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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한시연의 1호 팬이 되어드리겠습니다.”
도광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연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재빠른 도광의 손이 시연의 주먹을 막았다.
“멍들면 아포.”
해맑은 얼굴로 애교 섞인 목소리로 시연에게 말하는 도광이었다.
시연은 그런 도광을 노려보다 발로 도광의 정강이를 정확하게 찼다.
“악!”
“까불지마! 방실이!”
맞고 아프면서도 시연의 토마토같이 빨개진 얼굴을 보고 웃음짓는 도광이다.
“입술도장 처음이야?”
천진난만한 얼굴을 해서는 시연에게 묻는 도광.
시연은 질문을 받고 얼굴이 더 새빨개져서는 휙 뒤돌아 연습실을 뛰쳐나왔다.
도광의 입술 감촉, 시우의 입술 감촉이 시연의 머릿속을 꽉 채웠다.
둘의 전혀 다른 입맞춤에 얼굴이 점점 더 붉어지는 시연이었다.
시연은 거실로 빠르게 내려와 차가운 물을 마셨다.
도광의 느낌은 점점 차가운 냉수에 의해 묻혀져 가고 있었다.
“무슨 물배를 그렇게 채워?”
아! 깜짝이야!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는 시연은 시우의 목소리에 얼른 물을 내려놓고 뒤를 돌았다. 시우의 입술이 눈에 들어오자 이제는 시우와의 입맞춤이 떠오르는 시연이었다. 오늘 한시연 제대로 고생한다!
“연습 마쳤어?”
“…….”
시우의 목소리보다 시우의 입술이 시연의 정신을 빼앗았다.
“한시연.”
“네? 네! 뭐라고 하셨어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묻자 시우가 인상을 찡그렸다.
“정신일도 하사불성!”
시우의 말에 시연의 눈이 다시 또록또록 해졌다.
“오늘 가족들한테 다녀와.”
“네?”
시우의 말이 믿기지 않는 듯 시연이 다시 물었다.
“한번에 알아들을 순 없나. 가족들한테 다녀오라구.”
“정말? 정말요!?”
“몇번씩 묻지도 마.”
“꺄아!”
시연은 방금의 일도 모두 잊어버린 채 시우를 껴안았다.
“진짜죠? 진짜죠?”
아이같이 좋아하는 시연이 시우를 안고 방방 뛰었다.
시우는 자신의 목을 껴안으며 기뻐하는 시연을 보고 작은미소를 지었다.
“진짜 진짜 고마워요!”
시연은 정말 뽀뽀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족들을 못만난지가 벌써 어언 두달이다. 게다가 목소리도 못듣고. 엄마와 아빠, 시원이의 목소리가 그리운 적이 수도 없었지만, 이겨내야 가족들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시연은 꾹 참고 그동안의 시간을 견뎌내왔었다. 그런데, 시우가 가족들을 만나고 오라니!
그 소리에 기뻐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자신이 꼭 시우를 껴안고 있는 것도 잊은 채..
“뭐예요, 둘이?”
부엌으로 들어오던 시라이 젠이 시연과 시우의 모습에 깜짝 놀라 외쳤다.
그 소리에 시연은 바로 시우에게 떨어졌다.
그리고 시라이 젠에게도 천만불짜리 미소를 날리며 소리쳤다.
“나 집에 간다!”
그렇게나 좋을까. 시연은 폴짝폴짝 뛰었다.
좋아라 헤헤거리는 시연에게 시라이 젠이 다시 물었다.
“집에?”
시연이 고개를 마구 끄덕이며 웃었고, 어느새 부엌으로 PP멤버들이 하나씩 모여들었다.
“집에 가려고?”
똑같은 질문을 또 하는 후에게도 시연은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호. 우리도 가자!”
후의 갑작스런 깜짝 제안에 시연이 눈을 크게 떴다.
도광이와 시라이 젠도 들뜬 표정을 지으며 ‘나도나도’를 외쳤다.
“조폭사장님, 이 떨거지들은.”
“같이 가는거지.”
시우가 웃으며 말하자 시연은 고개를 도리질을 했다.
“안돼요. 좋은시간 방해하면 안되잖아요.”
시연이 말하고 있는 사이, 도광이 시연에게 다가와 말했다.
“난 같이 가두되지? 우린 비밀스러운 사이잖아.”
도광의 말에 모두가 시연과 도광을 번갈아 보며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시연은 얼른 도광의 발을 밟으며 부자연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비밀은 무슨! 하하! 그래! 그럼 같이 가자! 가려면 얼른 준비해!”
시연이 얼렁뚱당 말을 넘기며 모두의 등을 떠밀었다.
“가자구! 다같이 가자구!”
도광과 후, 시라이 젠까지 모두 시연의 집으로 향하는 길이다.
태혁이 운전하는 차에 PP애들이 탔고, 시연과 시우 둘이 시우의 차에 탔다.
시연은 오랜만에 오붓하게 가족들과 보낼 생각이었지만, 깨어진지 이미 오래.
좁은 집에 발디딜 틈이 없을거라 예상된다.
방실이만 아니었으면! 가족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텐데.
“조폭사장님.”
“왜.”
옆에서 운전하는 시우를 부르는 시연이다.
“고마워요.”
“뭐가.”
“이것저것 다요.”
“고맙다는 인사는 나중에 해. 이것도 내 비즈니스 중에 하나니까. 한시연이 컨디션이 좋아야 관리하기 쉬우니까 생각해낸 방법이야.”
시우의 딱딱한 말에 시연은 입술을 쭈욱 내밀었다.
“뾰루퉁할 거 없어. 넌 내가 만드는 거니까, 신경써야하는 건 당연하잖아.”
자신을 로봇취급하는 시우의 말에 시연은 운전대를 잡고 있는 시우의 손을 세게 고집어 주었다.
“아! 뭐하는 짓이야, 운전 중에!”
“물건아니예요. 사람이구요. 날 만드는 것도 나예요. 2억 때문에 내가 사장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하지마요!”
“그래?”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죽는 게 꿈이었으니까 가수가 되려는 거야! 물론 빚때문이기도 하지만. 난 사장님이 만드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인형이 아니니까. 그런 취급은 절대 삼가 해주시죠!”
“하하하!”
시우가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내 말이 우스워요?”
“그래!”
“이씨!”
“난 공장에서 인형 찍는 일을 한적이 없는데.”
시우의 말에 시연은 뒷목을 부여잡았다. 그게 그 말이 아니잖아요!
시우는 생각대로 움직여주는 시연에게서 웃음이 났다.
“한시연. 너의 그런 투지가 좋다.”
“투지요?”
“빚 때문에 노래부르는 인형은 나도 싫다. 널 인형으로 생각했다면, 난 널 이렇게 키우지 않아. 널 키우려고 했을 때 너가 빚 때문에 노래를 하는거 였으면 바로 내 선에서 잘라버렸을거다. 그건 가수로서 가치가 없는거니까.”
시우의 말에 시연이 귀를 기울였다.
“너의 그런 점이 맘에 든다, 한시연. 자기를 가치있게 느끼는 사람, 자기 자신에게 당당함이 있는 사람이라 난 널 선택했고, 내가 널 봤을 때 자신감이 아니라 당당함이 있어서 선택했다. 돈이 없어도 빚이 있어도 너한테 당당함이 있고, 승부근성이 있어. 최고가 되기에 필수인 조건을 넌 갖췄어.”
시우의 말은 시연의 마음 속에 들어왔다.
시연이 운전하는 시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약속 하나 해줘요.”
“무슨 약속.”
“내가 2억을 갚더라도 날 키워주겠다는 약속.”
빨간불 신호에 걸려 차가 멈췄고, 시우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시연을 봤다.
시연의 초롱초롱한 눈은 시우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약속해요. 나 사장님은 믿으니까.”
“…….”
“약속하라구요. 날 인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시우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고가 되게 해줄게. 최고로 만든다고 했잖아. 아무도 널 건들지 못하도록 만든다고.”
최고로 만들어 줄게.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스타로 만들어 줄게.
시우의 진심이 시연의 마음을 울렸다.
#시연의 집
시연의 집이 있는 동네에 들어서자 시연의 얼굴은 점점 밝아지며 다시 아까처럼 방방 들뜨기 시작했다.
“우리 집 여기예요! 여기!”
