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도
조정순
“제주도 갈 건데 엄마도 같이 갈래“ “그래 가자”
“반품 안 되니까 딴소리하면 안 돼” 내 말이 못 미더웠던지 딸은 못을 박는다. 사실 대답은 했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남편은 몇 달째 병원에 누워있는데 내가 여행을 한다는 것이 맞는지 어쩐지 모르겠다.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결단을 내렸다. 요즘 내가 말수가 더 줄어들고, 늘 씩씩한 척하던 허세도 무너져 얘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소위 말하는 우울증 증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 내가 무너지면 안 된다. 나를 살려야 한다.
가볍게 바람이나 쐴 생각으로 대답했는데 이참에 추자도를 다녀와야겠다. 제주도 갈 때마다 혼자라도 갈려고 몇 번 시도했지만, 날씨가 안 좋아서 못 가곤 했는데 일기예보를 보니 바람이 없다. 그래 이번에 꼭 가보자. 그때부터 마음속으로 추자도에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순간순간 기도한다. 인터넷을 뒤져 정난주와 황사영 황경환에 대한 정보를 찾는다. 배편을 알아보고 날씨를 살핀다. 숙소가 어딘지 여행 일정이 어떤지 아무것도 모른 채 내 머릿속엔 추자도만 있다.
서귀포에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 추자도는 혼자 갈 생각이다. 프런트에서 추자도 가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제주 연안여객터미널까지 승용차로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대중교통 이용하는 방법도 물어보았다. 차를 서너 번 갈아타야 한다.
다음 날 아침에 딸이 데려다주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다 혹시 배 시간을 놓칠까 염려되어 딸 하자는 대로 차에 올랐다. 9시부터 승선, 9시 30분 출발, 여유 있게 배에 올랐다. 444명 정원에 440명은 탄 것 같다. 나처럼 배낭 하나 메고 오는 사람도 있지만, 낚시꾼들이 많이 탔다. 아 드디어 가는구나! 몇 번째 시도인가? 오늘 이렇게 배를 타게 되어 저절로 감사기도가 나온다. 두 살배기 어린 아들을 낯선 섬에 떼어놓고 배에 올라야 하는 정난주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10시 30분 추자도에 도착했다. 한 시간이면 올 수 있는 거리에 아들을 두고 엄마를 두고 서로 그리워해야 했던 정난주 모자를 생각하니 가슴이 저리다.
배에서 내려 지도도 없이 예초리 가는 버스를 탔다. 예초리, 정난주가 어린 아들 황경환을 내려놓은 곳이다. 승객 중 한 사람이 지도를 보고 있어 관심을 보이니 남편도 지도가 있다며 자기 것을 내게 준다. 인터넷 검색이 서툰 나는 입으로 물어서 다니는 사람이다. 아들을 예초리에 내려놓았다고 해서 예초리로 가려고 했는데 지도를 보고 영흥리에서 내렸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황경환 묘가는 길을 물으니 산비탈 마을 길로 들어가서 산으로 올라가라고 자세히 가르쳐준다. 바빠서 아침도 시원찮게 먹었는데 먹을 걸 준비해야 한다. 마침 김밥집이 보인다. 들어가 김밥 한 줄을 시키고 지도를 보여주며 황경환 묘를 갈려고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고 또 물었다. 1시간 정도 걸린단다. 그중 한 사람이 황경환 묘는 예초리서 가는 게 좋다고 얘기하는데 귀밖으로 들린다.
가르쳐 준 마을 길로 들어섰다. 안내 표지판이 없어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산길을 찾았다. 길이 가파르다. 산이 높지 않으니 조금만 오르면 능선이 나오겠지,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올라간다. 좀 힘들어도 정난주가 아들을 떼어놓는 고통에 비길 수 있을까. 아들과 함께 살 수 있다면 이런 길 무릎으로 기어서라도 올라갔을 것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발 한발 옮겨 딛는다. 오르락내리락 능선에 올라섰다. 지금까지 소요된 시간으로 보아 황경환 묘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아 길에서 만난 아저씨에게 또 물어보았다. 지도를 자세히 보더니 산길로 가서는 배 시간 맞추기가 어려우니 예초리로 가서 올라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한다. 김밥집에서 아저씨가 한 말을 귀담아들었어야 했는데 내 잘못이다. 제대로 된 작은 소리는 흘려듣고 목소리 큰 잘못된 정보에 빠지는 것이 어찌 이뿐이겠는가.
