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신안군은 섬으로만 이뤄진 유일한 지방자치단체이다. 물론 거제·진도·완도 등이 있지만 모두 연륙교로 이어져 이제 섬이라기보다 육지라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신안이 품고 있는 섬은 모두 820여개. 홍도·흑산도·비금도·도초도·증도·우이도 ….
듣기만 해도 엉덩이가 들썩일 정도로 정겨운 이름들이다. 우리나라 3면에 흩어진 2300여 개의 섬 가운데 서남해안에만 2000개 가까이 몰려 있다. 그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신안군에 속해 있으니 ‘섬나라’로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다.
“하늘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섬으로 가는 길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기상 조건이 맞지 않으면 하릴없이 발길을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배에 몸을 실으면 마치 지중해로 섬여행을 떠나듯 낭만이 가득하다. 줄줄이 늘어선 섬들은 마치 아스팔트 위의 가로수처럼 아스라이 스쳐간다. 올 여름 해수욕을 즐기려면 섬으로 떠나 보자.
80m 높이 모래언덕 동양 최대
■신비의 섬 우이도
두텁게 뒤덮은 장마 구름으로 하늘은 온통 잿빛이다. 금세라도 한바탕 빗방울을 쏟아낼 듯하다. 비가 올 확률은 있지만 다행히 파랑주의보는 내려지지 않았다.
항구를 벗어난 배는 속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목적지는 신비의 섬이라 불리는 우이도. 귓전에 스치는 바닷바람이 시원하다. 배가 목포 앞바다의 놀도와 달리도를 지나면 신안군이다. 이름 모를 섬의 사열을 받으며 바다를 달리는 배는 팔금도와 안좌도 사이 해협을 지나 비금도에 이른다.
다시 출발한 배는 우이도 진리에 이어 목적지인 돈목선착장에 이른다. 목포를 떠난 지 약 3시간 만이다. 황소의 귀와 닮았다고 해서 불려진 우이도.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약 43㎞ 떨어져 있는 작은 섬으로 일부 사진작가들을 제외하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도 260년 전까지 수군 진이 자리했었고. 19세기 이 섬으로 유배왔던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저술할 만큼 어종도 다양하다. 대규모 파시가 이뤄져 일제 강점기 전까지는 소흑산도로 불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지금도 진리·돈목리 등 흑산도와 같은 지명을 이용하고 있다.
면 소재지는 1구라 불리는 동북쪽 진리에 있지만 관광지로서 우이도는 서남쪽의 2구인 돈목리를 꼽는다. 선착장에서 언덕을 넘어 마을을 지나면 널찍한 돈목해수욕장이 나타난다. 1500m 길이의 백사장은 개흙과 섞인 모래가 비단결처럼 펼쳐져 있다. 오로지 바다와 백사장. 그리고 언덕만 있는 ‘무공해 해변’이다.
넓은 백사장. 완만한 경사. 잔잔한 파도 등 서해안의 전형적 바닷가 풍경이다. 물이 빠진 백사장에서는 동네 아낙들이 허리를 숙인 채 모래를 뒤지고 있다. 우이도에서만 난다는 은빛조개를 캐는 것이다. 쫀득쫀득 씹히는 맛이 일품인 은빛조개는 생산량이 많지 않아 섬에서만 맛볼 수 있다.
돈목해수욕장 끝은 높은 모래언덕이 병풍처럼 가로막는다. 높이 80m로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바람을 타고 시시각각 모양을 달리하는데 유감스럽게도 2010년까지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일부 관광객들이 썰매를 타듯 언덕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에 많이 훼손됐기 때문이다.
모래언덕을 끼고 왼쪽으로 돌면 또다시 작은 해수욕장이 나타난다. 길이는 50m 남짓. 연인과 함께라면 둘만의 오붓한 공간으로 충분할 듯싶다. 그리고 그 너머로는 또다시 모래밭이 펼쳐진다. 큰대치미해변이다. 돈목해수욕장 크기의 모래사장인데 어디를 봐도 인공 시설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우이도로 들어올 수 있는 인원이 제한돼 있는 탓이다.