시우의 능숙한 운전으로 시연의 집 앞에 차가 섰고, 뒤따라 태혁과 PP멤버들이 타고 있는 차도 따라서 멈춰섰다.
모자와 선글라스를 쓴 PP멤버들이 벤에서 하나둘씩 내렸다.
시연과 시우도 차에서 내렸고, 시우는 태혁에게 말했다.
“다 가지고 들어와.”
“예, 형님!”
이제는 익숙한 태혁의 형님소리. 시연은 웃으면서 시우에게 물었다.
“뭘 가지고 들어와요?”
“들어가지. 기다리시겠다.”
“나 오는 거 모를.. 미리 우리 가족들한테 전화해준거예요?”
“말없이 그냥 들이닥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시우의 세심한 배려에 시연은 기분이 좋았다.
시연은 폴짝폴짝 뛰어 집으로 들어갔다.
“나 왔어요!”
PP멤버들도 들뜬 시연을 보고 뒤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시연의 목소리가 들리자, 집에서 가족들이 발벗고 뛰어나왔다.
집 앞 현관에서 이산가족상봉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시연네 가족들이었다.
“어이구 우리딸!”
“얼굴이며 몸이며 쏙 빠졌네!”
“누나!!”
세 가족들 시연을 둘러싸고 시연은 질끔 눈물이 나오려는 걸 꾹 참고는 바보스럽게 웃었다.
“오랜만이야!”
두달만에 보는 가족들의 얼굴. 시연이 감격하고 있는 사이!
모두들 시연을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다 이 시간도 잠시!
남자들의 인기척에 세 가족들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엄마와 아빠는 권시우 사장의 등장에 시연을 환영하던게 언제였냐는 듯 시우에게 달려가 인사를 했고, 남동생 시원은 눈 앞에 보이는 PP멤버들 때문에 정신을 못 차렸다.
“지지진짜!!! 피피다!!!”
“안녕~”
PP가 저마다 인사를 하자 시원은 꺄악 소리를 내지르며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싸싸인 해주세요!!”
“권사장님! 잘 오셨어요! 들어오세요!”
“들어오세요! 어서!”
엄마와 아빠는 시우를 챙기기 바빴고, 시원은 PP를 챙기기 바빴다.
띠옹! 한시연이 왔다구요!
“나는?”
“시연아, 빨리 들어와!”
물론 시연도 챙겨주는 가족들이었다.
시연은 여전히 활기찬 가족들의 모습에 웃으며 집으로 들어갔다.
자신보다 시우와 PP들을 챙기는 가족의 모습에 서운할 만도 한데, 시연의 넓은 마음은 그런 모습에 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두달만에 집에 돌아오니 집의 대한 그리움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오며 마음이 따뜻해져왔다.
역시 우리집이 최고야.
[17]
좁은 집이지만, 집이란 곳은 이상하게 마음이 꽉 채워주는 힘이 있다.
시연은 집에 돌아오자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PP멤버들과 시우는 작고 좁고 볼품없는 집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반갑게 맞아주는 시연의 가족들의 환대로 투정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태혁이 마지막에 들어와 양손에 잔뜩 든 걸 시우에게 건넸다.
“약소하지만.”
“아유! 권사장님! 뭘 이렇게 잔뜩 사오세요. 매번 죄송하게..”
“아닙니다.”
시연의 엄마가 시우의 손에서 선물을 건네받으며 말하자, 시연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 매번이라니?”
“사장님이 다녀가실 때마다 이렇게 매번 선물을 사다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엄마의 말에 시연은 시우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봤다.
그렇다. 시연이 모르게 시연의 집에 과일세트부터 시작해 굴비세트, 갈비세트 등 바리바리 선물을 싸들고 그동안 시연의 가족들을 만나왔던 시우였다.
시연은 이제까지 시우가 한 일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시연은 시우에게 감동을 받아 눈물까지 날 뻔했다.
자기 대신 가족을 보살펴준 시우에게 어떤 선물보다 큰 감동을 받은 시연이었다.
시연은 말없이 고개를 숙여 눈물을 참았다.
“PP멤버들을 직접보게 되다니! 이거 꿈은 아니죠?”
분위기 깨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누나는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는데 남동생 시원은 그 사이에 자기 방에서 종이를 잔뜩 가지고 나오며 PP멤버들에게 말했다.
시연은 자신의 남동생이 꼭 여동생같은 행동을 하자 나오려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저! 진짜 형들 왕팬이예요. 싸인해주세요.”
PP멤버들이 정성스럽게 싸인을 해주었고, 시연은 시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분위기도 모르는 놈!
시원은 시라이 젠에게만 따로 자기 등짝을 내보이며 싸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형! 너무 멋있어요!”
타악! 그 순간 시연의 손바닥이 시원의 등짝에 내려앉았다.
“악!”
“하하하! 등에 뭘 이렇게 묻혔어?”
시연은 억지로 하하 웃으며 시원에게 눈짓을 보냈고, 누나의 필을 전달받은 시원은 조용히 PP들의 싸인만 가슴에 품고는 다소곳이 한자리에 앉았다.
“모두들 시장할텐데 어서들 와요. 입맛에 맞을런지 모르겠네.”
상다리가 부서지도록은 아니지만, 시연의 가족들은 아침부터 시연이 온다는 소식에 시장을 봐 식사준비를 했다.
“어서들 들어요.”
모두 둘러 앉아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시연이랑 잘지내줘서 고마워요. 정말 TV보다 딱 백배는 잘생겼네, 다들!”
“감사합니다, 어머님!”
방실이 도광이의 말에 시연이 밥을 먹다 말고 켁켁거렸다.
방실대며 어머님이라고 하는 소리에 시연의 엄마는 호호 웃으며 좋아라 했다.
시연은 방실이를 잘 감시해야 했다. 또 무슨 말할지 시연은 긴장이 되었다.
시한폭탄같은 반도광!
밥먹는 내내 가족들 얘기 들어줄랴, 도광이 감시하랴 바쁜 시연이었다.
.
.
식사가 끝나고 바로 일어나야 했다.
시우가 가자는 소리에 시연은 인상을 찌푸렸다.
시연은 오랜만에 보는 가족이었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 짧아 안타까웠다.
“가기 싫어요. 오늘만 자고 가면 안되요?”
“시간이 없어.”
시연의 말이 통할 리가 없었다. 시우의 냉정한 말에 가족들은 시연을 다독였다.
“그래, 시연아. 나중에 또 오면 되지.”
“누나 또 와. 그 때도 PP형들이랑 같이 와!”
“또 와. 얼굴이라도 봐서 엄만 좋아.”
시연은 가족들의 말에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야 했다.
가족들이 가지 말라고 물고 늘어졌다면 시우에게 떼라도 써서 안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가족들은 오히려 시연을 다독이며 보내주고 있었다.
“알았어요. 나 또 올게. 올때까지 다 건강해야돼! 알았지?”
“그럼 그럼! 우리들 건강 빼면 아무것도 없지.”
아빠의 말에 시연은 웃을 수 있었다.
자기보다 씩씩해진 가족들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엄마는 시우와 PP들에게도 인사를 잊지 않았다.
“이렇게 시간들 내줘서 고마워요.”
“형들 다음에 또 와요!”
시원이 말하자, PP멤버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나가있어.”
시우의 말에 태혁은 PP멤버들을 데리고 나갔다.
시연은 나가지 않고 가족들의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엄마. 아빠.”
“우리 딸.. 잘하고 있지?”
“당연하지. 누구 딸인데! 건강히 있어요. 나 또 올께!”
“그래. 우리 딸 파이팅이야!”
아빠와 엄마, 시원의 응원에 시연은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집을 나섰다.
나가려다 말고 다시 들어와 엄마와 아빠에게 꼭 안기는 시연이었다.
“나 진짜 걱정하지마.”
시연을 토닥여주는 가족들.
시우는 그런 시연의 가족들을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았다.
“사랑해요.”
시연은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뜨겁게 남긴 채 집을 나섰다.
“먼저 차에 가있어.”
“빨리 와요.”
“누나! 건강해!”
“시연아, 밥 잘먹구! 알았지?”
“알았어요! 걱정마!”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시연은 집을 나갔다.
시우는 품속에 있던 통장과 도장을 꺼내 시연의 부모님 앞으로 내밀었다.
