로 달려가 웃통을 홀라당 벋고는 수도꼭지에 머리부터 쳐 박는다.
모두들 주유소 그늘의 야외 의자에 앉아 오후 일정을 취소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은다. 역시 범이 형과 진욱이는 반대이나 나를 비롯하여 나머지 대원들의 찬성으로 오늘은 여기까지 하기로 한다. 그러고는 기사식당으로 달려가 우선 시원한 맥주로 갈증을 해소하고는 점심을 먹는다.
-. 14:30 행치재 출발
-. 14:55 증평 우체국 앞 도착
-. 17:35 증평 출발
-. 18:05 야영지 도착
(반기문 총장 생가터의 기념비)
(야영지에서 망중한)
(야영지에서 원시인으로 돌아가기)
에어컨 앞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요기를 하며 더위를 식히고 나니 생기가 돋는다. 오늘의 야영지를 물색하다가 어제의 그곳이 우리에게는 천해의 요새임을 새삼 느끼어 약간의 이동 시간을 투자하기로 하고 결정을 본다. 그리고는 여기까지 왔으니 반기문 총장님의 생가도 덜려보고 오늘은 증평읍에서 목욕을 하기로 한다.
총장님의 생가 터를 구경하고 음성에서 증평을 오가는 시외버스를 타고 증평읍에 도착하니 시골이지만 활기가 넘치는 것 같다. 우체국 앞 정류소에 내려서 목욕탕을 수소문하니 바로 근처이다(충북장 모텔 사우나).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오늘은 시간에 구애 없이 천천히 샤워를 하잔다. 땀에 젖은 옷을 빨래도하고...
목욕탕 주인아저씨의 추천을 받아 ‘화선집’을 찾아 자리를 잡고 별미 영양탕으로 이른 저녁을 해결하고 내일의 위한 약간의 간식과 과일을 사서 택시를 이용하여 요새로 원위치 하니 하루해가 너무 짧게만 느껴진다.
다시 다섯 체나 되는 콘도를 뚝딱 짖고 계곡 도랑가에 자리를 잡고 원시인으로 돌아가 얼마 남지 않은 소맥으로 목을 축이니 이 또한 큰 즐거움이라....
이 순간,
한낮의 왕짜증은 어느새 온데간데없고, 난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한 원시인이면 만족한 기라.
*현재까지 한남금북정맥 종주 누계 도상거리 : 107.7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