■자연산만 식탁에 올라
우이도 돈목리에서 다모아민박(061-261-4455)를 운영하는 박화진(56) 이장은 9대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 토박이다. 그는 조상들이 해 왔던 것처럼 파도와 싸우며 50여 년을 보냈다. 그러나 최근에는 우이도를 찾는 외지인이 늘면서 횟집을 겸한 민박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여느 민박과는 성격이 다르다. 원한다면 자연산 활어를 직접 잡아 그 자리에서 회를 떠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박 이장이 섬 주변 고기들이 잘 다니는 길목에 내려놓은 정치망 덕분이다. 그물을 내려놓고 하루 이틀 지나 들어올리면 팔뚝만한 민어부터 광어·갯우럭·참돔·줄돔 등이 가득하다. 박 이장은 손님이 원할 경우 직접 배를 몰고 바다로 나가 이 정치망을 들어올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식탁에 오른 회 한 접시는 4만원. 가격도 싼데 덤으로 나오는 음식은 더욱 맛깔스럽다. 직접 재배한 콩과 고구마를 이용해 만든 두부와 전분죽을 비롯. 밭에서 갓 따온 고추·상추 등 푸성귀도 다양하다.
이처럼 14가구가 살고 있는 돈목리에는 모두 민박이 가능하다. 방은 모두 100여 개로 숙박료는 계절에 관계없이 2만 5000원이다.
해당화 바람 타고 코끝을 자극하고
■그 밖의 가 볼 만한 섬과 해수욕장
▲비금도
새가 날아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최고의 포인트는 하누넘해수욕장. 수대선착장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선왕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인 언덕을 넘으면 멋진 해안 드라이브 코스가 나타난다. 간신히 차 한 대 지나갈 만한데 바다와 맞닿은 곳이 하누넘해수욕장이다.
하누넘은 바닷가에 서면 하늘과 바다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규모는 작으나 주변의 기암절벽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북쪽의 명사십리해수욕장의 명성에 가렸을 뿐 아니라 교통도 불편해 아는 이가 많지 않다.
명사십리해수욕장과 그 옆 원평해수욕장은 밤에 눈을 감으면 파도 소리만 들릴 만큼 고요한 바닷가다. 가로수처럼 늘어선 해당화의 향기는 코끝을 자극하고. 맑은 날 해질녘 석양의 붉은 노을이 환상적이다.
▲도초도
비금도 바로 아래 있는 섬으로 9년 전 두 섬은 다리로 연결됐다. 섬의 최남단에는 호리병처럼 안으로 쏙 들어간 시목해수욕장이 있다. 썰물 때는 약 3㎞까지 물이 빠질 만큼 경사가 완만하다. 해변 안쪽으로는 야영장이 있으며. 동쪽의 비포장 도로를 따라 언덕에 오르면 멀리 서남쪽으로 우이도가 한눈에 들어오고. 안으로는 해수욕장의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외달도
목포에서 6㎞ 떨어진 작은 섬이다. 해수욕장은 약 1㎞에 불과하지만 바로 옆에는 해수를 이용한 수영장이 마련돼 있다. 환경부와 해양수산부로부터 ‘전국 100대 아름다운 섬’으로 지정될 만큼 전경이 아름답다. 물이 빠질 때면 조개 채취 등 갯벌 체험과 가벼운 삼림욕도 즐길 수 있다.
■여행 메모
신안 섬여행은 목포에서 출발한다.
우이도는 하루 한 편 운항하는데 도초도를 들른 뒤 우이도로 향한다. 소요 시간 세 시간. 목포항에서 낮 12시 10분 떠나고. 우이도에서는 오전 7시 30분 출발한다. 1만 3300원.
비금도는 목포항과 북항에서 출발한다. 쾌속선은 비금도의 가산선착장. 차량을 실을 수 있는 차도선은 수대선착장으로 연결된다. 쾌속선은 50분. 차량도 실을 수 있는 차도선은 2시간 30분 소요된다. 쾌속선 1만 4900원. 차도선 7200원. 차량 운임 3만원. 성수기(7월 22일~8월 15일)에는 10% 할증된다. 차도선은 목포항에서 3편(오전 7시·11시·오후 3시). 북항에서 2편(오전 7시·11시) 출발한다. 쾌속선은 목포항에서 오전 7시. 오후 1시 20분 출발한다.
비금도의 원평해수욕장 옆 오란다회관(061-275-4620)에서는 꽃게무침이 별미다. 요즘 제철이라 살이 꽉 차 있고 뼈가 부드러워 씹는 맛이 일품이다. 한 접시(3만 5000원)면 네 명이 실컷 먹을 수 있다. 콘도식으로 지어 놓은 민박도 깨끗하다. 1박에 3만원(성수기 5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