“사장님! 이건 받을 수가 없어요! 도로 어서 넣으세요.”
시연의 엄마가 한사코 거절하며 시우에게 다시 내밀었다.
“시연이 돈입니다. 사양말고 받아두세요.”
“어유, 권사장님. 이렇게 도와주시면 뵐 면목이 없죠.”
시연의 부모님이 머리를 조아리며 시우에게 말하자, 시우는 더 정중하게 말했다.
“시연이를 위해서입니다. 받아주세요.”
“제가 갚아야 하는데..”
“시연이를 위해서 가족분들이 해주셔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시우의 말에 가족들은 귀를 기울였다.
“뭐든지 말씀만 하세요!”
“집을 옮겼으면 합니다.”
“네?”
돈에! 집까지! 시연의 가족들은 경사 났네 춤을 춰야했다.
시연의 가족들 눈엔 시우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정도로 보였다.
“집은 저희쪽에서 준비했습니다. 평수는 넓고 안전한 곳으로 준비했습니다.”
“아뇨. 사장님, 받을 수가 없어요. 너무 신세를 지고..”
“신세는 아마 저희쪽에서 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연이가 데뷔하고는 여러모로 가족분들이 힘든 일을 겪게 될겁니다. 언론이며 수많은 팬들에게 밤낮 시간을 뺏길 일이 빈번할 텐데, 저희쪽에 맡겨주시면 안전하게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아이구.. 사장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시연의 가족들이 모두 시우에게 인사하자 시우는 쑥쓰러워하며 괜찮다며 몇 번을 말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만큼 시우에게 감사했다. 시연이며 시연의 가족들이며 모두. 시우는 조용히 인사를 하고 시연의 집을 나왔다.
...
“우리 엄마랑 아빠한테 무슨 말 했어요?”
“별 말 안했어.”
“무슨 말 했어요? 네?”
시우의 집으로 오는 내내 무슨 말을 했냐며 옆에서 귀찮도록 끈질기도록 묻는 시연이다.
“한시연 흉 봤어. 됐어?”
“흉이요? 뭐예요! 빨리 말해줘요. 궁금하단 말야.”
입을 꾹 다물고 운전에만 더욱 집중하는 시우를 보고 시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우리 엄마가 나한테 전하는 말이나 뭐 그런 건 없었어요?”
“내 말 잘들으래.”
“어휴!”
“컨디션은 어때?”
“좋아요! 너무 좋아서 주체를 못하겠네요!”
“그럼 됐어.”
시연은 시우에게 고마우면서도 얄미웠다.
짧은 시간이라도 만나게 해준 건 고맙지만, 너무 시간이 짧았다.
게다가 PP떨거지들 까지 합세해서! 시간은 더 짧았던 것 같다. 된장!
그래도 시연은 시우가 그동안 가족들을 돌봐주었다는 것에 크게 감동했고, 고마웠다.
“조폭사장님!”
“또 왜.”
“사장님이 우렁각시예요? 아님 산타예요?”
“우렁각시도 산타도 아닌데.”
시우가 대답하자마자, 시라이 젠에게 예절교육을 단단히 받아 인사성 하나는 끝내주는 시연이 소리쳤다.
“고마워요!”
고마웠다. 시연은 시우에게 한없이 고마웠고 또 고마웠다.
“고마워 하지..”
시연은 시우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하지 말라구요? 비즈니스니까? 알았어요! 고마워도 고맙다고도 못하고. 내가 무슨 홍길동인가!”
“홍길동은 호부호형 하지 못했던 거지.”
“그게 그거죠! 길동이도 하고 싶은 말을 못해서 답답한거구! 나두 그렇구!”
“난 너가 홍길동이 되는 건 싫은데.”
“왜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뛰어다니면 골치아픈 일 많이 생길까봐요?”
홍길동처럼 떠날 까봐...
‘PP’의 3.5집 쇼케이스.
드디어 D-DAY. 시연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무대를 서는 날이다.
물론 앨범 발매일은 그 다음 날이었고, 시연은 그 다음 날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스케줄은 이미 몸이 열개라도 모자를 정도로 빡빡히 차있었다.
시연이 도착하자 분장실에 있던 PP멤버들이 시연을 응원했다.
“오. 쫌 꾸미니까 이쁘네!”
후는 눈을 크게 뜨고 시연을 쳐다봤다.
“난 원래 이뻐!”
“무대가 미끄러우니까 조심해. 실수하지 말고. 웃는 거 잊지말고.”
시라이 젠이 이것저것 꼼꼼하게 말해주었다. 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PP가 옆에서 응원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시연에겐 힘이 되었다.
미웠고 싫어했던 PP였는데, 어느덧 시연의 가장 가까운 친구며 선생님이 되어있었다.
도광은 시연에게 가까이 다가와 응원했다.
“잘할 수 있어-♬ 내 입술 힘을 믿어봐!”
도광의 말에 바짝 긴장했던 시연은 한순간에 긴장이 누그러졌다.
“야! 방실이!”
말을 남기고 분장실을 휙 나가는 도광을 불러보지만 이미 무대로 올라가버린 녀석.
시연은 다시 붉어지는 얼굴을 식히고는 자신도 무대로 올라갈 준비를 했다.
“한시연씨. 준비해주세요.”
스탭의 말이 들렸고, 시연의 코디인 진영이 시연의 의상을 다시 한번 매만졌다.
“떨린다. 후...”
시연이 혼잣말로 숨을 고르며 마음을 다졌다.
“잘할 수 있다.”
강하다. 한시연은 강하다.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시연은 자신만의 주문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무대를 올라가기 직전, 시우가 시연에게 다가왔다.
“떨려?”
“조금요.”
“떨지마! 무대에서 떨면 가수로서 가치는 바닥이야.”
처음이고 이렇게 큰 무대니 떨리는 건 당연한데, 시연에게 와서는 냉정한 말만 늘어놓는 시우였다.
“처음이니까 떨리는 건 당연하잖아요.”
“자신 없나.”
“자신 있는데! 그냥 떨린다니까요.”
“떨려도 떨리는 모습을 감춰. 무대는 전쟁터다. 전쟁터라고 생각해. 전쟁에 나갔을 때 적군이 내 앞에 있는데 무섭다고 떨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적은 날 쏘게 되있다. 그게 인간이거든. 자기가 살려고 먼저 방어하게 되지. 하지만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서면 사람들은 오히려 무서워하지. 한시연 너한텐 널 모르는 사람들을 네 편으로 만들 수 있는 마력이 있다. 그 힘을 보여줘.”
시우의 말에 시연은 눈에 힘을 주었다.
무대에서는 PP멤버들이 시연을 소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스탭들이 시연에게 마이크를 주었다.
특별 제작된 마이크가 손에 잡히자 시연은 눈이 반짝거렸고 몸에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무대로 올라가려는데 뒤에서 시우의 음성이 들렸다.
“정 떨리면 2억 못갚아서 밖에서 떨 걸 생각해!”
시우의 외침에 시연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보다 더 떨고 있으면서.’
시연이 무대로 올라갔다.
시연이 나오자 무대가 하얗게 환해졌다.
PP팬들은 숨을 죽이고 시연의 등장을 지켜봤다.
스포트라이트가 시연에게로 쏠리고 시연의 타이틀 곡 ‘첫키스’가 흘러나왔다.
[18]
‘신인가수 한시연은 누구?’
‘한시연의 앨범주문 쇄도.’
≪돌풍예고, 한시연의 ‘첫키스’≫
「남성 아이돌그룹 'PP'의 쇼케이스에서 첫 무대를 가진 신인 여가수 ‘한시연’ (18)이 가요계의 돌풍예감을 몰고 왔다. 한시연의 1집 ‘마력’은 10일 국내에서 발매된다. 타이틀 곡 ‘첫키스’ 작사를 PP의 리더 반도광이, 작곡을 PP의 멤버 시라이 젠이 했다는 것이 알려지며 더욱더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편 ‘W’엔터테인먼트 측은 공식적인...」
하루아침에 눈을 떠보니 스타가 되어 있더라 하는 말이 현실로 나타났다.
가히 대단하다는 찬사를 받을 만큼 시연의 데뷔는 성공적이었다.
