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나흘째. 서울에서 벗어나 충남 공주에서 1박했다. 길 하나 건너 지척에서, 하늘 높이 솟은 공산성의 야경을 보며 식사하고 차를 마시는 호사를 누렸다.
백제 수도였던 공주(옛지명 웅진)는 조용하고 단정했다. 마침 공산성 인근 숙소에서 5분 거리에 나태주 시인의 <공주 풀꽃 문학관>이 있었다.
짧고 쉽게 쓰는 시, 선하고 아름다운 울림을 주는 그의 시를 접할 기회가 지금껏 꽤 있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는 시 <풀꽃1>은 교사 연수에서 자주 인용되는 단골 교육 시이다. 나태주 시인은 43년간 초등학교 교단에 섰으며 공주장기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하셨다.
<풀꽃3>의 <기 죽지 말고 살아봐/꽃 피어봐/참 좋아> 귀절을 캘리그라피로 인쇄해서 만든 반투명 L자 파일은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인기가 참 좋았고 중학교에 입학설명회 선물로 가지고 갔더니 중학생들과 선생님들도 이 파일을 특히 선호했다. 따라서 매년 나태주 시인의 이 풀꽃 시로 학교 홍보 파일을 만들곤 했다.
작년 11월 수능 격려식 때 나태주 시인의 <응원>을 외워서 전교생에게 들려주었었다. 수험생들을 향한 간절한 마음이 이 시에 다 담겨 있었다.
<오늘부터 나는 너를 위해 기도할거야
네가 바라고 꿈꾸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그날이 올 때까지
기도하는 사람이 될 거야
함께 가자
지치지 말고 가자
먼 길도 가깝게 가자
끝까지 가 보자
그 길 끝에서
웃으면서 우리 만나자
악수를 하자
악수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자>
나태주 시인의 따님인 나민애 교수는 서울대에서 가장 인기있는 글쓰기 강의를 한다. 최근에 나민애 교수의 <<책 읽고 글쓰기>> 책을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아 이번 여행에 가지고 가서 완독했다. 유용한 내용이 많아서 서평 쓸 때 다시 꼼꼼히 읽어볼 생각이다.
이런 저런 연관이 있는(사실 특별한 것은 없지만) 나태주 문학관에 가볼 수 있다니... 마음이 설레었다.
공주사대부고 뒷편 언덕 위에 작은 적산 가옥 같은 풀꽂 문학관이 서있었다. 신발 벗고 미닫이 문을 드르륵 열고 마루에 올라서니 시들이 적힌 액자와 병풍이 보였다. 눈으로 하나 하나 읽으며 조용히 사진을 찍었다. 큰 방에서 작은 방으로 이동하니...세상에! 나태주 시인께서 어떤 젊은이와 이야기하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믿을 수 없었다. 때마침 여행 마지막날이라 내 행색이 매우 부스스하긴 했지만, 이 엄청난 기회를 놓칠까봐 얼른 악수를 청하고 사진 촬영을 부탁드렸다. 둥근 얼굴, 친근한 인상의 시인께서는 <<나태주 대표시 - 사랑에 답함>>이라는 75쪽의 작은 시집에 싸인을 해서 건네주시며, 내가 나민애 교수의 책을 최근에 읽었다고하자 나교수의 에세이집 <<반짝이지 않아도 사랑이 된다>> 한 권을 선물로 주셨다.
내게 <공부 너무 많이 하면 시를 잘 못써요.>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무슨 뜻일까 대구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좋아요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
이 시의 제목은 <좋다>이다. 책읽고 공부를 많이 해서 얻을 수 있는 시가 아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데 공부조차 하지 않고 어찌 좋은 글을 생각해내겠는가. 현학적인 공부가 아닌 마음 공부를 먼저 하라는 말씀이겠지 짐작했다.
나태주 공주 풀꽃 문학관에서 우연히 노시인을 뵌 일은(게다가 교육계의 대선배이시기도 하니) 내 퇴임 기념 여행에 대한 매우 의미있는 선물이었다. 무척 감사한 마음이 든다.
첫댓글 아~ 퇴임 기념 여행을 즐기고 계시는 최은영 선생님, 복된 시간입니다. 박수!
여행에서 돌아왔습니다. 이제 일상 복귀합니다.
선생님 글을 읽으면, 전통찻집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듭니다.
그렇게 보이는군요. 아메리카노와 라떼를 더 좋아합니다만, 전통차를 마실 때도 있습니다.
참 좋았을 시간이 멀리 있어도 느껴집니다.~
예. 참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가볍지만 울림있는 그래서 더 친근감 있는 우리의 시인이시죠.
로또 맞은 기분이시죠?
축하드립니다.
예. 선생님.
무척 기뻤습니다.