1시간 반 이상 산길을 헛걸음하고 다시 영흥리로 내려왔다. 마침 작은 승용차가 내 앞에서 멈춘다. 김밥집 아줌마다. 바쁘지 않으시면 예초리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더니 선뜻 다시 차에 오르신다. 아줌마도 천주교 신자라고 한다. 이 작은 섬에서 교우를 만나니 더 반갑다. 오늘 일정이 잘 될 것만 갔다. 자기도 가보지는 않았다며 예초리 주민에게 전화로 물어 어떻게 어떻게 가라고 가르쳐준다. 보이지 않는 힘이 이끌어준다는 생각이 든다. 예초리에는 집 마당은 물론 길옆 공터에까지 커다란 새우젓 통이 즐비하다. 어린 황경환이 저 새우젓 통 옆 어딘가에서 놀고 있는 것 같다. 가르쳐 준 대로 산길을 오른다. 길은 있는데 이정표가 없다. 갈림길이 나오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외딴 섬에 어린 아들을 떼어놓고 귀양길에 오른 정난주에게 길은 없었다. 나는 길이 안 보이면 돌아서면 되지만 정난주는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가 없었다. 그냥 태풍에 떠밀려가는 그 고통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정난주와 황경환 그리고 황경환을 키워준 오 씨와 마을 주민들을 생각하며 아파하고 고마워하고 또 흠모하는 마음으로 이 산길을 걷는다.
. 황경환은 살아서는 엄마를 만나지 못했다. 키워주신 부모에게 화가 미칠까 두려워 가까이 있는 엄마를 보러 가지 못했을까? 엄마 정을 몰라서일까? 죽어서는 제주가 가장 잘 보이는 산등성이에 묻혀 엄마가 살던 제주를 내려다보고 있다. 임금에 총애를 받는 앞날이 보장된 황사영의 아들로 태어나 외딴 섬 오 씨 집에서 자라 섬사람이 된 황경환은 자기의 존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알았다면 신앙 때문에 국사범(國事犯)이 된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당대 최고의 명문가의 맏딸로 태어나 관노가 되어 어린 아들과 생이별을 해야 하는 고통을 정난주는 어떻게 견디었을까? 남편의 순교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혼자 산길을 걸으니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이런저런 생각이 자유롭다.
시간에 쫓기어 황경환의 묘는 먼발치에서 보고 돌아섰다. 배를 못 타서 얘들이 걱정하게 될까 염려되어 돌아서는 발길이 조금은 아쉽다. 하지만 묘소까지는 못 갔어도 추자도에서 그들이 밟고 다닌 산길을, 마을 길을, 정난주와 황경환, 그리고 오 씨와 마을 주민들과 함께 걸었다.
4시 반 배를 타고 제주에 5시 반에 내렸다. 딸이 데리러 오겠다는 걸 프런트에서 알려준 노선을 반대로 버스를 타고 갔다. 버스 정류장에 있는 안내판을 보고 세 가지 노선 중 가장 빨리 가는 노선을 찾는 여유까지 부렸다. 밤길을 왕복 2시간 이상 딸을 고생시키는 것 보다 혼자 찾아가는 것이 훨씬 좋다. 추자도를 혼자 다녀오고 제주에서 혼자 버스도 타 보고 내가 해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
대정에 있는 정난주 묘소 참배도 했다. 추자도에서 황경환을 만났으니 엄마 정난주를 만나고 싶다고 생각만 했는데 마침 시간이 되어 정난주 묘소를 들렀다. 이건 계획에 없던 것으로 완전 덤이요 행운이다.
내가 지금 힘들다고 해도 어찌 정난주의 고통에 비할 수 있을까. 명문가의 맏딸로 태어나 관노(官奴)로 추락하고 한양 할머니로 마지막을 살아낸 정난주를 생각하며 나를 다독인다.
이렇게 같이 따로 하는 여행 기회가 되면 또 해 보고싶다.
황사영=17세에 장원급제, 정조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으나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능지처참
정난주=정약현의 맏딸, 숙부 정약용, 17세에 황사영과 결혼,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제주도 유배
황경환=황사영의 아들로 추자도 유배
첫댓글 천재들의 수난과 선지자들의 박해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 은혜로 사는 삶이 그저 감사롭고 황송합니다.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감사합니다
혼자서 추자도 순교자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신 선생님의 발걸음이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고맙습니다 혼자 걸으니까 아무런 방해도 받지않고 생각이 자유로와서 정말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