PP의 쇼케이스에서 시연을 데뷔시킨 것은 다 권시우 사장의 전략 중 하나였다.
시연은 일어나자마자 자기가 나온 신문과 방송을 보고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왜 그러고 있어.”
시우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시우를 돌아보는 시연이었다.
신문마다 기사가 크게 나와 놀라서 말을 못하는 줄 알았는데..
“이게 나예요?”
자기 사진이 찌그러져 있는 걸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젠장! 기자가 안티다. 처음 난 기사에 이런 사진을 넣다니!
사진에서 시연은 바보같이 헤벌쭉 웃고 있었다.
“뭐, 괜찮네.”
시우의 말에 시연은 휘청했다.
“괜찮다구요? 완전 영구같이 나왔는데! 게다가 얼굴은 누군지 모르게 나왔잖아요!”
“한시연같이 나왔어!”
“나같이 안나왔다구요!”
시연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사진이 영 맘에 들지 않았다.
아마 친구들이 보면 못알아볼꺼다!
그리고 이 신문을 보면서 얼마나 사람들이 웃을까 걱정이 된다. 이 영구 누구야? 이러면서.
“징징대지마.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마음 단단히 먹어.”
시연은 신문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사장님이 하도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그래서 내 심장이 아주 딱딱해져버렸어요!”
“잘됐네!”
시연이 시우에게 한마디 쏘아붙이려고 할 순간 태혁이 다가와 시우에게 보고했다.
“형님, 기자들이 공식일정을 알려달라며..”
“다 기다리라고 해. 준비되면 연락하겠다고.”
“예,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짐 옮겨 놔.”
“예.”
태혁과 시우의 말에 시연은 궁금해 물었다.
“짐이라뇨?”
“말 안 했나? 내일 집 옮길 꺼야.”
“왜요?”
“데뷔하고 계속 여기 살 순 없지. 뭐하고 있어? 시간 없으니까 빨리 준비하고 내려와.”
“알았어요.”
이 집하고도 두달동안 정이 많이 들었는데 이제 떠나야 한다니.. 시원섭섭한 시연이었다.
시연은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며 2층으로 올라갔다.
시우는 시연이 난 신문을 보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잘만 나왔네.
시연과 시우가 집을 나오다 멈칫 했다.
집 앞에는 한 여자가 서있었다.
저번에 왔던 준의 엄마, 오인경이라는 여자였다.
시우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담벼락에 기대어 있던 인경이 시우가 나오자 그를 불렀다.
“시우씨..”
“돌아가.”
“준이..”
시연은 오인경에게 눈인사를 했고, 시우는 무시하고 차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우씨!”
인경이 달려와 시우의 손을 낚아챘다.
“준이만 만나게 해줘.”
시우가 강하게 인경의 손을 뿌리쳤다.
“손대지마.”
오인경은 저번에 왔을 때와 다르게 계속 도련님이 아닌 시우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준이 보여줘.”
“돌아가라고 했지! 내 눈앞에서 꺼지란 말이야!!!”
시우는 오인경의 손을 뿌리치며 그녀의 양쪽 어깨를 붙잡고 벽에 밀어 부쳤다.
오인경이라는 여자만 보면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는 시우였다.
“꺼져! 다시 오면 죽여버릴꺼야.”
시우의 낮은 음성이 오인경의 심장 깊은 곳에 가 박혔다.
“죽을 꺼야. 오늘 죽을 꺼야.”
겁 없는 인경의 말이었다. 시우의 눈은 사정없이 흔들렸고, 눈동자는 커졌다.
“뭐?”
오히려 협박을 당하게 되버린 시우. 그 순간 시연이 얼른 두 사람을 갈라놓으며 말했다.
“아, 왜들이래요!”
시우는 인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분노로 일렁이는 눈빛이었다.
“죽는다는 말을 왜 쉽게 해요! 그러지 말아요! 아, 사장님 어떻게 좀 해봐요!”
중간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시연이었다.
“죽어. 그냥.”
말리려는 시연의 기운을 쏙 빼게 만드는 시우의 한마디.
그의 슬픈 눈빛에는 작은 이슬이 맺혔다. 진하게도 쓰라린 그의 눈빛..
“우리형처럼! 너도 죽어!”
오인경은 힘없이 그 자리에 스르륵 앉았다. 울기 시작했다.
시연은 중간에서 참 난감했다. 인경을 달래주려고 발을 떼었을 때, 시우는 시연의 손을 잡았다. 그의 차가운 손이 시연을 끌었다. 오인경을 그대로 두면 안되겠다 싶어 시연은 시우의 손을 뿌리쳤지만, 다시 잡은 시우의 손을 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시연은 차에 올라탔다.
상황정리가 안 되는 시연이었기에 어떻게 끼여들 수가 없었다.
시우가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안쓰러울 정도로 슬퍼하고 있었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앞으로 나가려는 순간!
인경이 시우의 차에 달려들었다.
인경의 몸이 시우의 차에 부딪치어 떨어지고, 시우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다.
시연과 시우는 놀라 급히 차문을 열고 밖을 나왔다.
“인경씨!”
인경은 바닥에 죽은 듯이 쓰러져 있었다. 시연은 놀라 인경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곤 쓰러져 있는 인경을 일으켜 세웠다. 시우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
.
인경을 병원으로 옮겼다. 다행히, 가벼운 타박상 정도였다.
하지만, 작은 사고라 하더라도 교통사고다.
사고의 후유증은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경과를 지켜봐야 했다.
“인경씨 왜 안 일어나요?”
시연은 울먹거리며 불안한 듯 물었다. 시우는 그런 시연을 일으켜 세웠다.
“가자.”
“무슨 소리예요! 어떻게 그냥 가요?”
“내 할 일은 여기까지야.”
“못 가요!”
“가수 데뷔도 못하고 끝내고 싶어? 어서 일어나!”
시우의 화난 음성에 시연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잔인해!”
“그래, 난 잔인해!”
“아까 울었잖아! 저 여자만 나타나면 눈에서 눈물나면서! 왜 그렇게 미워해요?”
“…….”
“말해봐요!”
시우는 빠르게 뒤돌아 병실을 빠져나왔다.
“조폭사장님!”
시연은 시우를 뒤따라 병실을 나왔다. 벌써 병원을 빠져나가고 있는 시우였다.
“인경씨 깨어나면 가요! 그냥 이렇게 가면 서로 걱정되잖아요!”
말없는 시우를 뒤쫓아가 시연은 그 앞에 섰다. 숨을 고르며 시연이 시우를 올려다봤다.
“아픈 사람 그냥 내버려두고 가면 마음이 편하냐구요!”
“맘이 편하지 않을지 모르지. 하지만 난 내 일이 더 중요해!”
시우는 무작정 시연을 이끌었다.
“미워하지 않으면서 왜 미워하는 척 해요?”
“뭘 안다 그래.”
“내 눈엔 보이니까요! 울지 못해서 미워하는 마음이 가득 차 있잖아요! 미울수록 울어버려요! 왜 미워해요? 왜 미워하지도 않으면서 미워하는 척을 하냐구요!”
“날 슬프게 하니까. 아프게 하니까! 싫어! 죽도록 미워해!”
시연은 시우를 올려다봤다. 그의 눈은 시연의 마음을 울렸다.
“그래요, 그렇게 라도 해요. 아프면 그렇게 소리쳐요, 아프다구. 흘리지 못하고 고이는 눈물 다 빼내버리라구요. 바보같이 참지 말구!”
시우가 흔들리는 눈동자를 감추고 있을 때 였다.
“어! 권시우 사장이다!”
“데뷔한다는 한시연 아니야?”
병원에 한 탤런트가 입원을 해 취재를 나온 몇 명의 기자들이 순식간에 시연과 시우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이어져 쏟아지는 질문들.
“공식 인터뷰는 2시간 뒤에 있을 예정입니다.”
권시우 사장은 질문에 짧게 대답을 해주곤 시연을 빼내어 차로 데리고 왔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시연은 차에 들어오자마자 숨을 돌렸다.
“휴!”
“애들 장난이 아니야. 모두가 널 주목하고 있어.”
시우는 한 손으로 시동을 걸고, 또 한 손으론 핸드폰을 꺼내 태혁에게 전화를 했다.
“삼성병원 507호실에 오인경이 있어. 깨어나면 전화해.”
시우가 전화를 끊자마자 시연이 말했다.
“뭐 하나만 물어볼께요.”
“묻지마.”
“준이가 아들 맞아요?”
“질문 안 받아.”
“준이가 오인경 아들이면 사장님하고는 무슨 관계예요?”
“관계없어! 그 여자 얘기 꺼내지마. 준이 엄만 오래 전에 죽어버렸으니까.”
.
.
공식 인터뷰 현장.
시연이 도착하기 전, PP가 먼저 3.5집에 관한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대기실엔 PP와 코디들, 매니저들이 있었다.
미리 와있던 시연의 코디 진영과 새린은 한쪽 구석에 앉아있었다.
도광이 대기실을 나가자, 새린은 슬그머니 일어났다.
“진영씨.. 나.. 화..화장실 좀.”
“빨리 갔다 와요.”
새린은 얼른 대기실을 나왔다. 그리고 도광이 걸어가고 있는 곳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도광과 살짝 부딪치며 새린은 한 손에서 들고 있던 예쁜 꽃장식의 브로치를 떨어트렸다.
“어, 괜찮아요?”
“괘..괜찮아요.”
도광은 떨어진 브로치를 주워 새린에게 내밀었다. 특유의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이쁘다.”
“어..어제.. 시연씨한테 주려고.. 밤새 만들었어요..”
“와우!”
“헤헤...”
새린이 도광을 보며 웃었다.
“제자님 좋아하겠다.♬”
도광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방긋 웃음을 날려주었다.
새린은 수줍어서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그 때 였다.
시연과 시우가 바쁘게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어! 새린씨. 일찍 와있었네요?”
시연이 새린에게 인사하자 새린은 어정쩡한 자세로 인사를 하면서 얼른 브로치를 뒤로 감추었다. 그리고 재빨리 시연이 안 보이는 곳으로 뛰어가는 새린.
“어디 가는 거지?”
“급한가봐.”
도광이 대신 말해주었고, 시연은 별다른 생각 없이 분장실로 들어갔다.
시연은 바쁘게 진영에게 메이크업을 받았다.
“시연씨, 좋겠다? 벌써부터 시연씨 팬클럽도 생기고.”
“네?”
시연은 진영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항상 팬이라는 단어에 깜짝 반응을 보이는 시연이었다.
생소하기도 하면서 기쁘기도 하면서 신기한 단어. ‘팬’
“팬카페 회원도 장난 아니던데.”
“팬카페요?”
“입소문이 무섭긴 무서워, 그치?”
정말이었다. 팬카페가 생기자마자 회원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고, 검색어 순위에는 시연의 이름이 떠날 줄을 몰랐다. 시연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다.
진영에게 건네 받은 옷을 입고 나오자마자 시연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시연씨 나오세요!”
“네!”
‘W’ 엔터테인먼트 권시우 사장이 준비한 공식 인터뷰 자리. 시연의 화보가 회견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고, 시연이 시우와 등장하자 카메라 눈을 못 뜰 정도로 후레쉬를 터트렸다.
시연은 익숙하게 카메라를 보며 웃었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시연의 인터뷰는 프로들 뺨쳤다.
풋풋한 신인 같으면서도 준비된 그녀에게 기자들은 더욱 초점을 맞췄다.
확실히 시라이 젠 선생님의 공이 컸다.
PP멤버들은 뒤에서 시연의 인터뷰를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잘 대답하는 시연이었다. 그녀의 백만불짜리 미소는 카메라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아무 탈 없이 공식 인터뷰가 끝이 났고 기자들은 저마다 시연을 찍고 싶어 난리도 아니었다.
시연은 인터뷰 장을 나오며 시우에게 물었다.
“저 잘했어요? 조폭 사장님?”
“그래.”
시우는 시연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그의 차가운 손이 왠지 따뜻하게 느껴졌다.
시우는 시연에게 말했다.
“갈 곳이 있어. 옷 갈아입고 나와.”
[19]
시우가 시연을 데리고 온 곳은 SBC 방송국 음악방송 공개홀이었다.
“여기는.”
“내일 네가 노래부르게 될 곳.”
처음으로 공중파를 타고 시연이 공식 데뷔를 하게 된다. 정식으로 첫 앨범을 가지고 무대에 오르게 된다. 시연은 아무도 없는 공개홀에 서서 입을 못 다물고 무대만 바라보고 있었다.
PP의 쇼케이스와는 달리 시연의 단독 무대이기에 시연은 그 때와 다른 설레임을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대로 올라가.”
시연이 말없이 시우를 올려다봤다. 시우가 고개짓을 하자 시연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토닥토닥 뛰어가 무대로 올라갔다. 시연이 무대로 올라가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서자 무대 조명이 밝게 켜졌고 첫키스 음악이 들려왔다.
시연의 노랫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면서 두근거리는 첫키스의 느낌이 느껴졌다.
.......♪.........
시우의 눈을 맞추며 노래를 하는 시연. 시연의 눈빛은 아주 안정적이었다.
시우는 팔짱을 껴고 노래를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노래가 끝나고 시연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왔다.
“내가 노래를 부르면 어때요?”
“…….”
시연의 뜬금없는 질문에 시우가 아무말없이 시연을 쳐다봤다.
“내가 노래를 부르면 어떠냐구요. 좋다. 싫다?”
“…….”
“왜 대답이 없어요?”
“내려와. 가자.”
“뭐예요!”
“빨리와.”
먼저 홀을 빠져나가버리는 시우다. 시연은 얼른 무대에서 내려와 시우에게 달려갔다.
“이런 법이 어딨어요? 대답도 안해주고 가버리고! 사장님이 키우는 가수한테 힘을 줘야지!”
“힘내라고 안해도 이렇게 힘내고 있잖아.”
“그래요! 난 힘이 넘쳐요!”
“그럼 된거지.”
“사장님은 너무해!”
오늘 시연에게 별소리 다 듣는 시우다.
낮에는 잔인해. 밤에는 너무해. 시우에게 누가 감히 이런 소릴 하리라 예상이나 했는가.
“너는 특이해.”
시우가 차에 올라타기 전 시연에게 말했고, 시연은 눈이 동그래져서는 얼른 차에 올라타며 반박했다.
“이상한 의미로 특이하다는 거죠? 어쩜 그래요?”
시연이 옆에서 말을 하고 있는 순간, 시우의 얼굴이 시연의 얼굴 가까이에 다가왔다.
확 다가온 시우의 몸에 시연은 놀라 의자를 그만 뒤로 젖혀버렸다.
두둥! 갑작스런 상황에 서로 놀라 큰 눈만 껌뻑거리는 두 사람. 잠깐의 정적도 잠시.
“으악!”
시연은 바로 몸을 일으켰고 그 순간 일어나며 머리로 시우의 얼굴을 정면으로 받아버렸다.
빠직-!
“으..”
시연의 강한 박치기 충격에 시우가 얼굴을 감싸며 괴로워했다.
“사장님!!! 괜찮아요?”
놀란 시연이 어쩔 줄 몰라했다.
“어떡해. 좀 봐봐요! 괜찮아요?”
시우가 갑자기 얼굴을 감싸다 말고 실소를 터트렸다. 그 모습에 시연은 더욱 놀랐다.
혹시 자기 박치기로 인해 시우가 미친 건 아닐까 걱정이 되는 시연이었다.
“왜그래요?! 정신차려봐요!”
시연이 걱정되어 소리치자 시우의 낮은 음성이 시동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이제 운전해야 되니까 조용히 해.”
시우의 시니컬한 음성을 들리자, 권시우 사장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에 시연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진짜 괜찮아요?”
“내가 가수 키운 거 맞지.”
“무슨 소리예요?”
“아니, 내가 격투기 선수를 키웠나 해서.”
가수 맞다구요!
집에 바로 도착했고, 시연은 2층으로 올라갔다. 방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테라스에서 전화를 받는 시라이 젠의 소리에 시연은 방을 들어가지 않고 전화통화를 우연히 듣게 됐다.
“다시 전화하지 마시죠! 전 당신을 모릅니다.”
울분이 섞인 시라이 젠의 목소리에 시연은 귀기울였다.
탁-! 시라이 젠이 무섭게 핸드폰 플립을 닫았고 핸드폰을 움켜쥐었다.
시연은 그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힘든 일인지 시라이 젠은 굉장히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젠은 한쪽 주머니에서 담배 한개피를 꺼냈다.
하지만 이내 시라이의 손가락에 걸려있던 담배는 시연의 손에 의해 바닥으로 떨어졌다.
“가수가 뭐하는 거야.”
시연의 등장에 놀란 젠이 시연을 쳐다봤다.
“담배 피우려고 했어?”
“어. 왜? 안돼?”
“가수면 안되지. 시라이 양 무슨 일 있어?”
“아무 일도 없어.”
시라이 젠이 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주워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무슨 일 있는 거 같은데?”
“なんにも。(아무것도)”
“ほんと?(정말?)”
시라이 젠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시연은 이이상 묻지 않았다.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터놓고 말해.”
“그래.. 시연군, 빨리 들어가서 자.”
“잘자, 시라이양.”
시연은 뒤돌아 가려다 말고 다시 시라이 젠에게 다가왔다.
“이 집 남자들은 왜 죄다 반대로 말하고 반대로 행동해?”
“하?”
“반대로 말하지 말고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반대로 행동하지 말고 진짜 하고 싶은 걸 행동으로 실천해! 오케이?”
“…….”
“왜 대답 안해? 대답!”
“대답.”
“재미없어!”
시연이 시라이 젠의 팔뚝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
“자신을 속이지 마. 내 속에 있는 걸 감추면 나중에 꺼내고 싶어도 못 꺼내.”
시연의 아름답고 편안한 미소가 시라이 젠의 마음을 달랬다.
그동안 시연이 시라이 젠에게 배운 미소짓기 특훈은 빛을 발했다.
“시라이양은 시라이양 다울 때가 제일 이뻐. 인상쓰지마.”
시라이 젠은 시연의 미소와 말에 그제야 밝게 웃었다.
“그건 너무 바보같구.”
시연은 하하 웃으며 방으로 쏙 들어갔고, 시라이 젠은 그 자리에 서서 시연이 들어가는 것까지 바라보았다. 힘을 주는 에너지가 있는 여자..
SBC 방송국.
아침부터 공개홀 입구에는 수많은 팬들이 줄을 서 있었다.
‘시연’의 공중파 공식 첫 데뷔, ‘PP’의 3.5집 첫 무대가 겹치며 엄청난 팬들이 몰려들었다. 시연은 오전에 리허설과 카메라 테스트를 받고 사전녹화를 마쳤다.
무대에서 내려와 분장실로 향하던 시연은 지나가는 가수들과 인사를 나눴다.
나이가 많건 적건 모두 시연은 웃으며 인사했다.
복도가 금새 시끌시끌해지며 모두 시연에게 인사하기 바빴다.
“아~ 너가 시연이구나!”
“첫키스 노래 좋아~”
7명이 팀인 남자그룹 ‘S-ONE’이 저마다 시연에게 말을 걸어왔다.
시연은 정신없이 저마다 말하는 애들과 짧게 이야기를 하고는 분장실로 들어왔다.
사장님이 왜그렇게 인사성에 목숨을 걸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인사는 자신을 알리는 데 있어 최고의 방법이다.
인사를 하는 사람에겐 눈길이 한번 더 가는 게 사람의 심리다.
시우가 시연에게 초밥을 건네주고는 바삐 밖으로 나갔다.
“먹고 있어.”
시우는 쉴새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초밥이네. 진영언니, 새린씨 같이 먹어요.”
시연과 코디들이 초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고 있는 중에 PP애들이 시연의 분장실로 들어왔다.
“리허설 잘 했어?”
“응!”
도광이랑 시연이 말을 하고 있는 사이, 새린이 쭈빗쭈빗 다가와 무언가를 시연에게 내밀었다.
“시..시연씨. 이거 제가 만들었어요..”
“와!”
시연은 새린이 만들었다며 내민 레이스 브로치를 받아들었다.
“이뻐요, 고마워요!”
새린은 무척이나 쑥쓰러워했다. 그리고는 얼른 자리를 피해 분장실을 나갔다.
새린이 나가자마자 후가 초밥을 한입에 넣으며 말했다.
“저 코디 착하네? 너한테 맞고도 코디 일 계속하는 거야?”
후의 말에 시연이 소릴 꽥 질렀다.
“안때렸다니까!”
“에이.”
후의 장난도 잠시, PP도 리허설을 하러 무대로 올라갔다.
분장실에서 진영이 메이크업을 해주며 시연에게 물었다.
“무슨 소리야, 시연씨? 새린씨랑 무슨 일 있었어?”
“아뇨, 후가 장난치는 거예요.”
진영의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시연에게 무슨 말을 하려다 말고 새린이 들어오자 메이크업에만 신경쓰는 진영이었다.
“시연씨, 스탠바이!”
“네!”
시연이 마지막까지 의상과 메이크업을 정돈하고는 얼른 무대로 향했다.
무대로 향하는 발걸음이 왜이리도 가벼운지. 컨디션이 최고였다.
무대로 올라가면서 시연은 자꾸 분장실을 나오기 전에 했던 시우의 말이 떠올랐다.
‘잘하고 와.’
그 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드라이 아이스가 밑바닥에 가득하고 어두운 조명 아래로 백업댄서들과 시연이 무대에 올랐다. 검은 조명이 서서히 밝아지며 스포트 라이트가 시연에게 쏠렸다.
짧은 하얀 드레스에 파스텔 꽃무늬가 박혀있는 의상을 입은 시연은 꼭 인형같았다.
머리는 꼬불꼬불 귀엽게 틀어올렸고, 표정은 살아있었다.
타이틀 곡 ‘첫키스’ 노래가 시작되고.. 시연은 수많은 팬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의 고운 목소리는 첫키스 노래와 맞아떨어졌다.
자체적으로 구성된 시연의 팬들이 플랜카드를 들고 시연을 응원했다.
시연은 한껏 밝은 표정으로 노래를 불렀다.
춤추며 LIVE하기 쉽지 않은데, 시연은 두가지를 모두 제대로 소화하고 있었다.
도광이 붙여준 일명 ‘키스댄스’는 쉬운 동작이 아니었다.
시연은 가슴으로 노래를 했고, 머리로 기억하는 것이 아닌 몸이 익힌 동작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정말 시연에게는 마력이 있었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법같은 힘.
시연의 목소리를 다시 찾게하는 시연만의 카리스마가 있었다.
시연은 공개방송 정식데뷔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내려왔다.
“봤어요?”
내려오자마자 땀을 닦아내며 시우에게 어린애같이 묻는 시연이다.
“봤어요? 팬들이요! 내 이름을 외쳤어요!”
시연이 발그레한 볼과 함께 기뻐하는 표정을 보니 시우 또한 좋았다.
“팬들이 점점 더 늘어날꺼야.”
“신기해요!”
‘언니!’ ‘한시연 짱!’을 외치며 시연을 응원하던 팬들이 다시 시연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렇게 신기해?”
“그럼요!”
시연이 웃으며 시우와 말하는 것도 잠시, 두 사람 앞에 진영이 울상이 되어서는 헐레벌떡 뛰어왔다.
“시연씨! 큰일났어요!”
“언니, 왜그래요?”
“빨리 와봐요!”
“왜 무슨 일인데요?”
“새린씨가...”
“새린씨가 왜요?”
“울고 불고 난리가 났어. 시연씨한테 만들어 준 브로치..때문에.”
진영은 말끝을 흐리고, 시연은 일단 새린이 있는 곳으로 급하게 달려갔다.
진영과 시연, 시우가 도착한 곳은 공개홀 중앙 로비, 쓰레기통 앞이었다.
지나다니는 가수들도 서럽게 쓰레기통 앞에서 울고 있는 새린을 힐끔힐끔 쳐다봤다.
그리고 그곳엔 PP도 서있었다.
“으흐흑...”
새린이 아주 서럽게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쓰레기통 위에는 버젓이 새린이 만들어 시연에게 선물한 레이스 브로치가 올려져 있었다.
.
.
.
'네가 노래를 하면... 내 심장이 울어.'
.
.
.
[20]
시연은 영문을 몰랐다.
선물받은 브로치가 왜 쓰레기통 위에 있는 건지.
“새린씨.”
시연이 새린의 이름을 부르자 새린이 더욱 서럽게 울며 다가왔다.
“시..시연씨.. 정말 나 싫어하는 군요.. 그럼.. 말로 하지 그랬어요. 싫다구.. 전 그것도 모르고 바보같이 브로치나 만들어서 주고.. 이렇게 버려질 거 였으면 안만들었을 꺼예요.”
기가 막히고 미칠 노릇이었다. 누가 브로치를 버렸다구!
“버린 적 없.”
시연의 말을 자르며 새린이 더욱 우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이틀동안 만들었어요. 시연씨 데뷔기념 선물로 밤새 만들고 또 만들었는데..”
“새린씨, 전 버리지 않았어요.”
“죄송해요, 시연씨. 내가 너무 주제넘는 짓을 해서.. 제가 죄송해요..”
“버리지 않았어요.”
이미 나쁜 사람이 되어버린 건 시연이었다.
새린이 서럽게 우는 것만으로 사람들 눈엔 시연이 나쁘게 비칠 수밖에 없었다.
버리지 않았다고 여러번 말해보아도 새린의 울음이 멈추지 않는 한, 새린이 자기가 더 잘못했다고 착한 척하며 인정해 버리는 한, 계속해서 궁지에 몰리게 되는 건 시연이었다.
“버리지 않았다구요.”
“그만해, 가자.”
시연이 반복되는 말을 하고 있는 동안, 시우의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우가 시연의 손을 잡아 끌었다. 오해도 풀지 않고 이대로 갈 수는 없었다.
시연의 발은 바닥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이대로 가긴 찝찝해! 오해받기 싫어!
하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했다.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져왔다.
그 때였다.
“시연이 그런 애 아니예요.”
도광이의 목소리였다.
“거짓말 싫어하는 애예요.”
그의 목소리는 온유했다. 그의 눈빛도 따뜻했다.
여전히 미소를 띄우며 말하는 도광이었다.
“그렇게 할 리가 없어요.”
그의 똑부러지는 목소리와 또롱또롱한 눈빛에 모든 사람들이 주목했다.
도광의 옆에 있던 시라이 젠과 후도 거들었다.
“시연군이 했을리 없다에 만원 건다! 짠순이라 뭐 하나 버리는 거 되게 아까워하는데 선물받은 거 팔았으면 팔았지 버릴 인물은 아냐.”
“맞아, 맞아!”
시라이의 말에 강력하게 맞다고 주장하는 후였다.
시연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걸 확실하게 믿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짠순이라고 말하지만 오해를 풀어주려고 하는 PP멤버들이 고맙게 느껴졌다.
새린은 흘리던 눈물을 훔치고는 도광을 올려다 봤다.
도광은 그런 새린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쓰레기 치우는 아줌마가 모르고 버렸나보다.”
도광의 마지막 말로 홀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시연에 대한 오해가 깨끗하게 풀렸다.
새린은 상황이 불리해지자 더 이상 울지 못하고 그 자리에 꼼짝 없이 앉아있었다.
“가자.”
시우는 다시 한번 시연에게 말했고, 그제야 시연은 발걸음을 뗐다.
그래도 여전히 찜찜한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대체 왜 저러는 거야?
태혁이 운전석에 앉아 운전을 하고 시우와 시연은 뒷좌석에 앉았다.
시연은 창밖을 보고 있는 시우에게 말을 걸었다.
“사장님.”
“왜.”
“내 얼굴 보세요.”
“왜.”
“왜가 아니라 내 얼굴 보라구요. 내 눈 보세요.”
시연의 말에 시우가 시선을 돌려 시연의 눈을 쳐다봤다.
“저 믿어요?”
“무슨 말이야.”
“아까 그거 제가 안했어요.”
“알아.”
“무슨 말이 그래요? 그럼 아까 새린씨한테 말했어야죠. PP애들이 아니었으면 나 정말 나쁜년 될 뻔 했잖아요.”
“일일이 변명하고 일일이 해명할 시간이 없어. 그럴 필요도 없고.”
시우의 말에 눈썹을 찌푸리는 시연이다.
시우는 오늘따라 유난히 차갑다.
짙은 눈이 시연일 보며 말했다.
“침묵이 답이다.”
시우의 말이 맞았다. 하나하나 상대해서 피곤한건 시연이었다.
그렇지만 시연의 성격은 바보같이 참는 성격이 아니다.
이대로 두면 피곤하게 될 건 새린이었다. 한시연 성격은 아무도 못말리니까.
“사장님, 새린씨하고 나 일 못해요. 자꾸 부딪치게 되요!”
시연의 말에 시우가 시연을 말없이 뚫어져라 쳐다봤다. 시연 또한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네 편으로 만들어봐!”
시우가 내놓은 해결책에 시연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새린이와 일을 못하겠다는데 자기 편으로 만들라니.. 깜깜할 노릇이었다. 시연은 부드러운 여자도 아니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깊은 착한 여자는 절대 아니었다.
아마 그대로 둔다면 당하는 쪽은 새린이가 될 것이다.
시연은 이미 그걸 간파하고 새린을 밀어내려고 하는 것인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을 제시한 권시우 사장님!
“날 싫어하는 사람, 날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게 아냐. 자길 좋아하게 만드는 건, 자기가 얼마나 노력하고 능력이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지. 해봐. 네 편이 될 때까지 해봐. 안되면 그 때 다시 생각해보지.”
“난요. 착한성격이 못되요!”
“한시연 스타일대로. 한시연 방식대로 해.”
“날 더 싫어하게 만들꺼예요!”
“그거 좋은 방법이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새린이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수 밖에!
신인가수 시연을 다루고 싶어하는 기자들은 줄을 섰다.
잘나가는 잡지사들 마다 시연을 표지모델로 섭외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가장 유명한 여성잡지에서 시연을 섭외했고, 시연은 시간에 맞춰 바쁘게 잡지사에 도착했다.
인터뷰는 편하게 진행되었다.
기자언니들의 따뜻한 배려에 시연도 편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첫 공식 데뷔무대 어땠어요?”
“너무 좋았어요. 재밌었구요. 절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앞에 계셔서 정말 놀랬어요. 신기해서.”
기자가 웃으며 시연에게 말했다.
“그래요? 앞으로 시연씨 좋아하는 사람들 진짜 많이 생길텐데, 그 때마다 놀라면 안되는데~”
“그러게 말이에요.”
“최고의 남자그룹 PP멤버들이 시연씨 곡을 썼다는 게 또 화젠데, 어떻게 곡을 받았어요?”
“제가 어떻게 한건 아니구요. 아무래도 같은 기획사다 보니까 곡을 주더라구요!”
“하하하!”
기자의 웃음보가 쉴새없이 터졌다.
“사실 권시우 사장님 파워가 이 바닥에서는 알아주거든요. 신인가수를 키운다는 거에 굉장히 큰 이슈였는데, 어떻게 권시우 사장님을 알게 되었나요?”
“...사장님을 만든건 정말정말 우연이었어요. 사장님은 저한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금! 같은 사람이예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 있게 도와주셔서 항상 감사하죠.”
시연은 잡지사와의 인터뷰를 끝내고 표지사진을 찍는 것까지 마쳤다.
이쁘다고 연신 말하는 사진기자의 말에 시연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질 않았고 그녀의 두 볼은 복숭아빛이 나 더욱더 아름다웠다.
모든 스케줄을 마치고 시우와 시연은 새 집으로 들어갔다.
빌라로 되어 있는 새 집이었다.
시우의 집처럼 대단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일반 집들보다는 굉장했다.
정이 들었던 시우의 집은 새카맣게 잊고는 새 집에 눈이 동그래진 시연이었다.
미리 시연의 짐을 가져다 놓고 정리를 마친 상태라 시연이 짐정리 할 게 없었다.
“푹 쉬어.”
시우는 짧게 말을 하고 나갔다. 시우는 바로 옆집으로 들어갔다.
시우가 나가고 얼마안되 빌라 건물이 무너질만큼 시끄럽게 울려댔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빌라 안을 가득 메우고, 피곤해서 침대에 그냥 널부러져 있는 시연이 슬그머니 일어났다.
그 순간에 딩동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뭐야..”
시연은 구멍을 통해 누군지 확인하고 문을 열었다.
“뭐야, 너희들?”
마구 초인종을 눌러대던 사람들은 바로 PP애들이었다.
시연이 문을 열자마자 집안으로 들어와 보는 세 사람이었다.
문 밖에는 PP의 매니저와 코디들이 짐을 가지고 위층 계단을 통해 올라가고 있었다.
“아까 우리한테 고마웠지?”
시라이 젠이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고맙긴! 짠순이라는 말은 왜 했어!”
“얘는 착한 일을 했어도 막 뭐라 그러네!”
“왜 사람을 쪼잔하게 만들어? 할려면 방실이처럼 하지! 짠순이는 왜 나오냐구!”
“뭐야, 광이만 칭찬하는 거야? 쳇!”
후가 어린애같은 말투로 말했고 도광이와 시라이 젠이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근데 너희들 왜 들어오는 거야? 누가 들어오라 그랬어?”
“그냥 들어와 봤어.”
시라이 젠의 대답에 시연은 기가 막혔다. 거기다 도광은 물을 찾아 마시고 후는 소파에 앉아 티비까지 켜서는 갑자기 집안을 정신없게 만들었다.
“모두 동작 그만!”
시연이 소리를 치자, PP멤버들은 모두 시연을 쳐다봤다.
“스톱했어. 왜?”
“왜라니. 너희들 왜 여기있는거야? 너희들 집으로 가. 숙소로 가라구!”
“쪼금만 놀다 갈래잉-♪”
도광의 애교섞인 목소리가 시연의 귀에 들려왔다.
“이웃끼리 왜그래잉-♪”
뭐시라?
“이웃?”
“아랫집. 윗집. 우리는 이웃입니다!”
도광의 말에 시연은 눈이 커졌다. 아니! 얘네들하고 또 붙어 살아야 된단 말인가!
시우의 집에 살 때는 선생님으로! 이번 집에서는 이웃으로? 맙소사!
시연은 집을 옮긴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 집에서 PP애들과 정이 많이 들어서 아쉽다 생각했었는데.. 그것도 잠시였다.
다시 붙게 되어버린 시연과 PP다.
머리를 짚으며 시연이 의자에 앉았고, PP애들은 축하파티를 하자며 소란을 피워댔다.
시라이 젠은 옆집에 가 시우를 불렀다.
“너희 내일 스케줄 없어?”
“있어. 많아.”
도광의 저 걱정없는 미소에 시연은 두 손을 들어버렸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집에 갔던 시라이 젠의 다급한 말소리가 들렸다.
“왜 그래요, 형? 준이 얼마나 아픈거예요?”
시라이 젠의 목소리에 시연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을 열고 나와보니, 준을 안고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는 시우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앞에서 동동거리며 걱정스런 표정인 시라이 젠도 보였다.
“왜그래, 무슨 일이야?”
“준이가 열이 엄청 나!”
시연은 시라이 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집으로 뛰어 들어가 담요를 찾았다.
담요를 찾아 정신없이 밖으로 나왔다.
출발하려는 시우의 차 앞을 막아 섰다.
끼익! 태혁이 차를 세웠고, 시연이 그 사이에 빠르게 뒷좌석에 올라탔다.
“무슨 짓이야! 갑자기 차에 뛰어들면 어떡해!!”
“준이 많이 아픈 거예요?”
“빨리 내려!”
땀을 뻘뻘 흘리며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는 시우가 시연에게 소리쳤다.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시연은 시우가 끌어안고 있는 아픈 준이를 빼앗았다.
“일단 빨리 병원으로 가요.”
시연은 침착하게 태혁에게 말하고 시우를 보았다.
화가 나 보이는 시우를 무시한 채 시연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따뜻하게 해서 데리고 가야죠. 그냥 데리고 가면 열이 안떨어질꺼예요.”
시연이 능숙한 솜씨로 준이를 담요에 싸 안았다.
-병원.
아기 준이는 많이 약한 편이었다.
감기도 한번 걸리면 몇 달을 고생할 정도로 심했다.
다행히 펄펄 끓던 열은 차츰 가라앉았다.
병실에서 잠이 든 준이 옆에 앉아있던 시우가 밖으로 나왔다.
병실 밖에서 담요를 덮고 의자에 기대 자고 있는 시연이 보였다.
시우는 시연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벽에 의지하고 있는 시연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로 옮겼다.
시연은 쌀쌀한 날씨에 몸을 살짝 움츠렸고, 편하게 시우의 어깨에 기댔다.
병원복도는 너무나 조용했다...
“저 애가 아프면 내가 아파…….”
잠들어 있는 시연을 옆에 두고 시우는 말을 이었다.
“그 여자가 버리고 간 저 아이 때문이라도 난 그 여잘 용서할 수 없어. 충분히 아프고 충분히 슬펐으면 끝나야 되잖아. 또다시 시작되는 건 싫다. 난… 이제 지쳤다. 준이를 지키고 널 지켜야 되는데 나 지치면 안되는 거잖아..”
시우의 짙은 눈엔 진한 슬픔이 묻어나왔다.
“……힘내요.”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시연이 조그마한 소리로 시우에게 말했다.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눈을 감고는 시우에게 말하고 있었다.
“지쳐도 지치지마. 나 지켜줘요….”
“…….”
“약속했으니까.”
.
.
.
으항 새린이가 시연이 완전 질투하는 건가!하지만 결국 시연이 편이 되겠죠?
새린이 싫다.ㅠㅠㅠ 으아~~ 근데 되게 흥미진진해요!! ㅎㅎㅎ
새린이 뭥미????? 짜증난다-_-^
새린양..뭐하는지;;;; 재수없어지넹;;![ㄱ-](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48.gif)
세린이 모에요 정체가!!!
새린이 넘 싫타 ㅠ.ㅠ 새린이 바꿔줘용
새린이 잡으러 가실분~~~><
저요!!!!
새린이짜증난다 --
새린이가 방실이한테 맘있는거 티난다;
꺄악!!! 시우랑 시연이 얼렁 이어졌음 좋겠어요>_< 새린이는 알아서 빠지고!!
왠지 사장님이랑 이어질듯 =ㅁ=
새린이 연기력 끝내준다 ㅋㅋ
근데 문자 보내던 사람은? .. 오늘 기분이 어때?
새린이가 뭘 꾸미고 있는거 아니에요??? ㅎㅎ
새린쫌많이 짜증나는 ㅋㅋ
새린이 너무 가식적이야 ~!
ㅋㅋ 새린이도 나름 속터지겠네요^^ 자기 거짓말이 안먹혀서^0^
시연이 완전 좋아요! ㅋㅋㅋ 성격도 맘에들고 말투도 짱 ㅋㅋㅋ
새린이 완전짜증나!
새린이싫어ㅠㅠ
준이 어떻해요![ㅠㅠ](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9.gif)
ㅇ새린이 - _ -;;
새린이 완전 어이없어><
새린이착한척-_-
준이 빨리 나아야 시우의 마음이 조금은 편할텐데.....
새린이뭥미
새린이 어이없네요;; 시우가 준이를 정말 많이 아끼나봐요..빨리 나아야될텐데;;
새린시끼 완전 어이없음-0-
역시 남다른 사장님 +_ +ㅋㅋ
새린이 너무 이상해..시우 사장 완전 멋있어...
ㅋㅋ 헤헤 시우사장 넘 멋있돠~!
시우♥시연
새린이 요거 악녀넹
새린이뭥미네 ㅋ 재밌어요~~
악녀등장인가?
잘읽었어요///
새린이 짜증나..... 그 맨날 이런데에는 이런 악역이 하나씩 있던데.....
알면서도 짜증이난다...
어머 마지막에 보닊 시우랑 시연이 이어지나보네요.ㅋㅋ첫회부터 대충 낌새가 있더니ㅋㅋ
문자가 요새 안 나오네요~ㅋ 시연이 성격 넘 맘에 들어여~><
도도퀸담비님의 소설은 여자 주인공이 적극적이고 밝고 맑은 사람이여서 너무 좋아요. 말도 잘하고~ 멋있네요!!
새린뭐야--+
시연을 좀 본받으란말야!!!!
세린이 완전 악역인가요???
세린이 완~~전 맘에 안들어!!!!
웬지..새린이가 시연의 사람이 될거같은 이느낌!!!!!시연은 그런능력충분히 있어요!너무 멋쟁이야!
우와~볼수록 재밌어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